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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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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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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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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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거래의 성립.

DUMMY

.

.

.

#그날 늦은 저녁.

3명 정도가 겨우 모일 수 있을 만한 식탁 앞.

접이식 박스 두 개를 끼어 놓아 급조한 만남의 장.

휘성, 무람, 민수, 수빈, 데라의 초라한 대면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맛있게 드세요.”

민수가 쑥스러운 얼굴로 방금 막 차린 상을 내왔다.

반찬은 김치와 두부를 썰어 넣은 콩나물국.

반숙으로 조리한 달걀후라이 5개.

먹다 남은 콩자반.

열무김치.

휘성이 시장에서 샀다가 차마 집에 두지 못한 잡채까지.

나름 진수성찬 같았다.

저 정도면 떡을 치고도 남을 양이라고 생각했다.


“아! 야, 1번 강시!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가 온 마녀한테, 반찬이 이게 뭐야!”

하지만 데라는 생각이 달라 보였다. ‘육류’를 섭취하는 데에 혈안이 된 마녀는 금세 돌변하여 1번 강시 민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생활비가 떨어져서···. 그래도 말이야. 소고기나 콩자반이나 둘 다 똑같은 단백질이다?”


“아. 삼각김밥이라도 사 올 걸:;”


“야, 신데라. 니가 나이가 몇인데 반찬 투정이냐. 제발 나잇값 좀 해.”

수빈은 그런 데라에게 수저를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입 닥쳐라 2번 강시. 질 낮은 양산형 마물 주제에, 고대 주술의 정점을 찍은 마녀한테 말대꾸를 해? 마녀는 너 같은 하급 요괴를 창조하는 사람이야. 알아?!”


“뭐라?!”


“아, 애초에 강시나 좀비, 미라 같은 애들은 마물도 아니지.”

“전부 싸잡아서 ‘시체’로 분류되잖아.”

“중세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걷는 시체.”

“그게 너의 수준이야.”


“난 양산형 잡귀가 아니야. 능력이 없는 만큼, 적어도 너보단 의미 있는 시간을 살았지. 몇백 년 동안 마녀사냥이나 피해 숨어다닌 너와는 달라. 흘러가는 세월을 삶으로 농축시킨 정도가 다르다고.”


“흥! 어쩌라고 이 ‘잡귀’야! 내가 너보다 이쁘고, 옷도 잘 입고, 밥도 잘 먹어!”


“따지고 보면 애초에 마녀도 마물 축에는 못끼지! 구미호나 도깨비, 용 같은 녀석들이 마물에 가장 가까운 존재야. 너 같이 마법 조금 묻은 양놈은 감히 접근조차 하지 못할 분들이지.”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을 걱정한 휘성은 애써 그들의 싸움을 중재하러 나섰다.

“에이~. 왜 그러냐 수빈아. 데라 정도의 나이면 한참 반찬 투정할 나이지.”


“제가 3살짜리 애기냐?”


“애는 애지. 아직 고등학생이잖아.”


“저기, 죄송하지만 혹시 나이가?”

그때, 휘성의 중재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데라가 갑작스럽게 그의 나이를 묻는다.


“음? 나는 이제 곧 반 오십 되어가지.”


“엥? 반 오십? 뭐야, 너 마물치곤 너무 젊은데?”


“어, 말 안 했구나? 휘성이 형은 인간이셔.”

데라와 수빈, 그리고 휘성의 삼파전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민수는 콩나물국을 들이켜다 말고 데라의 의문에 친절히 답했다.


“인간이 마물과 한 식구라니···. 그것보다 민수 너는 왜 저 인간한테 존댓말이야?”


“나? 나는 육체적으로 23세의 나이에 주술사에게 잡혀서 강시가 됐으니까. 저분이 형인 셈이지.”


“너다운 발상이다.”


“뭐야? 너희들 전부 몇 살인데 그래?”

무언가 반전되어 가는 분위기.

휘성이 눈치를 살살 보며 물었다.


“저는 200살쯤 됐을까요? 100년은 본국에서 전쟁 병기로 쓰였고. 나머지 100년은 수련하면서 지냈어요.”

민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접어 나이를 표시한다.

저 손가락 하나의 단위가 100년,

즉, 한 세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휘성이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수빈이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말한다.

