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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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최근연재일 :
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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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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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접선까지만.

DUMMY

이슬방울이 영롱히 빛나는 일요일 아침이다.

민수, 수빈 그리고 데라는 호수공원 중앙 광장에 나란히 서서 무람 일행이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안 와?”

수빈이 말했다.


“곧 오시겠지.”

민수가 답했다.


“알고 보니까 진짜 중악의 이중간첩인 거 아니야?”

수빈이 재차 말했다.


“곧 밝혀지겠지.”

민수가 재차 답했다.


수빈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주변을 바쁘게 살폈다.

그의 다혈질인 모습과 상반되게 여전히 침착한 민수는 데라와 함께 앞으로 있을 토론에 대비하며 합을 맞추었다.

그걸 내심 좋게 보지 못했던 수빈은 괜히 가만히 있던 데라에게 시비를 걸었다.


“야, 데라 너. 일하는 척하지 말고 움직이란 말이야! 회의 내용은 민수가 다 짰다잖아!”


“뭐래, 무슨 카페 갈지는 정해야지. 넌 길바닥에서 회의하냐?”


“애새끼들 유니폼 따라 입더니 더 띠꺼워졌네. 정신연령까지 다운그레이드된 건가.”


“시발 뭐라고 했냐? 다시 씨부려 봐.”


둘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찰나, 민수가 입을 열었다.

“저기 오신다.”


셋은 일제히 호수공원의 입구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세련된 남색 양복을 걸친 무람.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옷깃을 단정하게 정리해 주는 휘성의 모습이었다.

무람은 현대인의 옷을 입는 것이 불편한지, 이리저리 만져가며 본인만의 스타일을 찾아 꾸며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바지를 그렇게까지 올리실 필요가 없으시다고요! 벨트가 있잖아요. 남정매도 안 하는 짓을 왜 자꾸···!”


“어허! 내 옷이니만큼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염려 말거라.”


“제대로 입지도 못할 거···. 괜히 비싼 옷으로 맞춰서는···.”


“비싸면 뭐, 내 금덩어리 내가 쓰겠다는데!”


“그거 아직 팔지도 못했거든?! 전부 내 돈 주고 산 거야!”


터벅-


터벅-


터벅-

그들이 광장으로 진입할 때쯤, 해방 전선의 용병단들은 앞서 마중 나오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본인들은 계속 기다리기만 했는데, 정작 산동네 부부 사기단은 한가로이 쇼핑이나 하다가 오다니. 화가 날 법도 한 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냥 해맑은 게 미안할 정도였다.

뭐, 애초에 셋이 한꺼번에 덤벼도 가볍게 분쇄골절 당할 게 뻔했기에 그냥 참고 넘어가는 부분도 일부 있었을 것이다.


“오~ 김무람씨, 훨씬 까리해지셨네요.”

민수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음, ‘까리하다’···. 예전부터 늘 들어왔던 말이었다.”

예전에 있을 리가 만무한 단어를 어째서인지 들어본 무람이 화답했다.


“근데,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아요? 데일리룩으로는 너무 과해 보이는데.”

잠자코 복장을 감상하던 데라가 입을 열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근데 이거 아니면 안 되시겠데. 무조건 신분 높은 양반들이 입는 옷을 걸치시겠단다.”


“참관 수업 온 학부모 보는 것 같아.”


“너. 그 말. 내가 한 시간 전에 했던 말이랑 정확히 일치해.”

무람의 복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휘성과 데라는 반가운 마음에 신나게 떠들었고, 그렇게 3분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


“일단 근처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하시죠.”

언제나 잡담을 끊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쪽은 민수였다.


“근처 말고 외진 곳으로 가자꾸나. 아무래도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이런 복장은 좀 과한 것 같아서 말이다.”

무람이 은근히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네?”

휘성이 의문을 표했다.


“알고 있다고 달라지지 않는 일들이 여럿 있는 법이지···. 그것을 운명이라 하든가···.”

무람이 답했다.


“운명을 너무 남발하시는 것 같은데요?”

휘성이 반문했다.


“남발이 아니라 내가 꼴리는 것은 전부 운명인 게야! 이 옷과 나의 만남은 운명의 물레바퀴 속에서 맞물렸다는 소리이지! 파란 실로 이어진 양복이었다 이 말이니라!”


“그냥 비싼 게 좋다고 말을 해.”


