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최근연재일 :
2024.09.11 22:42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1,209
추천수 :
0
글자수 :
167,557

작성
24.08.22 22:52
조회
27
추천
0
글자
10쪽

27화. 입학.

DUMMY

잠시 기억의 파편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이는 내가 300년 이상을 살아오며 겪어온 지옥 같은 일상들.

그닥 기억하고 싶진 않았는데.

현 상황은 더욱이 암울한 바람에, 그 과거라는 지옥으로 도망쳐 올 수 밖에.

속도 없이 불쾌하지만···. 왠지 모르게 미래를 기약하는 것보단 편안했다.


‘마녀사냥’

내 고향 이도교들에 의해 진행된 마물 사냥 프로젝트였다.

중악과 같은 마물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마물의 존재를 탄압하려 드는 인간들에게서 시작된 지옥불 퍼레이드.

나는 계속해서 도망만 쳤다.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300년간의 도피 생활은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 상류 신령 사회로 진출하는 것뿐이었다.

하급 마물을 통솔하며 인간사에 절대적인 신으로 군림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종속과 천연 구분 없이, 100% 계급으로만 따지는 마물 나라의 시민권.

그것이 터무니없이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지위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았지.


역사에 남을만한 업적을 이뤄내야만 했다.


업적.


지금의 내가 쌓을 수 있는 업적이라.


그러던 어느 날, 지인한테서 제안이 왔다.

한반도에 들어가 중악회를 처단하면 상류 사회로 승격시켜 준다는 제안.

다른 마물들도 도전중에 있다며, 역사에 이바지하는 것에 이것보다 쉬운 길은 없다며,

나를 부추겼다.


“안녕?”

그렇게 어쭙잖게 들어간 곳에는 그 녀석들이 있었다.

살면서 가지고 있으면 가장 쓸데없다는 양심과 사명감을 가슴 속에 품고 한껏 부풀어 있던 그 녀석들이 나를 반겼다.


“전부 쓸데없어. 열등한 것들.”


종속 마물 주제에.


감히.


속도 없이.


천연 마물과 한 데 머물려 하다니.


참으로 무엄하다.

.

.

.

나는 무기력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씨는 저리도 화창한데, 나에게 비치는 도시 전경은 여전히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무엇을 듣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한 채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내 기억 속 열등한 종속 마물이 지금은 없다.

그들은 죽고 없다.

내 동료가 죽었다.

동료가 죽은 그날, 생기 넘치던 마녀 또한 죽고 말았다.

다시는 지팡이를 휘둘러 동료를 놀려먹는 나날이 돌아올 일은 없을 듯했다.

앞으로도 평생.


“죽었다.”

“전부 죽었다···.”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낸 정보였고, 내가 제안한 작전이었다.

자만하고 있었고, 현장 검증을 할 생각조차 안 하고 가고 싶었던 학교에 갔다.

그저 내 귀기를 풀어낼 심산으로, 방탕한 청년들을 구슬려 먹을 작정으로.

나는 그렇게 오만함을 키워갔다.

그게 사인이다.

미필적 고의.

나는 살인자다.

나는 마녀재판에 세워져도 무방한 살인자.

그런 살인자···.


내 탓이 컸다.


그래서 갈등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대로 증발해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죗값을 치르면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을까.

이제는 너무 지쳐버렸다.


“아.”

아니야.

그건 불가능해.

나는 300년을 피해 다니며 살아남았다.

이도교를 피해 호박 마차를 타고 꾸역꾸역 살아남았다고.

이제 와서 목매달고 죽으라니.

터무니없는 소리를.


민수, 수빈에게 미안하지만, 정말로 미안하지만···.


“나 더 살아도 되려니···?”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 차례 닦아내며 끅끅거리기를 반복했다.

손등에는 새빨간 진물이 번졌다.

너무 많이 닦아낸 탓에, 피부가 헤진 것 같았다.


덜컥-

한참 넋이 나가 있을 바로 그때였다.

휘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데라야, 밥은 먹어야지. 이러다 진짜 죽어.”


“나 안 죽어.”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것인지, 휘성에게 중얼거리는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나 자신에게 외친 말이었다.

이건 억울하게 죽어버린 강시들을 향한 앙탈인 셈이다.


“그래. 천천히 내려와. 아, 아니다. 최대한 빨리 내려와. 무람 언니야가 저녁 다 먹는다.”


덜컥-

방문이 닫히고, 오두막의 2층 방에는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드르륵-

적막이 익숙해질 무렵, 갑작스레 창문이 열리고 무람이 빼꼼하고 고개를 내민다.

“데라 있느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오늘 반찬은 두부조림에 볶은 김치였느니라. 고기는 나오지 않았어. 휘성 그 친구가 매점이 매점 같지 않다며 아주 역정을 내더구나! 하여튼 간에!”


“네···.”


“아, 그렇지 참. 늘 그렇듯 정신 차리라는 말을 하러 왔다.”


“네···.”


“일요일까지 독립하겠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여간 눈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어,”


“네···.”


“타도 중악을 도모하는 자들끼리 다시 뭉쳐 새로운 방도를 궁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네···.”


“휴우···. 이것 참.”

무람 언니가 한숨을 내쉬며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대충 짐작은 갔다.

신령 연합 본부와 다시 연락을 취할 방법은 내가 알고 있을 거라 맹신하고 있을 테지.

어째서 다시 연락을 취하려는 걸까?

‘무람 언니’나 ‘나’나 이미 중악에게 패배한 패잔병. 찌꺼기가 아닌가.

이제 와서 뭘 더 하겠다고.

우린 이제 살 곳도 없고 지원도 없단 말이다.


