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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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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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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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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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DUMMY

25화




며칠 전 한차례 피바람을 견뎌낸 조운선은 천진 남쪽 2백여 리 호광성 창주(滄州)에 멈췄다. 도읍 북경이 있는 북직례를 벗어나 지방에 접어든 것. 큰 고을에 들어서니 사람들의 활기가 겨울 찬 공기를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선주 양성은 선원들이 배를 정박시키고 승객들이 하선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주는 천진에 이은 두 번째 정박지, 이제 겨우 두 번째 정박지에 도착했건만 계획보다 두 배 더 많은 시일이 걸린 데다 인명 손실부터 시작해서 상당한 손해를 입었기에 양성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물론 예년보다 보강한 숫자의 표사로도 대항이 불가였던, 불가항력의 습격이었기에 상회로부터 눈에 보이는 불이익을 받지는 않겠으나 보이지 않는 불이익은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불가항력의 습격이라는 원인은 까맣게 잊히고 행수 양성이 큰 손해를 입었다는 결과만 남을 터. 이는 상(上)행수와 대(大)행수, 더 나아가 총행수를 노리는 행수에게는 경력상 오점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무엇보다도 죽은 표사들 그 유족과의 대면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오래 함께 손발을 맞춰온, 한 식구 같은 사이였기에 유족들을 떠올리면 답답하고 막막해졌다.


물론 돈을 대가로 계약을 맺은 관계이기는 하나, 언제든 이렇게 될 줄 알고 표객의 업에 뛰어든 사람들이기는 하나, 이 세상의 일 또 사람 일이라는 게 돈이 전부는 아니니까.


그나마 의뢰받은 표물과 물건은 전부 멀쩡한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마침 한겨울이라 며칠 지체한다고 해서 상할 우려도 없고.


아무튼 창주 나루터는 나라에서 치안을 맡아주니만큼 하루 내지는 이틀쯤 머물면서 수습한 유해를 유족에게 보내고 재보급과 휴식을 취하는 등 상행 전반을 점검 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상념을 곁들여 도시를 감상하던 중 문득 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들. 그 흑의 소년과 부녀 그리고 세 무사가.


“······.”


흑의 소년과 부녀는 함께, 세 무사는 하선 대열에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저것들. 분명 뭔가 있는데···”


이틀 전 당시 세 무사와 선실로 들어간 백호의 결론은 ‘물건은 없고 무사 셋이 조운선을 위기에서 구해냈다’였다.


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에 조심스레 새벽에 보고 들은 바를 재차 설명하였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협박이라도 당한 건가? 아니면, 매수? 분명 둘 중 하나야.”


당시 선원 몇이 말하기를 선실에서 나오던 백호의 태도가 뭐랄까, 무사들에게 쩔쩔매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그러니 지금처럼 이런저런 의심이 들 수밖에.


물론 협박은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백호보다 상수라고 한들, 자그마치 정6품 백호를 겁박한다? 그건 최소 조손 삼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짓, 미친 짓이다.


그 아무리 제국군이 허약해졌다고 해도 그건 크게 봤을 때 그런 거고, 작게 봤을 때는 여전히 강력한 위세를 떨치는 부대들이 많았다. 북직례의 군대가 특히 그렇고.


백호가 돌아가서 보고하면 천호소 혹은 위지휘사사가 달려올 거고 그렇게 되면 소림사나 무당파 조사가 살아서 돌아와도 당해내지 못한다. 백년 전 검자 고견신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지역마다 무사를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편성된 부대도 있으니 자기가 무사라고 해서 엄연한 평민 주제에 제국 관리 특히 장수를 업신여겼다가는 패가망신으로 직행하는 법이었다. 당시 백호에게 더 따지지 않은 까닭도 그런 맥락에서고.


아무튼, 결론이 그렇게 나니 꼴도 보기 싫어졌다. 다행인 점은 저들이 전부 여기 창주에서 하선하기로 했다는 점. 완전히.


