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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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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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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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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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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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3)

DUMMY

“네가 먼저 약속을 잡았다?”


토마스의 미간이 꿈틀댔다.

감히 자기 앞에서 말대답하는 게 거슬렸고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눈으로 보는 게 거슬렸다.


“응. 형 약속 잡고 온 거야? 무작정 찾아와서 만나달라 그러는 거 아니지? 명색이 황족인데 그러면 안 되지?”


토마스가 아이번을 바라봤다.


‘제가 먼저 만나고 싶은데 괜찮죠?’


아이번이 고개를 돌려 율리안을 바라봤다.


‘싫으면 싫다 하세요.’


다른 아비였다면 깃발을 들고 환영할 일이다.

자기 딸을 얻기 위해 두 남자가 경쟁한다.

심지어 두 남자 모두 황가의 핏줄이다.

하지만 아이번의 얼굴은 죽상이었다.


‘차라리 평민이라도 데려와 혼인하겠다 떼라도 쓰지.’


하지만 태어나기를 병약하게 태어난 아이였다.

혼사는 꿈도 못 꿀 일.

이제 남들이 누려본 것 좀 누려보려고 하니 남정네들이 지랄이었다.


“하아~”


도저히 피할 구멍이 안 보였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놈은 딸을 사지로 내몰고

한 놈은 딸을 새장에 가두려 한다.

어찌 발이 떨어지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둘이 함께 가시죠.”


어디 하나 치우침 없이 우뚝 서야 하니 중립이 더 힘든 법이다.

불어오는 외압도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이다.

그러니 기회도 공평하게 줘야 했다.


‘그래. 딸아이의 선택을 따르자.’


아이번은 직감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작정하면 오늘 하루는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법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도망치면 눈덩이는 더욱 커진다.

세상은 때론 우리의 처지 따위 봐주지 않고 선택을 강요한다.


“이 방입니다.”


아이번이 문을 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금발.

못 본 사이 눈에 띄게 붙은 근육.

탄력적인 몸매.

아름다운 얼굴까지.

카리스는 가부좌를 튼 채 명상 중이었다.


“카리스. 오랜만이구나. 쾌차했단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선두는 토마스였다.

그는 자신이 맞았다는 걸 기억에서 싹 지운 듯 반갑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랄. 언제 봤다고 카리스야. 카리스가.’


아이번의 표정은 구겨졌고


‘아. 지금 가면 안 되는데.’


율리안은 염려했다.


“......”


토마스가 말을 걸었음에도 카리스는 명상에 집중하느라 대답이 없었다.


“카리스?”


또다시 이어지는 무반응.

토마스는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꾹 참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탓. 탓. 부웅! 쾅!


그의 몸이 한 바퀴 회전하며 바닥에 꽂혔다.


“풉!”


율리안이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반대로 아이번은 뜨악 경악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카리스는 자기 어깨에 손이 올라간 순간

반사적으로 토마스를 엎어 쳐버렸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토마스는 당황했다.

무예라면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들어선 자신이다.

아무리 마나를 쓰지 않았다지만


‘내가 반응하지 못했다고?’


대련 때도 지금도 계속해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투성이였다.


“율리안. 또 뭐지?”


카리스는 바닥에 널브러진 토마스는 무시한 채 율리안을 바라봤다.


‘나는 개무시하면서 율리안은 알아본다?’


토마스의 자존심이 긁혔다.


“카리스 몸은 어느 정도 완성됐지?”


“최소한의 기준치는. 그럼에도 내 대답은 변함없다.”


“이번엔 조금 흥미로운 얘기일 텐데? 네 검술과 관련해서도.”


검술과 관련됐다는 말에 카리스의 눈이 빛났다.


‘카리스가 검술을 배웠다고?’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토마스는 애초에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반반한 외모가 시선을 잡아끌긴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슬레인 가문이었으니까.


“자세한 얘기는 앉아서 할까? 아. 형도 와서 앉아.”


‘이런 꿀 같은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지.’


율리안은 자신 있었다.