‘제발 혼자 있게 해줘.’

나에게는 그들의 적극적인 위로가 불편할 뿐이다.

그런데도 항상 열정이 가득한 두 사람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휘성이다.

그는 중악과 아무런 접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악과의 전쟁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유는 즉, 동정심.

그저 감정이 앞서 움직이고 있는 무대포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멍청할 줄이야.


나는 다시 일어설 의지를 잃었다.

아직은 겁이 났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중악도, 이도교도 싫었다.

이 나라도 싫었다.

전부 싫었다.


그때, 내 표정을 읽은 듯한 무람이 입을 열었다.

“어제 내가 보호자 구실이라도 할 겸 학당에 다녀왔느니라. 속히 등교하라는 훈장의 전언이 있었느니라. 내 생각이다만은, 이제 중악의 감시망이 느슨해진 것 같으니 다시 학교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구나.”


“···?”


“기분 전환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게 무슨···.”


“넌, 마음이 아직 너무나도 여리다. 무엇보다 미숙하지. 너는 중악과의 전투에 벗어나서 일상을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여리다니···. 여리다···. 듣기에 거북하네요. 당신이랑 나랑 겨우 100살 차이인데···.”


“내 말의 취지는 일상을 살란 소리이니라, 하여튼 이런 연놈들을 MZ라고 하는 것이로군. 겨우 400살 조금 안 된 년이 500살 산 마물에게 농성이라니.”


“일상이라···. 일상···. 듣기에 거북하진 않네요. 침울하지도 않고 딱 적당하네요···.”


“그래. 일상.”

“너는 일상을 살거라. 그저 정보만 제공해 주시게.”

“중악의 피는 내가 직접! 내 손에 묻혀 주지.”

“뭣하면 의무를 저버린 채 일상속에 숨어도 상관하지 않겠다.”

“수빈과, 민수와, 데라 너의 의지를 내가 이어주마.”

“이것 전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이니라.”


“의지···. 그것도 적절한 단어네요···. 나에게 딱 필요해서 시의적절한 단어···.”


“크흠! 아무튼! 나와 장산의 종자가 깜짝 놀랄 특별 잔치를 준비했다. 기, 기념? 기습? 기습 잔치. 아, 아니지. 깜짝 잔치다!”


“깜짝 파티겠죠···. 더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마세요···. 그러다 틀딱 소리 들어요.”


“지금부터, 틀딱님이 마녀에게 전한다! 너는 너의 입학 기념 잔치에 필히 참석하거라!”


무람은 오늘 밤 10시에 성대한 파티가 열릴 것이고, 매우 호화로운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떠들어댔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었다.

.

.

.

시간은 흐른다.

가만히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았는데.

어느새 늦은 밤이 되었다.

이제 슬슬 나가야 한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

.

.

덜컥-


끼이익-


터벅-


터벅-


터벅-


“어, 나왔구나? 딱 맞춰서 나왔네?”

최대한 다정하게 데라를 맞이한 휘성.

그러나 노골적인 다정함에 괴리감을 느낀 데라는 그의 손길을 무시하고 조용히 식탁에 다가가 앉았다.


“오. 딱 맞혀 나왔군. 나의 전언을 귀담아들어 주어 기쁘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반찬들이 마련되어 있는 식사 자리.

그곳에 먼저 둘러앉아 있던 무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람 또한 평소와 다르게 최대한 다정한 척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고 있는 그녀의 행동에서는 일말의 다정함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료 만난 새끼 비글을 보는 느낌이었다.


“저기, 주둥이로만 걱정하지 말고 행동도 주둥이 따라가면 안 됩니까?”

휘성이 무람에게 눈치를 주며 표정을 구겼다.


“어, 그래, 그래, 그래야지.”

“자, 식기 전에 어서···.”


탁-

그때, 데라가 상 위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올려놓는다.


“떠들어대던 거 다 들었어요. 신령 연합 본부와 연락하고 싶은 거죠?”

데라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드릴게요. 대신 저 좀 도와줘요.”


“도와달라면 정확히 어떤 것을?”


“제가 조용히 살 수 있게 도와줘요.”

“옆에서 지원은 해드리겠지만, 직접적인 전투를 피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리고 또 무엇을···?”


데라가 꺼슬꺼슬해진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무람 언니.”


“수빈이랑 민수 목소리로 작별 인사 한 번만 해주면 안 돼요···?”


"아직 놓아주기 힘드냐?"


"네에..."

.

.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긴급* 스토리 붙이는 중. NEW 9시간 전 1 0 -
공지 신작 올렸는데! 이 작품 업로드에는 지장 없음! 24.09.12 9 0 -
공지 안심! 연독률 떨어진다고 유기는 안 합니다! + 휴재 공지가 있다면 미리 말하겠습니다. 24.08.27 11 0 -
공지 화,수,목, 1회씩 연재(선호작하는 김에 추천까지!) 24.07.14 24 0 -
33 33화. 신데라의 회상(2) 24.09.11 18 0 9쪽
32 32화. 신데라의 회상(1) 24.09.11 20 0 10쪽
31 31화. 해방 전선 본부의 연락 (9월 10일 복귀 회차) 24.09.09 21 0 14쪽
30 30화. 살아나는 연락망 (1막 마무리) 24.08.27 26 0 13쪽
29 29화. 일상과 재활 24.08.27 27 0 8쪽
28 28화. 소박한 희망 24.08.25 26 0 9쪽
» 27화. 입학. 24.08.22 28 0 10쪽
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7 0 10쪽
25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24.08.20 27 0 10쪽
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20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6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7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8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7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