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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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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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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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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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엄연한 정당성

DUMMY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휘성이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인간이 아닌 마물들을 향해 강한 회의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방금 그렇게 끔찍한 일을 마주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물론 휘성의 성격상 이미 일어나거나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테지만, 엽기적인 장산범의 행태를 본 이상 이야기가 달랐다.

이번에는 그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굳이 저렇게 죽여야 했습니까? 그냥 감방 보내면 안 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괴물에게 인권이 어디 있다고.”


“굳이 저렇게 전부 죽일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의심되느냐?”


“할아버지 한 명이 선을 넘은 건 명백한 사실인데···. 나랑 관련 없는 저 녀석들을 전부 쓸어버린다는 건 조금 비윤리적인 것 같기도 하고.”


“이유는 그것뿐인가?”


“그···. 저렇게 자기네들끼리 돈 모아서 건물 사고, 지부까지 창설했는데 끌어들인 자본과 인력이 너무 아깝다고나 할까. 개미집에 염산을 부어버린 느낌이네요.”


예전부터 현대인의 삭막함에 익숙해져 있던 휘성은 자본을 끌어들이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본질이 마물이라고는 하나, 그곳은 엄연히 그들의 사업장이었을 터다.

그래서 그런 걸까.

휘성은 뒈진 갑산귀 무리에게 자본가로서의 동질감을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매장이 X창이 나버린 것에 중악회의 장산 지부가 겹쳐 보였던 것이겠지.


“음···.”

무람이 두 눈을 감으며 침묵했다.


“왜 그렇게 고민하세요?”

휘성은 그런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나을까- 고민 중이다.”

무람이 실눈을 뜨며 휘성의 질문에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중악회 처벌에 대한 정당성을 갈구하며 무람을 의심하는 휘성.

본인의 집이 홀라당 타던 당시에는 그렇게 노발대발 해 놓고 막상 참사가 끝나니 합리성과 논리를 주장하는 그는 전형적인 ‘엘사식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식의 파렴치한 사고방식 말이다.

나만 아니면 만사 오케이.

나 이외의 모든 사건 사고에는 항상 차갑게.

이는 사실 모든 인간이 공공연하게 지닌 이기주의 성향이었다.


“아하.”

그때였다.

해명에 필요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한 무람.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들어 보거라.”


“듣고 있어요.”


“이제부터 정확히 세 가지의 방법으로 설명하겠다.”


“예.”


“만세 자세로 묶어서 절벽에 매달든.”

“너를 나무에 묶어서 매타작하든.”

“사지를 묶어서 능지처참하든.”


“예?”


“너를 중악 타도의 편으로 돌아서도록 설득하는 3가지의 방법.”


“안 묶이는 건 없나.”


“안 묶이는 건 전부 비인간적인 것뿐이라서.”


“방금 말한 것 중에 인간적인 게 있었나. 인간 생활이 처음이라 서툰 건가?”


“방금 말한 것들, 전부 인간이 만든 형벌이거든. 그쪽이야말로 인간 생에 대한 탐구가 필요해 보이는구먼. 그것도 아주 심층적으로.”


“비인간적이라는 게 뭔지 몰라? 당신 지금 내 말의 요지를 전혀 파악 못 하고 있어.”


“인간이 만든 게 비인간적이라는 건 모순 아닌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꼴이군.”


“당신, 여전히 내 말의 요지를 파악 못 하고 있어.”


“내가? 내가 무엇을?”


“인간이 잔인하기만 한 건 아니잖아. 조금은 인도적으로 행동하라는 소리야. 그냥 내 말에 긍정해.”


“내가 왜?”


"솔직히 방금 벌여진 짓들은 너무 야만적이었어. 놈들한테 못 하는 짓이 없던데?"

휘성이 무람의 복부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미간을 구겼다.


탁-

그때였다.

우리들의 의식의 흐름을 듣고만 있던 수빈이 갑작스레 멈추어 섰다.

중악 타도의 정당성부터 생각해 보자는 신선한 발상에 상당히 기가 찼던 모양이다.


“휘성 형님아? 이게 뭐로 보이냐.”

수빈이 문서 하나를 내밀며 휘성에게 물었다.


“이건, 아까 정보 수집 겸 챙겨온 문서잖아.”

휘성은 수빈이 내민 것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끄집어냈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냐. 껍데기보단 그 내용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훨씬 수월하다고.”


“내용물을 봐도 모르겠는데. 그냥 명단이잖아. 김세월, 최시윤, 오수인, 이범수···.”


“어, 잠깐만, 최시윤? 이름이 익숙한데···?”


“아는 사람이냐?”


“아니 분명 며칠 전에 애들이랑···.”


“보나 마나 실종 신고가 들어온 아이 이름이겠지.”


“어 맞아···. 분명 그때···. 꼬맹이들이랑···. 어···?”

