윤회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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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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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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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DUMMY

21화




새빨갛게 변하는 흰자위를 포착한 공손신정과 유희가 얼른 구석으로 물러서며 반격할 태세를 갖췄다.


[!!!!!!]


환관 일족의 심법, 일월조화심법은 기묘한 특성을 가졌다. 거세한 사내 외에는 기신(器身)을 타고난 이라고 해도 익히는 것 자체가 불가능. 강제로 익히면 음양의 부조화와 불균형이 심해지고 끝은 온갖 합병증과 주화입마로 귀결된다. 반드시, 예외없이.


거세하지 않은 남성이 억지로 익히면 양의 기운과 불의 기운이 과하여 경혈과 오장육부가 말라붙는 병을 얻게 된다. 사람이 안에서부터 말라서 죽는 것.


반면에 여성이 익히면 점차 여성성을 잃게 된다. 가장 먼저 유방을 잃고 골격이 비대해지며 털이 수북해지고 불임에 이른다.


이는 심법이 양의 기운을 갈구하도록 설계되었기에 다른 방식으로 음의 기운을 보충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오직 환관만이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 중 하나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무엇이든 양면이 있다는 것. 음양무맥도 마찬가지다. 그처럼 치명적인 단점의 대척점에 가공할 만한 장점도 있었다.


그건 바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성. 자연 그대로의 신체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결함 즉, 남성의 상징을 제거한 탓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양의 기운을 외부에서 흡수하면서 음양의 조화와 균형은 물론 폭발적인 빠르기로 기운을 쌓을 수 있었다.


정상 남성과 여성은 체내 음양의 기운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에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기운의 양에 한계가 있다. 양의 기운이든 음의 기운이든 한 번에 지나치게 많은 양을 받아들이면 체내 음양의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고 마는 것.


그러나, 환관의 경우 거세로 인해 체내 음양의 격차가 완전히 벌어진 상태이기에 비정상적으로 부족해진 양의 기운을 무한에 가깝게 받아들이면서도 음양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무인과 달리 무환관은 시기적으로 양의 기운이 강한 낮이든 공간적으로 양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든 그 반대의 조건에서든 얼마든지 축기가 가능했고, 그만큼 빠르게 기운을 쌓을 수 있었다. 이는 놀랍고도 오묘한 이치요 현상. 자연과 무예의 세계는 그토록 심오하고 광대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상상력과 그 상상의 결과물을 실현하고자 하는 집념이 대단한 것일지도.




아무튼, 지금 유희와 공손신정이 경계하는 게 바로 그 속성이다. 두 사람 다 조경이 셋 중 가장 뛰어난 고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반격 태세를 갖춘 유희와 공손신정이 낮고 단호한 어조로 경고했다. 경계심으로 가득한 눈동자들이 조경을 조준했다.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거야. 실력이 어쩔지는 붙어 봐야 알겠지만 우리 둘을? 쉽지 않을걸?”

“계속하면 황명도 대명률도 위반하는 것이다. 상관 포함 관리에게 위해를 가한 자, 즉결 심판이고.”


양쪽 다 사실을 말했다. 유희도, 공손신정도 도찰원과 금의위가 감춰둔 재목들. 이른바 비밀 병기들이다. 동집사창의 음양무맥이 아무리 속성을 자랑하는 무맥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시간의 한계, 수련 시간의 한계가 있기에 조경이 다른 두 사람을 한꺼번에 제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조경이 관직과 품계를 밝힌 유희와 공손신정에게 합당한 이유 없이 위해를 가하는 행위도 위법한 행위고.


“그걸 지금 묻는다고 나나 이 덩치가 순순히 대답하겠어? 물론 본녀는 금시초문이고.”

“마찬가지다. 게다가 용의 추락이라니. 입에 담는 것 그 자체로 위법의 소지가 있다.”


조경이 끌어 올렸던 공력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러자, 빨갛게 물들었던 흰자위도 서서히 원래의 빛을 회복했고.