토마스도 카리스를 노린다.

하지만 그는 카리스에 대한 정보가 없다.

설령 있다 해도 그 정보는 이젠 쓸모 없어진 정보.

정보의 우위라면 율리안에게 있었다.


“아. 그래. 앉아서 얘기할까?”


토마스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의자를 빼 카리스 앞에 앉았다.


‘와~ 쪽팔리면서 안 쪽팔리는 척하는 거 봐라.’


한편,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번의 눈이 빛났다.


‘우리 딸이 이렇게 강했다고?’


이게 첫 번째 이유였고


‘3황자가 1황자를 상대로 안 밀리네? 오히려 우위를 점한 건가?’


이게 두 번째 이유였다.

아이번은 3황자에게 흥미가 일었다.

그리고 자기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라. 아이번.’


“우선 자네부터 듣지. 날 왜 찾아왔지?”


“자네?”


토마스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리스는 얼른 대답하라는 눈빛을 보냈고.


‘정녕 이 여인이 내가 알던 그 카리스 슬레인이란 말인가?’


토마스는 양쪽에서 휘몰아치는 풍랑에 정신을 잡기 급급했다.

그에겐 가이렌과의 토론보다 지금 상황이 더 어렵게 다가왔다.


“그대도 알 거요. 우리가 사이에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대답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지. 그래서 직접 물어보러 왔소. 카리스 슬레인.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오.”


카리스가 토마스를 빤히 바라봤다.

토마스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에겐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대가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걸 주겠소.’


“풉”


카리스의 입에서 조소가 새어 나왔다.


‘비웃어?’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군. 자네 이름이 뭐지?”


“장난이 지나치시오. 그새 내 이름도 까먹었소?”


“이름.”


“... 토마스 듀발론이오.”


듀발론이라는 성에 카리스가 율리안을 바라봤다.


“첫째 형님. 나는 셋째.”


“그렇군.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하지 않다고?’


“토마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토마스는 카리스의 말투가 계속 거슬렸다.

자신을 우롱하기 위해 이런 말투를 구사하는 것일까?

아니면 율리안에게 정떨어지는 방법에 대해 강의라도 받은 것인가?


“물어보시오. 카리스 영애.”


하지만 지금 아쉬운 건 본인.


‘혼담만 성사된다면. 그때 오늘의 일을 모두 되갚아주마.’


“나에게 뭘 줄 수 있지?”


토마스가 눈을 빛냈다.

이쪽은 자신의 분야였기 때문.


“말만 하시오. 영지는 물론, 제국 최고의 시녀, 특산품, 화장품까지. 그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주겠소.”


“사랑도 줄 수 있소?”


순간 토마스의 몸이 멈칫했다.


“혼담이란 결국 두 남녀 사이에 사랑이 전제돼야 하는 일. 하지만 당신이 날 바라보는 눈엔 사랑이 없소.”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는구나. 이래서 계집들이란.’


그는 목젖으로 올라오는 말을 간신히 눌러 담았다.

이건 싸움이고 생존이 걸린 문제다.

살얼음판을 걸어야 할 자신의 인생에 사랑이란 말랑말랑한 단어는 없었다.

한편 아이번은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 하긴 하는구나.’


아이번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시간이라 생각했다.

건강해지자마자 숨 막힐 수 있는 사람들 사이가 아닌

건강한 발로 들판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자유.

그는 카리스의 발언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렇다면 넌 어떡할래?’


아이번과 토마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율리안에게 꽂혔다.

궁금했다.

율리안은 과연 이 여인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일단 나가자.”


율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 챙겨라. 시원하게 한판 뜨자.”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

하지만


“좋지.”


카리스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지어졌다.


“아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하자.”


“뭐지?”


***


“율리안. 네가 상대하는 거 아니었나?”


나는 고개를 으쓱했다.

카리스의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그녀의 상대는 바로 로레인.

지금 이 상황에서 로레인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건 리스크가 컸다.

그래서 카리스에게 부탁했다.