“비싼 게 좋아.”


“그래.”


잠시 후.

카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마주 선 두 일행.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한다.

의외로 의견을 가장 활발하게 제시하는 쪽은 무람 일행이었다.

그들은 지금의 중악에 대해 아는 것이 턱없이 적었고, 적은 만큼 대책은 꼼꼼해야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휘성은 자신이 오늘부로 중악과 관련한 일에서 빠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용병 일행은 오늘이 휘성과는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당히 서운해 보였지만, 민간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인정하는 눈치였다.

애당초 그들을 중악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모인 놈들이었으므로.

뭐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첫 만남부터 칼 들이댄 것은 실수로 묻어가도록 하자.


“그러니까, 지금 당장 휘성 씨의 집을 재정비해 줘야 한다는 거군요.”

민수가 말했다.


“일리가 있네. 혹시 모르니 사과나무도 다시 심어야겠어. 장산 지부에 있던 증거들은 전부 인멸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메일이나 클라우드 저장이 기본이니까. ‘장산범 봉인 작전’이 중악의 본부로 새어 나갔을 가능성이 있어.”

데라가 거들었다.



“클라우드? 만국 공통어 사전에서 본 적이 있는 단어구나. 음. 구름에 정보를 저장하고, 필요시에 비를 내려 꺼내 보는 방식이라. 장마철에 활용하면 제격이겠군.”

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뭐야? 컨셉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거야?”

데라가 두 눈을 끔벅거리며 물었다.


“응. 가짜는 아니더라.”

휘성은 아이스티를 담배 피우듯 깊게 빨아들이며 고개를 떨군다.

그간 힘들었던 나날들이 깊은 한 모금에 녹아들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말했지만, 나는 가짜가 아니다···. 사과나무에 같이 묶였던 추억을 되새겨 ㅂ···.”

무람이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아, 조용히 해요. 얘기하잖아요.”

휘성이 질색하며 미간을 구겼다.


“어허. 가만히 들어보거라. 내가 인터넷으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데카르트라는 양반의 실존주의에서 존재 자체의 의미는···.”


“야, 누가 저 아줌마 인테넷좀 압수해.”

수빈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식히며 고개를 돌렸다.


잠시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식히는 그들.

약 5초가량의 정적.

간간이 음료수를 몇 번 훌쩍거리고서는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뭐, 인터넷 메일이라고 해 봐야 작전 개요 정도만 흘러 들어갔을 거다. 결과 보고서는 신춘배가 복귀 후 문서 처리하기도 전에 죽어버려서···. 당분간 시간은 번 셈이야.”

데라가 가장 먼저 본론을 이야기하며 대화 주제를 바로잡았다.

드디어 시작되는 회의.


“신춘배 그놈! 내가 죽였느니라!”

무람이 크게 소리쳤다.


“알겠다고. 잘했다고.”

수빈이 무람의 턱주가리를 손바닥으로 들어 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은근히 마음 따뜻해지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

.

.

#1시간 후.

회의 인원의 집결.

장소는 장산 둘레길 아래.

화사한 햇살이 영롱히 빛나는 일요일의 점심.

마물 동호회 외 민간인 1명은 한참 산을 오르고 올랐다.


“헥. 헥. 크혁. 헙. 어디까지 가~.”

힘들게 버티고 버티던 데라가 결국 산을 오르다 말고 나자빠지고 말았다.

비전투요원이었던 데라. 그녀에게 있어서 체력 단련은 사치였는지, 한 걸음 한 걸음이 벅차 보였다. 인간이 아닌 마물이라는 존재에게도 물리적인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얘도 참. 인간인 휘성이 형보다 느리면 어떡하니? 내가 운동은 꼼꼼히 하라고 했잖아.”


“헉. 커헉. 헥헥. 니가 콩자반만 먹이니까 힘이 안 나는 거야!”


“데라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고기나 콩자반이나 둘 다 같은 단백···.”


“닥쳐!”


휘성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이상한 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며칠 전처럼 새로 변신해서 날아가면 되는 거 아니야?”


“아~. 그때는 지금처럼 들고 갈 물건이 없었으니까요. 파랑새로 변신하면 무거운 물건은 못 들어요.”

뾰로통하여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데라를 대신하여 민수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한 휘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딱히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애초에 순간의 궁금증에 불과한 것.

그냥 산이나 마저 오르는 것이었다.


