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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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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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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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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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차세린 섭외

DUMMY

천태우은 글래머라면 지옥 유황불이라도 뛰어 들어갈 놈이다.


예전 골프 쳤을 때도 그랬다.


주접떠는 놈들은 많았지만 천태우는 그중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지금껏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가 알고 보니 그때의 임팩트 때문이었다.


어제 신정호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보고를 받았다. 천태우가 하다하다 미성년자와 조건만남을 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었다.


**


“차세린?”

[오, 진짜 전화했네. 자기, 내 생각 많이 했어?]


얘는 도대체 뭔 생각으로 사는 애일까. 내가 왜 ‘자기’가 됐을까.


“잠시 할 얘기가 있는데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

[결이 넌, 날 믿는 거야? 여차하면 규진이를 부를 수도 있는데.]


권규진?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봐야 아마추어 고등학생 수준. 그런 녀석이 싸움을 건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난 너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싫으면 말고.”

[아냐, 아냐. 농담이야. 나 규진이랑 헤어졌어. 예전 남친이 불러주는데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서 만나야지.]


전 남친? 정말 한결이가 사귀었나. 아니면 기억을 잃었다고 하니까 그냥 던져보는 말인가.


**


저녁 6시, 술집에서 만나자고 세린이 생떼를 썼지만 결국 샤브샤브집으로 정했다.


“술 한 잔 하자니까. 여기서 맹숭맹숭 밥만 먹자고?”

“고등학생이 뭔 술이냐. 콜라나 마시면서 얘기하자고. 10시에 과외 있어서 술 마시면 안 됨.”

“아쉽네. 술 먹여서 너 잡아먹으려 했더니.”


도대체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일까. 세린과 대화하는 건 미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사복을 차려입은 세린은 누가 보더라도 대학생이었다. 그것도 신입생이 아니라 3, 4학년은 돼 보이는.


노안은 아니었다. 다만 몸에 딱 붙는 블라우스를 통해 보이는 그녀의 몸매는 고등학생이라고 보기에 너무 섹시했다.


“넌 술을 주문해도 민증 검사 안 하겠다.”

“칭찬이냐? 아니면 늙어 보인다는 거냐.”

“성숙해 보인다는 얘기. 칭찬이지.”


세린은 갑자기 애교 가득한 눈으로 한결을 째려봤다.


“늙어 보인다는 거 같은데?”

“아니, 열여덟살짜리가 스무살로 보인다는 게 늙어 보이는 거야?”


**


세린은 고기 마니아였다. 샤브샤브 고기를 벌써 5인분째 추가 주문하면서 혼자 먹고 있었다.


“좀 천천히 먹자. 누가 쫓아와?”

“부자 옛 연인이 한턱 쏜다는데 최대한 열심히 먹어줘야지. 넌 안 먹어?”

“난 다이어트 중. 너도 알잖아. 130kg까지 나갔다고 하던데.”


세린은 정말 믿기지 않았다. 불과 6개월만에 40kg을 감량하고 파오후에서 몸짱으로 변신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너 살 빼는 거 유튜브에 올렸으면 대박 났겠다. 돈 엄청 벌었을 텐데.”

“나야 너도 알다시피 금수저잖아? 넌 돈 많이 벌고 싶어?”


자기가 금수저라는 걸 저렇게 재수없게 말하는 데도 왜 쿨하게 보일까.


“돈이야 당연히 벌고 싶지. 그래서 내가 저녁에 출근을···”


세린은 아차 싶었는지 말하다가 중간에 관뒀다.


한결은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지난번 진한 화장을 하고 밤에 출근한다고 했을 때 이미.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뭔 밤에 출근을 하고 그러냐.”

“그러게.”


세린은 자기가 생각해도 한심한 듯 약간 풀이 죽었다.


“그래서 내가 부탁이 있는데, 이거 들어주면 밤에 출근 안 해도 될 거야.”


세린의 눈이 순간 빛났다.


“뭔데? 너랑 조건만남? 너라면 그냥 줄 수도 있는데···”


자꾸 주긴 뭘 주냐.


“그런 거 아니고. 어떤 못된 아저씨 혼내주는 거.”


천태우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줬다. 이 인간이 얼마나 인간말종인지에 포커스를 맞춰서.


