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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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최근연재일 :
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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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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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DUMMY

휙-

신데라는 빗자루 하나를 들어 지팡이를 휘두르더니 돌연 가랑이 사이에 빗자루를 끼어 승마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모두는 그녀의 기이한 행동에도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마녀의 실체는 영화나 미디어로 많이 노출된 바 있다.

그게 연출이일지라도, 그들은 이미 마녀라는 생명체에 대한 고증과 이해가 확실한 편이었다.


그러나 휘성이 놀라는 순간은 바로 이다음 순간이었다.


부우웅-

빗자루가 지팡이의 지휘에 맞춰 점점 부유하기 시작한다. 그 자세가 정석인 건 알았는데, 진짜 되니까 신기한 것이었다. ‘투명 인간이 투명한 건 당연한 건데, 실제로 나를 만지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과 비슷한 원리랄까.’


“저거 일부로 저러는 거예요. 돋보이려고. 지금이야말로 그냥 파랑새로 변신하면 될 일일 텐데···.”

휘성과 무람의 열띤 성원에 힘입은 데라는 잔뜩 우쭐거리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태생부터 관심종자 DNA가 몸에 각인된 마물이 아닐까 싶었다.


“과연, 마녀의 귀감이로다.”

무람이 데라를 치켜세웠다. 마녀를 보았을 리가 만무한 아줌마가 저 모습을 치켜세우니까 조금 웃겼다. 신문물은 일단 칭찬하고 보는 전형적인 원시 문외한의 모습.

혹시 모르지. 과거, 이 산에서도 진짜 토종 마녀가 날아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긴 했는데, 딱히 영양가 없는 대답만 잔뜩 돌아올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그렇게 빗자루를 타고 올라가 오두막과 마당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생각해 보니까 굳이 저 나무 위에 올라간 이유를 묻지 못했다.


“자~. 지금부터 결계 준공식이 있겠습니다~!”

그걸 바로 설명해 주는 마녀 양반. 참으로 똑 부러지는 여자다.

차라리 알바생을 김무람 씨 말고 신데라로 트레이드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이 일대에 결계 친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은 산을 오르는 등산객과 같은 타지인에게 정보 누설을 막기 위함이었다.


위이잉-

오두막은 순식간에 데라의 빛에 감화되어 녹아내리듯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의 모습 또한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계 안의 모든 것은 환영이 포개어진 상태가 되었다.

마치 3D 영사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말이다.


“짜식들아! 으뜨냐! 멋지지?! 이제 일해라!”

데라가 우쭐하여 소리쳤다.


“저 새끼 마법 진짜 오랜만에 본다.”

수빈이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니까. 가스비 아끼려고 불꽃 소환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화재경보기 울려서 참 고생이었는데. 그치?”

민수가 해맑게 웃으며 수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 보였다.


“···.”

수빈은 침묵했다.


“왜 그래?”


“민수야, 그거 그렇게 해맑게 이야기할 만한 내용은 아니야.”


“그런가? 해맑은 게 디폴트 값인걸···. 그리고 가난한 것도 디폴트 값이잖아.”


“해방 전선의 위신이 점점 추락하는구나.”

.

.

.

작업은 본격적으로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과나무 심기.

묘목 뿌리가 더 상하기 전에 눈속임용 봉인 술식이 담길 나무부터 심기로 한 것이었다.


꽈악-

나는 미친 노친네가 우리 오두막에 두고 가신 삽을 두 손에 꽉 쥐어 보였다.

갑산귀 신춘배. 마지막에는 그나마 좋은 일 하고 가는구나.

그렇다고 그 새끼가 좋아진 건 아니다.

나한테 김무람 씨를 붙여놓고 뒈져버린 가장 질 나쁜 놈이 그놈이니까.


콰직-

나는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건 전문 용어로 삽질이라고 한다.

굳이 왜 이딴 걸 설명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삽질이라는 단어 자체의 어감이 좋기 때문이다. 솔직히 땀 흘리며 인생 낭비하는 개짓거리에 삽질만큼 좋은 게 없다.

거의 맨몸 운동계의 푸시업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그러던 그때였다.

김무람 씨는 맨땅에 삽질 중인 나를 위해 호랑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귓불 깨무는 그거 맞다. 근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꾹-

귀찮다고 손톱으로 등짝 찌르곤 홀연히 떠나가는 김무람.

그대로 마당 평상 위에 드러눕는 모습이다.

뭔가 많이 달라진 그녀의 태도.


“휘성 창귀야 일해라, 난 이만 자련다.”

저 개새끼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도 가능한 거였는데 여태 그 난리를 피웠던 것이란 말인가. 오로지 나를 홀리기 위해서?

그래, 저게 진짜 삽질이지.

분노가 차오른다.

장산범은 사람으로 둔갑하면 그 사람 성격까지 모방할 순 없는 마물이란 말인가.

얼핏 보았던 과거의 김무람 씨가 그리워졌다.

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사과나무를 벤 것이다.

절대 저 오동통한 요괴 한 마리 구하고자 사투를 벌인 것이 아니란 말이다.


“참아요, 휘성 씨···. 저래 보여도 무람씨가 당신을 엄청나게 아끼는 게 눈에 선하네요.”

그때, 열심히 삽질 중이던 나의 등을 토닥이는 오민수.


“저게 아끼는 거야? 넌 여태 어떤 삶은 살아온 거냐?”


“당신에게 아무 대가 없이 마력을 나눠준다는 것이 그 증거죠. 귀접 상태를 부여하는 행위는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행하는 마물들만의 의식이란 말입니다.”


