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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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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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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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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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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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DUMMY

27화




기뻐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 품에 안긴 방카르. 덕분에 궁호상은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처음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삼백 냥보다 백 냥이 옳은 결정임을,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무사님, 용아를 데려가세요. 무사님께 보내겠습니다. 우리 용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백 냥과 삼백 냥입니다.”


두 번 사양하지 않는 견신은 침착한 데 반해, 지금 막 아랫사람에게 흑룡의 고삐를 쥐라며 주문하려던 이는 차분할 수 없었다.


“!!!!!!”


초로에 배가 불룩한 산서상인 행수 양성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하고 있냐며 따져 묻듯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 잠깐···! 이것 좀 보시오.”


그가 말할 때마다, 호흡을 따라 뱃살이 출렁거렸다. 조금 전 궁호상의 결정을 들은 뒤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그의 마음처럼.


“누구에게 파신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삼백 냥이 아니라 백 냥을 선택한다는 건 행수로서 또 상인으로서 수긍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흑의소년이 용케도 강아지 한 마리로 아이의 마음을 사고 그럼으로써 아비의 마음까지 산 건 이해했다. 그러나 거래는 한순간의 달디단 감정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게 아니다. 쓰디쓴 이성과 차디찬 머리로 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모두 배제하고 오직 물건과 이문 두 가지만을 놓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거래의 요체다.


방카르인지 뭔지 하는 개는 저 영악한 흑의소년이 많아야 동전 몇 문 주고 데려왔을 것. 이 엄동설한에 개를 사 갈 사람이 몇 이나 있겠으며 파는 사람도 몇 이나 되겠는가. 겨울은 온갖 새끼들에게 혹독한 계절이니 웬만해서는 새끼를 받지 않는 게 보통이다.


아무튼 새끼를 받을 수 있는 암놈이더라도 은 반 냥을 넘지 않을 터다. 그런 싸구려 개 한 마리를 받고 은 이백 냥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도 멍청하고 어리석은 처사가 아닌가 말이다.




그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며 묻는 양성에게 궁호상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원래대로 여기 무사님께 보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여기 이 사···! 분도 내게 팔라고 말씀하지 않았소? 내게 팔면 되는 것 아니오?”

“이 사람의 사정을 봐서 행수께 팔아도 된다고 하셨지, 말을 포기하신 것은 아닌 줄로 압니다. 여기 무사님께서 먼저 오시기도 하셨고, 행수께서 오시기 전에 서로 이미 답을 주고받았으니만큼 무사님께 보내는 것이 순리일 듯합니다.”

“삼백 냥 받을 것을 달랑 백 냥만 받고 팔겠다는 말이오? 정녕?”


궁호상이 대답하기 전에 옅게 웃으며 아이와 아이의 품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헤실거리는 방카르를 돌아봤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인연임을 느꼈는지 또랑또랑한 눈이 닮아있다. 그래, 그렇게 서로 좋은 벗이 되어 주기를.


벗은 부모, 자식, 형제자매 그리고 반려만큼이나 귀하디귀한 인연이다. 원한다고 해서 만날 수도 또 얻을 수도 없는 그런 인연. 혈연을 뺀 선한 인연 즉 이 세상의 선연 중 반려와 함께 최고로 치는 인연이다.


외진 들판에서 벗할 사람 한 명 없이 아픈 아내와 흑룡이 전부였던 아들에게 오래 함께해줄 벗이 생겼다. 더불어 흑룡에게 좋은 주인을 찾아줬고 아픈 아내도 돌볼 수 있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억세게.


“그렇습니다. 아들에게 이처럼 새로운 벗을 만들어주신 분이신데 돈이 문제겠습니까. 어차피 오십 냥이 필요했는데 갑절을 받았으니 충분합니다.”

“허···! 허허허···! 나 이해할 수가 없군. 이해할 수가 없어. 정녕 이해할 수가 없구려.”

“허면, 저희는 이만. 가자, 네 새 친구 춥지 않게 꼭 안고.”


궁호상이 싱긋 웃으며 당부하자 아이가 잔뜩 들뜬 얼굴로 화답했다. 새로운 벗과의 만남에 한껏 기쁜 모양이었다.


“응! 아버지! 헤헤헤!”

“무사님, 이만 가시지요. 반점까지 모시겠습니다.”

“예, 일단 예서 나가시지요.”

“예, 무사님. 가자, 용아. 금일 내 너를 보낸 돈으로 밥 한 끼 거하게 내주마. 먹고 잘 가야 한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양성이 견신과 부자를 불러 세웠다.


“무사님···?”