저들 때문에 손해를 본 마당에 뱃삯을 돌려줘야 한다는 게 불쾌하고 또 싫지만, 저들을 태우고 가느니 웃돈을 줘서라도 내보내는 쪽이 나아 보였다. 훨씬 더.


“이보게, 팽수.”

“예, 행수.”

“저 치들이 내리면 소금이나 한 됫박 뿌리게.”


젊은 선원이 양성의 눈길을 밟아서 견신과 부녀를 발견하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아아, 예예. 그러겠습니다.”


오는 길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양성이 저 흑의 소년과 부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견신과 종 씨 부녀 그리고 세 호위는 배에서 내렸다. 북경을 떠나온 지 이레만의 일이었다.




#




창주 번화가 한복판에서 견신이 주변을 한번 훑어본 뒤 부녀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헤어지시지요.”


예정된 이별에 종청산이 아쉬운 듯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대협, 밥이라도 한 끼 하시지 않고···?”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있다고 보는 편이 낫습니다. 대비는 늘 부족한 법이므로. 장례도 서두르셔야 할 거고.”

“···예, 대협의 말씀이 옳습니다.”


일행은 둘이 늘어 있었다. 견신이 표객 시장에서 보표 둘을 고용했기 때문.


표행(驃行) 즉, 대가를 받고 사람이나 물건을 운송 또는 경비하는 일은 송나라 시절 이미 체계가 잡혔다.


제국 법령을 숙지, 해석에 능통한 사람.

산학(算學) 즉, 숫자 셈에 능한 사람.

노련한 길잡이와 유능한 짐꾼.

마지막으로 무예를 익힌 보표 혹은 표사가 동업하는 형태로 무리를 이뤄 천하 구석구석을 오갔고 발생한 수익은 나눠 가졌다.


젊은 여인에게는 종청산의 부인 역할을 맡겼고 노련한 인상의 중년 사내에게는 마부와 길잡이를 맡겼다. 추가로 평범한 마차 한 대와 말 두 마리를 샀고 종청산의 아내는 장의사에 염을 부탁해 뒀다. 그와 부녀 셋 다 새 옷을 사서 갈아입었고.


그러한 절차를 견신이 직접 처리하고 돈도 견신이 직접 댄 까닭에 종청산은 몸 둘 바를 모르면서도 혀를 내둘렀다. 또 그 자신이 문자밖에 모르는 샌님이었음을 재차 체감했다.


서른 줄 어른도 모르는 것을, 세상 물정을 이제 겨우 열다섯 소년이 어떻게 다 알고 그처럼 노련하게 능숙하게 처리한 건지 놀라워하면서도 일행 중 어른은 그 자신이 아닌 견신이었다며 부끄러워했다.




그처럼 이별을 받아들이는 종청산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견신이 표사들에게 당부했다.


“항주까지 무사히 도착한다면 내 다섯 배를 주겠소. 무슨 수를 써도 좋소. 추가로 여비가 든다면 그것까지 주겠소.”


그러자, 이미 큰 액수를 받은 표사들은 대번에 화색이 되고 종청산은 감격하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됐다.


“금일 물주를 제대로 만난 듯싶군. 그리하리다. 항주에서 봅시다.”

“소협의 됨됨이를 봐서 또 사정도 사정이니까 글로 남기지는 않을게요. 약속 꼭 지키시리라 믿겠습니다.”

“이 내가 죽어도 지킬 것이오. 그럼 이 사람은 이만. 다시 보시지요.”


그 말을 끝으로 주저없이 돌아서는 견신의 뒷모습. 멀어지는 그를 향해, 종청산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고 대협, 소인이야말로 이 은혜를 죽어서도 갚으리다. 반드시.”




그에 벌써 꽤 멀어진 견신이 문득 고개를 살짝 틀어서 화답하듯 뇌까렸다.


“경의 노고가 진실로 크다. 나랏일에 희생된 내자에게, 또 경과 경의 여식에게 천자를 대신하여 진실로 사죄하노니, 부디 항주까지 무사히 이르도록 하라. 내 기다릴 것이다.”


