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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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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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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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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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마물의 밤

DUMMY

타닥-


타닥-


한가로운 밤에 모닥불 하나가 은은하게 불타오른다.

휘성은 무람의 허리춤에 있던 매실주의 빈 병을 들어 보였다.

국물 한 방울 없이 텅텅 비어버린 술병.

그는 멍하게 텅텅 빈 술병을 바라보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 뒤편으로 향했다.

그렇게 1분 정도가 흘렀다.


“우리 오늘 이거 까죠?”


찰랑-

잠시 후. 다시 돌아온 그가 한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술병.

무람이 들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진한 색상의 매실 담금주가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너도 마법 쓰니?”

데라가 흠칫 놀라며 휘성이 들고 나오는 병을 애지중지 옮겨 들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애써 억누르며 뚜껑을 열어보니, 과연 독한 알코올의 향기와 은은한 매실 향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김무람씨가 마신 거. 그거 물 채워 넣은 거거든.”


“어?!”


“매실 알갱이만 몇 개 넣어두고, 나머지는 물로 꽉꽉 채운 맹물이었는데···. 취한 척하는 것 보니까 어지간히 관심받고 싶었는지도···.”

휘성은 해가 떨어져도 평상 위에서 내려올 생각 않는 무람의 모습을 허무맹랑하게 바라보았다. 무람은 부자연스럽게 앓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려도 숨길 순 없었던 수치심이 그녀의 귀 끝을 벌겋게 만들었다.


“저 사람 작업 내내 취한 척한 거야?”

수빈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취했다고 해주자. 가끔 이럴 때 있잖아.”


“너도 넌데, 김무람의 심리는 더 이해가 안 간다.”

수빈은 실눈을 찔끔거리는 김무람과 휘성을 번갈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옛날에는 취한 척하고 싶어 하는 애들한테 맹물 타서 주는 경우가 있었거든. 유성이가 한창 어릴 때 자주 써먹던 방법이란다.”

휘성은 머나먼 과거를 회상하며 감성에 잠겼다.

부모님이 병으로 앓기도 전에 온 가족이 같이 놀러 갔던 계곡.

그곳에서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땐 유성이가 아직 어렸고, 부모님은 뭣도 모르는 유성이에게 향만 첨가한 맹물 복분자주를 건네곤 했다. 유성이는 그걸 마시고 좋다고 해롱해롱한 척을 했다.

술에 취한 어른들을 흉내 내면서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이겠지.

지금도 상황 자체는 비슷했다. 엉큼하게 관심받고 싶어 하시는 아이 한 분이 있다.

분명 오늘까지만 만나자는 유예 시간을 줬음에도 불구, 그녀는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간의 겉모습을 흉내 낼 뿐이라고 그렇게 자부하더니, 결국은 인간 아이 못지않은 앙탈이나 부리는 모습.


“응? 진짜 안 취했네?”

데라가 깜짝 놀라 무람의 면상을 본인의 두 손으로 이리저리 문대 보았다.

사실 그렇게 문댄다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을 텐데, 그냥 일부로 그러는 것 같았다.

작업을 빼먹고 내내 쉬쉬했던 그녀에게 옹졸한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을 테지.


“끙···. 하지 말아라.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프군.”

김무람은 시치미 뚝 떼며 붉어진 얼굴을 정갈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분위기가 진정되고.

김무람은 데라의 따가운 눈초리를 한 몸에 받으며 취조 아닌 취조를 받게 되었다.

아까부터 물어볼 것이 여러 개 있었던 모양이다.


“작업 내내 귀기를 뿜어댔던 이유는?”


“이 몸은 지금 김무람의 모습으로 상시 둔갑 중일세. 술법의 반동으로 귀기가 뿜어져 나오더군.”


“휘성의 매점 영업에 귀기가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못한 거야?”


“물론 장산범의 내공이 내공이니만큼, 둔갑의 반동 따위 숨길 수야 있지. 허나, 이 내 몸에 귀기가 쌓이면 처리가 곤란해져서 말이다.”


“처리?”


“귀기도 엄연히 신경 자극제야. 너도 알다시피···.”


“앗. 미쳤어! 정말···! 진짜 짐승인가 봐!”

데라는 급히 얼굴을 붉히며 뒤돌아섰다.

귀기가 쌓인 마물의 말로는 뻔할 뻔자다.

이성을 잃은 채 귀기를 해소해 줄 애자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겠지.