“어...? 애 먼 사람 창귀 만드는 짓거리를 니네 전부 할 수 있다고?”


“아니요? 여기에서는 신데라랑 김무람 씨, 두 사람 밖에 못 할 거예요.”


“어째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민수는 오수빈에게 슬쩍 눈을 돌려 모종의 사인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서로 재미있겠다는 눈치를 보이며 실실 웃는 모습.

뭔가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야, 휘성아, 나랑 데라의 차이가 뭘 것 같냐?”

수빈이 내게 물었다.


“성별···?”


“넌 왜 이리 추측이 열정적이질 못하니.”


“휘성 씨, 잘 들어요. 강시&창귀 같은 마물하고 마녀&장산범 같은 마물에게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탄생 비화의 차이.

마녀나 장산범 같은 괴물은 천연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태어나기 전의 태아에게 천부적인 힘이 깃들거나, 태어나기 직전인 호랑이 새끼에게 천부적인 힘이 깃들거나.

그들은 그렇게 부모와 다른 기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이른바 '천연 마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강시나 창귀, 추가로 갑산귀까지.

그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부여받은 마물들에 의해 후천적으로 마물이 되는 것이다.

강시는 죽어버린 시체에 음양사가 마력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방법으로.

창귀는 살아있는 청년의 살과 마음을 호랑 요괴가 탐하는 방법으로.

갑산귀는 생사 상관없이 중악에게 영원한 충성을 바치는 방법으로.

그렇게 탄생하는 계열이 바로 언데드, '종속 마물'이라고 한다.

후천적으로 태어난 종속 마물들은 아쉽게도 귀접 상태를 부여할 권한까지는 가지지 못하는 모양이다. 애초에 본인들부터가 누군가에게 종속된 존재이므로,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창귀 되면···. 너네들처럼 시체 되는 거야?”


“에이~. 생명 자체가 살아있는 방향으로 종속될 방법은 차고 넘쳐요.”


“믄데? 믄데? 들어나 보자.”


또다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놈의 뜸 들이기.

민수는 꽤 심오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제2세의 종족 번식을 목적으로, 건강한 배후자가 되기를 평생 약속하는 겁니다. 둘 중 한 명이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 그 부부는 종족 상 마물이 됩니다. 하등한 쪽인 인간이 마물의 기운에 힘입어 새로이 진화하는 거죠.”


“아, 그건 좀···. 이상하다···.”


“왜요? 무람씨는 아름다우시잖아요~. 평생 가십쇼 그냥.”

민수가 썩 보기 싫게 헤실거리며 평상 위의 김무람을 가리켰다.


스륵-

김무람 씨는 그들의 대화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심드렁하게 하품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내 남색 양복을 조심스레 벗어 머리맡에 포개어 놓았다.


“어디 들어오시던가.”


김무람 씨는 날카로운 손톱 끝으로 고급 와이셔츠의 밑단을 잡아 올렸다

이내 싸늘한 도끼눈을 한 채로 스스로의 아랫배를 문질러 보이는 것이었다.

새하얗고 뽀얀 속살이 속도 없이 출렁거렸다.


그르르르-

새근새근이 아닌 그르렁 소리가 덤으로 울려 퍼졌다.

저거 긍정의 표시인가 아니면 부정의 표시인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애초부터 내가 싫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같잖은 씹선비 마인드 때문에도 아니라, 그냥 싫은 거다.

오늘내일만 버티면 저 마물들과 작별하고서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텐데.

굳이 굳이 저 요물의 속살을 심층 탐구하고 싶진 않았다.

미래를 기약하는 동굴 탐험은 30대가 돼서 천천히 시작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단 말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다. 그렇고 그런 짓거리들은 30대가 되어서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하셨다.


“싫다. 나는 여전히 자만추.”


“자연에서 만남 추구? 김무람씨 정도면 자연인이지 않나?”

그때 가만히 공격 기회를 엿보던 수빈이가 커다란 한 방을 찔러넣었다.


“내 기준 자만추는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애써 그들의 시선을 거부한 채 삽질을 이어 나갔다.

삽질이 고마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면 반은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만 인간이어서 저들의 마인드를 이해 못 하는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빗자루를 타고 몰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데라에게 구조의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데라는 그런 낯부끄러운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극명히 표명하며 저 멀리 날아버렸다. 경멸하는 표정 반, 수치심에 일그러진 표정 반이 섞여 있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데라 만큼은 정상이라는 것이다.

일단 자기 혼자서 도망쳐버리긴 했지만, 그녀만큼은 내 동료임이 확실해졌다.


‘정상인 확보 완료.’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삽질에 박차를 가했다.

왜인지 모르게 울컥 치솟는 호랑이 기운에 힘 입어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마저 심는 것이었다.


‘근데 저 빗자루 나도 빌려줬으면···.’

'X나 탈출하고 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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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신데라의 회상(2) 24.09.11 18 0 9쪽
32 32화. 신데라의 회상(1) 24.09.11 20 0 10쪽
31 31화. 해방 전선 본부의 연락 (9월 10일 복귀 회차) 24.09.09 21 0 14쪽
30 30화. 살아나는 연락망 (1막 마무리) 24.08.27 27 0 13쪽
29 29화. 일상과 재활 24.08.27 28 0 8쪽
28 28화. 소박한 희망 24.08.25 26 0 9쪽
27 27화. 입학. 24.08.22 28 0 10쪽
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7 0 10쪽
25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24.08.20 27 0 10쪽
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20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5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7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8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9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8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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