“예?”

“그놈을 파시지 않겠습니까? 삼백 냥에 사고 다른 말도 구해드리겠습니다. 물론 그 말값도 이 사람이 치르고요. 어떻습니까?”


그의 물음이 희미하게나마 웃고 있었던 견신의 얼굴을 굳혔다. 사실, 직전까지 견신도 궁 씨 부자처럼 기분이 좋았다. 당벽호가 고(鼓)를 닮은 기여를 선물했던 당시처럼 전생 시절의 여로를 빼닮은 친구를 만났으니까.


그런데 양성이 연거푸 훼방을 놓고 있으니 그것도 금도를 넘으면서까지 놓고 있으니 그랬던 기분도 저 아래로 침잠할 수밖에.


양성과 일부러 척질 생각은 없었다. 두려워서? 아니 귀찮아서. 천하 북방의 산서상인은 남방 신안상인(新安商人)과 함께 천하 양대 상인을 이루는 초거대 상인 집단이다.


주원장의 북방 방위와 녀석의 넷째 아들이 벌인 북벌 당시 군량 수송을 맡으면서 큰 이익을 얻었고 이후 신안상인과 더불어 소금을 전매함으로써 거만의 부를 쌓았으며 지금 이르러서는 미곡·직물·도자기·차는 물론 물건을 받고 돈을 빌려주는 등 온갖 사고팔 수 있는 물목은 모두 취급하고 있었다.


즉, 천하 모든 재화가 산서와 신안, 두 상인의 손을 거친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이야기.




천민을 제외하고 가장 하층의 부류로 여겨지는 상인도 그쯤 수준에 이르면 사·농·공·상 중 으뜸이라는 사(士), 선비도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된다. 그 아무리 청렴한 선비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최소한의 의식주는 갖춰야 하니까. 또한 보다 더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바라는 건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이므로.


뛰어난 상인은 그러한 욕구를 이용해서 선비 위에 군림할 수 있었다. 선비가 쥔 권력까지 수중에 넣은 것. 돈을 통해.


마찬가지 무사들도 상인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사 계급도 선비와 마찬가지로 그들 상인의 수중에 떨어진 셈.


거대 방문파가 소속 무사가 아닌 이상에야 무사도 수입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무사가 다른 기술을 익혔다면 모를까 오로지 무예만 익힌 무사에게 밥벌이 수단은 무예뿐이다. 무(武)가 쓸모를 발휘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은 전투고.


그러나 큼지막한 전쟁은 태종 시절에 끝났으니 남은 것은 소규모 전투 혹은 그 전투의 대비뿐이었다. 소규모 전투의 예시는 사람을 죽이는 일. 전투의 대비 그 예시는 사람이나 재화를 지키는 것.


전자는 자객이고 후자는 표객이다. 과반수 이상이 후자로 살아갔고 일부는 무예 외에도 생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익혔다. 무사이면서도 장인이었다는 이야기.


나머지 극히 일부만이 전자를 업으로 삼았다. 악한 일이기 십상이거니와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만이 한 목숨 부지하는 동시에 유의미한 정도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




아무튼 천하 재화를 틀어쥐고 있는 산서상인과 신안상인은 하는 일 특성상 꽤 수준 높은 후자들을 대거 거느린 거대 무력 집단이기도 했다.


재력과 무력을 결합한 상인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거대 방문파가인 소림사나 무당파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위세를 자랑했다.


그런 산서상인이기에 굳이 척지고 싶지 않았으나 양성의 근본을 망각한 태도가 금도를 넘고만 것.


과거에는 상업에 또 상인이라는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정도를 지키는 상인들이 많았는데 오늘 본 양성은 아니었다. 그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전생 시절 경험한 바로는 자기 업에 긍지와 자부심이 없는 자는 무사든 사농공상이든 번번이 금도를 넘고 그런 일탈이 반복되면서 결국 악인으로 변모하기 마련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양성도 그런 싹수가 보였다. 이틀 전 배에 그 난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명색이 선주라는 사람이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일도 그렇고.


“···다 행수처럼 하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산서상인의 행수가 다 행수처럼 처신하냐는 말이오.”

[!!!!!!]


그 대목에서 양성과 무사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관전하던 궁호상의 표정은 심각해졌고.


“거··· 말씀이 조금 이상하게 들립니다만.”

“이미 팔렸음에도 사람이 자릴 비운 사이, 웃돈을 줄 테니 다른 이와 맺은 약조를 무르고 저한테 팔라며 꾀는 건 어떤 경우요?”

“······.”


