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가 EX급 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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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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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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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 떨어지는 놈 (2)

DUMMY

청파랑에는 다섯 개의 파가 있다.

청파, 적파, 황파, 흑파, 백파.

그중 청파의 수장이 바로 부길드장이자 길드장의 딸인 청염이었고.

저 길길이 날뛰는 여포가 적파의 수장이었다.


“여포님, 자중하세요. 그리고 그를 들인다는 게 아니고 고작 입단 시험을 보게 해 준다는 것 아닙니까?”

"청염님. 우리 청파랑은 이제 예전의 그 퇴물 길드가 아닙니다. 지금도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지요. 마정석 무기가 사라지고 검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지금, 우리는 좋은 인재들을 발굴해야만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왜 이런 놈을 들여 흙탕물을 만듭니까?"

"협회에선 절대 이런 인증서를 아무에게나 발급해 주지 않아요. 이건 협회의 의견이기도 한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이 사람, 협회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란 겁니다. 긍정적인 쪽으로요."

"쳇, 협회랑 우리 길드랑 뭔 상관이라고."


그 말에 청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 상관? 게이트 발생 시 지원 요청을 하는 곳도 협회이고, 우리 헌터들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곳도 협회입니다. 저는, 그런 곳과 굳이 척지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조용히 여포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입단 시험에서 자격이 안 된다면 전 미련 없이 그를 탈락시킬 겁니다. 다른 헌터들과 같은 기회를 주는 것. 협회가 원하는 건 거기까지니까요."

"끄응."


말솜씨가 부족한 여포는 불쾌한 티를 냈지만, 반박은 하지 못했다.

그도 안다. 절차에 문제는 없다는걸.

그리고 저 청염은 자신보다도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블랙 리스트 헌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길드의 신뢰성을 떨어트린다.

설사 그 녀석이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녀석을 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좀 '떨어지는' 길드란 딱지가 붙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블랙리스트 헌터를 들인 길드 자체가 없었다.

여포는 그런 좋지 않은 첫 사례가 하필 청파랑이라는 게 싫을 뿐이다.


'그런 놈은 아예 초장부터 안 엮이는 게 좋은데.'


여포는 그 후로 입을 쭉 내민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 안건을 마무리해 줄 구세주가 입을 열었다.


“다들 진정하세요. 그깟 입단 희망자 하나에 그렇게 열 내지들 마시고요.”


자상하고 온화한 목소리.

흑파의 수장인 대룡이었다.

현재 회의실에 있는 건 이 셋뿐이었다.

황파의 수장은 중요한 거래가 있다며 빠졌고.

백파의 수장은, 뭐 늘 그렇듯이 홀연히 사라졌단다.


“저도 여포 님의 의견엔 동의합니다. 인격도 우리 길드원이 되는 데 중요한 덕목이니까요.”

“그렇지! 암!”


여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면 네가 여기 없어야 하는 것 아냐?’


청염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찌 됐든, 그는 아버지가 세우신 청파랑의 소중한 일원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입단 자격은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염님 말씀대로 우리가 거절할 명분이 없어요. 명분에 맞게 행동하는 것도 우리 길드의 원칙 아닙니까?”

“그, 대룡 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뭐.”


여포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그는 힘과 인덕까지 갖춘 자라며 늘 대룡을 존경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부길드장인 청염보다도 더.


“거기다, 저는 청염 님께서 오랜만에 결정한 안건을 취소해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제 사심입니다.”

“이거 솔로는 서러워서 살겠나.”


대룡이 청염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고.

여포는 대룡의 립서비스에 마음이 조금 풀어져, 둘이 무슨 사이냐며 농을 던졌다.

하지만 정작 플러팅의 당사자인 청염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정말 명분이 중요하단 말씀을 하셨던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큰 상처를 입은 그 순간부터, 그녀의 존경하는 아버지는 길드 운영과 헌터 일에서 손을 떼셨다.

그리고 ‘너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라는 말만 하실 뿐이었다.

그나마 그녀가 기억하는 건, 아버진 아주 호전적인 분이라는 것 정도.

개인의 철학과 의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받쳐 줄 무기가 없다면 그건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하신 건 기억한다.


‘중요한 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힘이다. 그 무기가 칼이든, 펜이든, 말이든 그딴 건 중요치 않지. ’


그래.

강함이 전부라고 하셨다.

힘이 먼저라고 하셨다.

명분이 중요하다? 그런 말을 하진 않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여기에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겠지.’


그녀는 아버지보다 한참 부족한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마정석 무기의 시대가 가고, 다시 검술계의 최강 길드라 칭송받는 시대가 왔지만.

