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데라의 심리는
우리의 작업은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현장에 하나뿐인 인간을 못 놀려먹어서 안달이 난 마물들의 개그 욕심이었다.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과는 오랜만에 대화하는 연놈들이었던 탓에 흥미가 돋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더운 지방에 사과가 자랐었다고? 심지어 수확시기도 이상한데···. 이거 뭐야?”
“이거 진짜 사과 맞아? 불지옥 마계 사과였다든가···.”
잘려 나간 사과나무의 밑동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하는 데라.
“몰라. 우리 집 오두막 마당에 심는 식물들은 다 이래. 부모님이 취미로 여러 가지 심으시는데···.”
휘성은 열심히 파던 삽질을 잠시 멈춘 뒤 대화를 이어 나갔다.
“혹시 부모님이 지능이 낮았어?”
데라가 묻는다.
“···?!”
‘저 시발련이···?!’
“아, 아니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오해하는 편이 더 낫지 않냐···?”
“비난의 의도 하나 없이 순전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였어. 이상하긴 하잖아~. 아는 농법이라곤 ‘콩 심은 데 콩 나고 사과 심은 데 사과 난다.’ 밖에 없는 것 같으신데···. 어떻게 기본적인 기후조건조차 맞추지 않고 식물을 심냐, 이거야.”
“그게 이상한가?”
“이상하지! 아이슬란드에서 파파야 나무 심고 사막 한가운데에 올리브 나무 심는 꼴이라고! 요즘 인간들은 원래 이렇게 지능이 낮았니?”
“일단 심으면 나지 않을까?”
“하···. 부모나 자식이나···.”
데라가 경멸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 전의 김무람 씨와의 음탕한 기싸움을 목격한 이후로 더 싸늘해진 녀석.
아무래도 나를 저급한 김무람씨와 싸잡아서 동급 취급하는 게 분명했다.
한편 신데라는 휘성에 대한 고찰을 마쳤다.
어떻게 저 휘성이라는 남자가 짐승 같은 장산범이랑 동고동락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는데, 그냥 자기도 짐승 같은 놈이라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휘성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사고방식은 일반인과 상당히 달랐다.
이런 걸 4차원적이라고 한다.
좋게 말해 4차원적이지, 그냥 이상한 사람을 4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강렬한 귀기에 주눅 들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이어 나갈 수 있다니···. 과연 저 국내산 마물을 섬기던 일족의 후예라는 건가···.’
마녀 신데라는 작업 도중에도 계속해서 휘성과 장산범의 동태를 유심히 살폈다.
장산범은 현재 다른 마물들과 차원이 다른 귀기를 뿜어대고 있다.
산짐승들을 저 멀리 쫓아내기 위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귀기는 산을 오르는 민간인에게도 해를 끼친다. 중압감이라든가 울렁거림을 유발하여 심신 건강에 무리를 주는 것이다. 시내에 사는 데라와 강시들은 그리하여 귀기를 억누르며 생활한다.
정체를 숨기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변 원룸촌 주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저 짐승 같은 여자는 보란 듯이 귀기를 남발하며 주변 공기의 무게감을 싣고 있다. 휘성이라는 남자가 장산범의 귀기에 내성이 있다는 것은 둘째 치고, 저런 식으로 남발하면 산을 오르던 손님들의 발길마저 뚝 끊긴다는 소리인데···.
매점 주인인 휘성은 이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걸까?
장산범이 현재 엄청난 귀기를 뿜어대며 매점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같은 편이고 서로를 위한다기엔 너무 일방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따가 기회 봐서 물어봐야지.’
‘저 삽살개 같은 여자는 조금 무서우니까···. 그나마 띨띨해 보이는 놈한테···.’
신데라는 그렇게 관찰을 마친 뒤 가짜 봉인 수식을 짜는 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민간인과의 접점을 늘리고 처세술도 익힐 겸, 휘성에게 눈도장이나 찍는 것이었다.
무언가 헤아릴 수 없는 마음 때문에 더욱 눈길이 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500년 인생에서 민간인과 교류를 나눈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사실은 그게 그리워서 학교에 스며들길 택한 것도 있었다.
아무쪼록 권태로운 해방 전선의 일상이 나아지길 원했던 것이겠지.
“데라야~! 휘성 씨 그만 째려보고 일해라~!”
그때, 상황을 눈여겨 보고 있던 수빈의 질타가 이어진다.
“너나 잘해!”
데라가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수빈의 질타에 응수했다.
“···.”
그 사이에 가만히 껴 있던 민간인 휘성.
잔뜩 쏟아져 내리는 마녀의 시선을 묵묵히 견디며 작업에 몰두했다.
오늘따라 삽질이 더욱 묵직한 것 같았다.
“아~ X발 그냥 매점 버리고 다른 곳으로 잠적하면 안 되나~! 우리가 진짜 잘 숨겨 줄 자신 있는데~!?”
데라가 갑작스레 발끈하며 휘성에게 소리쳤다.
계속해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나자, 되려 역정을 내며 분위기를 휘어잡으려는 의도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안 돼. 여긴 부모님의 마지막 유산이야. 일태와의 마지막 약속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새로 지은 매점이 아깝잖아.”
“참 웃기네. 인간들은 굳이 인간 세대 간 유산에 집착하더라? 차라리 마물의 것을 물려받는 일이 훨씬 가치 있을 텐데. 마법이라든가···. 마법 같은 보물이라든가···.”
데라가 말끝을 흐리며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이내 가짜 봉인 수식을 하늘 아래 비추어 보았다.
“그렇게 좋으면 공유 좀 하지 그래?”
“너. 아까 공유 방법 못 들었니? 어쩜 그렇게 저급하니?”