정곡을 찌르는 지적에 양성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당시 양성의 권유에 내심 조금 흔들렸던 궁호상은 부끄러운 마음에 조금 움츠러들었다.


“해서 내 물은 거요. 산서상인의 행수들은 다 그쪽처럼 처신하는 건지. 천하 양대 상인의 행수들이 다 그쪽처럼 처신하는 건지. 당대의 상도가 땅에 떨어진 것인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도 있으니.”

“···지금 폐상인을 모욕하시는 겁니까···?”

“후··· 그 자신의 처신을 지적했는데, 저를 돌아보기보다는 산서상인 전체의 일로 만든다라··· 최소한 한 가지는 알겠소.”

“······?”

“그쪽이 좋은 사람, 좋은 상인은 아니라는 것.”


견신의 답을 듣는 한순간 눈꺼풀을 찢어질 듯 벌렸다가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린 양성.


“허···! 허허허허—”


주변 무사들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는 거센 콧김을 내뿜는 중이었다. 필요시 당장이라도 출수하겠다는 듯이.


그러다 어느 순간 양성이 칼로 벤 듯 웃음을 멈췄다.


뚝—


“···젊은 무사님. 여기 많은 사람이 본다고 하여 안심하시는 겝니까? 보는 눈을 믿고 본행수와 본상인을 모욕하시는 겝니까?”

“모욕은 먼저 했지. 조금 전에 나를 두고 도둑놈 심보라고 하던데.”

“······.”


견신이 조금 전 궁호상과 나눈 대화를 다 들었음을 눈치챈 양성이 내심 분노하면서도 입맛을 다셨다.


뜨끔—


그런 양성의 귀를 송곳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찌르고 들어갔다.


“여기 대가께서 은 백 냥을 말씀하시기에 백 냥을 드리겠다 하였다. 뭐가 문제지? 내가 왜? 도둑놈 심보가 어쩌니 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상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도 모르는 이에게서.”

“하···! 이제는 장유유서마저 팽개치시기로 하신 모양이구려. 강호 물을 마셨어도 몇 수레는 더 마신 사람에게 다짜고짜 하대하시고 모욕하시니. 아무래도 금일 본행수와 폐상인이 강호의 도리를 가르쳐 드려야겠습니다.”


그처럼 노회한 미소와 함께 조금씩 무사들 사이로 물러서는 양성에게 견신이 서늘한 눈빛과 곁들여 뇌까렸다.


“사과 몇 마디로 끝낼 일을 칼로 가름하자는 이야기인가? 굳이? 후회할 텐데. 내가 관에 고하면 어찌 될까?”


착 가라앉은 눈빛이 품고 있는 기세, 기운을 양성은 물론 산서상인의 누구도 포착하지 못했다. 곧바로 칼을 대지 않고 관으로 압박하는 것이 견신이 부여하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도.


“후회는 네가 하겠지. 본행수가 이 나이에 새파랗게 어린 네게, 상인들이 다 보는 데서 그런 괄시와 모욕을 받고 그냥 넘기면, 강호와 천하 상도(商道)가, 산서상인과 본 행수를 어찌 보겠는가. 허고, 관이 네 편일지 내 편일지는 두고 보면 알 일.”

“이는 마지막 경고다. 나는 형주 사람, 고사. 본래 산서상인과 은원을 맺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행수 양성이 본인을 도둑놈 심보라며 모욕하고 상도의를 어긴 것도 모자라서 이리 싸움을 걸어오니, 본인은 무사의 긍지와 자존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은원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음이다.”

“경고? 하! 본행수가 인륜적으로나 강호의 도리로나 어른이고 또 선배다. 사과는 너 먼저 해라. 무릎을 꿇고 또 이마를 찧으며 사죄하도록. 그러면 이쪽도 고려하지.”

“불가.”


적반하장식 권고를 일언지하 거절한 견신이 눈알만 돌려서 궁호상을 찾았다.


“대가.”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 아이를 감춘 궁호상은 긴장한 나머지 온몸을 오들오들 떠는 중. 미지의 불상사, 일촉즉발을 앞두고 두려워졌기에 육체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목소리마저 덜덜 떨렸다.


“무, 무사님··· 그···”

“마장 앞 반점에 가 계십시오.”

“무사님. 너, 너무 걱정됩니다. 그··· 부디 원만하게 푸심이···”

“가 계십시오. 아이가 다칩니다.”

“아···! 예예! 허면, 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겁을 집어먹은 궁호상 부자와 흑룡이 멀어지자 견신이 오른손의 기여를 왼손으로 옮겨 쥐면서 운을 띄었다.


