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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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최근연재일 :
2024.09.11 22:42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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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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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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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DUMMY

탁!-


탁!-


탁!-


수빈은 숨도 고르지 않고 재빠르게 하수도관을 가로질렀다.

비상시를 대비해 외우고 다녔던 것이 하수관의 구조였기에 손쉽게 집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는 마물 해방 전선의 기본 필독서에도 명시된 방법이었으므로.


덜컥!-

원룸의 낡고 헤진 문이 괴상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이내 수빈이 급박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집안 이곳저곳을 뒤지며 깽판을 벌였다.

민수가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들을 이행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전부 없애버리는 것.’

‘마물 해방 전선과 연관된 정보를 전부 말소해 버리는 것.’

‘우리는 실패해 버린 실험 부대. 이대로 폐기당할 것.’


[폐기당함으로써 의무를 다한다.]


콸콸콸-

수빈이 철제 통에 휘발유를 가득 들이부은 뒤,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다.


화륵-

민수가 건넨 파우치와 스마트폰이 제일 먼저 불타올랐다.


화륵-

데라의 각진 교복과 명찰이 수빈의 손에 의해 불타오른다.


“태워서 미안하다. 월급 모아서 산 걸 텐데···”


화르륵-

각종 입학 문서와 신분증, 영수증이 한데 모여 불타오른다.

각자의 가방과 침구류도 불타고.

명찰과 전화번호부도 불타고.


“하···.”

이제 초라한 원룸에 남아있는 것은 뜨거운 불길과 수빈뿐.

수빈이 모든 일을 마무리 지었다.


“저것 하나쯤은 챙겨 놓을까?”

수빈이 원룸 현관에 놓여있던 종이 한 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종이 한 장을 꺼내 들곤, 고이 접어 주머니 속에 넣는다.


“얼른 가야 해.”

중압감에 휩싸여 혼자 중얼거리는 수빈.

덜덜 떨리는 손이 현재 심리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틱.

티딕.

.

.

.

틱.


바닥에 떨어지는 검은 물체.


퍼어엉!-


쾅!-


콰아앙!- 쿠궁!-

이제는 초라해진 원룸에 또 한 번 불길이 치솟는다.


뚝-


뚜두둑-


“여길 어떻게···.”

팔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헐렁해진 고막에서 날카로운 고주파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왼쪽 팔과 왼쪽 다리, 그리고 왼쪽 고막이 이상했다.

너무나도 이질감이 들어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시선을 왼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인지하고야 말았다.

보면 심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는 있었지만, 보고야 말았다.

그의 눈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은 가히 처참했다.


“···.”

이게 꿈이 아닐까 잠시 간절히 기도도 해 보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부 터져나간 그의 왼쪽 안면은 죽음이라는 것을 실감 나게 했다.


바닥에 고꾸라진 수빈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끄윽, 끄어···. 하아아···. 여기까지 어떻게···. 어떻게 쫓아온 거야.”


뚜벅-


뚜벅-


뚜벅-


이번엔 무전기에서 들려왔던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름 재미있는 사냥놀이였다. 날 만족시켰으니 알려주지.”


제복을 걸친 남성이 겉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인다.

“이 은빛 파편을 기억하나.”


남자가 생기를 잃어가는 수빈의 면전에 은빛 파편을 가져다 대며 물었다.

그리고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은빛 파편.

분명 최루탄이 날아온 직후에 같이 날아온 투사체임이 틀림없었다.

수빈이 천천히 눈을 돌려, 떨어져 나간 다리 한쪽을 바라본다.

“위치추적기···? 마물답지 못하군···.”


그의 왼쪽 다리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박힌 은빛 파편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정답이다. 나름 훌륭하군.”


“으윽. 끄윽.”

수빈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남자는 그런 그를 농락하며 실없이 비웃을 뿐이었다.


수빈의 정신은 점점 현실과 멀어져만 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이다.

이런 걸 아득해진다고 표현하던가.


“아!”

그러다 문뜩, 충혈된 두 눈을 번뜩이곤 정신을 차린 수빈.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남은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기어가기 시작한다.


탕!-

남자가 발포한 총알에 의해 손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갔지만 멈추지 않았다.


탕!-

남자가 수빈의 발바닥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탁!-


콰직!-


수빈이 사력을 다해 가스 배관에 스마트폰을 욱여넣는다.

“아 X발···. 아직 약정도 안 끝난 건데···.”


그래.

이제는 본인 또한 제거 대상이 되었으므로.

그 의무를 다해야 할 때.


치직-

치지직-

입속에 숨겨놓은 라이터의 부싯돌이 서로 스치며 스파크를 피워낸다.


착!

이내, 영롱한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삐이이이이이이-

새어 나오는 도시가스가 주전자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난리법석이었다.


“쥐새끼 주제에 잔재주를!”

총알을 박아 넣으며 여유를 즐기던 중년 남성이 흠칫 놀라 소리쳤다.

수빈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급하게 후퇴하기 시작한다.


수빈의 마지막 의무가 거행되었다.


콰광!-


순간, 수빈의 머릿속에는 200년간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놀라웠던 것은, 20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주마등이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200년 중 단 10년 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짧았지만 가장 굵었던 기간.

중악으로 더럽혀져 버린 세상이었을 터였다.