정해진 장소에서 너와 나 둘만 대결하자고.


“뭐.... 인간치곤 좀 생겼네.”


로레인은 카리스를 바라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다.


“쓸데없이 크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몸이 둔해진 거 같아. 조금 불편하긴 하다.”


빠직.


우선 첫 경합은 카리스의 승리였다.


“잠깐 그전에.”


검을 들고 자세를 잡는 카리스와 달리 로레인은 양팔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싸우기 전에 궁금한 게 뭐 그리 많지?”


“중요한 물음이야.”


“말해라.”


“우리 율리랑 어디까지 갔어?”


“에?”


실로 당황스러운 질문.

로레인.

우리 그런 사이 아닌데.


“간 곳 없다. 감옥에서만 계속 있어서.”


“밀실에 남녀 단둘이 있었다고?”


“남녀가 둘이 있는 게 그렇게 문제 될 일인가?”


“그러고 보니 의상 거슬리네.”


로레인이 카리스를 위아로래 흘겼다.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

거기에 살짝 노출한 복근.


“훈련하다 보면 더워지거든.”


“그 훈련 혼자 한 거 맞지?”


“도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그냥 싸우면 안 되는 건가?”


“중요하니까 말해.”


“훈련을 혼자 하지 그럼 둘이 할까?”


“다행이네.”


로레인이 단도를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둘이 뜨겁게 훈련했으면 반 죽여놓으려고 했거든.”


“죽일 수는 있고?”


“이제부터 해봐야지.”


로레인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선공을 양보하겠다는 의미.


“배려. 감사하다.”


카리스가 먼저 몸을 날렸다.

그녀의 눈에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몸을 만든 후 만난 첫 대련 상대.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로레인이라면 자신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다.


후웅!


카리스가 검을 횡으로 휘둘렀고

로레인은 발을 붙인 채 허리를 꺾어 검을 피했다.

실로 유연한 자세.

그 이후에도 카리스의 공격은 이어졌다.

대결의 양상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대결.


카리스의 공격은 위력적이었지만 닿지 않았다.

로레인은 카리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하지만 카리스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의 난도질이 끝난 후


쿵!


카리스가 대도를 내려놓았다.


“후~ 조금 더 속도를 올려도 되나?”


“물론이지. 하품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카리스가 움찔했다.

이번엔 로레인이 제대로 긁은 거 같았다.


팡!


카리스가 하체 근육을 부풀려 순식간에 쇄도했다.

공격은 아까보다 위력적이고 빨랐다.

그럼에도 로레인은 피하기만 했다.


“!”


여기서 카리스의 변칙적인 공격이 들어갔다.

이 한수를 위해 그동안 착실히 공격을 쌓아놨던 것.


깡!!!


드디어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로레인이 뒤로 쫙 말렸다.


지이이이잉.


검이 울렸다.


“이젠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


로레인이 자신의 대검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생각이 정리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


“어?”


“한 번에 끝내도 돼?”


누가 싸움의 도구가 날붙이만 있다고 했던가?


“할 수 있다면.”


대답은 카리스에게서 들려왔다.

그녀가 랜턴에서 수련한 게 100년이다.

아무리 몸이 바뀌었다 해도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네가 허락한 거다.”


로레인의 기세가 바뀌었다.

그리고


사삭.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하지만 카리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잠시 후 로레인이 카리스의 뒤에서 나타났다.

카리스는 이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후웅.


로레인이 카리스의 하체를 가격했다.

카리스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순식간에 우당탕 무너졌다.


챡!


그런 카리스의 얼굴 옆,

로레인의 단도가 박혔다.


깜빡깜빡.


카리스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


“내가 봐도 진짜 예쁘게 생겼네. 그래서 봐준 거다. 알았지?”


카리스가 멍하니 있자 로레인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왜 진 건지 궁금해?”


카리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줘?”


끄덕.


“그럼 여기 이름부터 쓰고 시작할까?”


로레인의 품에서 나오는 위험한 종이 한 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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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이변 (2) 24.09.09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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