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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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DUMMY

“···구해줘서 고마워.”


유화가 탑을 벗어나자마자 손과 얼굴에 붕대를 감은 김수영이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조금 뻣뻣했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유화는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가 손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다친 곳은 괜찮습니까?”

“아파. 진짜 더럽게 아파···. 그보다, 말 편하게 해. 목숨도 구해 줘놓고서는 무슨···.”

“그럼 그렇게 하고.”

“어? 으, 응. 되게 쉽게 말을 놓는 스타일이구나. 근데 그거···.”


김수영이 그나마 멀쩡한 손으로 유화의 입가를 가리켰다.

그는 넓적한 마스크 형태의 나무 조각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솟은 섬에 사는 원주민들이나 쓸 법한 모양새의 마스크였다.

마스크와 얼굴 틈으로 보라색 가스가 흘러나오는 것을 본 김수영이 마른 침을 삼키고서 물었다.


“그 연기, 그거 뭐야?”

“들이마시면 마나를 억제하는 가스.”

“뭐 그런 게 있···아니, 그걸 왜 마시고 있는 거야?”

“내 몸에 마나가 좀 많아서.”


김수영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유화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몸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가스를 들이마셨다.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용의 형상을 한 괴물을 죽이고 놈의 정수를 삼켰다.

이미 수많은 괴물을 잡아 먹어온 육체는 어렵지 않게 정수를 소화해냈지만, 그 정수에 곧바로 적응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중간에 김이선이 말을 걸어오지 않았더라면 몸뚱이가 더 많이 변했으리라.


‘그것만은 안 된다.’


팔뚝에 자라난 비늘 하나. 겨우 검지 손톱만한 크기였지만 새카만 색인 까닭에 이미 충분히 눈에 띄었다.

괴물의 정수를 삼키고도 인간의 몸과 이성을 유지하려면 아셰온 가스가 필수적이었다.


“마셔도 괜찮은 거지?”

“나름 익숙해.”


몸이 안정을 되찾은 후에야 유화는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는 사이 작전을 끝마친 수색대가 탑 밖으로 나왔다. 차량을 통해 생존자와 유해를 옮겼고 빠르게 철수를 준비했다.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가만히 유화의 옆에서 기다리던 김수영이 물었다.


“그것들은···뭐야? 그, 흉내 괴물들.”

“모르지.”

“모른다고?”

“들어가 봤으니 알 텐데, 거긴 문명이 없어. 문명을 구축할 만한 지성체도 거의 없지. 따로 불리는 이름은 없어.”

“그, 그래도 거기서 10년이나 있었다면서. 직접 이름을 지어서 부르거나 하진 않았어?”

“이름이나 짓고 있을 만큼 편한 환경은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이름을 지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이름을 붙인다고 다른 사람이 그 이름대로 부를 일도 없었을뿐더러, 말을 하는 게 손해인 세상이었으므로.


“그놈들은 그런 환경에 다른 방식으로 적응을 한 놈들이고.”

“다른, 방식?”

“평소엔 작은 벌레로 존재하다가 남의 기억을 훔쳐서 그 기억에서 본 생물의 형태로 변태하지. 그놈들 나름의 생존 방식이야. 성가시기 짝이 없지.”

“······으, 응.”


김수영은 유화의 말에서 악의를 느꼈다.

말에 감정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다. 약간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말을 많이 섞어본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에서 증오를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말이야. 그쪽, 이름이 김수영이라고 했나?”

“···어, 어. 왜?”

“발버둥치는 게 인상적이라서.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추하게 살려고 굴러다닌 게···.”

“칭찬인데.”

“그게 어떻게 칭찬이야! 꼴이 완전 우스웠을 텐데···!”

“저쪽 세상은 그 정도로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거든. 기분이 나빴다면 취소하고.”


비몽사몽하던 다른 둘과 달리 김수영은 끝까지 의식을 잡고 있었다.