정화하고 싶었다.

사명감에 부풀어 올랐었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에, 사적인 것만 가득 남았구나.’


사적인 것.

그에게는 2명의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자신에게 해방의 불씨를 맡긴 채 잠들었고, 다른 한 명은 그 불씨를 살리고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곳으로 열심히 뛰어오고 있을 데라가 눈앞에 선했다.

안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콩자반 먹어서 힘도 못 쓸 텐데···.’


털썩-

수빈은 그렇게 두 눈을 감았다.

타들어 가는 원룸 속에서, 고요히 잠에 드는 것이었다.


.

.

.

차가운 달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일요일의 밤이다.

와이번 무리의 묵직한 날갯짓이 밤하늘 갈랐다.

창공의 괴물이 사라지고.

거리마저 싸늘해진 그 밤.

중악의 사자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삐이용-


삐이용-


경찰차며 소방차며 구급차며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불변 골목과 용병네 원룸 주변을 가득 채웠다.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났음을 공공연히 암시하고 있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군거리길 반복한다.

현장 정리를 위해 경찰들이 뛰어 들어온다.

카메라 셔터음이 연신 바쁘게 눌렸다.

[과학수사대]라고 적힌 옷을 걸친 사람들이 처참하게 변해버린 사건 현장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터벅-


터벅-


터벅-


털썩-!


“어, 어···. 어어···.”

데라가 사력을 다해 휘성네 일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룸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털썩-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곤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이내 시야가 흐려지며 초점을 잃어간다.

서럽게 울부짖을 틈도 없이,

눈물이 뺨따귀를 타고 흘러내릴 틈도 없이,

그대로 넋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이, 이거, 왜? 이거 왜 이래요? 민수는···? 수빈, 수빈이는요···?”

데라가 천천히 일어나 불타버린 원룸으로 다가간다.

구경꾼들을 제치고,

경찰들을 피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간다.


어느새 노란 통제선 앞에 선 데라.

그녀가 천천히 노란 선을 잡아당겼다.


“학생 그러지 마!”

갑작스러운 폭발 소동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경찰관은 그녀를 끌어내리며 현장 앞에 서는 것을 제지했다.


“경솔히 행동하지 말거라! 아직 잔당이 남아 감시 중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 게냐!”

무람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데라에게 속삭였다.


“누가 모른대?! 누가 모른대?! 이거 놔! 이거 놔요! 아···. 진짜 잠깐만 놔줘요. 제발! 아···. 아아···. 어떻게 이래. 어떻ㄱ···. 읍!”


주변의 시선을 염려한 휘성이 다가가 그녀의 입을 가로막았다.

데라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길 간절히 소망하며 부드럽게 가로막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울부짖을 수도 없었다.

사무치게 후회할 뿐이었다.


미숙했고,

어리석었다.

아마추어 시범 부대는 간과하고 만 것이다.

중악이라는 집단의 광기를.


그날, 수십 명이 건물 잔해에 깔려 죽었다.

수백 명이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다.

와이번의 독에 유독 약했던 노약자나 아이들은 거의 중독사 하고 말았다.

모든 희생자들의 생명선이 엉망으로 꼬이고 말았다.


‘들키지 않으면 그만.’

그들의 가장 간단하고도 위협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대로 이행한 결과는 처참했다.

안일했던 아마추어 집단은 그렇게 파멸의 길을 걷고 만 것이다.

단 한 명의 내향형 마녀를 남겨둔 채···.


“데라를 진정시키고 있거라. 속히 다녀오도록 하마.”

무람이 휘성에게 속삭인 뒤, 수많은 구경꾼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움직일 여력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리고 잠시 후.

술렁이는 군중들 속에서 경찰들의 대화가 오고 간다.


“어?! 이 형사! 내 판초우의를 못 봤나?”


“예? 구 반장님! 방금 현장에 들어가신 분이 왜 여기 계세요? 저한테 지령까지 내리셨잖아요. ‘내 판초우의를 가져와’라고.”


“내가 떡하니 여기 있는데 무슨 소리야! 너 정신 안 차릴래?!”


“어라?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 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순찰차의 내부를 살폈다.

그러나 순찰차 안에 고이 모셔져 있을 구 반장님의 판초우의는 눈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터벅-


터벅-


터벅-


귀기가 서린 조사관 한 명이 사건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섯이 정답게 저녁 담소를 나누었을 그곳으로.

모든 것이 불타버린 사건의 현장 속으로.


“미안했네, 친구들.”


“내 두 번 다시 잊지 않으리.”


“이 참상을 클라우드 속에 묻어가겠소.”


장산의 경찰은 분노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짐승의 손톱을 세워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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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신데라의 회상(1) 24.09.11 20 0 10쪽
31 31화. 해방 전선 본부의 연락 (9월 10일 복귀 회차) 24.09.09 21 0 14쪽
30 30화. 살아나는 연락망 (1막 마무리) 24.08.27 26 0 13쪽
29 29화. 일상과 재활 24.08.27 27 0 8쪽
28 28화. 소박한 희망 24.08.25 26 0 9쪽
27 27화. 입학. 24.08.22 27 0 10쪽
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7 0 10쪽
»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24.08.20 27 0 10쪽
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20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6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7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8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7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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