이미 멀어졌기에 종청산이 들을 수는 없는 목소리였다.


“항주 지주 종청산. 경과 같은 충신을 만나 기꺼웠고 또 영광이었노니.”




이윽고 견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망부석처럼 지켜보던 종청산 일행이 몸을 돌리는데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


유희 그리고.


“저기 긴장은 마시고, 뭣 좀 하나 여쭐 게 있어서요. 우리 영이, 언니 누군지 알지?”


조경과 공손신정이었다.




#




같은 시각, 북경 황궁.

귀비의 침궁에 태자와 금의위 지휘사가 들었다. 백발의 장년임에도 6척 당당한 체격에 눈에서는 마치 불을 뿜는 듯 매서운 안광이 쏟아졌다. 성명은 정강(鄭剛).


황제가 직접 지휘하는 친군 중에서도 특별한, 정예 2만여 금군을 지휘하는 지휘사.


이는 환관 일족의 총수 사례감 장인태감과 함께 황제를 제외 대내(大內) 제일고수를 다투는 장수가 역임하는 관직. 보통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금의위에서 성장한 장수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금의위는 군대이면서도 고관대작부터 지방 민생에 이르기까지 나라 정보를 틀어쥐고 필요시 사법권까지 행사하는 특무조직이고.


몇 가지 동집사창과 비교하면 우선 금의위는 친군부터 오군도독부 예하 말단 부대까지 군 관련 정보에서 우세를 보였고, 동창은 황실과 민생 관련 정보에서 강세를 보였다.


또 동창에는 조사하고 감옥에 가두며 판결하여 처벌하는 공식 사법권이 없으나 금의위에는 있다. 북진무사라는 이름으로.


아무튼 지휘사의 실제 품계는 정3품에 불과하나, 조직 특성상 실권은 정1품 못지않았다. 정4품에 지나지 않는 사례감 장인태감처럼.


“그러하였다 합니다.”


그런 그의 보고가 끝나자, 줄곧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던 귀비가 득달같이 캐물었다.


“하···! 음흉한 것···!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당장 잡아들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기상조입니다, 비 전하.”

“어째서요? 이는 명백한 증거가 아닙니까? 덕왕이 몰래 무맥을 전수해 줬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야 무슨 수로 자객 스물을 때려잡았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더 신중하셔야 합니다. 친왕 둘이 얽힌 일입니다. 정왕이 구룡분승을 익혔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으니 섣불리 일을 벌였다가 잘못되면 감당할 수 없는 역풍을 맞게 될 것입니다.”

“하아··· 정녕 답답하군요. 답답해.”

“······.”


답답한 심정은 정강도 마찬가지였다. 귀비가 정왕 주견신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


태자 주견심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한 상태, 그러니 용상에 앉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과거 번왕제가 시행 중이던 그 시절이면 모를까, 지금은 용상에 앉는 순간 끝이다. 후계 싸움은 그것으로 종결이다. 용상에 앉지 못한 친왕은 그저 한량일 뿐이므로.


그러니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정왕에게 이리도 집착한단 말인가. 집도 절도 다 버리고 홀로 떠난 소년을.


이런 어미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돼 있는 듯 보이는 태자가, 그러면서도 열일곱이나 연상인 궁녀와 놀아나는 태자가 한편으로 가엾고 또 한심할 따름이었다.




#




그 시각, 신비의 침궁.

사례감 장인태감 홍순과 제독동창, 수당태감 만영과 태감 신득이 모여 있었다.


홍순이 지금 막 보고를 끝낸 참, 두 손을 모은 채, 숨죽여 청취하던 신비가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찌 정왕이 출궁하자마자 그런 일이···! 장인태감, 이는 필시 음모가 아닙니까···? 자객들이 전부 도(刀)를 들었다면서요···?”

“속단하기는 이르옵니다. 궁에서 보냈다면 며칠 더 기다려서 호광성 어딘 가에서 치면 되는 것을 천진 턱 밑에서 칠 리가 없사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사옵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긴 하나 비직과 창은 우연으로 보고 있사옵니다.”

