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을 얻었더니 승소가 너무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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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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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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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유해인도

DUMMY

16층 소송총괄센터 회의실에 완승 민사팀 소속 변호사들이 모였다.


예전에는 팀에 따라 파트너변 수준에서 사건을 처리하였으나, 이번 조직개편으로 소송총괄센터가 지정한 사건에 한하여는 소송총괄센터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민사팀도 규모가 크고 바쁜지라, 이번 사건에는 판사 출신 곽선미 파트너 변호사와, 김석준, 박건희 변호사가 참여했다.

센터에서는 차율무, 강효인 변호사와 센터장인 정주형 변호사가 참석했다.


정주형 센터장은 지휘만을 하므로, 실질적으로 이 사건의 책임자는 곽선미 변호사가 될 것이다.


“자, 다들 인사는 하셨으니, 이제 사건으로 넘어가 봅시다.” 정주형의 말이 떨어지자, 김석준 변호사가 일어나 프로젝터를 켰다.


“본 사건명은 가칭 ‘유해인도소송’이라고 하겠습니다.


망인 A는 1996. 5. 2. B와 혼인신고를 하고 B와의 사이에 두 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망인은 혼인관계가 계속 중이던 2010. 10.경 C와 사이에 아들인 혼외자 D를 두게 되었습니다.

망인이 2020. 4. 16. 사망하자, 당시 동거하던 C는 망인의 유해를 재단법인 Y가 운영하는 인주시 소재 수련원 마당에 봉안하였습니다.”


화면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이 사건은 B와 두 딸을 원고로, C 및 재단법인 Y를 피고로 제기된 유해인도소송으로, 최근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 났습니다.”


김석준 변호사의 사실관계 설명이 끝나자, 정주형이 나섰다.


“이거 아직 수임 전입니다. 그래서 익명처리한 점 양해 바랍니다. 여기서 편하게 수임여부나 승소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해 보죠”


이어 다른 변호사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쪽 의뢰인은 누구죠?”

“본처와 두 딸, 즉 원고측 입니다.”


“유해인도 소송의 피고로 모친 C와 재단법인 Y가 지정된 이유는요?”


“망인의 유해에 대해 적법한 소유 내지 점유 권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동거녀 C는 원고들에게 망인의 유해를 인도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적법한 권리자가 아닌 C에게 수련원 마당에 유해를 봉안토록 허락한 재단법인 Y도 원고들에게 망인의 유해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1심 패소 사유는요?”


“비록 혼외자지만 망인의 장남인 D가 망인의 제사주재자에 해당하여 망인의 유해를 소유·점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C는 미성년자인 D의 법정대리인인 친권자 모로써 적법하게 망인의 유해를 점유·관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거 2008년 대법원 판례가 있잖아요. D가 혼외자긴 한데, 제사주재자가 맞아요. 유해의 점유관리자도 맞고. 제 생각엔 원고측 승소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입니다.”


부장 판사 출신 민사법 전문가답게 곽선미 변호사가 먼저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법률상 배우자와 두 딸 입장에서는 환장할 일은 맞네요. 밖에서 낳은 아들과 내연녀한테 아버지를 살아서도 뺏기고 죽어서도 뺏기고.”


“그러게요. 그런데 장지에 대해서 본처나 딸들과는 상의가 없었나보죠? 사연이 많은 집안 같네요.”


변호사들은 편하게 사건에 대해 의견을 툭툭 던졌다. 이런 식의 난상토론이 가장 재밌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생각지 않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소송 방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간단히 사건을 정리해 보자.


시체·유해도 물건으로서 소유권의 객체가 된다. 시체의 소유권은 민법 제1008조의 3에 준하여 제사주재자에게 귀속된다.


그럼 이 사안에서 사망한 A 유해의 소유자인 제사주재자가 누구인가?

제사주재자가 되는지에 관하여는 법률에 아무런 규정이 없으므로, 법원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제사주재자가 정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협의가 안된다면?

현재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가 우선이며, 아들이 없는 경우 비로소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


결국 현재 대법원 판례에 따를 경우, 이 사건의 제사주재자이자 유해의 소유권자는 혼외자인 아들이 된다.


법적인 부인과 딸들은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가 사망하였음에도 유해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다니 억울하다고 느낄 만하다.


율무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현재 망인의 유해가 인주시 소재 수련원 마당에 봉안되었다고 하는데, 사설묘지인가요? 망인이나 피고와 유해가 봉안된 수련원은 무슨 관계입니까?”