휘성은 과거를 회상하며 최시윤에 관한 정보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난 문자로 실종 신고가 들어왔던 아이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성별도, 나이도, 정확한 실종 시간도 기억 안 나지만, 그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이 아이가 어디에 있을까. 제물로 쓰였을까~. 노예로 팔려 갔을까~. 중악회의 사업구조는 뭘까. 중악은 도대체 뭘로 밥을 벌어 먹고 사는 걸까.”


“인신매매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그때, 어리바리한 휘성이 답답했던 수빈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한, 그 아이는 고아야. 보육원 출신.”


“아, 잠깐 이제 명분은 충분ㅎ···.”


“제물로 쓰여도 아무도 관심 주지 않을 고아. 경찰의 초동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고아. 누가 봐도 단순 가출로 보일 테니까. 그게 중악의 방식이야. 죽여도 리스크가 적은 사람들은 가차 없이 도륙 내는 거지.”


“···.”


“일단 한 가지만 딱 잘라 말할게. 김무람 씨가 오늘 벌인 일들은 적어도, 정당방위 그 언저리의 행동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 이건 진심이야."


"왜 하필 애들을..."


"스리슬적하기 쉽잖아. 혼자 음지에 틀어박힌 ‘로우 리스크’들. 딱 너처럼.”


“나는 가족도 친구도 있는 몸이거든?”


“꼴에ㅋ.”


“이 새끼가 근데···?”


“자~. 이제 할 말 없겠지?”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갑자기 이렇게 섬뜩한 정당성을 부여해버리면, 와 너무 후달리는데···:;”


“참 답답하다. 틀린 것 같아도 일단 검증해 보고 부정해야지. 왜 이리 의심투성이야?”


“보통 반대 아니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하잖아.”


“너 이 새끼, 며칠 전에 오두막 불탔다고 하지 않았냐? 왜 눈 뜨고 코 베여 놓고 지랄이야 지랄이. 스톡홀롬 증후군이라도 도진 거냐.”


“내 말은···. 전부 죽여버리는 건 좀 그랬다는 거지. 아··· 모르겠다 X벌. 며칠 전부터 시체만 봤더니 X나 어지럽네.”


“다시 한번 말할 테니까 눈치껏 이해해.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야.”

“너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상상을 곱절로 초월할 거다.”


“알겠다고.”


“처신 잘해라.”


“야 인마들아. 나도 어차피 너희랑 공범이긴 한데, 그냥 물어 본 거야. 니네가 의적인지 도적인지는 구분하고 따라가야지 나도 마음이 편할 것 아니냐.”


휘성은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자책감에 고개를 떨군다.

그는 오두막이 불타기 전까지 나름 평범하게 살아왔다.

휘성 특유의 요상한 성격 탓에 학교폭력은 당해봤을지언정, 무장 요괴 할아버지가 집을 통째로 불태우는 이례적인 사건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미친 호랑이 요괴가 시체 더미의 뱃가죽을 손톱으로 꿰뚫는 것을 직관하는 것은 더더욱 겪어본 적 없었다.


그래서 의심스러웠던 거다.

비상식적인 일은 눈감고 순응할 수 있지만, 몰상식적인 일만큼은, 그 의도가 아무리 의로운 쪽일지라도 의심이 갈 수밖에.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우리 동네의 이면에 이런 다크 판타지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아마 나는 비교적 풍족하게 살아온 게 아닐까 싶다.

비록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산속에 틀어박혀 있지만, 나도 나름 풍족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낙오되어 가는 사람들을 차마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어, 무언갈 꿈꿀 여건조차 안 되는 사람들은 몰상식한 일에 희생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여느 때보다 크게 와닿았다.

중악의 타깃은 한마디로 ‘무방비한 사람.’

사회가 겉으로 멀쩡했던 이유는 아마 그 무방비인 사람들의 희생이 겹겹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사지가 멀쩡하고.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의 사람을 듬뿍 받았으며.

나를 보러 와주는 태흥이와 유성이가 있다.

그리고 그걸 송두리째 앗아갈 뻔한 중악회의 놈들.


다시 두 눈이 뜨이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내가 그 X놈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는 거였는데.

이건 뭐, ‘암세포도 생명이니까.’ 급의 헛생각이었다.

여색에 홀려 자영업자의 덕목을 잊어버리다니.

‘그래, 진상은 진상일 뿐이다.’


용병단의 말을 전부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내가 한발 물러나야 할 타이밍이었다.

의심을 철회하는 게 도리상 맞았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약간의 미운 감정을 전부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초면에 엽기적인 기억밖에 없으니까 반발심 드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네들 성격이 개빻은 거랑 목적이 정당한 거랑은 별개인 거잖아.’

‘왜 나한테만 지랄이지?’


휘성의 소심한 반박.

애초에 마물 용병단의 불친절함이 화근이 되어 일어난 반발심이었다.

휘성은 그런 이면적인 부분을 봐주지 않는 수빈 강시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뭐, 김무람 씨도 처음에는 저랬으니까. 나부터 마음 풀고 가면 차차 친해지겠지.’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는 휘성.

그는 다시 태평하게 용병단의 본거지를 향해 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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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20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6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7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9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8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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