그럼에도 길드를 부흥시키기는커녕 유지하기도 버거웠다.

솔직히, 이런 토론을 빙자한 다툼도 이제 지겨웠다.


슥.


그때, 대룡이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너무 혼자 고민하지 마. 길드는 다 같이 운영하는 거잖아? 그런 일을 하려고 우리 수장들이 있는 거고.”

“응. 고마워.”


‘역시, 아까의 그 ‘명분’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다들 이렇게 애쓰고 있으니.

나도 최대한 맞춰 줘야겠지.

이런 생각으로 그녀는 대룡에게 살짝 웃어 줬다.

그리고 대룡도 미소로 답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블랙리스트 입단 시험 건'은 어찌저찌 통과되었다.


***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도 정말 고맙네."


퇴원하기 며칠 전.

병실에 흰고래 대장님과 그의 아들이 찾아왔다.

그러더니 대뜸 휠체어를 탄 아들은 고개를 숙였고.

흰고래 대장은 내게 절을 하려고 했다.


"아잇. 왜들 이러세요. 쑥스럽게. 일어나요. 일단."


다행히 내 병실은 병원에서 내게 공짜로 준 '1인 특실'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아픈 제가 직접 일어나서 두 분을 말려야겠어요?"


내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둘은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가만 보니 부자인 걸 단번에 알 정도로 둘이 쏙 닮았다.


"아버지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와 아버지의 복수를 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냥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나도 그의 복수를 해 줄 수 있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대장, 그나저나 몸은 어때요?"


낯간지러운 분위기를 빨리 끝내려고.

난 일부러 예전처럼 장난기 있게 대장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대장도 금방 나와 지냈을 때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야 이제 괜찮지. 이야, 우리나라 의료 기술 좋더라. 그 새끼가 다 씹어놓은 팔을 이렇게 감쪽같이 붙여 놨다니까?"

"대장, 사실 저도 여기에 이빨 구멍이 세 개 있는데요. 이건 인터뷰에서도 말 안 한 건데, 들어보실래요?"

"얌마, 그래 빨리 그날 썰 좀 풀어 봐."


우리 셋은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로 내가 백상아리와 싸운 썰을 풀면.

대장이 옆에서 참견하거나 맞장구를 치고.

대장의 아들은 놀란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버지도, 헌터님도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리까지 희생한 분에 비하면 아직 모자라죠. 뭐."

"아, 아닙니다."


대장의 아들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도,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장의 아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이번에 관리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각성자가 아니니 헌터로는 아니고 관리 직원으로요."

"정말로요?"

"네.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데. 아버지께선 백상아리 때문에 허락해 주시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이제 녀석도 잡혔고, 아버지와 저 모두 예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으니 새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 참 잘됐네요! 가족끼리 으쌰으쌰하면 좋죠."

"저, 헌터님. 혹시 나중에 길드에서 일하기 힘드시거나 혹은 은퇴하실 때 기회가 되신다면 꼭 여기로 다시 와 주세요."


그가 내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비록 헌터가 아니라 함께 싸우지는 못하지만, 전 언젠가 꼭 헌터님과 함께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같이 나쁜 놈들 잡으면서 지내고 싶어요."

"근데 대장님께서 저 같은 양아치랑 어울려도 된다고 하십니까?"

"흠! 우리 아들이 너한테 물들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다!"

"물들다니요? 아드님이 백로고, 제가 까마귀라도 됩니까?"


그렇게 한바탕 웃은 나는, 그에게 약속했다.

언젠가 내가 쉴 수 있을 때가 되면 꼭 서해로 오겠다고.

같이 보트나 닦으면서 일해보자고.

그는 정말 기뻐하며 내게 다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 인사는 벌써 세 번째거든요?"

"앗, 죄송합니다!"


그렇게 순수한 부자와의 만남이 끝난 후.

다음 타자는 오래간만에 만난 겁쟁이였다.


"아폴론? 푸하하, 거창한 이름이네!"

"놀리지 마. 나도 지금 길드 내에서 영 뻘쭘하니까."

"뻘쭘해할 것까진 없지. 네가 열심히 할 일만 잘해주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야."

"너도 없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랑 같이 있어서 다 싸울 수 있었던 건데."

"넌 이름만 바꿨지 속은 아직도 겁쟁이인 것 같다?"


알아서 잘할 놈이지만.

그래도 마음 잡으라고 한 번 더 진지하게 말했다.


"이럴 시간에 가서 노력해. 스킬 연구하고. 그래야 나중에 나한테 도움이 될 거 아냐?"


굉장히 이기적인 말이었지만, 왜인지 이 녀석은 이런 말을 해 주면 좋아했다.