“둘 중 하나 어쩌면 둘 다 명을 받았겠지. 명심해 둬. 누구든 그분을 해치려고 드는 순간, 이 조경이 그 명줄을 끊어줄 테니까.”

“금시초문이라니까 그러네.”

“계속 우리를 모함할 심산인가. 우리도 황실을 섬기고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들이다.”

“다른 이를 위해 순장을 철폐하신 분이다. 그를 위해서 폐서인도 감수하고자 하신 분이고. 그러니 두 사람도 사람이라면 양심과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만두라. 호위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분을 감시하든 뭘 어쩌든 좋으니 딱 하나, 위해는 생각지도 말라.”


다른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 경고만 하는 조경에게 질려버린 유희가 고개를 내저었다.


절레절레—


“하··· 저거 진짜 보통 피곤한 외골수가 아니네. 덩치, 이거 알아?”

“뭘?”

“연의나 민담 보다 보면 저런 자가 악당으로 밝혀질 때가 많잖아. 이런 식으로 우리도 그분도 방심시켜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 치는 거지.”

“일리가 있군. 그런 이야기를 들어봤지.”

“어이, 조경. 성격 급한 것도 알았고 의지도 알았으니까. 적당히 해. 힘 좀 빼라고. 애먼 사람 몰아가지 말고. 긴장했어?”

“조 감승. 이번은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다음에도 법도를 위반하려 든다면 내 유희와 더불어 죄를 물을 것이다.”


조경은 공손신정과 유희 중 누군가 태자와 귀비를 추종하는 세력이 보낸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이를 가는, 언제든 처치할 거라며 전의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마음대로 지껄여봐. 내가 죄를 짓는 순간은 너희가 용을 추락시키려 할 때일 테니까. 그 죄는 즉결 심판뿐만이 아니라, 삼족이 멸해질 대죄지 아마?”

“아··· 벌써 피곤하네··· 저거 진짜···! 저런 작자랑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여정을···! 하아··· 골 아파. 그때 거절해야 했어, 뭐 하러 맡아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는 유희. 반면 공손신정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차분하게 화제를 돌렸다.


“일단 규칙부터 정하지.”

“규칙? 무슨 규칙?”

“셋이 먼 길 동행하려면 규칙이 있어야지 않겠나. 우선 첫 번째는 그분과 접촉하지 않는다.”

“그건 당연하지. 위에서 그리 명했으니까. 접촉은 금지라고. 다들 그렇지 않아? 그분도 우리 존재를 모르신다고 하셨고.”

“그래, 나도 그렇게 들었다.”

“그쪽 피로를 유발하시는 내신은?”


유희의 물음에 조경은 사실과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마찬가지.”

“그럼 첫 번째 규칙은 정해졌고. 아··· 근데 진실로 하필이면 배에 타실 줄이야. 이건 생각 못 했네. 안 그래? 허를 찔렸어. 안 그래 덩치?”

“그래. 쫓기야 수월해졌지만, 거리를 두기가 까다로워졌지. 이대로 몇 날 며칠 한배에 붙어있다 보면 우리 정체가 노출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조심해야지. 특히 피곤한 내신 너. 낮처럼 쓸데없이 접근하지 말라고.”

“남이사. 명을 어긴 것은 아닐 테니. 상관 말지?”

“그건 그렇고. 덩치 또 생각한 거 있어?”

“많지. 보초 문제도 있고 우선···”


그렇게 며칠 서로 경계하다가 신분을 밝히고 동행하기로 한 세 사람은 한동안, 규칙을 정하는 데 몰입했다.




그러는 동안, 긴 시간 동안 조금 전 조경이 그랬듯 셋 중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지도. 수 없이 오고 간 대화 내용 중 진실은 하나도 없었을지도.


이는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잠자리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모습.


또한 오월동주(吳越同舟).

사이가 좋을 수 없는 이들이 한배에 탄 모습이었다.