세린 정도의 미모면 충분히 천태우를 낚을 수 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우연을 가장해 천태우를 만나는 것.


아직 고등학생인 세린을 이용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채원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한 한결은 애써 무시했다. 밤업소에 나가는 등 이미 순수한 고등학생이 아니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설득했다.


“혹시 날 좀 도와줄 수 있겠냐? 만약 한다고 하면 충분히 보상할게.”


세린은 한결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 풋 하고 웃었다.


“네가 부잣집 아들인 건 알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인데 그만한 돈이 있겠어? 내가 한 달에 얼마 버는 줄 알아?”


모를 리가 있나. 그동안 섭렵한 업소가 몇 갠데.


“너도 잘 모르는 게 있는데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잣집 아들이야. 게다가 내가 쓸 수 있는 돈도 많고.”


세린은 웃음을 멈췄다. 농담이 아닌 듯 보였다.


“최저, 최고, 평균 중 어느 걸 말할까.”

“최고.”


한결이 눈도 깜빡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하자 세린도 오기가 생겼다.


지금껏 한 달에 가장 많이 번 건 1,200만원이었다. 평균은 약 600만원 언저리.


같이 일하는 언니 중 하나가 한 달에 최고 4,800만원까지 벌어봤다고 자랑하는 걸 들었다.


“4,800만원.”


세린은 한결의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며 베팅했다.


“오케이. 네가 하겠다고 말만 하면 착수금 절반 부쳐주고, 일이 끝나면 나머지 정산할게.”


이렇게 쉽게?


“진짜, 그 돈을 준다고?”

“왜, 농담하는 것 같아? 내가 말했잖아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아. 그니깐 말만 해.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세린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사고 싶었던 명품 백들 목록이 주르륵 펼쳐졌다.


그때 길을 가다가 한결을 보고 아는 체 했던 얼마 전의 자신을 칭찬했다.


잘했어, 차세린.


“일단 콜.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무조건 ‘Go’지.”


**


세린에게 해야 할 일을 쭉 설명하고 나자 시간이 벌써 9시 가까이 됐다.


“이제 일어서자.”

“그러지 말고, 어디 가서 한 잔 하자.”

“말했잖아, 오늘 과외 있다고.”


한결은 이런 말을 하면서 스스로 자괴감을 느꼈다. 세린아 정신 차려. 이 나이에 과외 받아야 하는 이 아저씨는 얼마나 괴롭겠니.


“아, 씨. 너랑 더 있고 싶은데···”

“앞으로 날은 새털처럼 많아.”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어쩐지 너무 쉽게 일이 진행된다 했다. 뭔가 있겠지.


“뭔데?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좋겠다.”

“무조건 들어줄 수 있는 거야.”


한결은 궁금해졌다. 뭐길래 들어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지.


“크리스마스 이브날 나랑 데이트해.”

“뭐? 그런 기념비적인 날은 남친이랑 데이트해야지. 나랑 왜 만나?”

“말했잖아, 난 얼빠라고. 게다가 금사빠야. 그리고 규진이랑은 진짜 헤어졌어. 그 새끼는 너무 사람을 때려. 더 이상 맞으면서 사귈 수는 없어.”


한결은 난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왜 세린을 만나야 하나. 하···


그런데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세린이 꼭 필요하다.


“그래, 그러자. 나 진짜 집에 가야 돼. 늦으면 엄마한테 혼나.”


이 말을 하면서 또 자괴감을 느꼈다. 채원에게 혼나는 상상을 하면서···


“잠깐.”


갑자기 세린이 한결의 앞을 가로막고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쭉 내밀었다.


“뭐냐?”

“뽀뽀해 줘.”

“뭐? 갑자기 뭔 소리야?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당장 나가자.”

“아아아앙! 해줘, 해줘.”


세린은 온몸을 비비꼬며 애교를 부렸다. 아마 이게 한결의 첫 뽀뽀일까? 다행히 키스는 아니었다.


**


겨우겨우 시간 맞춰 집에 도착했다.


김희선은 이미 도착해 채원과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채원이가 오늘은 저녁 약속이 없었던 모양이었네.


“아들 왔니?”

“오늘 일찍 오셨네요.”

“과외날인데 아들 공부 열심히 하는지 봐야지.”


순간 과외 날마다 채원이 일찍 들어온다는 걸 알아차렸다. 왜?


