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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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
작품등록일 :
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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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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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DUMMY

41화




한참 덜 여문 얼굴과 심신에 가난을 멍에로 얹고 들어온 남매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벽난로 반대편 구석에 앉았다. 견신이 앉은 원탁의 건너 건너 놓인 원탁에.


벽난로 인근이 가장 따뜻하고 자리도 여럿 비어 있었으나 그리 가지 않았다. 저들을 잘 아는 점소이가 주의를 준 바 있기 때문. 겨울에 벽난로 가까이 앉지 말라고.


거기까지만 들으면 매정한 또 불공평한 처사로 여길 수도 있겠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게, 반점은 아이들에게 종종 반값 혹은 덤으로 음식을 내주는 곳이었다.


덕주가 작은 고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고을 최고의, 천하 양대 상인 중 하나가 운영하는 반점이니만큼 재료도 신선하고, 음식 맛도 좋고. 그래서 식대도 비싼 편이었다.


그런 반점이 허름한 행색의 남매를 손님으로 받고 종종 덤으로 음식을 내주고 있으니, 그를 매정한 또 불공평한 처사로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나. 그에 더해 벽난로 반대편 자리가 딱히 추운 것도 아니고.


아무튼, 허름한 행색의 남매는 사람들의 뇌리 거기 한구석도 점유하지 못했고, 사람들은음식과 음식 위로 떠다니는 이야기를 집어먹는 일에 열중했다.


웅성웅성—


이야기 주제는 주로 천순제 주기진. 이어지는 홍소화와 문국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순장 철폐는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해요. 폐하께서 정녕 큰일을 해주신 거예요.”


홍소화의 말에 동조하듯, 문국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주억였다.


끄덕—


“역대 열성조들께서도 이어오신 일이니. 유림의 반대도 상당하고 해서 철폐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그리 하신 덕에 이제 무업(無業)의 천자라는 말도 옛말이 될 기세입니다.”

“옳습니다. 이제 무업의 천자라고 부르기에는 큰 무리가 있지요.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좋고 운하를 파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그중 제일은 사람을, 신민을 살리는 일이 아닐는지요. 폐하께서 말씀 한마디로 생목숨 수백수천을 살리신 셈이니, 이는 작은 업적이라 할 수 없지요.”


무업의 천자를 번역하면 업적이 없는 황제라는 뜻이다. 순쟁 이전까지 천순제 주기진의 위상이 그러했다.


“그렇지요. 한데 듣자 하니 순장 철폐가 정왕 전하께서 주청하신 일이라던데.”

“폐행수도 그리 들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이무기라는 평가가 파다했었는데, 순쟁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의주를 감춘 잠룡이었다고.”

“실주(失珠)의 잠룡···”


문국의 말꼬리가 잠시 흐려졌다.


역대 용들의 그것을 능가하는 여의주를 갖고 세상에 왔으나 셋째로 왔기에, 온갖 핍박과 견제를 받았고, 그로 인해 여의주가 깨져버린 잠룡. 구슬을 상실한 잠룡, 실주의 잠룡.세상이, 천하가 견신을 그처럼 보고 있었다.


흐려졌던 말꼬리가 이내 다시 선명해졌다.


“그 연치에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을까. 겨우 열다섯에.”

“그러니 황룡의 자손이겠지요. 천하를 아우르는 핏줄이 어디 가겠습니까.”

“한데, 출궁하셨다는 말도 있고, 아니란 말도 있고. 대체 어느 게 진실인지.”


문국이 견신의 출궁을 확신하지 못하는 까닭은 금의위와 동집사창이 생전 주기진의 명령에 따라 정보를 교란 중이기 때문이었다.


진실은 그 태생이 가둘 수 없는 생물. 자유의 영혼을 가졌다. 그리하여 아무리 촘촘하고 질긴 그물이라도, 튼튼하고 빼곡하게 세워진 창살이라도 기어이 빠져나가고 만다.


그에 셋째 아들의 안위를 염려한 주기진은 교묘한 허실을 대량 생산하여 사람들이 진실과 허실을 구별할 수 없게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 정왕부의 궁녀에게서 정왕 주견신이 출궁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 정왕부의 환관이 경연에서 다시금 활약한 정왕 주견신을 칭송했다며 역정보를 뿌리는 식.