#




삭월이라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자정을 넘긴 밤, 운하 위는 가끔 오고 가는 선박들이 강물을 밀어내는 소리, 갈대숲 속 겨울 철새 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고요하고 적막했다.


막막하게 느껴질 만큼 커다란 어둠과 고요 그리고 적막 사이로 작기만 한 횃불 몇 개에 의지해서 나아가는 배들이 자못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저녁 무렵 잠시 천진(天津)에 정박, 보급을 마친 조운선은 수면 위 낮게 깔린 물안개를 뚫고 천천히 또 남으로 꾸준히 나아갔다. 북서풍이 부는 계절인지라 순풍의 조력을 받은 배는 곧잘 미끄러졌다.




견신은 낮에 본 얼굴들이 밤에도 찾아드는 통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낡은 침상에 덩그러니 앉아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도 했고 무도를 궁리하기도 했다.


지금은 낮에 있었던 일, 정확히는 강에 뛰어들뻔한 사고를 막아준 사내. 그를 생각 중이었다. 작은 체구, 가무잡잡한 얼굴의 미남을.


그이가 북경에서 붙인 호위일 수도 있다.


“탔겠지.”


금의위, 동창, 도찰원에서 붙인 호위가 배에 탔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감시도 호위도 불가능할 테니까.


그런 이유로 운하를 선택했다. 셋을 조기에 추려내기 위해서 또 녀석들의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서.


그래서 정박할 때마다 선실 밖으로 나갔었다. 밖에 나가서 승선하는 사람의 면면을 자세히 확인했다.


승객 중 무사로 추정되는 사람은 총 여덟. 물론, 상회 선원 혹은 무사로 위장시켰을 수도 있다. 손과 근육만 봐서는 선원과 무사를 구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고, 북경이 그 점을 노렸다면.


그러나, 그건 무리수에 가까운 일이다. 정왕 주견신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봐야만 가능한 일이다. 운하를 이용할 계획을 밝힌 적이 없으니까. 누구에게도.


게다가 조운선이, 운하를 오가는 배가 한두 척도 아니고. 운하를 이용할 계획을 알았다고 해도 언제 어떤 배를 탈 줄 알고 미리 사람을 심었겠나.


아무튼, 호위는 그 여덟 중 셋으로 압축했다. 그중 둘은 병기로 추정되는 물건과 손을 보고 짐작한 것이지, 실제 무사로 확인된 건 아니다. 그러나, 구 할 이상 확신 중이다.


그 둘도 무사다. 손, 걸음걸이, 호흡, 습관. 그리고 검 혹은 기타 짧은 병기를 충분히 넣을 수 있는 통이나 곽의 조합은 예전부터 무사의 증표였으므로.


그 여덟을 더 압축하자면 장년 둘을 뺀 여섯이다. 여인이 둘, 사내가 넷.


동집사창이 금방 들통날 수밖에 없는 나이 든 환관을 보냈을 리 없고, 금의위나 도찰원의 인물이 그쯤 나이 들었다면 최고위급 관리일 테니까. 그런 고관들의 얼굴은 이쪽도 알고 있고.


좌우지간에 그 여섯 중 체구가 작은 미남 사내는 특히나 유력한 인물.


“아무래도 그 녀석이 무환관인 것 같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게 흠이긴 하지만 환관은 얼굴에 화장을 하니만큼 따지고 보면 흠도 아니다. 나머지 그 밖의 조건은 완벽 그 자체. 아담한 체구에 곱상한 얼굴은 사례감 환관 중에서도 황실을 수행하는 근시환관의 자질 중 으뜸으로 치는 것들이므로.


거기 더해 확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이쪽이 강물에 빠질 뻔한 일을 시의적절하게 막아준 것도 그렇고.


나머진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여인 둘은 가능성이 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배제할 수는 없다. 도찰원에 여관들이 있으니까. 또 금의위나 도찰원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사람을 골랐을 테니 속단은 금물이다.