또라이 같은 녀석이다.

좀 좋은 또라이.


"그래. 내 목표를 잊지 않을게. 잡아줘서 고맙다. 참! 난 네가 아폴론이라고 말해주는 건 좀 불편하거든? 그러니까 이제 서로 이름으로 부르자."


일하면서 만난 헌터들은 대부분 헌터 네임을 썼다.

이것은, 협회의 권장 사항이었다.

헌터들끼리 이름을 쓰면 유대감이 더 깊어지고 친밀해지는데.

이럴 경우,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남은 사람이 자살하거나 우울증에 걸릴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헌터들은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서로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다.

닉네임이 더 외우기도 쉬우니까.


'하지만 이 녀석하고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긴 했지.'


그래서 나도 흔쾌히 승낙했다.

이름은 서로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래 정수야."

"앞으로도 서로 열심히 해보자 남호야."


겁쟁이의 이름은 이정수다.

확실히, 이름을 부르니 친구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들긴 하다.


"그리고 드디어 종로 지부 샤워실 설치 공사가 다 끝났데. 기념식 한다니까 다음 주 금요일에 희망 용역으로 와. 저녁 여섯 시야."

"엥? 그걸 기념식도 해?"

"말도 마. 낙수 사장님이 잔뜩 기대 중이셔. 기념사진도 찍고 파티도 제대로 할 거래."

"하하하, 그렇게 놀기 좋아하는 분일 줄은 몰랐다. 될 수 있으면 꼭 갈게."

"넌 선택권이 없다니깐? 주인공인데 안 오는 게 말이 되냐."


희망 용역이라.

내가 회귀 후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해 준 그곳.

아마 내가 청파랑으로 가게 된다면, 이게 그곳과는 영영 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다들 만나 인사하는 것도 괜찮겠지.


***


“아버지, 어디 가십니까?”


안뜰에서 훈련하고 있던 청염은, 저녁에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보고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그냥 심심해서 산책 좀.”

“이 시간에 어디로 가시는데요?”

“시내를 좀 돌아볼까, 하고. 종로나 가볼까?”

“종로요?”

“응. 거기 나 같은 할배들 많잖아. 가서 장기나 좀 둬볼까 한다.”

“크흠, 할배라니요.”

“하하, 이 나이면 할배인 거지 뭘. 하여튼 갔다오마.”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청염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때까지도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던 정백호는 대문을 나서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우리 길드를 소란스럽게 한 놈이 어떤 놈인지 보고 와야지.”


청파랑의 길드장이자 국보급 헌터인 정백호.

그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종로로 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백파의 수장이, 그 문제의 '블랙 리스트'헌터가 있는 곳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정백호는 그를 직접 본 후 판단하기로 했다.

청파랑의 시험을 볼 자격이 있는 놈인지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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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극강의 비기 (1) +4 24.09.13 3,879 112 14쪽
53 조우 (2) +4 24.09.12 4,160 113 13쪽
52 조우 (1) +3 24.09.11 4,519 115 12쪽
51 마인드 컨트롤러 +5 24.09.10 4,846 118 12쪽
50 일시적 동맹 +2 24.09.09 5,326 116 14쪽
49 쾌보 +3 24.09.08 5,675 143 12쪽
48 기선 제압 +3 24.09.07 5,910 150 13쪽
47 떠나기 전에 (2) +3 24.09.06 6,073 124 12쪽
46 떠나기 전에 (1) +2 24.09.05 6,347 125 13쪽
45 동상이몽 +2 24.09.04 6,625 138 12쪽
44 더블 플레이 +1 24.09.03 6,840 132 13쪽
43 험한 것 (3) +1 24.09.02 7,164 143 13쪽
42 험한 것 (2) +3 24.09.01 7,334 148 13쪽
41 험한 것 (1) +3 24.08.31 7,604 161 12쪽
40 업그레이드 +3 24.08.30 8,024 156 14쪽
39 대련 (2) +7 24.08.29 8,158 149 14쪽
38 대련 (1) +1 24.08.28 8,489 155 15쪽
37 S급 흡혈 원석 +4 24.08.27 8,638 152 12쪽
36 해외 파견 (2) +4 24.08.26 8,814 178 14쪽
35 해외 파견 (1) +2 24.08.25 9,178 157 14쪽
34 일격필살 (2) +3 24.08.24 9,281 171 13쪽
33 일격필살 (1) +2 24.08.23 9,539 17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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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엄청난 경력 +3 24.08.21 9,992 170 13쪽
30 고속 승진 (2) 24.08.20 10,321 17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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