“하아··· 정왕은 무사한 거지요? 내 장인태감과 창을 믿어도 되겠지요?”

“그렇사옵니다. 터럭 하나까지 무사하시다고 하였으니, 심려 놓으시옵소서.”

“허면, 이제 어찌 되는 것입니까?”

“비직 또한 다음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옵니다. 금일쯤 배가 창주에 닿았을 테니 거기서 내리셨을 수도 있사옵니다.”

“정왕은 대체 어찌···! 어찌 홀로···! 이 사람이 열 달 배 아파 낳은 아들이지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해할 수가···”


그처럼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인 신비. 그녀를 바라보는 홍순은 전할지 말지 고민 중인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비 전하, 전하께서 자객 스물을 찢어놓으셨다 하옵니다.’


그 일까지 전하면 이미 놀랄 대로 놀란 신비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가 없어서.




#




한편 태자태사 겸 문연각대학사 이현도 손님을 들인 상태였다.


정2품 좌도어사 서린(瑞麟). 도찰원 수장. 조정은 물론 만천하를 감찰하는 그녀 역시도 정강, 홍순과 함께 대내 제일고수를 다투는 위인이었다. 후궁들을 제외한 여(女) 관리 중 관직과 품계가 으뜸이고.


귀비나 신비와 달리 이현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청취를 마쳤다.


“그렇군요, 역시 황룡의 자손이 어디 가겠습니까. 진작부터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만한 자신도 없이 나설 분이 아니시지요. 순쟁 당시 모두가 겪지 않았습니까. 열다섯 옥체에 늘 치밀한 계획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


자객 스무 명을 도축하듯 해체했다는 대목에서도 그리 놀라지 않는 그를, 서린은 무공을 모르는 문관이라서 그런 거라며 여겼다.


“궁에서 보낸 이들이라고 의심하는 목소리들이 있으나 배제하는 중입니다.”

“그렇지요, 궁에서 보낸 이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천진에서 칠 리가 있겠습니까. 역시 좌도어사십니다. 이 사람이 보탤 말이 없으니.”

“앉아서 천하를 내다보시는 분이 과찬이십니다. 창위는 어찌 떨쳐내시렵니까.”


창위는 동창과 금의위의 준말. 서린과 이현은 금의위와 동창을 불신 중이었다.


“일단 전하를 믿고, 대인께서 보낸 사람도 믿을 수밖에요. 나머지 둘을 떼어내는 건 신중히, 방도를 마련해서 접근할 일입니다.”

“그리하시지요, 대학사. 허면, 이만.”

“명일은 이 사람이 찾아뵙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서린이 나가고, 홀로 남은 이현은 빈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운선에 타셨다··· 어린 딸이 딸린 부부를 구하셨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잠시 상념 끝에 서랍에 넣어두었던 서찰을 꺼내서 펼쳤다. 거기 친우의 편지, 첫머리를 다시 확인했다.




현, 날세.

조운선을 타고 항주로 갈 셈이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정왕이 종청산과 연결되는 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절대로.


두 사람이 만난다면 친왕이 관리와 그것도 밀명을 받은 관리와 접촉한 셈. 이는 법령이 명백하게 정한 금기이자 상황에 따라서는 역모로 해석될 수 있는 일이므로!




#




견신은 마장을 찾았다. 조운선을 잃었으니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말을 구하려는 것.


그가 조운선을 버린 까닭은 종청산 부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틀 전 일이 터졌을 때, 활동폭이 좁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


물론 종청산이 없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으나 어찌 됐든 그 일로 인해 여덟 장(丈) 남짓 길이의 배가 불편해졌다. 그렇다고 수천 리 길을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으니, 남은 선택지는 말이었다.


짐이 많다면 힘도 좋고 지구력도 좋은 나귀가 더 낫겠지만 짐도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에 체구도 작으니 말이 더 나은 선택일 터였다.