그러니 황궁을 빠져나온 진실이 천하의 산서상인에게도 제대로 닿지 못할 만큼, 제힘을 쓰지 못하는 거고.


“폐행수의 판단에는 출궁하신 듯합니다.”

“그렇습니까?”

“정왕 전하께서 출궁하셨다는 정보가 아직 궁에 계신다는 정보보다 근래 수적으로 확연히 많아졌습니다. 특히 후자의 내용이 부실해지고 있어요. 갈수록.”

“꾸며낸 정보라 아무래도 점점 부실해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일리가 있구려. 출궁하셨다면 어느 순간에는 본상과 연을 맺게 되실 터. 본상이 투자를 잘해놓으면 좋으련만.”

“그러게요. 뭐가 돼도 되실 분인데.”


그처럼 주기진과 견신을 주제로 한 서사들이 공기 중을 떠다니고 있으나, 견신과 세 호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견신은 양쪽 귀로 들어와서 다시 양쪽 귀로 새어나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허름한 행색의 남매를 관찰 중이었다. 물끄러미.


“······.”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습관이었다. 주변 사람과 경물을 꼼꼼하게 봐두는 것. 위협이 될 만한 존재와 사물을 조기에 식별해 내기 위해서.


이를테면 습관으로 굳은 생존 기술이었다.




그러는 사이.

남매 중 오빠, 장보는 누이동생 장희를 먼저 의자에 앉혀주고 저도 자리에 앉았다. 잘 먹지 못한 장희의 발육이 나이 대비 느린 편인 탓에 원탁은 장희의 턱 밑까지 쫓아왔다.


장보가 벌겋게 땡땡해진 손을 원탁 아래서 비비며 누이동생에게 물었다.


“희아, 닭 구운 거? 너 저번에 먹고 싶다고 했잖아.”

“나 황민계(黃燜鷄). 황민계 먹고 싶어.”

“황민계···?”


장보는 황민계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황민계는 북직례 일대 중심의 산동 요리 중 대표적인 것. 간장과 각종 채소 향신료를 넣고 끓인 육수에, 잘게 썬 닭고기를 넣고 졸인 찜이다.


“응. 닭고기 찜? 아무튼, 저번에 혜아가 여기서 먹었는데 진짜 맛있대.”

“왕혜가? 찜이면 따뜻하겠다.”

“응.”

“그래? 잠깐만 있어. 물어보고 올게.”

“응.”


이윽고, 주방으로 가는 길목을 서성이던 장보가 주방으로 돌아가는 점소이를 붙잡았다.


“대형, 황민계가 있어요?”

“황민계? 있지?”

“얼마에요?”

“비싸. 두 돈.”

“아···”


장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은 두 돈은 쌀을 반 섬 즉, 다섯 말 가까이 살 수 있는 돈이다. 당연히 한 끼 식사의 값으로는 턱 없이 큰 금액이고.


“부자들이나 먹는 거야, 그건. 황민계 먹고 싶어?”

“네, 희아가 오늘 생일이어서···”

“생일··· 얼마 있는데?”

“닷 푼··· 이요···”


닷 푼이면 반 돈. 황민계를 먹기에는 한 돈 반이나 모자라는 셈이다.


“그러면 좀 어렵겠다. 주인어른도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네. 대형, 제가 내일부터 일 도와서 갚으면 안 될까요?”

“아재 아시면 혼나지 않아? 여기 온 것도 아시면 혼날 텐데? 어제도 오셔서 물어보셨었어. 저번에 일 시켰다가 아재한테 점소이들 다 한 소리 들었잖아. 우리가 난처해져.”

“그렇긴 한데··· 희아가 여기 오고 싶어 해서··· 미안해요, 대형.”


구석 자리에 앉은 장희를 곁눈질하는 점소이. 그의 폐 속 들어찬 공기도 무거워지던 그때, 주방에서 점소이를 찾았다.


“황민계 됐다! 내 가!”

“예에—! 갑니다.”