그중 태자와 귀비를 추종하는 세력이 심은 자도 있을 것이다. 하나일 수도 셋 다 일 수도 있다. 동집사창과 환관들은 믿고 싶지만, 권력과 사람은 본질적으로 쉬이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 일단은 의심하고 보는 것이 옳은 처사다. 정체를 밝히고 다가오더라도.


“오라, 내 기다리고 있음이다.”


대부분 외부에서 성장한 인력을 뽑는 도찰원. 거기서 보낸 녀석도, 아주 어릴 때 데려와서 육성하는 금의위와 동집사창에서 보낸 녀석들도. 셋 다 공력을 익힌 고수들일 거고 하나는 구룡무맥, 다른 하나는 음양무맥, 나머지 도찰원에서 보낸 녀석은 무엇을 익혔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점은 녀석도 공력을 익혔을 거라는 사실. 다른 두 녀석에 비견되는 고수일 거고.


세 녀석 중 알량한 공력을 믿고 정왕 주견신의 목을 노리는 녀석이 있다면 재미있어질 것이다. 이쪽에서 가르쳐줄 게 많을 테니까.


“내 세상에 내공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줄 테니.”




그처럼 견신이 북경에서 붙였을 세 호위를 생각 중일 때 선실 밖에서는 전날 밤과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로가 좁아지는 구간 갈대숲에 숨은 강둑에서 부자연스러운, 인위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




마음껏 뛰놀던 육지에 비해서 좁아터진 배였지만, 그럼에도 날마다 처음 배에 오른 사람처럼 지내온 소녀는 곤히 잠든 상태. 소녀의 어미도 그런 소녀를 안은 채 하루의 피로를 잠에 녹여내고 있었다.


반면에 소녀의 아비, 신임 항주 지주(知州) 종청산은 견신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며 앉아 있었다. 그가 잠 못 이루는 까닭은 열두 살 아이의 품에 있었다.


“이현··· 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 물건을 항주에 전달해야 한다. 반드시. 물건을 항주까지 호송해달라며 오래 사귄 벗에게 또 동문수학한 사형제에게 부탁한 이는 태자태사 겸 문연각대학사 이현이었다.


“허나, 내 천자를 섬기고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서. 기필코 해내야겠지.”


비밀리에 옮겨야 하기에 항주 지주 임명장도 서찰로 전달받았고 외유를 얻어서 유람을 떠난 것으로 했다. 그렇게 떠난 집에서 조운선까진 무사히 탔다. 그러나 아직도 4천 리 뱃길이 남아있다. 그 4천 리 뱃길을 무사히 통과해서 항주에 닿을 수 있을지.


“태종 폐하의 치세까지는 천하를 호령했던 제국군이 어찌 이리 허약해졌을까.”


두렵고 또 두렵다. 너무나도. 오늘 당장이라도 발각될 것 같아서. 무도한 무리가 도검을 들고 나타날 것 같아서.


“아니, 제국군이 허약해진 것이 아니라 간신들과 탐관오리들이 오늘날 제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


이현이 이르기를 황제도 모르는 일이라 하였다. 황제는 병석에서 오늘내일하는지 오래라, 이 일을 판단하고 조처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태자는 아직 미숙하고 또 태자에게 알려서 공론화했다가는 비밀이 새 나가서 모든 게 수포가 되는 수 있으니, 신하들이 알아서 조처해 보자고 했다.


그리하여 이쪽의 항주 도착에 맞춰서 자기가 믿는 사람을, 항주의 민정과 군정 그리고 형옥까지 한 번에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이를 만나기 전엔 그 어떤 사람과 접촉도 그를 믿지도 말라고 했다.


“하늘이시여, 열성조시여. 이 종청산을 살펴주소서. 신음하는 제국과 만백성을 살펴주소서. 아내와 아이만은 보우하소서.”


그러던 그때, 곤히 자던 아이가 깨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험한 세상에 아내와 함께 유이한 보물이.


“으응··· 아빠, 안 자?”

