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새글

핫소스통
작품등록일 :
2024.07.30 18:06
최근연재일 :
2024.09.16 23:52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368,783
추천수 :
7,223
글자수 :
279,108

작성
24.08.17 23:40
조회
7,880
추천
148
글자
12쪽

변화

DUMMY

시뮬레이터.


온갖 실험용 병기를 만들던 미군이 처음으로 성과를 거둔 병기가 메카였다.

처음에는 원격 조종이 가능한 무인용으로 만들어졌으나, 파일럿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전투기 조종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시뮬레이터를 만들었다.


파이브 아이즈와 함께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자 전쟁의 격전지 중 한 곳인 동해를 낀 한국은 그 시뮬레이터를 들여올 수 있었다.


"어떤 걸로 할까? 후배님?"

"혹시···."


파일럿이 탑승하는 유인용 메카가 대세가 된지 오래였다. 하지만 모든 메카는 무인 조종 기능 또한 탑재되어 생산된다.

그 원칙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지, 강릉기지 훈련장에는 유인, 무인 시뮬레이터가 둘다 설치되어 있었다.


두 개의 조종간과 패널로 구성된 무인기용 시뮬레이터.

헬멧과 파일럿 슈트. 모의 동기화가 가능한 저사양 인공지능 모듈이 설최된 유인기용 시뮬레이터.


생도 시절 이후 오랜만에 보는 시뮬레이터의 모습에 유화가 다섯 살 꼬마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에 김기태는 놀라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니다. 내가 정할게."

"···아, 예."


눈빛이 달라졌다.

생기로 가득 찬 열정 어린 눈.

그는 조종간이 달린 무인 시뮬레이터를 가리켰다.


"일단 손부터 풀어야겠네. 이걸로 할게."

"알겠습니다."

"잠시만 이거 전원이···."


생도 시절 때의 기억을 떠올려 상체를 아래로 숙이고 전원 버튼을 찾던 유화는 곧 시뮬레이터가 불이 들어오며 진동하기 시작하자 몸을 일으켰다.

시뮬레이터 옆에서 전원을 올린 이유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선배님, 혹시 아이디 카드는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 없어. 현역이 아니라서 재발급이 될진 모르겠다."

"그러면 혹시 식별 코드는···."

"A1."

"···A1. 네, 알겠습니다."


짧은 식별 코드. 패널에 달린 키보드로 코드를 두드리자 금세 화면이 넘어갔다.

생체 정보와 더불어 신변 자체가 아직 데이터 베이스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모의 시뮬레이터를 시작합니다. 환경을 설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어···후배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안내 음성의 목소리는 한국어인데 화면은 영어로 빼곡했다.

한글도 가물가물한데 영어는 오죽할까. 당황해 식은땀을 흘리는 사이 키보드 앞에 서 있던 이유나가 처음으로 무표정을 깨고 살짝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곤란한 상황에선 존댓말이 나오시네요."

"아, 그건 제가 마음이 편해지면 그런데···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선배님. 한글 번역은 따로 없습니다. 제가 불러드릴 테니 마음에 드는 걸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넵."

"기체부터 설정하겠습니다. 1세대부터 4세대까지, 0.5를 포함해서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4.5세대도 있을까요?"

"한국엔 없습니다. 미국에서 만든 게 있는데 프로토타입 모듈입니다."

"그럼 4세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미국놈들이 만든 프로토타입은 쓸 게 아니었다.

전쟁 전에 만든 병기라면 몰라도 전후에 만든 병기, 그것도 메카는 대부분 아이디어 수준의 무기를 쑤셔넣은 실험체에 가까웠으니까.


"어?"


영어로만 이루어진 화면 속에서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름이 있었다.

호크아이Hawkeye. 유명한 히어로의 이름이고 온갖 게임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였다.


"혹시 이걸로 할 수 있습니까?"

"네. 호크아이는···경장형 공격기입니다. 미국에서 알래스카랑 북대서양에 배치시킨 기체죠. 이걸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호크아이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유화의 대답에 이유나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음 설정으로 넘어갔다.


"혹시 적 거수는 어떤 등급, 어떤 개체로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4세대면 몇 등급이랑 상대할 만합니까? 람다?"


상대해본 거수만 70마리가 넘는다.

당연히 그 등급도 천차만별이나, 유화에게는 최대가 에타 등급의 거수였다.

하지만 지금 현역으로 기용되는 기체들이 4세대이고 람다나 뮤 등급 거수 상대로 기술에서 밀린다면, 시뮬레이터에선 대충 반반 정도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보통 호크아이는 화력을 지원하는데 많이 쓰이기 때문에 단순 1대1이라면 힘들겁니다."

"그럼 람다급이랑 붙어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시뮬레이터니까.