“아. 들었어.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흠···! 하여튼 저급해서 못 봐주겠군!”
신데라가 얼굴을 붉히며 아까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고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저 둘의 관계.
아무리 잊으려 해도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그때였다.
“네 이놈! 저급하다니! 어느 누가 감히 나의 종자를 함부로 욕보이는 것이더냐!”
터벅-
터벅-
터벅-
저 멀리에서 우스꽝스럽게 튀어나오는 김무람.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일하고 있는데, 혼자만 어디 구석에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내, 이 모욕을 기필코 클라우드에 저장해놓고 말 테다! 영원히!”
그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하늘 위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태 어디 숨어있다가 이제 나오는가.
자세히 보니 다른 한 손에는 매점 재건 기념 매실주가 들려있는 모습.
그녀가 술병을 벌컥 들이키며 농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혼자 몰래 술판을 벌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야이 X발 미친 아줌마야! 그거 숨겨놓은 건데 어떻게 찾았어!”
휘성이 이례적으로 잔뜩 흥분하여 소리쳤다.
데라에게 욕먹는 것보다 매실주 털리는 게 더 기분 나빴던 그였다.
“···!”
순간적으로 발끈하여 달려드는 휘성의 모습에 흠칫 놀란 무람이 뒤로 물러섰다.
이내 괴물 같은 속도로 남은 매실주를 들이켜기 시작한다.
꼴딱-
꿀꺽-
꼴딱-
“야 이 미친 여자야! 그거 40도야!!”
꿀꺽-
꼴딱-
꿀꺽-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매실주.
무람은 바닥에 깔려있던 매실마저 한입에 털어 넣어버렸다.
갑작스러운 독주에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에이에이에이~ 왜 그르냐~. 찾은 사뢈이 짐ㄲ, 찜인 겆이지 흨끅큭끅···.”
“김무람씨···. 남은 작업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민수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있겠냐? 백 퍼센트 저 핑계로 일 안 하려고 수작 부린 거야.”
수빈이 울타리 보수를 하다 말고 내려와 말했다.
‘즐거워 보이네. 마물 해방 전선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정작 국내산 본인은 맘 편히 귀기나 드러내고···.’
신데라는 그런 그녀를 오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부적 만들기를 이어 나갔다.
중간중간 씁쓸한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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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 이어진 김무람의 술주정.
그 사이, 그들의 작업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냥 오늘은 사과나무를 다시 심고 가짜 부적을 붙이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어차피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했고.
이제 슬슬 밤을 준비해야 했기에 마냥 작업을 계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녀 신데라의 마법은 자정 이후에 해제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는 그들이 결계 안에서 밤샘 작업을 할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로써 발목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별수 있을까. 차라리 발목 잡힌 김에 그냥 자리에 편히 앉아 쉬기로 한 것이었다.
“작업은 내일 마저 하죠.”
휘성이 잔뜩 취해 쓰러진 무람을 안아 평상 위에 눕힌 뒤 말했다.
무람은 본인이 파투 낸 작업 상황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헤실헤실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럼, 내일 이 산을 또 오르라고?”
데라가 잔뜩 힘 풀린 눈으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상당히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그럴 리가~. 데라는 아직 학교 안 가도 되지?”
휘성이 방긋 웃으며 데라에게 물었다.
“좀 남았어.”
데라가 새로 심은 사과나무 아래 주저앉으며 말했다.
수식을 그려 넣는 작업에 꽤 많은 귀기를 소모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작업 속도를 조금 늦춰도 되겠네. 오늘은 자고 가세요들.”
“에?! 그래도 돼? 진짜? 그러면 우리 어디에서 자? 우리가 매점 쓰는 거야? 아니면···.”
수빈이 물었다.
은근슬쩍 쾌적한 매점 2층 공간을 탐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마당에서 자라시면 마당에서 자야지~.”
민수가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수빈에 한에서는 눈치가 없었다. 그냥 없는 척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마당은 싫어. 나 그러면 차라리 집에 갈 거야.”
데라가 잔뜩 삐진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혼자 내려가 봐라. 중간에 산짐승 튀어나와도 안 도와줄 거다.”
수빈이 으름장을 놓으며 미간을 구겼다.
“왜 니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냐?”
가만히 듣고만 있던 휘성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휘성은 구관 옆에 있던 아랫방에 손님들을 재우기로 했다.
차고 옆에 존재하는 방으로, 휘성이가 노동 노예 1호 태흥이를 붙잡아 재울 때 자주 애용하던 손님용 방이 바로 그곳이었다.
원래는 여자 남자 나눠서 여자는 오두막에. 남자는 아랫방에서 자려고 있는데···.
데라가 몸서리치며 무람을 밀어내는 바람에 기각되었다.
무람 또한 몹시 아쉬워하는 눈치였으니 별수 없었다.
“이거, 가만 보니까~ 김무람이가 너랑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늦장 부리는 거 아니야?”
수빈이가 짓궂은 표정으로 휘성을 놀려댔다.
“맞아. 일부로 이러는 거야. 이 사람.”
휘성이 평상 위에 대짜로 뻗은 김무람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기절한 무람에게 베개까지 안겨 준 뒤 휘성 또한 평상 위에 드러누웠다.
“데라야 마당 대신 아랫방은 어때?”
민수는 가장 먼저 데라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부대의 대장이었던 데라는 곰곰이 생각하며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산기슭 아래로 보이는 도시 숲이 그녀를 조여오는 듯했다.
잠깐은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녀.
이내 사과나무를 짚고 일어나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차피 이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것들도 조금 있었고. 저 둘의 관계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으니까.”
데라가 수줍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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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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