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요원
*
“이봐요, 대리, 아니 차장님,
한은영 차장님~.
뭐...마도현에 대해서 할 이야기라뇨?
전 충분히, 할 만큼 했어요.
그래서 딱히 할 이야기 없는데?”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고도
바카디 카르타 블랑카 한 병을 비워버린
남세미, 아니 뱀혓바닥이 취기가 잔뜩 오른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게, 취해서 지금 사리분별도 안 되나?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서 보고라도
좀 제대로 해 보라고. 녀석의 마음을 대체
왜 아직도 못 돌린건데?
네 능력을 쓰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하지만 이미 취할 대로 취한 인간 앞에서
이런 이야길 아무리 퍼부어 봤자
마이동풍일 뿐이었다.
“이런 썅, 차라리 거울 속의 나랑 떠드는 게 낫겠다.
잔뜩 취한 너랑 얘기하느니.”
짜증을 내면서 한숨을 푹 내뱉고 있자니
갑자기 담배가 땡겼다.
“저, 마스터. 혹시 여기서 피워도 괜찮을까요?”
“아, 흡연하고 싶으시면 저기 안쪽에 마련된
흡연 부스에서 하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뱀혓바닥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나 담배 좀 피고 온다.
뭐 같이 피우고 싶으면 따라오던지.”
그러자 녀석은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는 채로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
우리 둘은 한동안 말없이 담배만 태웠다.
그러다가, 담배 덕인지 좀 술이 깬 듯한
뱀혓바닥 녀석이 입을 열었다.
“한 차장님... 한 차장님께서
응? 나한테! 나름 기대를 많이
걸고 있단 거! 내 다 알아요.
그 머시냐, 저한테 차장님이
그랬잖아요, 내가 유일하게 남은
한 장의 조커 카드라고.”
녀석의 그 말에 나는 쿡 웃으며
연기를 내뱉었다.
“...그랬지.”
녀석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말을 이어갔다.
“곧, 마도현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선글라스] 본부에서 말이죠.”
녀석의 그 말에,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호오, 네 능력으로 녀석을 구워삶은 거야?
정말 효과가 있었나 본데.”
“헤헤헤...네. 성공했습니다.
녀석을 완전 세뇌해서 제 말이면
죽는시늉도 하게끔 만들어놨죠.”
**
혹시나 한은영 차장이 나를 의심하진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 탓에 나는 일단
그녀의 의심을 피해가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내뱉고 말았다.
하, 이래서 간첩질하는 것도 쉽지 않다니까.
나는 다시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한 차장의 표정을 살폈다.
바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방금까지도
개똥 씹은 얼굴로 있던 여자가,
방금 나의 그 한마디에 저렇게 표정이 밝아지다니.
아무리 내가 ‘힘이 실린 말’로 사람을
최면상태에 빠뜨려 홀리는
‘아브라카다브라’라는 힘을 가진 초능력자라지만,
아직 제대로 능력 발동도 안 했는데
겨우 이 정도 말에 바로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 차장이 얼마나 마도현이란 녀석을
간절하게 원하는지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는 걸지도...
단순히 힘만 탐내는 것 같지는 않아 뵈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혹시나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어
그녀로부터 오해를 살까 봐
더는 입을 열지 않은 채로
조용히 담배만 태우다가
술이 조금 깬 상태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었다.
“괜찮으시면 저랑 한 잔 더 하시죠, 차장님.”
나의 그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싱긋 웃어 보였다.
***
[13F] 본부로 돌아온 나, 그리고 해수, 보스.
이렇게 우리 세 명은
일단 보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뭐, 우리 쪽에서 일단 자퇴 처리도 깔끔하게
해 두었고, 폐, 아니 도현이네 집도 일단
대강 정리해 두었어. 집 처리 문제로
도현이네 부모님께 일단 말씀은 해 두었는데,
다시 못 돌아갈지도 모르니...
알아서 해달라고 하시더라구.”
보스의 그 말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물론, 부모님의 행방이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별 탈 없이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시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나 자신이 어딘가 이상한 것 아닌가 싶은
마음도 조금은 들었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는 같이 지낸 시간보다
멀리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았었으니까.
잠시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해수가 날 툭 치며 말했다.
“마도, 지금 너 보스 얘기는 듣긴 한 거야?
머릿속에 딴생각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표정인데, 너.”
“너, 또 그 능력을...하, 됐다.
저, 보스. 그래서 일단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의논해 보죠.”
나의 그 말에, 보스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대답했다.
“남세미에게 이미 들은 얘기가 있을 텐데.
우리 조직에서 3개월 훈련받고
그다음에 [선글라스]에서 3개월 훈련받기로.”
보스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네, 뭐... 저도 대강 그렇게 얘기를 듣긴 했는데
혹시 그렇게 훈련코스를 짜놓은 이유가 뭐죠?
단순히 남세미 선생님이 선글라스에서 언더커버로
활동 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나의 그 물음에, 보스는 답했다.
“그것도 수많은 이유 중 하나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도 많거든.”