컴퓨터가 만들어낸 거수가 얼마나 강하든 현실보다는 훨씬 덜 할 것이다.


"네. 그럼 개체는···."

"아무거나."

"전장은 혹시 어떤 환경에서···."

"그것도 아무거나."

"···예. 알겠습니다."


키보드를 몇 번 더 두드린 이유나가 몸을 일으켰다.


기체는 호크아이.

적은 뮤 급, 스컬 헌터.

전장은 산악 지대.


"······."


파일럿 과정을 수료한 것은 아니지만 메카의 전투 환경 정도는 알고 있었던 김기태는 유화의 뒤에서 모니터를 보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설정이었다. 산악 지대에서 거수와의 전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환경에서 투입되는 건 중형, 혹은 대형 메카였다. 심지어 원거리 타격기가 장애물이 많고 시야도 가려지는 산악 지대라면 경장형 공격기가 제 활약을 펼칠 수 없는 곳이었다.

심지어 설정된 거수는 이런 산악 환경에서 날뛰기 좋은 날렵한 개체.


전장 환경부터 상성까지 모든 게 불리한 설정이었다.


"서, 선배님 이건···."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 챈 김기태가 말을 걸기도 전에 유화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시뮬레이터를 가동했다.

이건 정상적인 환경이 아니라고, 불합리한 설정이라고 말하며 시뮬레이션을 정지 시키려던 김기태는 아까 같이 눈을 반짝이며 시뮬레이터에 몰입하기 시작한 유화의 눈빛을 보고 멈춰 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유화.

다른 파일럿도 아닌 알파 스트라이커.


그가 이런 설정을 몰랐을까. 설령 몰랐더라도 시뮬레이션이 가동되고 나온 산악 환경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정지시켰으리라.

설정된 거수와 마주친 순간까지도 정지를 누르지 않은 모습에 김기태는 깨달았다.


알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즐겁게 웃는 얼굴로.


"이 대위."

"예. 부관님."

"이 일에 대해서 선배님께서 불쾌감을 드러내시면 자네도 징계를 감수해야 할 거야."

"알고 있습니다."

"······."


차가운 어조로 대답한 이유나는 팔짱을 끼고 뒤에서 유화가 시뮬레이션을 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이유나도, 그런 이유나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던 김기태도 이내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




·········무장 확인.

주 무장 : 322mm 레이저 캐논.

보조 무장 : 76mm 라이플.

부가 무장 : 디코이, 앵커.


호크아이는 전고 49m의 소형 메카였다. 보통 경장형이라는 이름이 붙는 메카들의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고려해도 굉장히 작은 편이었다.

그런 호크아이의 전고의 2분의 1을 넘는, 25m가 넘는 322mm의 레이저 캐논이 호크아이의 주 무장이었다.


'역시 미국놈들.'


호크아이의 몸체는 주무장인 레이저 캐논을 운용하기 위한 운송 수단에 불과한 구조였다. 심지어 발도 굉장히 느렸다.

거수를 단독으로 격퇴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카가 아니었다. 다른 메카가 거수를 상대하는 동안 화력을 지원하기 위한 기체. 그것도 거수가 노릴 수 없을 만큼 장거리에서 사격할 용도로 만들어졌다. 이런 용도의 메카를 따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돈이 많고 여유가 넘치는 나라는 미국 뿐이었다.


[무장을 제거합니다.]


거수와의 1대1 싸움에서 쓸 수 있는 무장은 사실상 76mm 라이플 뿐.

하지만 이 76mm 라이플 역시 사실상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유화가 상대하던 거수들도 400mm철갑탄 같은 걸 때려 박아야 잡을 수 있었으니,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등급이 높은 거수들은 76mm 따위로는 흠집도 안 날 것이다.


유화는 아예 라이플을 내려 놓는 것을 선택했다.

실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차피 그래픽 덩어리 시뮬레이터였으므로 유화는 큰 걱정 없이 시뮬레이터 속 총을 내려놓았다.

남은 건 322mm 라이플과 몸체에 내장된 닻과 디코이탄 뿐. 유화는 기체가 가벼워진 것을 느끼며 산 정상으로 향했다.


"······음."


머리에 쓴 헤드셋에서 기이한 소음과 함께 옅은 진동이 포착된 순간 유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왼손에 쥔 조종간의 검지손가락 지점에 위치한 붉은 버튼을 눌렀다.


[앵커를 사출합니다.]


쐐애액!


허리 부분에서 뻗어져 나간 앵커가 길게 뻗어져 나가며 산맥의 바위 덩어리에 박혔다.

다시 붉은 버튼을 누르자 앵커가 회수되기 시작하며 기체가 거의 반으로 접힐 만큼 강한 충격과 함께 앵커가 박힌 바위 쪽으로 끌려갔다.