신체 건강한 10대 아들과 화장빨, 성형빨이 가미된 인공미인이지만 어쨌든 20대 처녀.


부모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 쓰일 만한 조합이다.


그랬군, 그랬어. 혹시 둘이 사고라도 칠까 봐.


채원아, 걱정 마. She’s not my type, mom.


“늦었으니까 얼른 수업 시작하시죠.”


한결은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


한결의 옆자리에 앉은 김희선은 코를 킁킁 거렸다.


“너 여친 있냐?”


귀신 같은 후각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여친은 아니지만 여자가 맞긴 하다. 세린이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아 있더니 향수냄새가 밴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 여친이 있다고?”


아참 요즘 여친은 애인을 말하는 거지.


“아, 요즘은 여사친이라고 해야 하나. 학교 친구랑 만나서 샤브샤브 먹었어요.”


김희선은 여친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너무 과도하게 놀라는 느낌이었다.


요즘 고등학생이 설혹 애인이 있다고 해도 그게 뭐 놀랄 일인가. 김희선의 호들갑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처음 봤을 때 게이라 오해했던 일이 생각났다. 혹시 그것 때문에?


“아, 그렇지. 여사친. 그럼 그렇지. 홍석천도 여사친이 많더라고.”


오해는 점점 더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맘대로 생각하세요.


게이가 아니라도 그쪽 보기를 돌같이 하고 있으니까.


“혹시 술 마셨니?”

“아니오. 오늘 수업이라서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미성년자가 어딜 가서 술을 마시나요?”


김희선은 한결이 착실한 학생이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쌤은 술 안 마셔요? 아빠가 목사님이라서 아무래도 그렇죠?”


김희선은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한결의 귀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 향수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디 가서 말 하지 마. 특히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한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술 졸라 좋아해. 잘 마셔. 신입생 환영회 때 날 취하게 만들려고 선배들이 엄청 들이댔는데 모두 물리쳤어.”


김희선의 얼굴에는 술이 세다는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는 듯했다.


이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이네.


유명 목사님 딸이 말술이라.


“주량이 얼마나 돼요?”

“주량껏 마셔본 적이 없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항상 마지막에 홀로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해.”


농담이 아닌 듯했다.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혼나지 않아요? 아빠가 목사님이신데.”


김희선은 아빠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뭔 사연이 있나.


“너, 교인 20만명이나 되는 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자리가 얼마나 바쁜지 아니?”


한결은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저었다.


“일단 평생 가족여행이란 걸 가본 적이 없어. 아빠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 일요일 교회에서 보는 게 한 주 동안의 유일한 부녀간 만남일 때도 있었어.”

“그럼 엄마랑 친하겠네요.”


김희선은 볼펜으로 자기 코를 톡톡 쳤다.


“엄마랑 친하다고? 엄마는 더 바빠. 교인 20만명 중 여자가 15만명이야. 엄마는 스스로 그들의 수장이라고 생각해. 모임만 수십개야. 난 어릴 때부터 가사도우미 분들과 더 친하게 지냈어.”

“그래도 용케 공부는 잘하셨네요. 저라면 완전 빗나갔을 텐데.”


엄마의 극심한 차별 속에서도 공부를 잘했던 류지오가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려면 장단을 맞춰야 하니까.


“글쎄. 유일한 탈출구가 공부라고 생각했으니까. 누굴 닮았는지 머리는 좋게 받았고.”


나도 그래. 날 그렇게 싫어했던 엄마의 좋은 머리를 닮아 공부는 잘했어.


“즉, 내가 술을 마시든 뭘 하든 늦게 들어간다고 해도 한 번도 혼난 적 없어. 혼낼 사람이 없었으니까.”


겉과 다르게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여럿 있구나. 하긴 한수호도 재벌 2세라 부러워했었는데 집구석을 보니 이건 뭐···


“참, 다음 주 과외는 날짜 좀 바꾸자. 그날 친한 친구 생일인데 절친 4명이 모여 생파하기로 했어.”

“좋은데 가시나 봐요?”

“강남에 있는 클럽 ‘파사데나’에 가기로 했어. 연예인도 올 정도로 요즘 제일 힙한 곳이라고 하더라고. 한 번 가보고 싶었어.”

“즐겁게 노시고, 좋은 남자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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