“우리의 목적 때문이지.
이젠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 거야.
그랜드 마스터로부터도 받은 부탁이기도 하지만.”
다음 순간, 보스는 잠시 말을 끊으며
숨을 고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기는 우리 쪽에서 전부 익혀줄 거고,
그 후에 놈들 쪽으로 넘어간 후에
거기서 가르쳐주는
모든 것을 다 익혀둬.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더 놈들을 짓뭉개주는 거야.
이번엔 너의 다듬어진 힘으로 흔적도 없이.
원래는 너의 2차 봉인까지 풀렸을 때
시동을 걸려고 했던 계획이지만-.
지금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키우고
다듬는다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렇게 말했다.
“두 곳을 번갈아 가며
귀찮게 오고 갈 필요가 없게 되어서
좋네요. 한 곳에서 3개월, 다른 곳에서 3개월.
...나쁘진 않네요.”
나의 그 말에, 보스와 해수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네가 많이 강해진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 넌 좀 마음에 무른 면이 남아있어서.”
해수가 걱정하듯 던진 그 말에, 나는 픽 웃으며
무심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니.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나도 이제 어느 정도 전생의 기억과
힘을 되찾아 가는 중에 있고.
우리에게 방해가 될 만한 요소들은
차근차근 치워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아.”
나의 그 말에, 해수는 이렇게 말했다.
“마도, 지금 너 뭔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눈빛도, 말투도, 분위기도...”
****
“오, 드디어 부처님께서 오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그리스도 녀석의 그 말에, 부처라는 작자는
마치 소탈한 시골 마을의 농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미소를 띤 채 나, 루시퍼와 그리스도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저 부처란 놈의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표정부터가 기분 나쁘다니까.’
정말이지, 둘 다 나와는 맞지 않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천사이자, 악마인 나로서는 인간계에 환생한
데이프로니를 두고 하는 이 내기가 간만의
심심풀이. 아니 그 이상의 즐거움을 내게 주었으므로,
나는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저 두 놈이 친목질을 하며 내뿜는 기분 나쁜 에너지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그 가운데에서도.
‘만약, 내기에서 내가 이긴다면...
저 두 놈의 목을 전부 쳐내고,
내가 기독교와 불교를 지배하면 되겠군.
그렇게 힘과 세력을 불린 뒤
내 아버지인 신을 무너뜨린 다음...
내가 직접 <최고신>의 자리에 올라
모든 것을 다스리고 말 테다.’
내가 막 그런 야심찬 생각을 하던 그때,
나는 무심코 바라본 부처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가만, 이 녀석...자세히 보니
[진짜 부처]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몸에서 풍기는 냄새도 그렇고...
오라의 색도 이상하군.
전혀, 전혀 부처답지 않아.
어디 볼까...’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자, 내 이마 한가운데에
붉게 빛나는 ‘제3의 눈’이 떠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그 부처란 놈의 참된 모습, 그러니까
본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보여졌다.
‘이 자식...!’
그리고 나는 보고야 말았다.
놈의 본모습을.
그렇다.
예수의 초청을 받아
이곳으로 온,
저놈은 ‘부처’가 아니었다.
부처로 둔갑한 저 녀석의 정체는
나와는 살짝 결이 다른,
어찌 보면 이질적인 성질을 가진
‘심연의 악마’, [코론존]이었다.
어두운 심연 속에 처박혀 있던
그놈이... 대체 누구에 의해서
어떤 방법으로 풀려나왔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었지만,
악마들의 우두머리인 내가 봐도
끔찍한 존재인 코론존 그놈이
부처로 둔갑하여 신과 천사들이
거하는 이곳, 첫 번째 하늘까지 파고 들어올 수 있었다는
그 사실에 아주 기가 탁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뜻밖의 사실에 매우 놀랐지만,
예수는 오히려 저놈의 정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저 <가짜 부처>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나로선 곧 이런 의문이 들었다.
‘예수 정도 되는 놈이면
나도 아주 쉽게 꿰뚫어 본 저 사기꾼의
진짜 모습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
저 자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지?
정말로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재미 삼아
모른 척 저러는 거야?
아, 제기랄. 답답해 죽겠네.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가슴이 갑갑해지는 기분이 들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설령 녀석이 이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나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타고난 성정부터가
시키면 곧이곧대로 주인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르며 충성을 바치는 개 같은 타입이 아니라,
내 기분에 거슬리면 일단 칼부터 휘두르고 보는
그런 못돼먹은 타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도 잘 안다고.
내가 못돼 먹은, 답이 없는 종자라는 거,
하지만... 아무리 내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직 천사로서 이 신성한 첫 번째 하늘에
코론존 저 더러운 놈이 발을 들인 것만큼은
도저히 내 두 눈을 멀쩡히 뜬 채로
봐 줄 수가 없었다.
이 어이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더는 참지 못한 나는, 품속에서 날이 구부러진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어
자신을 부처라고 속인,
코론존 그 더러운 자식을 향해
휘두르고 말았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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