시선을 돌린다.


시야를 확보할 목적으로 향하던 산 꼭대기. 그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기슭에서 랩터를 닮은 거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의 거수조차 몸뚱이는 2000톤으로 추정된다. 뮤급이나 람다급은 최소한 그 두 배.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여도 거수의 움직임은 포착할 수 있었다.


[락 온]


들고 있었던 322mm 레이저 캐논을 꺼내 들었다. 조준점이 거수와 일치했으나 유화는 바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응사가 날아오지 않자 회피하려던 거수가 재빨리 몸을 틀었다. 몸통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두꺼운 두 다리를 움직여 유화가 앵커를 박은 바위 산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아무리 여유롭게 잡아도 5초 남짓.


[조준 보정]


이유는 단순했다. 레이저 캐논이라고는 하나 구경이 다소 모자랐다. 전쟁 전까지 쓰이던 155mm 함포도 구식 전함의 400mm 함포보다 훨씬 위력이 약했다. 전쟁 후 새로 나온 전함들은 이것보다 훨씬 크고 무식한 놈들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메카가, 다른 모든 요소를 포기하고 장착한 무장이 322mm? 아무리 레이저라고 해도 위력이 떨어지니 유화는 다른 기능이 탑재되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반동 제어]


조준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원격으로 이어진 조준경 내에 차례차례 떠오르는 글자들.

단 한 방을 중요시 하는 저격수를 메카로 구현해 놓았다면, 거수마저 한 방에 쓰러트릴 수 있는 위력의 메카를 만들었을 것이다.


[위력 강화]


"그래, 이거지."


총신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 나왔다. 충전이 끝나고 최고 위력을 뿜어낼 수 있는 레이저 병기에서 볼 수 있는 모습.

유화는 쿵 소리를 내며 달려든 거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레이저 병기 특유의, 맥이 빠지는 바람 가르는 소리.

그와 함께 노란색 레이저가 시야를 가득 메우며 거수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단 한 발.

맥 없는 소리와 달리 그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유화가 현역이던 시절에도 이미 단순한 화력 병기의 위력을 뛰어 넘은 레이저가, 10년이 넘게 발전을 거듭했을 테니.


퍼억!

거수의 상체를 그대로 날려버리고도 위력이 죽지 않아 반대편 산을 초토화 시키는 것과 동시에 시뮬레이터가 종료되었다.

유화는 조종간을 내려놓고 헤드셋을 벗었다. 뒤를 돌아보니 입을 벌리고 있는 김기태의 얼굴과 눈만 깜빡거리는 이유나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일찍 끝나서 데이터가 이상하게 나올 것 같은데,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린 이유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말했다.


"다음 시뮬레이션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9.10(오늘)개인사정으로 11시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3 24.09.10 109 0 -
공지 매일 오후 8시 10분에 연재됩니다. 24.08.21 4,517 0 -
49 극한 NEW +2 9시간 전 599 27 11쪽
48 극한 +7 24.09.15 1,632 60 12쪽
47 극한 +3 24.09.14 2,163 73 12쪽
46 극한 +8 24.09.13 2,681 91 12쪽
45 극한 +9 24.09.12 3,207 100 13쪽
44 극한 +9 24.09.11 3,881 100 12쪽
43 극한 +4 24.09.11 4,278 113 12쪽
42 극한 +10 24.09.09 4,856 118 12쪽
41 극한 +15 24.09.08 5,557 129 12쪽
40 극한 +10 24.09.07 5,911 148 13쪽
39 북극 작전 +22 24.09.06 6,162 157 14쪽
38 북극 작전 +12 24.09.05 6,052 148 13쪽
37 북극 작전 +4 24.09.04 5,955 125 13쪽
36 북극 작전 +4 24.09.03 6,107 118 13쪽
35 북극 작전 +4 24.09.02 6,294 123 16쪽
34 북극 작전 +6 24.09.01 6,456 134 14쪽
33 북극 작전 +6 24.08.31 6,609 138 14쪽
32 북극 작전 +7 24.08.30 6,736 138 12쪽
31 북극 작전 +4 24.08.29 6,928 145 14쪽
30 슈퍼스타 +7 24.08.28 7,003 155 13쪽
29 슈퍼스타 +6 24.08.27 6,991 139 15쪽
28 슈퍼스타 +8 24.08.26 7,049 144 14쪽
27 슈퍼스타 +10 24.08.25 7,344 140 13쪽
26 슈퍼스타 +3 24.08.24 7,440 149 12쪽
25 슈퍼스타 +6 24.08.23 7,477 144 13쪽
24 변화 +11 24.08.22 7,499 146 14쪽
23 변화 +6 24.08.21 7,575 144 12쪽
22 변화 +3 24.08.20 7,752 15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