그에 대답한 점소이가 돌아서기 전, 안쓰러워하는 얼굴을 하고서 장보와 눈을 맞췄다.


“다른 거 먹자, 응? 우형이 잘 이야기해서 닷 푼 깎아줄게. 아재 올지도 모르니까 얼른 먹고 가. 응?”

“네, 대형. 고맙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장보가 돌아서서 잠시 누이동생을 바라봤다.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아서 하얗게 질려있는 입술을 깨문 채로.


“······.”


그러다가 안색을 고친 뒤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머뭇거렸다가 준비한 거짓을 꺼냈다.


“희아야, 방금 재료가 떨어졌대. 닭은 있는데 다른 재료가 떨어졌대.”


사실대로 말하면, 돈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하면, 누이동생에게 상처가 될까 염려하는 것.


“···응. 아쉽다. 혜아가 맛있다고 했는데.”

“닭 구이 먹자, 오빠가 희아 생일이니까 많이 달라고 할게. 응?”

“응, 알았어. 오빠, 나 이제 더워.”

“그래? 알았어. 오빠가 갖고 있을게.”


그처럼 누이동생의 털옷을 한 겹 벗겨주는 장보를 가만히 보고 있던 견신. 그의 귀로 다른 원탁 위를 노니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리 혼나더니 또 왔네. 녀석들. 제 아비 알면 어쩌려고.”

“이 집이 잘해주니까 그렇지. 참··· 아비가 팔만 멀쩡했어도···”

“그러게, 전쟁이 웬수지, 웬수야. 병신을 만들어 놨으니. 쯧!”


그때, 두 글자가 견신의 고막을 뚫고 뇌리까지 곧장 쇄도했다. 전쟁이.


멈칫—


전쟁이라고 부를 만한 전투는 드물다. 전투는 전투고 전쟁은 전쟁. 한 개 성(省)이나 나라의 명운을 걸고 민족끼리, 나라끼리 다투는 것이 전쟁이다. 그런 전쟁 중 가장 최근의 것은 ‘그 전쟁’. 천하 누구나 다 아는 바로 ‘그 전쟁’이고.


동공에 담았던 권태를 쓸어낸 견신이 얼른 점소이를 붙잡았다. 조금 전 장보와 이야기했던 점소이를.


“대형. 한 가지 여쭈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아이고! 고 대협. 말씀 편히 아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이 모르는 것까지 알아내서 답을 올리겠습니다.”


덕주의 총책 문국이 견신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기에, 점소이의 태도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황제를 대하는 듯 극진했다.


“저 아이들의 아비를 아십니까? 이 사람이 얼핏 들으니, 전쟁을 겪었다던데.”

“아···! 장가 선이라고, 이 덕주땅에서 유명하다면 유명한 인삽니다. 예전에 전쟁에 끌려갔었답니다. 덕주땅에서는 그이가 유일하다고 들었습니다.”

“혼자 돌아왔다는 뜻이군요.”

“예, 그래서 유명한 것이지요. 소싯적 일인지라 소인은 듣기만 했습니다. 아무튼 어찌어찌 환향해서 또 어찌어찌 혼인해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았는데, 부인은 여식을 낳고 나서 죽었습니다.”


남매를 곁눈질하던 견신이 준비한 질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제시했다.


“···그렇습니까. 전쟁이라면 혹···?”


그러자, 점소이가 잠시 주변을 살피며 고개를 가까이 붙여왔다. 곧 꺼낼 답이 그리 좋지 않은 것임을 시사하듯이.


“정통 십사 년, 토목지변이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답을 들은 견신이 눈빛으로 탄식했다. 어느 찰나에 시들고 색을 잃어버리는 꽃처럼 동공이 빛바랬다.


“···팔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

“그때 그 아재 팔이 잘렸답니다. 다행히 팔목 바로 위를 잘려서 살았다고 들었고요. 그다음은 조금 우스갯소리 같기는 한데···”


점소이가 다음 이야기에는 미덥지 않은 구석이 있다는 듯 머뭇거리자, 견신이 눈빛으로 채근했다.


“······?”