마장에 들어서자, 마주들이 일제히 쳐다봤다가 이내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하루 벌이를 도와줄 물주가 아니라고 보는 것.




예나 지금이나 말은 범부가 가질 수 없는, 값비싼 가축이었다. 쌀 두 섬이 은으로는 한 냥인데, 건강한 말은 최소 1백 냥부터 시작해서 잘 훈련된 군마는 무려 수백 냥을 호가했다.


그처럼 값이 나가는 까닭은 이동 수단으로서도 훌륭했지만, 그 자체로 탁월한 전쟁 병기였기 때문.


오래전 흉노는 인구 30만에서 60만, 기마 병력은 10만쯤에 불과했으나 인구 3천만 에서 4천만에 이르는 한나라를 제압했다.


뼈저린 교훈을 얻은 한무제는 종마로 삼을 한혈마 수십 마리를 국경 안으로 데려다 놓는 과정에서 7만 병력을 대완국과의 전쟁에 쏟아부었다. 좋은 품종 말 수십 마리를 위해 무려 7만 병력을 희생시킨 것.


또 수백 년 뒤 몽골 초원의 무사는 한 사람당 말 서너 마리를 끌고 다니면서 온 천하를 제패했고.




그처럼 말이 전쟁 병기로써 적극 활용되고 또 군대에서 귀하게 여긴 까닭은 타고난 육체적 능력에 더해 정신적 능력 또한 뛰어난 짐승이기 때문.


말은 대여섯 살 아이 수준 지능을 가진 덕분에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났고 사람과 곧잘 보조를 맞추어 행동했다. 겁이 많은 동물이지만 유대감이 깊은 기수와 함께하면 호랑이 사냥에서 주인을 믿고 호랑이를 몸통으로 들이받거나 다리로 후려치고 제 발굽으로 밟아 죽이기도 했다.


기마병 간의 전투에서 말은 발굽으로 상대를 치거나 물어뜯는 등 주인들처럼 저들끼리도 싸웠다. 지난 역사 수많은 전투에서 죽은 군사 중 다수는 도검, 화살, 창이 아니라 말발굽에 밝혀 죽었고.


그처럼 말은 훌륭한 전쟁 병기였고 관우의 적토마를 비롯한 명마들은 제 이름을 주인의 묘비와 역사에 남겼다. 역대 황제도 무덤에 자기가 타던 말들을 같이 묻었고.




아무튼, 고을의 유생 혹은 관리가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수재를 보좌로 쓰는데 품삯으로 달에 은화 세 냥을 줬다. 그러니 천 냥이면 글을 잘 배운 서생의 약 30년 치 품삯이 되는 셈.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러니 지금 마주들이 소년인 이쪽을 보자마자 기대를 접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러거나 말거나 마장을 찬찬히 둘러봤다. 정확히는 말을 꼼꼼히 살폈다. 작지 않은 규모의 마장답게 망아지부터 늙은 말까지 연령대도 다양해 보였고 다리 길이와 굵기, 몸통 길이와 어깨높이 등 외양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방인이 돼서 한 바퀴 쭉 둘러보는데, 문득 조금 멀리 구석진 곳에서 사내아이의 애원이 들려왔다.


“아버지, 용아 팔지 마요. 네? 제발요, 아버지—이—”


그 애원이 어찌나 서럽게 또 절절하게 들리는지 우는 아이를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에 살짝 외곽으로 나와서 보니 거기 예닐곱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젊은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쥐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용아 팔지 마요, 아버지! 용아 팔면 아버지랑 말 안 할 거야! 아아아—”


그런 아이를 속상한 듯 내려다보는 아비의 손은 낡고 헤진 고삐를 쥐고 있었고 그 고삐 끝에는 선하게 제 머리를 내맡긴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마치 중병에 걸린 듯 홀쭉하게 야윈, 그러나 크고 맑은 두 눈이 조금 멀리 여기서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녀석이 저를 발견한 소년을 저 역시도 발견했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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