“응, 아냐. 아빠 방금 깼지.”

“응. 아빠, 나 쉬.”

“우리 딸 쉬 마렵구나? 가자, 아빠랑.”

“응.”


종청산이 곤히 자는 아내를 보며 조심스레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데 그때, 문득 아주 조금 열어둔 창 너머 강둑에서 검은 형체가 일렁이는 모습이 그의 시야 끝에 걸렸다.


“······?”


그에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낀 종청산은 조심스레 창을 열어서 직전에 본 것을 다시 확인했다. 잘못 봤을 거라고 환시일 거라며 생각하기는 했으나, 아이가 깨기 전에 하던 생각이 있는지라 괜스레 찜찜했다.


“아빠, 왜? 밖에 뭐 있어? 영아도 볼래.”

“영아, 조용.”


그렇게 딸아이를 조용히 시키며 확인한 광경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시커먼 강둑에서 뭔가 검은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철렁—


곧바로 세차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이 천장과 바닥에 부딪히기를 반복하는 느낌. 혼란스럽고 눈앞이 창밖 암흑처럼 컴컴해졌다.


그들이다, 그들이 온 것이다.

하늘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열성조시여.


“부인, 부인. 일어나시오.”

“으음··· 가가···”

“어서 일어나시오. 그들이 온 것 같소.”


비몽사몽으로 깬 아내의 눈꺼풀이 순간 확 찢어졌다.


“네?”

“그들이 온 것 같소, 밖에.”

“그, 그런! 어, 어떻게! 어떡해요?”

“일단 나오시오. 영아를 숨겨야 하니.”

“네? 아, 네! 영아, 이리 와.”


이어서 종청산이 선실 문을 열러 가고 아내가 딸아이 손을 잡고 이끄는 그 순간이었다. 최초의 비명이 들려온 것은.


“컥!”


그 비명을 들음과 동시에 하얗게 질려버린 아내가 무심코 딸아이와 함께 선실 뒤로 물러섰다.


“이리 오라니까! 선창···! 아니, 늦었을 것이다. 어디···! 어디로 가야···!”


종청산은 금방이라도 달아나 버릴 것만 같은 의식을 부여잡고자 안간힘을 다 썼다.


딸아이를 숨길 곳이 필요했다. 선창은 늦었을 것이다. 아니, 늦었다. 조금 전 밖에서 소리가 났으니, 놈들이 이미 승선 중이라는 뜻. 길이 막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면 보물을 숨길 수 있다는 말인가! 어디로! 이 조운선의 생문이 어디란 말인가!


“!!!!!!”


아내가 발을 동동거리는 소리에 이어서 문득 어떤 풍경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선주가 그 흑의 소년에게 굽신거리며 부탁하던 풍경이.


-무사님, 송구하오나 짐을 싣다 보니 뒤주를 놓을 곳이 없어서··· 이쪽에 좀 두어도 될는지··· 작은 뒤주니까 탁자 삼아 쓰셔도···

-그러십시오.

-아! 고맙습니다, 무사님! 고맙습니다!


찾았다. 그것이다! 그 뒤주다! 지금 이 조운선에서 딸아이와 그 물건을 감춰줄 유일한 생문!


그 뒤주라면 선장의 말마따나 뒤주나 함이 아니라 탁자처럼 보이는 뒤주라면 딸아이를, 이 소중한 보물과 그 물건을 숨겨줄 수 있으리라.


“부인, 얼른 오시오. 얼른! 시간이 없소!”


그렇게 종청산이 처자식을 데리고, 선내 1인실을 찾아가는데, 이제는 아래층 선실에서도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악!”

“끄윽!”


동시에 승객들이 일제히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무, 무슨 일이야?”

“방금 비명이···!”

“꺄아아악!”




그들이 찾아왔다. 이현과 종청산이 최선을 다했으나 기어이 알아내서 찾아왔다. 이현과 종청산이 내내 두려워하던 그들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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