“당시 아재가 폐하를 알현했다 합니다. 폐하께서 이것저것 하문하시는 중에 아재가 동갑이라며 반가워하시면서 완갑을 하사하셨었는데, 덕분에 한쪽 팔만 잘리고 살았답니다.”

“천순 폐하를 알현했다···”

“아마도 지어낸 이야기일 겁니다. 천자께서 병사 아무개가 동갑이라고 반가워하실 리 있겠습니까? 완갑은 더욱이나 그렇고요. 그래서 그 이야긴 믿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무용담이라는 것이 본래 덧대고 부풀리고 덧칠하고 그러는 것이잖습니까.”

“···그렇습니까.”


대강 대답한 견신의 내심은 이미 무저갱으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장선의 이야기는 십중팔구 사실일 것. 이이가 덕주 사람이라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추측이다.


‘거짓일 리가 있나.’


정통 14년, 토목지변(土木之變).

이번 생의 아버지와 제국의 최대 굴욕이자, 아버지가 천자의 위엄을 상실하게 된 계기다. 토목보를 이름으로 가진 요새에서 50만 대군이 패퇴한 대사변이다.


아버지를 어린 시절부터 주무른 환관 왕진이 동창을 휘둘러 온갖 부정을 통해 얻은 고향땅. 오랑캐에게 제 고향이 유린당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최단 거리로 철군하지 않고, 고향땅을 우회하게 하여 철군의 지체를 초래한 것이 토목지변의 원인이며 진실이다.


그랬으나 원인과 진실은 종종 결과 앞에서 무력해지는 법. 결과는 역사에 길이길이 남겨질 대패였고 또 어린 시절 글 선생이자 시동이었던 환관의 구슬림과 종용에 넘어가 친정을 감행한 황제는 포로로 잡혔다.


그에 황제는 물론이고, 가까스로 귀환한 이의 명예도 시궁창을 전전했다. 천자를 오랑캐에게 내준 군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


그런 이유로 북직례 일대에서 장선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단순한 손가락질을 넘어서 몰매를 맞을 수도 있고 또 토목지변은 아버지의 역린이니까. 함부로 떠들어 댔다가 금의위나 동집사창의 방문을 받게 될 것이므로.


그러니, 장선의 주장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분명 그 부대에서 생환한 것이다. 아버지가 완갑을 줬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거짓이라면 토목지변의 패잔병이라는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을 터.




그처럼 견신의 말이 없자, 점소이가 주방을 슬쩍 곁눈질하며 물었다.


“궁금하신 바는 다 해결되셨습니까?”

“대형. 혹, 누런 비단 있습니까? 서찰을 쌌던 것이면 좋습니다. 종이, 세필, 벼루도 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비단요? 아,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아마 있을 겁니다.”

“허고, 황민계 두 접시에 이것저것 귀한 것들을 몇 접시 더 내와 주시겠습니까?”

“예에—? 그렇게 많이요?”

“함께 먹을 이들이 있습니다.”

“아···! 예예! 알겠습니다, 대협.”


점소이 입장에는 의아한 부탁을 연달아 건넨 견신이 대략 세 냥쯤으로 보이는 은 조각을 꺼냈다.


“두 냥은 음식값으로 하시고, 나머지는 대형께서 쓰십시오.”


은 한 냥은 점소이의 한 달 품삯에 가까운 돈. 뜻밖의 횡재와 마주친 점소이의 볼에 우물이 패였다.


“예에—? 알겠습니다, 대협. 조금만 기다리시면 소인이 바람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누런 비단, 종이, 세필, 벼루면 되겠습니까?”

“예, 그것이면 됩니다.”


점소이는 행여나 견신의 마음이 바뀔 것을 염려하며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




잠시 후.

견신이 부탁한 물건들을 가져온 이는 문국이었다.


“대협, 급히 보내실 전갈이라도? 비단을 골라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폐상이 받아 적고 지급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가 건네 비단 족자는 언뜻 봐도 상품 중 상품이었다. 뜯어진 올이 없고 반질반질 윤이 나서 그 위에 글자를 써도 될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그냥 천이 아니라 족자로 마감해서 가져온 건, 문국이 노련한 상인임을 드러내는 증거다. 목록을 듣는 즉시, 견신의 의도를 이해한 것. 중요한 서찰을 쓰고자 하는 의도를.