“너. 그런 저질 체력으로 마녀사냥은 어떻게 피해 다녔냐?”

계속해서 찡찡거리는 데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수빈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잇! 그때는 호박 한 덩이만 있으면 마차 만들어서 세계 일주하고도 남았지. 지금은 CCTV 때문에 못 탄단 말이야!”


“등신아! 마차를 지금 타면 되겠네. 이런 산 중턱에 CCTV가 있겠냐.”


“호.박.이. 없잖아! 호박!”


“글쎄, 니 호박 대가리로는 어떻게 안 되냐?”


“넌 ‘아바다케다브라’ 예약이야. 도착해서 보자.”


그렇게 또 수빈과 데라가 투덕거리는 사이, 어느새 그들의 발걸음은 산 정상 아래 위치한 휘성네 매점 앞에 도달해 있었다.


털썩-

민수와 무람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들고 올라온 사과나무 묘목을 마당 한 편에 내려놓는다. 그 거대한 것을 단둘만의 힘으로 들고 올라온 것도 정말이지 기적이었다.

아무래도 강시들의 신체는 데라나 여타 인간들과 다르게 묵직한 충격도 버텨낼 수 있는 모양이었다.


털썩-

완전히 탈진하여 넋이 나간 데라가 매점 바닥에 주저앉는다.

본인은 공구 몇 개만 들어줬을 뿐인데 다 죽어가는 각다귀처럼 시들시들하다니.


휘성은 생각했다.

‘유성이가 훨씬 건강할 것 같은데···? 둘이 싸움 붙여 보고 싶다.’


휘릭-


휘리릭-


털썩-

데라가 탈진하여 기절하기 직전에 알 수 없는 기행을 벌이기 시작한다.

품 안에 있던 나무 지팡이를 꺼내 이리저리 지휘하듯 흔드는 그녀.

이내 수빈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른다.


파지지직!-

지팡이 끝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마법.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빛이 번개처럼 뻗어나간다.


“으악! 으그그그끅!”

혼신의 힘을 다해 날린 모종의 빛에 당한 수빈이 게거품을 물며 고꾸라진다.

데라가 갑자기 왜 아군이었던 수빈을 공격하나 싶었는데, 아까 그들이 나누던 티키타카의 내용이 불현듯 떠 올랐다. 아마 데라가 뿜은 빛은 ‘아바다케다브라’라는 마법이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그걸 진짜 기억해 놨다가 쏴 버리는 데라도.

데라의 독사 같은 성격을 알고 있었으면서 개겼던 수빈이도.

솔직히 둘 다 거기에서 거기인 연놈들이다.


“오늘 목표에 관해 설명할 거야. 한 번만 말하니까 잘 들어~!”

민수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땀방울 몇 개를 슬쩍 닦아낸 뒤에 크게 소리쳤다.

그의 앞에서 쓰러져버린 두 명의 동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은, 애초에 저런 놈들이니까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늘의 할 일 : 흔적 지우기


1. 민간인인 휘성 씨가 중악에게 휘말리지 않도록 접선의 증거를 철저히 없앤다.

2. 갑산귀 신춘배의 사체를 장작으로 삼는다.

3. 김무람의 봉인 부적을 위조한다.

4. 신축된 오두막의 뒤편, 불타서 망가진 울타리를 다시 보수한다.

5. 모든 것이 완료되면, 휘성 씨에게 일절 관여하지 않고 즉시 자리를 뜬다.

6.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


“6번은 뭐냐.”

방금 막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수빈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왜? 감성적이어서 좋잖아.”

민수가 방실방실 웃으며 화답했다.

.

.

.


작가의말

앞으로 5회 정도까지는 평화로울 예정입니다.

아마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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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신데라의 회상(2) 24.09.11 18 0 9쪽
32 32화. 신데라의 회상(1) 24.09.11 20 0 10쪽
31 31화. 해방 전선 본부의 연락 (9월 10일 복귀 회차) 24.09.09 21 0 14쪽
30 30화. 살아나는 연락망 (1막 마무리) 24.08.27 27 0 13쪽
29 29화. 일상과 재활 24.08.27 28 0 8쪽
28 28화. 소박한 희망 24.08.25 26 0 9쪽
27 27화. 입학. 24.08.22 28 0 10쪽
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7 0 10쪽
25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24.08.20 27 0 10쪽
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20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7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8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9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8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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