“그렇네? 혹시 가족묘지인가요? 수련원이 가족묘지가 위치한 산에 있는 건가?” 곽선미 변호사 역시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이 사건 승소가능성이 전혀 없을까요?” 정주형 변호사는 초조해 보였다.


“민사팀 의견은 그렇습니다.” 곽선미 변호사의 말에, 나머지 민사팀 변호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곽변호사님. 우리가 이 사건을 반드시 수임해야 한다면요?”


“솔직히 승소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야죠. 그래도 원고측이 소송을 하겠다면 수임할 수 있겠죠. 사실 소송이라는 게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보복적 감정이나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서도 하죠. 특히 민사 쪽에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그렇구요.”


곽선미 변호사는 원론적인 말에, 정주형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아무 말이 없었다.


“왜요, 센터장님? 이거 꼭 수임해야 해요?”

곽선미 변호사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사실 아무리 수임계약 전이라 해도 당사자를 익명처리해서 신분을 숨긴 것이며, 판단근거가 될 정보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 이 자리의 변호사들 모두 궁금증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센터장님, 대체 당사자가 누군데 그러세요?” 곽선미 변호사가 채근했다.


정주형은 끝까지 그에 대한 답을 하지 않더니, 시름에 잠긴 얼굴로 율무에게 물었다.

“차변은 어떻게 생각해?”


“의뢰인과 변호사의 의지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요?”

“응?”


“저희가 지난번 맡았던 사건 중에 절도죄 프로보노 사건을 보면, 피고인은 벌금을 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대법원 상소를 원했습니다. 저희 완승에서 그 의견을 지지해주면서 결국 대법원 파기환송에 이어 2심법원 판결이라는 긴 과정을 이겨냈습니다.”


율무는 말을 이으며 다른 변호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연차도 낮은데 나선다고 재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괜한 반발을 사면 김경남 변호사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가람한의원 사건도 벌금 80만원은 사실 굉장히 약소한 거죠. 더구나 한의원 원장은 개인사업자라 벌금을 받는다고 해도 큰 불이익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부당하다는 생각에 거액의 수임료를 감수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고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었죠.”


옆에서 강효인이 율무를 지원 사격했다.

“하긴, 곽변호사님 말씀대로 모든 소송을 반드시 승소하겠다는 마음으로만 제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차율무는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최근 헌법소원 사건도, 일반회사원이었다면 벌금 받고 끝냈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은 공무원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죠. 당사자의 절박함과 의지에 따라 소송은 가벼워질 수도, 무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민사팀 변호사들 역시 율무가 말한 사건들을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변, 계속해 봐요.” 곽선미 변호사가 율무의 말에 흥미를 보이며 재촉했다.


“이 소송은 대법원판결이 큰 걸림돌입니다. 그런데 2008년 대법원판결도 전원합의체 판결로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었습니다. 2008년 판결 이전에는 적장자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봤죠. 하지만 적장자라는 신분을 최우선시하는 제사상속제도는 과거의 종법사상에 기초한 것으로서 더 이상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존 판례는 파기되었습니다.”


“그렇죠.” 곽선미 변호사가 맞장구쳤다.


“그렇다면,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가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지금 대법원의 판례 역시,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변경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수임하려는 건 2심입니다. 대법원판결에 반하는 판결을 내릴 수는 없죠.” 곽선미 변호사가 민사법 전문가답게 기본을 지적했다.


“맞습니다, 저희는 일단 2심법원에서는 반드시 패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혼외자와 두집 살림이라는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사실관계에 관심을 끌어올리고, 사회적관습과 합의의 변화 등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다음,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을 거쳐 다시 2008년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죠.

간통죄 폐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열지 않았습니까?”


율무는 정주형 센터장을 바라봤다. 그는 율무의 말에 푹 빠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자 율무는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었다.


“의뢰인이 어떤 이유로 유해인도를 요청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이기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저희 완승이 수임해서 대법원에서 기존 판례를 깨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국민들에게 물어보죠. 혼외자인 어린 아들과 혼생자인 성인 딸 중에 누구에게 권리가 있는지.”


“하, 일이 엄청나게 커지겠네.”

곽선미 변호사가 한탄했다.


곽선미 변호사는 판사 출신답게 기존의 판례를 존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지, 그 판례를 부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법원이 한 번 판결을 내렸다고 하여 그 판결이 영구적으로 유효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사회변화에 따라 계속 법원은 견해를 변경해 왔다.