“아닙니다, 직접 쓸 일이 있어서. 고맙습니다, 행수. 비단값은 치르겠습니다.”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고 대협께는 무엇이든 내드리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대방께 대신 사의를 전해주십시오.”

“예, 그러겠습니다. 그럼.”


문국이 떠나자, 견신은 곧바로 세필을 쥐고 정리한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세필은 군더더기도, 흔들림도 없이 불가사의할 만큼 일정한 빠르기로 종이 위를 노닐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제가 머금은 먹물을 나눠가졌다.


이내 견신이 세필을 내려놓았을 때, 종이에서는 문장들의 집결이 마치 승천하는 흑룡으로 화한 듯 장중한 기세가 뿜어졌다.


곧바로 종이를 비단 족자에 갈무리한 견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선 그가 보는 곳은 장씨 남매가 앉은 원탁.


거기 조금 전 나온 닭 구이 한 접시가 놓여서 의미와 가치를 여아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어린 오빠가 누이동생을 위해, 이 엄동설한에 며칠 허드렛일을 돕는 동안 흘린 땀. 그 의미와 가치를 온기와 향기, 맛에 담아 전달하고 있었다.


“오빠, 왜 안 먹어? 오빠도 먹어봐.”

“아냐, 오빠는 배불러. 아까 집에서 감자를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이 또한 거짓이다. 두 시진 전에 누이와 나눠 먹은 감자 두 덩이가 마지막이었다.


“그래도—오— 맛있어, 오빠. 한 번만 먹어봐.”

“아냐. 희아, 많이 먹어. 맛있어?”

“응, 맛있어. 오빠.”

“다행이다. 우리 누이동생, 희아 생일 축하해. 이따가 집에 가면 아버지랑 또 맛있는 거 먹자.”

“응, 오빠.”


그렇게 장보가 뱃속의 아우성을 행여나 누이동생이 들을까, 목소리로 얼른 감추는 그때였다. 남매의 원탁 곁에 선 견신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소형제, 소매.”


그에 닭고기를 찢어주던 장보도, 오빠가 건네주는 닭고기를 오물거리던 장희도 하던 것을 멈추고 견신을 올려다봤다.


[······?]

“이 사람은 형주 사람 고사라 하오.”


지금 이 반점에서 견신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기에, 사람들 모두 음식과 이야기에 집중하면서도 줄곧 견신을 의식 중이었는지라, 지금은 전부 동작을 멈추고 주목했다.


“이 사람을 조금 도와주시겠소?”


대답은 견신의 허리춤에서 기여를 발견, 그에 겁먹은 장보가 누이동생을 가리면서 했다.


“무사님···! 아···! 인사부터···! 저는 덕주 사는 장보구요, 누이동생 장희입니다!”

“장가에 보, 장가 희. 잘 알았소. 두 분, 이 사람을 조금 도와주시겠소?”

“저희가 무엇을···”

“벗들과 예서 만나기로 약조가 돼있었는데, 일이 생겨서 못 오게 됐다오. 그리하여 음식을 다 버리게 생겼소. 이 사람 홀로 다 먹을 수도 없고.”


때마침, 견신이 가리키는 거기 원탁에 점소이가 첫 번째 음식을 내려놓으러 왔고.


“고 대협, 음식 나왔···! 혹, 남매가 무슨 잘못이라도···?”


남매와 함께 있는 견신을 발견하고 의아하게 여긴 그가 내려놓은 첫 번째 음식.


“그러니 청컨대 두 분.”


연거푸 부탁하는 견신과 눈이 마주친 남매의 시선 끝에 저를 맡긴 그것은 황민계였다.


“이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겠소?”




거기 접시 위로 모락모락 일렁이는, 피어나는 무형무색의 꽃이 남매의 망막에 맺혔다.


작가의말

40화 말미에서 말씀드린대로 금일부터 연재 시간을 조정하고자 합니다.

지연 공지의 반복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함이니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실력이 부족하고 손이 느린 탓에 반복될 수 있습니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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