“무릇 천하의 무사는 모욕을 주지도 받지도 아니하며 또한 참지도 아니하는 법이니.”


더할 바 없이 무거운 목소리로.


“무사에게 모욕은 사승과 무맥의 선조, 사형제는 물론 칼 한 자루에 바친 생애까지 욕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금일 형주 사람 고사는 산서상인 행수 양성으로부터 모욕을 받았고 그에 은원을 맺는바. 앞으로 피는 피로만, 목숨은 목숨으로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양성과 무사들은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상념의 꼬리를, 운 좋게 붙잡을 수 있었다.


[!!!!!!]


이는 아주 오래된 전설. 이제는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천하무사불욕불수불인.

(天下武士不辱不受不忍).


한때, 아니, 지금도 유명한 문장이다. 무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또 따라 해봤을 그 문장.


하늘 아래 무사는 모욕을 주지도, 받지도, 참지도 아니한다.


이는 전설적인 검사, 불세출의 무인. 검자 고견신의 성명과도 같은 선언이요 그가 은원을 맺을 때마다, 생사결에 임할 때마다 읊조렸다던 문장이지 않은가.


거기까지면 특이할 것이 없지만 소년이 형주 사람 고사라고 했다. 형주 사람 고사. 검자 고견신의 고향이 형주다. 또 태조 주원장이 내린 이름 전에 쓰던 아명이 사(四)였고.


한낱 애송이가, 조무래기가 장난하는 것인가? 검자 고견신의 신봉자라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출신과 아명까지 그대로 빌려 쓰다니.


아니, 혹? 설마? 검회(劍會)의 인물이란 말인가?




그처럼 견신을 무시하던 양성이 문득 검자 고견신을 추앙하는 검사들의 모임 검회를 떠올렸을 때, 견신이 왼손의 검을 비스듬히 내려트린 채 선고했다.


“오라.”


그에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양성이 어떤 명령을 내리기 전, 견신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로 여기는 무사 하나가 건들건들하며 나섰고.


“여기도 검자에 빠지다 못해 앓고 있는 병자가 하나 있었구만. 정말 그럴듯해. 일품이야, 혼자 보기 아까운 허장성세가 일품이야. 하기야 홀로 나다니려면 그 정도 허장성세는 부려야겠지. 지금까진 통했겠으나 내겐 어림도 없다. 어디 그 실력도 허장성세만큼 대단한지 한번 볼까?”


곧바로 크게 내어 딛는 보법을 밟고 달려들면서 손바닥을 세워 뻗었다. 명치를 향해.


후—웅—


정권 공격이 힘을 점에 집중하는 방식이라면 장심 공격은 면에 집중하는 방식. 목적이 다르다.


정권에 모인 힘은 관통이 목적이고 장심에 모인 힘은 확산이 목적이다. 그에 정권은 지점의 파괴를 추구하고 장심은 단면의 붕괴를 추구한다.


이어지는 찰나의 순간, 견신의 대응은 단순한 것이었다. 지극히 단순한 수법이었으나 그럼에도 세 가지 면에서 무사의 생각과 경험의 범위를 뛰어넘었다. 빠름, 정확도, 힘에서.


견신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무사의 장심을 오른손 장심으로 맞받아쳤다.


퍽—


찰나에 찰나를 쪼갠 순간 받아친 뒤, 곧바로 몸을 틀어서 무사를 흘려보냈다.


더 큰 힘을 더 짧은 시간에 집중한 수법과 마주한 무사는 장심으로부터 밀물 같은 힘이 손목과 팔꿈치 어깨를 타고 쇄골을 경유.


뚜두둑—


머리까지 뒤흔드는 그 진동의 감각을 마지막으로 혼절했다. 뇌까지 흔들린 탓에 장심을 뻗고 있던 자세 그대로 허물어진 것.


[!!!!!!]


그에 양성은 물론 견신이 소년이라며 그옛날의 검자를 모방하며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방심했던 열댓 명의 무사가 화들짝 놀라는데, 견신이 재차 뇌까렸다.


“이 자가 공수로 왔기에 공수로 임했음이다. 칼로 오면 칼로 임할 것이고 그때부터는 피를 봐야 할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산서상인의 행수, 양성.”


견신이 양성에게 물었지만, 양성의 답보다 수하의 간단한 패배에 자존심이 상한 수장의 반응이 훨씬 더 빨랐다. 곧바로 유엽도를 꺼내 들고 짓쳐 들었다.


“놈—! 주제에 한 수는 있었는가!”