“나도 200살쯤. 민수랑 같이 지내다가 미국 마물 연합회로 팔려 가서 100년 동안 잡일 하면서 살았고. 한국은 10년 차야.”


그중 가장 큰 반전은, 데라가 나이가 가장 많은 마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양심도 없이 고등학생 교복 입고 나댔다는 건가.

차라리 애늙은이티 내고 다니는 김무람 씨가 훨씬 양심 있는 쪽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300년 정도 살았나. 몇십 년 더 살면 400되겠네. 마녀사냥 피해 다니느라 몇백 년을 손해 봤는지···.”


“데라 나이가 제일 많네? 그럼, 반찬 투정하면 안 되겠는데···?”


“내가 빠른 연생이야.”


“아~. 그럼, 해도 되지.”


“진짜?”


“응. 저기 저 아가씨도 반찬 투정해.”


“국산 말하는 거야? ‘장산범’이라고 했었나···.”


“어. 밀가루가 신선하지 않다나 뭐라나 별 지랄을 떨더라고.”

“컵라면이나 뜯어 먹는 주제에···.”


“나는 원래 고기만 먹었다. 그러니 네 잘못이다. 김무람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고기반찬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 김무람은 당신 마음속에만 품고 사시라고요. 나한텐 당신이 김무람이야.”


“그럼 더 잘해줘야지!”

“사랑과 관심을 듬뿍듬뿍 줘야지!”

“신선한 고기반찬도 스리슬쩍 내어 와야지!”

“자네는 저녁 반찬으로 채소농장이 가당키나 한가!”

.

.

.

#잠시 후.

그렇게 사소한 반찬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무람은 생명의 은인이었던 휘성에게 -보따리 내놔라- 하는 격으로 농성을 부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휘성의 완벽한 논리로 완파 당한 김무람.

그녀는 급 진지한 척하며 대화 주제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자, 각설하고. 이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꾸나.”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무람이 입을 열었다.


“무엇이 궁금하세요?”

그런 무람의 제안에 성실하게 응하는 오민수였다.


“해외에서 파견된 장산 지부 용병들이 정녕 자네들뿐인가.”


“이쪽 지역은 저희 3명이 맞고요···.”

민수는 친절하게 무람의 질문에 답했다.


강시 청년 오민수와 오수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합류한 사춘기 마녀 신데라.

이렇게 3명이 장산 지부의 담당이며, 이들 이외에도 용병 총 100명, 탐사대 총 50명이 있단다.

전부 합해서 약 150명.

150명이 이 나라에 들어와 임무를 수행 중이다.

국가 단위로 체급을 키워가는 악귀, ‘중악’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한마음으로 모인 것이었다.


“그니까, 총 150명 중에 겨우 3명이 넓은 도시를 전부 관리한다는 뜻이야? 중악에 대항해서?”


“네. 짬처리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저희는 입국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아마추어를 모아둔 ‘시범조’라고도 하죠.”


“아마추어가 이 넓은 도시를 관리하다니, 안 힘들어?”


이때, 수저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대화를 듣고 있던 수빈이 입을 열었다.

“형. 서울을 생각해 봐. 난 아직도 계들이 살아있는 게 신기해. 인구는 과잉되는데, 작전 인원수는 그대로. 중악의 본거지이니만큼 전투도 치열하다고 하더라.”


“헐, 그거 인정. 난 그 녀석들이 언제 과로사할지 너무 궁금해.”

데라가 맞장구치며 박장대소한다.


“전투가 치열하다고? 뉴스 한 번 안 뜨고 이렇게 조용한데 싸움질이라니.”


“목격자를 전부 제거해 버리니까 조용한 거지.”


“공공장소 CCTV 데이터베이스도 전부 초기화시켜 버리니 원.”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서울의 부근에는 뭐니 뭐니 해도 북한산, 즉 중악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뿌리내린 중악 소유의 집단들과 회계사 그리고 갑산귀 용역 깡패의 본청까지.

중악회의 중심축이 전부 수도권에 있었다.


“서울에 가면 꼭 신경이 곤두선다니까요.”


“서울? 서울이···. 뭔가···.”


“한양 되시겠습니다. 사모님.”


“아!”


“에이, 며칠 전에 저랑 같이 꼼꼼히 복습했잖아요. 또 까먹으면 어떡해요!”