“마물인 몸이라 짐승 취급은 익숙하네.”


“어디 조용한 곳에서 산책이라도 하면서 천천히 뿜으시면 되는 거잖아!”


“싫어. 매점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나잖아.”


“내 알 바냐! 이성 잃고 미쳐 날뛰는 것보단 낫겠지! 하여튼!”

그녀가 작업 내내 귀기를 뿜어댔던 이유는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 이곳이 그녀의 산이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아무쪼록 떨어지게 될 휘성에게서 자신의 향기를 가득 묻혀 놓고 싶었겠지.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억지에 불과한 이유들.

데라는 종자에게 집착하는 무람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가슴 한편에서 조금 화끈거리는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런 걸 질투라고 하던가.


데라는 본인이 은연중에 무람을 질투하는 이유를 알아버렸다.

그건 바로 귀기의 해소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빈과 민수와 다르게 비전투요원이었던 데라에게는 중악과의 전투 도중 귀기를 뿜을 기회가 턱없이 적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귀기의 건전한 해소를 위해 학생들과 섞여 들었던 것이었다.

여기에서 귀기는 음기에 비유된다.

이는 밝고 쾌활한 학생들의 양기로 중화된다.

해소하지 못한 귀기를 단숨에 배출해도 학생들의 양기에 묻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

한마디로 학교 전체가 양기 충전소였던 셈이지.


그런데 보아라.

용기 내서, 시간 내서, 자본까지 투자해 가며 건전한 길을 개척해 나가던 그녀의 앞에 나타난 망나니 국내산의 존재를 말이다.

허구헌날 놀고 먹고 자고. 그럼에도 챙겨주는 종자가 있으며, 심지어 종자의 사랑과 신임을 듬뿍 받는다.

데라 본인이 발 빠르게 움직일 동안, 김무람이라는 흉내쟁이 저 작자는 평생을 이 뒷산에 틀어박혀서 동네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다.


“저 여자를 보니까 중악의 기분이 잠깐 이해 갈 뻔했어. 아주 지독한 천하태평이구먼.”


“어허... 살인광의 기분을 이해하려 들다니. 타국의 마녀 선생이 전쟁범죄자를 옹호할 관상으로는 안 보이는데?”

무람은 침울해진 데라의 턱을 집게손가락으로 들어 올려 보였다.

이내 실실 웃기 시작하는 무람.

신데라의 당돌함이 가소로웠던 모양이었다.

꽤나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김무람은 은근히 데라를 귀여워하는 듯했다.

오묘하게 던지는 추파(?)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아아! 됐어! 술병 이리 내! 오늘은 좀 마시자!”

데라가 미간을 구긴 채 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ㅋㅋ. 왜? 짜증 나냐?”

수빈이가 잔뜩 토라진 데라를 비웃으며 물었다.


“이래 보여도 중악에 대항할 주전력이 되실 분이야. 모두들 정중히 모셔주라.”

민수는 수빈의 비웃음에 가세하며 썩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아! 짜증은 무슨! 오늘은 축하해야지! 김무람 당신은 우리가 처음으로 구출한 국산 마물이야!”

데라는 서서히 밝아지는 표정을 자연스레 드러내며 술잔을 기울였다.


매점 마당에 둘러앉아 본격적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그들.

장작더미 위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꽃은 그들이 멍때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화재에 주의해야 하는 산 중턱이므로, 관할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함을 잊지 말자.

.

.

.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평상 위는 이제 진짜 술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밤이 깊어 짐에 따라 그들의 시간도 깊어지는 것이었다.


"오늘 밤, 마지막이라고 나를 덮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런 일 없네요."


"이 내 마음이 나약해 너의 추태를 곧이곧대로 받아줘 버릴 지도 모를 일이야. 낭패로구나...?"


"정 그러면, 데라랑 같이 자세요."


"싫어."

무람은 이젠 진짜로 취해 휘성의 무릎 위에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범의 형상을 한 요괴가 아니라 고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한편, 민수와 수빈은 술김에 젓가락 게임을 하며 진검승부를 벌이기 시작했다.

술게임의 재미를 위해 진 놈은 빠따 열 대라니, 역시 이미 죽은 강시답게 벌칙 규모도 남달랐다.

나머지 인원들은 혀를 내두르며 참가를 거부할 정도로 강한 벌칙을 아무렇지 않게 이행하는 모습.


빡!-

매우 둔탁한 소리가 산마당 전체에 울려 퍼진다.