제 발로 걸어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기에 아셰온 가스를 흡입하게 하고 기절시켜 옮겨야 할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아, 아냐. 칭찬으로 생각할게. 근데, 그···.”

“왜?”

“손목에 그거 홀로폰이지? 혹시···.”


잠시 망설이던 김수영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카메라를 손에 든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김수영 헌터님!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3차 수색에 참여하신 헌터들 중 최고 랭킹이 제일 높으십니다! 랭커로서 탑이 어떤 곳인지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이번 수색으로 랭킹 변동이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수영 헌터님과 굉장히 친밀해 보이는데 앞에 계신 헌터분은 소속과 이름을 밝혀주시면···!”


시끄럽게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을 본 김수영의 얼굴이 희미하게 찌푸려졌다.

이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그녀는 유화를 향해 한숨 짓는 시늉을 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기자들이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네. 다음에 마저 얘기할 수 있을까?”

“물론.”

“알겠어. 미안. 내가 좀 유명해서. 먼저 가볼게.”


그렇게 말을 남긴 김수영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몇몇 기자들은 김수영을 뒤쫓았지만 위기관리부의 직원들이 기자들을 막았다. 나머지는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 유화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을 쏟아냈다.


“이번 수색은 위기관리부와 기업 길드 간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체 조사로는 성함을 알 수 없었는데 길드에서 수련을 거치고 이제 막 새로 헌터가 되신 분일까요?! 새로운 루키의 등장이라고 보도해도 되겠습니까?!”

“헌터님! 이번 탐색은 어떠셨습니까? 민간 길드에서 공략을 시도해볼 가치가 있을까요!”


여전히 시끄럽게 질문을 던져대는 기자들.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것이 익숙했던 유화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김이선이 기자들을 막아섰다.


“사전에 협의 되지 않은 취재는 거부하겠습니다. 또한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출입 통제 지역 무단 침입으로 기소하겠습니다. 이만하고 돌아가세요.”

“김이선 실장이다!”

“김이선 위기관리부 실장님 이번 수색은···.”


전쟁 이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는, 기자들이 막무가내로 던지는 질문에 김이선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골머리를 썩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턱짓으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기자들의 질문에 간소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강아지에게 간식을 던져주듯 물고 씹을 만한 떡밥 몇 개를 흘린 것이다.

김이선이 흘린 떡밥에 눈이 돌아간 기자들이 더 열성적으로 달려들어 질문을 던질 때,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갑자기 기자 회견장이 된 탑에서 빠져나가던 유화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저···.”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

그 또한 목에 카메라를 멘 기자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자는 유화를 향해 다가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물었다.


“···혹시, 천유화 선수?”

“······.”

“맞죠? 부산 하이그레이드? 제, 제가 소싯적에 정말 팬이었습니다. 본인 맞···죠?”


강재구에게서 현역 시절과 얼굴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거울을 봐도 알 수 있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화의 얼굴은 똑같았다.

그래도 마지막 활동이 20년 전인데 어떻게 얼굴을 떠올린 걸까. 유화는 자신을 알아보고 던진 남자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합니다.”

“···예? 그, 그게 무슨.”

“비밀이라서요.”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화는 그를 향해 싱긋 웃어주고는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




“지상도 바다도 이상 무!” 우주군과 위기관리부 각지에서 승전보 울려.

‘개죽음’은 더 이상 없다. 탑 3차 수색대, 실종된 2차 수색대 구원.

위기관리부 심주현 장관 “귀환자의 활약이 컸다” 올해 3번째 귀환자의 존재와 활약상 공개

한국에 나타난 6번째 탑은 ‘최악’. 공략은 불가능, 민간 전력의 수색도 불가.

“국가는 국민을 버리지 않습니다” 위기관리부 성명 발표···.


“너 뉴스 봤냐?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뉴스 기사 다 먹었는데.”

-언제는 안 그랬냐? 현역 때도 네가 뉴스 1면 다 먹었잖아. 익숙해 이제.