“하긴 시대가 변했지. 2008년 판결은 적서의 차별을 철폐하는데 주안점을 뒀는데, 이제 아들딸 차별도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곽선미 변호사 역시 생각해 보니 차율무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좋습니다. 변호사님들 의견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각자 고민해 보고 조만간 다시 미팅을 잡죠. 그때는 수임 여부를 결정한 이후라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만 해산.”


정주형 센터장은 뭔가 답을 얻었는지,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율무는 민사팀 변호사들에게 가볍게 눈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주형 센터장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가는 길에 센터장실에 들렀다.

이 사건과 관계없이 센터장에게 허가를 구할 일이 있었으니까.


“센터장님, 윤미르씨 요청이 있는데 넛튜브에 출연해도 될까요?”

“넛튜브?”

“네, 오블라디 살롱이라는 건데, 아마 모르실 겁니다.”


“내가 왜 몰라? 그거 개그맨 최도영이 진행하는 거 아냐? 시즌 1은 전직 아나운서 박지영이 진행했고?”

“아세요?”

“왜 이래? 변호사는 트렌드에 빨라야 한다고. 나 그렇게 안늙었다?”


하하. 전혀 몰랐던 나는 뭔가?


“그럼 출연해도 될까요? 단발성 출연입니다.”

“그렇게 해. 윤미르 사건만 이야기하는 거 알지? 그런데 차변, 내일 나랑 어디 좀 가자. 내일 별일 없지?”

“네, 괜찮습니다.”


정주형이 아까보다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다가와 율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시간은 내일 알려줄게. 일단 내일 하루 다 비워놔.”


그러더니 가벼운 말투로 폭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오늘 유해인도소송 미팅에서 나온 말 좀 정리해 봐. 의뢰인 만나러 가자.”


아니, 갑자기요?

갑자기 이러시면 저는 밤새워야 하는데요?



* * *



다음날 차율무는 센터장의 차를 얻어 타고 한남동 주택가에 내렸다. 기사는 알아서 주차하겠다며 일이 끝나면 연락 달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골목 한가운데, 두 남자가 멀뚱히 서 있었다.


“이리 와, 여기야.”


정주형이 율무의 팔을 잡아끌고 데려간 곳은, 오래된 저택 대문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입구에 상형문자나 그림처럼 보이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다시 보니 YAS 로 보였다.


‘YAS’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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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46화. 수국의 꽃말 +6 24.09.12 2,450 89 14쪽
45 제45화. 사랑의 유의어 +3 24.09.11 2,584 93 12쪽
44 제44화. 그림 +4 24.09.10 2,622 97 12쪽
43 제43화. 대리전 +3 24.09.09 2,741 86 12쪽
42 제42화. 우당탕탕 별헤는밤 +2 24.09.08 2,800 92 12쪽
41 제41화. 대파전 +6 24.09.07 2,783 92 13쪽
40 제40화. 무변촌 +2 24.09.06 2,948 86 13쪽
39 제39화. 오블라디 오블라다 +4 24.09.05 3,000 105 13쪽
38 제38화. 왕좌의 게임 +3 24.09.04 3,074 100 13쪽
37 제37화. YAS! +4 24.09.03 3,138 101 13쪽
» 제36화. 유해인도 +6 24.09.02 3,293 98 12쪽
35 제35화. 로열티 +2 24.09.01 3,428 103 14쪽
34 제34화. 여름이 떠났다 +8 24.08.31 3,512 111 13쪽
33 제33화. 배심원 +4 24.08.30 3,509 108 13쪽
32 제32화. 황소 +3 24.08.29 3,519 99 13쪽
31 제31화. 죽은채비빔밥 +2 24.08.28 3,598 99 13쪽
30 제30화. 죽도 +4 24.08.27 3,615 1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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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28화. 제주도 푸른 밤 +2 24.08.24 3,892 109 12쪽
27 제27화. 다섯 가지 제안 +4 24.08.23 3,940 112 14쪽
26 제26화. 인과관계의 법칙 +5 24.08.22 3,931 115 13쪽
25 제25화. 사대문 +4 24.08.21 4,012 119 13쪽
24 제24화. 낭만과 역사가 있는 삶 +3 24.08.20 4,006 118 13쪽
23 제23화. 달콤한 제안 +3 24.08.19 4,126 1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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