단 두 번의 직진 도약으로 네다섯 걸음 간격을 좁혀드는 동시에 칼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견신을 그 자리에서 쪼갤 듯이.


저돌적인 보법을 빌린 육신이 대기를 가르고 땅을 진동시키며 햇살에 반짝이는 유엽도 한 자루가 허공을 반으로 나눈다.


그러자, 그런 공세를 보는 견신의 눈이 찰나 반짝였다. 상대의 공세에서, 정확히는 무사의 칼날에서 공력을 감지했기 때문.


심법을 이용 체내에 쌓은 기(氣), 진기라고도 부르고 주로 공력이라고 부르는.


‘공력.’


무사가 의지로 부리는 기운은 고유의 파동을 갖고 있었다. 아주 고등한 수준의 공력은 고유의 빛을 띠기도 했다.


그런 공력을 비단 신체 각 부로 보내는 것을 넘어 병기에 조금이라도 실을 수 있는 자부터 비로소 고수라고 불렸다.


공력을 머금은 병기는 신병에 버금가는 무기가 된다. 제가 머금은 기운이 소진되기 전에는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신병이 되는 것. 그런 이치에서 기운을 머금지 않은 다른 병기를 몇 번의 타격으로 파괴할 수도 있었다.


그처럼 상대는 행수의 호위답게 천하 무사가 꿈꾸는 경지에 오른 자였다.


반면에 이쪽은 전생 시절에도 지금도 병기에 공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므로.


물론 천장 당벽상이 담금질한 기여라면 그 옛날의 고처럼 공력을 불어넣지 않더라도 견뎌줄지 모른다. 그러나 시험해 볼 생각은 없다. 상대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면 그것이어야, 그 길이어야 할 것. 기여가 그 길을 따라야 할 터다.


‘원하고 그리워하나 끝끝내 닿을 수도, 이룰 수도 없으니. 어떤 것도 잊지 못함에 이미 고독한 병사는 일생 방랑할 수밖에 또 어둠을 헤맬 수밖에.’


여전히 갇혀 있고 붙잡혀 있다. 과거 기억에. 과거의 인연에.


전생에도 벗어나지 못했고 이번 생에도 아직이다. 여전히 밤마다 끝나지 않는 암흑 속을 배회하며 악몽에 붙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백년 전부터 내내 원하고 또 원해도 끝내 얻지 못하여 또 얻을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재회도, 망각도.


그리하여 이는 결국 삶의 고통 중 하나다.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는 데서 오는 고통.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 고통처럼, 나와 내 병기를 바라는 상대의 병기를 옭아맨다. 눈으로 허공을 보고 또 찰나를 본다. 허공을 허공으로 쪼개고 찰나를 찰나로 쪼개서 기여를 유엽도에 비스듬히 가져다 붙인다.


유엽도에 실린 힘을 정면으로 맞받지 않으면서도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을 만큼의 각도로.


마치 숫돌에 칼을 갈 듯이.

연어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이.


‘팔문 칠식.’


그리하여 유엽도가 머금은 힘에 반하지 않고, 은근히 상쇄하며 붙잡은 뒤 마침내 낚아채고 빼앗으며 이내 걷어내고야 마는 법. 암흑처럼 다가와 가두고 절망처럼 붙잡아 빼앗는다.


이는 무도의 일곱 번째 이치, 도(屠).

그물이 짐승을 가두고 붙잡듯 상대의 병기를 가두고 붙잡는 법.

검으로 짠 그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망과 암흑.


‘명암(命暗).’


명암이다.




그처럼 창졸간에 일부러 견신에게 내준 듯 무사의 손아귀를 벗어난 유엽도가 마장 기둥으로 날아가 박히고.


퍽—


곧이어서 유엽도를 내리치는 자세 그대로 칼만 잃어버린 무사의 좌측 옆구리에 견신의 도끼날 같은 발길질이 작렬했다.


“커헉—!”


그가 헛바람과 더불어 입에 가득 문 침을 뱉어내는 소리와 함께 흉골이 차례차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둑—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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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20 24.08.08 9,776 363 18쪽
25 24화 +21 24.08.07 9,569 406 20쪽
24 23화 +19 24.08.05 9,531 369 21쪽
23 22화 +23 24.08.02 9,659 430 21쪽
22 21화 +14 24.08.01 9,905 367 18쪽
21 20화 +15 24.07.31 10,108 379 21쪽
20 19화 +21 24.07.30 10,054 440 18쪽
19 18화 +16 24.07.29 10,414 409 21쪽
18 17화 +32 24.07.26 10,331 548 20쪽
17 16화 +16 24.07.24 10,540 42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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