작전이 종료되고 집으로 돌아온 유화는 가장 먼저 강재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데 왜 전화했어? 오랜만에 뉴스 1면 먹었다고 좋아서 전화했냐?

“아니. 그쪽은 어떤가 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우리는 뉴스 나올 일 있으면 군사나 사회 면이 아니라 긴급 재난 방송으로 나와 인마.


전쟁 초기엔 연일 거수에 대한 뉴스가 티비, 인터넷 뉴스, 종이 신문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로부터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우주군과 메카가 거수를 막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왔다. 오히려 패배하기라도 하면 그게 대서특필 감이었다.

전쟁 이전 휴전선에서 평소에 아무리 근무를 잘 서도 뉴스 한 줄 나지 않지만 경계가 뚫리면 일주일은 뉴스가 시끌벅적한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그래서 뭐 잘 끝난 거냐? 뉴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잘 끝났어. 다친 데 없고, 문제 생긴 거 없고.”

-다행이네. 밥은 언제 먹을래?

“난 이제 백수라서 언제든지 가능해. 바쁜 네가 정해라.”

-그럼 내일은 어때?

“내일?”


강재구의 대답에 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송 뉴스는 물론이고 인터넷 뉴스 어디를 찾아봐도 작전이 종료됐다는 소식은 없었다.


“CDA에서 아직 작전 종료 안 내린 거 아니야?”

-사할린스크 쪽에서 아직 거수가 감지 되는 것 때문에 상부에서 작전 종료를 안 시키네. 근데 우리 쪽은 끝났어. 깔끔하게.

“그래도 기지 밖으로는 못 나가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유화가 현역이던 시절 알래스카 이남부터 괌까지 CDA 동아시아 지부가 작전을 지휘했다. 그 체제에 변화가 없으면 러시아 동부의 우주군들과 대한민국 우주군은 작전이 동시에 시작되고 동시에 끝난다.

사할린스크라면 일본과도 맞닿아 있으니 여차하면 일본의 지원도 받을 테다.


혹시나 사할린스크를 통과해 동해까지 들어온다고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에도 메카 기지가 있고 일본 하코다테에도 기지가 있었다.

그렇기에 동해에 직접 떨어진 놈들을 처리했다면 강재구가 할 일은 끝난 셈이지만, 여전히 작전에는 포함되어 있기에 기지 밖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니까 니가 오라고.

“내가?”

-어. 내가 못 가니까 니가 와라. 요즘 밥 맛있어. 우리 때처럼 으깬 감자만 주진 않아.

“아니···뭐 언제는 나 복귀 안하면 민간인이라면서. 민간인이 우주군 기지를 출입해도 되냐? 그것도 작전 중에?”

-나보고 뭐라 할 사람 대통령 밖에 없는데 뭐 어때. 와서 밥이나 한 끼 먹고 가. 후배들 얼굴도 좀 보고. 오케이?

“······오케이.”

-그래. 내일 아침까지 사람 보낼게. 끊는다.


통화가 끊긴 후 유화는 베란다의 울타리에 기대어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팔을 걷어내자 눈에 들어오는 검은 비늘. 싸움을 이겨내고 더 강해졌다는 증거.


탑에서 나온 이후로 줄곧 잊으려고 했던 충동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멈추지 마라. 멈춰 있으면 죽는다.

싸워라. 이겨서 강해져야 한다.

더 발버둥 쳐라.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마라.


살아남아라.


“······.”


인공 마나 코어를 이용해 당장이라도 폭발하려는 몸의 마나를 진정시킨 유화는 깨달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음을.


가만히 기술이 발전하길 기다리는 것. 언젠가 기술이 발전한다면 이 마나 중독 역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약은 없었다. 10년 만에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시제품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니.


다른 하나는 움직이는 것이다.

싸워서 강해지고, 또 변화하는 것.


다행히, 아직도 그를 부르는 전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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