나머지 인원은 원시적인 두 마물에 행보에 혀를 차며 돌렸다.


빡!-


“저 X신 새끼들은 지들끼리 놀라고 냅구고, 휘성이 너는 나랑 대화 좀 하자.”

데라가 무람을 애완동물 달래듯 쓰다듬고 있던 휘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 개판 5분 전인 상황에서도 데라는 인간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이것저것 털어놓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어질 해방 전선 2막 인생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 지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너는 인간들이랑 학교에 다녀본 적이 있어?”


“아니 애초에 내가 인간이라니까?”


“아니야. 너는 그냥 인간 하지 마. 인간치곤 매사에 무덤덤해.”


“묻고 싶은 게 뭔데?”


“인간들과 섞여 사는 생활은 어땠어?”

데라가 은근히 진솔한 어투로 휘성에게 물었다.


“···.”


“대답”


“좋았···어.”


“똑바로 대답.”


“좋았···었쥐···. 나름 인기 많았어.”


“다 말하기 불편하면 좋았었던 것만 이야기 해줘. 진심으로 궁금하니까.”


휘성은 대충 예시를 들어가며 흔한 인간사를 떠들어보기로 한다.


빡!-

이따금 들려오는 불망망이 소리를 안주 삼아서.

휘성이는 본인의 경험담을 가볍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매점에서 왔다 갔다 하며 등하교했거든? 산 아래 원룸 사는 친구 한 놈 붙들어 매고.”

“우리가 교실에 들어오면은, 반 전체가 난리가 났지 그냥.”

“누구 때문에? ㅇㅇ 나 때문에.”


빡!-


“휘성이 너는 진짜 허언증이 기본 베이스구나.”

데라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서 이제 사물함을 열면, 익명의 편지들이 쌓여있지.”

“나한테 편지 쓰면 내가 글쓴이 맞추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니깐.”


“요즘 인간들도 살해 협박을 편지로 적는구나? 메모. 메모.”


“내가 단언하는데 1학년 생활은 진짜 인생 전성기였다.”

“여자애들이랑 시내에 가서 노래 한 곡 뽑고.”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빡!-


“사우나 가서 아침까지 개 처맞았구나···.”


“너. 아까부터 계속 싫은 소리만 낼 거면 왜 말해달라고 했냐?”

휘성이 역정을 내며 데라를 쏘아붙였다.


“야, 싫은 소리 낼 거면 들어가 자라.”


“재미있네. 계속 말해봐. 2학년 때는 어땠어?”


“···.”

갑자기 사라지는 휘성의 웃음기.


“응?”


“자퇴했어.”

휘성이 침울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람이 엎어져 자고 있던 평상 자리 옆에 똑같이 엎어지는 휘성.

데라가 애써 몸을 비틀어 얼굴을 마주 보려고 해도 그는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빡!-


“너도 자는 척?”


“자라.”

휘성이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중얼거렸다.


“에휴~ 너부터 들어가서 자버려.”

데라가 반박하며 휘성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술기운이 올라온 탓에 힘 조절이 되지 않았던 마물을 그대로 휘성을 잡아들었다.

휘성과 그를 보듬고 있던 무람이 살살 끌려 나오는 모습.

고구마 캐면 서로 엉킨 모습이 딱 저런 형태일 것 같았다.


“아···. 님아, 설마 잠들었냐···?”

데라가 두 눈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휘성은 잠들어버렸다.

어느새 술에 잔뜩 취해버린 모습.

그는 무람을 꽉 부둥켜안은 채 꿈나라 삼매경이었다.


작가의말

19금 위반으로 걸로 경고 한 번 더 먹으면 조또나가리인데:;

근데 새로 짠 시놉시스 상으로는 여기서부터 흑화해야 하는데...

씁. 무를까?

아 흑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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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신데라의 회상(1) 24.09.11 20 0 10쪽
31 31화. 해방 전선 본부의 연락 (9월 10일 복귀 회차) 24.09.09 21 0 14쪽
30 30화. 살아나는 연락망 (1막 마무리) 24.08.27 26 0 13쪽
29 29화. 일상과 재활 24.08.27 27 0 8쪽
28 28화. 소박한 희망 24.08.25 26 0 9쪽
27 27화. 입학. 24.08.22 27 0 10쪽
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7 0 10쪽
25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24.08.20 26 0 10쪽
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6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7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8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7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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