휘성이 불평 가득 섞인 어투로 무람을 쏘아붙였다.


“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시점에서 내가 제안 하나 해도 되겠나?”


“무슨 제안이요?”


“신데라, 오민수, 그리고 김수빈. 세 명의 신분은 위조하여 만들었다 들었다. 맞나?”


“맞아요.”


“그럼 나에게도 새 신분을 내어주지 않겠나.”


“어렵지 않아요. 단지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상관없다. 남는 게 시간뿐인 몸이라.”


“하하!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요. 혹시 따로 원하는 이력이 있나요?”


“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보가 있단 말인가?”


“뭐, 직종이나 학력 같은 세부 정보를 말하는 겁니다.”


“음···. 그건 차차 정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이름 석 자가 있으세요?”


“김무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자의 이름일세.”


“멋진 이름이네요.”


“잠깐, 우리가 얻는 게 뭐지? 우린 엄연히 용병이야. 자선단체가 아니라고.”

그때. 의심 많은 수빈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거래 양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정론이었다.


“이득이라니. 국경 없는 의사회라며.”

물론, 약간의 모순은 존재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닙니다. 무람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가씨가 제공할 것은 노동력 맞죠?”


수빈이 제기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민수였다.

매우 어설퍼 보이는 민수였지만, 그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현명한 거래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정확하다. 다만, 내 노동력은 부르는 게 값이므로, 부탁 하나만 더 하도록 하지.”


“얼마든지요.”


“중악이 휩쓸고 간 오두막의 은신 문제와 미끼용 장산범 봉인술식이 필요하네. 중악 녀석들은 철두철미해.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면 산 전체를 날려버릴 녀석들이거든.”


“알고 있습니다. 술식 위조와 관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마침 저희 쪽에 한 명 있어요. 예가 성격은 이상해도, 명색이 마녀인지라 마법 연구 쪽으로는 바삭하거든요.”


민수의 똘끼 있는 대답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무람.

자신의 제안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민수의 현명함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나머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그 진행에 있어서 막힘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노동력을 대가로 새 신분을 지급받는다. 노동력이라 함은 중악 세력에 저항하는 것으로, 매주 일요일에 모여 앞으로의 자세한 계획에 대해 논의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거지요?”


“마음에 드는 거래였네.”


“저야 말로요.”


그렇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반찬 타령이 끝이 나고,

휘성과 무람은 초라한 원룸에서 떠날 채비를 끝내 현관 앞에 섰다.


덜컥-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용병단의 배웅을 마지막으로, 장산의 후예들은 초라한 원룸촌을 나섰다.

.

.

.


터벅-


터벅-


터벅-


#초라한 원룸 겸 용병 기지에서 나온 무람과 휘성.

천천히 철야의 등산로를 향해 걷는다.


“오늘 하루가 정말 길구나. 경황이 없었을 터인데, 이리 따라와 주어 마음이 편했다.”


“길 모른다고 끌고 갔잖아요.”


“자, 각설하고. 이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해야겠지.”


“전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일태 이후로 평생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사람 시체도 오늘로 몇 구째 마주하는 건지 원···.”


“무서운가?”


“예?”


“무섭냐고 물었다.”

무람은 휘성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다정다감하게 물었다.

그녀의 어투와 행동 하나하나에 감화되어 빛나는 초승달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휘성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뻔했다.


“아. 뭐예요. 손 치워요.”


“웃고 있는데? 사실 주인님의 손길이 내심 그리웠던 것이ㄴ···.”


“아잇! 진짜!”

실실 웃으며 휘성에게 엉겨 붙는 무람.

휘성은 그런 그녀를 밀쳐내기 바쁘다.


“아? 아! 아핳! 야 이씨! 어딜 만져! 이 사람이 왜 이래 증말!”

휘성은 오늘따라 괜히 자신을 더듬거리는 무람이 창피하다고 생각했는지, 급하게 무람의 손을 잡아채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그러던 그때,

휘성은 문뜩 깨달았다.

무람이 자신을 더듬는 사이에, 자신의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어놨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무언가를 급히 빼내어 손에 쥐어 보였다.

묵직한 조약돌과 천 조각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이 돌 설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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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7 0 10쪽
25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24.08.20 27 0 10쪽
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20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6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8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9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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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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