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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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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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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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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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다 (4)

DUMMY

거의 다 낚았다.

이제 한 걸음이다.


“잠깐!”


하지만 만만찮은 카리스였다.


‘왜지? 설마 눈치챈 건가? 이런 성격 아니랬는데?’


로레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펜이 없다.”


“지장이면 더 좋지.”


카리스는 망설임 없이 엄지를 물어뜯었다.


“어디에 찍으면 되나?”


“여기.”


카리스는 계약서 내용은 보지도 않고 지장을 꾹 찍었다.


“율리~”


로레인이 지장이 찍힌 종이를 나에게 가져왔다.


“잘했어.”


내가 로레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냐!”


“그래서. 뭐지? 내가 진 이유?”


“아. 그건 아주 간단해. 여기 앉아볼래.”


로레인이 바닥에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았다.

카리스도 그녀를 따라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았다.


“손잡고.”


덥석.


“이거야.”


로레인의 카리스의 다리를 쭉 찢었다.


“읏!”


카리스의 입에서 묘한 신음이 나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족들이 몸에 날붙이를 박아도 비명을 지르지 않던 그였는데.

고작 다리 찢는 거 하나에 저런 표정이라니.


“생각 이상으로 뻣뻣하네.”


“이게 내가 진 이유라고.”


“어. 너랑 대결하면서 내가 가장 크게 받은 느낌이 뭔 줄 알아?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거야.”


“맞지 않은 옷?”


“어. 이런 건 근육도 체력도 거대한 기사들이 휘두르는 대검이잖아. 근데 넌? 지금이야 어떻게든 힘으로 휘두르고 있지만 그러면 근육에 무리 간다. 너한테 필요한 건 힘이 아니라 유연함이야.”


“유연함이라.”


사실 카리스도 알고 있었을 거다.

몸이 예전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당연한 일이다.

남자와 여자는 애초에 근육량이 다르다.

게다가 다리우스는 태어날 때부터 태산처럼 거대하고 딱딱한 근육을 타고난 상태.

병약했던 카리스의 근육으론 예전에 구사했던 검술을 구사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유연하면 할 수 있는 자세도 많아.”


로레인이 나를 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유연할수록 공격의 패턴이 다양해진다는 거군.”


“그렇지. 아주 굉장한 공격 패턴이 생길 수도 있고.”


“로레인. 그만.”


“마지막 공격은 어떻게 된 거지?”


로레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녀가 이긴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카리스가 예측하고 검을 휘둘렀을 당시

그녀의 몸을 지탱하는 하체는 너무 위태로웠다.

로레인은 그저 위태로운 하체를 건드렸을 뿐이고


“공격은 네가 했지만 사실 자멸한 건 나였군.”


카리스는 퍽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눈빛에는 묘한 환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뭐지?”


카리스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마치 물을 빨아먹는 스펀지처럼 로레인의 가르침을 모두 흡수할 기세.


“너 몇 살이야?”


“올해 16살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럼 내가 언니네. 왜 반말해?”


“아. 미안하다. 언니.”


로레인이 나를 보며 표정으로 물었다.


‘얘 뭐야?’


“카리스가 요즘 검에 푹 빠졌거든. 다른 건 조금 서툴러.”


나는 검만 아는 병신을 순화해서 표현했다.


“그럼 함께 가는 거다?”


“함께 가다니?”


카리스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 내 손에 있는 계약서를 바라봤다.


“읽어봐도 되겠나?”


계약서의 내용은 실로 간단했다.


‘카리스는 율리안의 버려진 땅 탐사에 탐사 대원으로 참여한다.’


나는 카리스가 이 종이를 찢어버리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훗. 그래 가자.”


그녀는 흔쾌히 계약서를 나에게 넘겨줬다.


“앞으로 할 일이 많겠군.”


카리스는 새 삶의 이정표를 발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아이번은 혈서가 찍힌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은 괜찮으냐?”


“물론.”


“진짜 가려고?”


“가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카리스는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빛냈다.


“알겠습니다. 제 딸의 선택이니 제가 막을 권리는 없죠. 한데 저하 감옥에서는 어떻게 빼낼 생각입니까?”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이미 답이 있잖아요. 바뀐 법에.”


***


카리스와 만나고 난 후로 3일이 좋았다.

토마스는 심기가 좋지 않았다.

그가 카리스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자신을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했다.


“따라오지 말거라. 율리안과 단둘이 할 대화가 있으니.”


카리스가 자신만을 피한다면 이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율리안과 귓속말을 나눈 뒤 자신을 따돌리듯 떼어냈다.

그렇게 그녀는 화를 삭이며 황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카리스도 카리스였지만 그를 더 화나게 한 건 율리안이었다.


‘평소엔 눈도 못 마주치던 녀석이 감히.’


사람은 자기보다 밑이라 생각한 사람이 기어오르면 참을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토마스는 꾹 참았다.

그는 어차피 죽으러 간다.

죽기 전 마지막 객기라고 생각하는 게 그의 정신건강에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율리안은 죽기 전까지 토마스의 신경을 계속 긁을 모양이었다.


황궁 복도.


토마스의 맞은편에서 율리안이 떡하니 걸어오고 있었다.

토마스가 이를 빠득 갈았다.

하지만 이곳엔 보는 눈이 많았다.

그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율리안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토마스는 고민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율리안과 대화를 해야 하나?

한다면 무슨 대화를?

우리가 그렇게 친했나?

만약 대화하다 말리면?

생각하던 도중 토마스는 흠칫했다.


‘이 내가 걱정을 한다고? 고작 율리안을 상대로?’


생각을 하는 사이 율리안은 지척에 다다랐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토마스는 일부러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율리안을 상대로 걱정했단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응. 좋지.”


“그 종이는 뭐냐?”


“볼래?”


토마스는 율리안의 여유로운 표정이 거슬렸다.

그가 율리안의 손에 있는 종이를 낚아챘다.

얼마나 대단한 종이길래 저리 의기양양하단 말인가?


“!”


그는 눈을 의심했다.

종이는 카리스 슬레인의 석방을 승인하는 공문이었다.


“네가 이걸 어떡해?”


“이것 때문에 시간 오래 걸렸다. 그러게 왜 법을 바꿔가지고.”


토마스는 아차 싶었다.

법을 바꿀 때만 해도 감히 누구도 카리스를 건드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가이렌이 개입할 여지도 있었지만, 혼담이 오가는 와중에 그가 카리스를 채간다면 그림이 좋지 않았다.


“나도 황가의 핏줄이라는 걸 간과하고 있었나 봐?”


정확했다.

자신이 아는 율리안은 이렇게 대담하게 움직일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꽉.


토마스가 들고 있던 종이를 구겼다.


“갈 거면 혼자 곱게 갈 것이지. 왜 카리스 슬레인은 물고 늘어지는 거냐?”


“내가 죽으러 가는 것처럼 말하네?”


토마스가 헛바람을 삼켰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본인 입으로 얘기하는 건 다른 문제.


“카리스가 최근 강해진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널 지켜줄까?”


“형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율리안이 토마스의 손에 든 종이를 뺏으며 말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 두 사람은 지킬 거야.”


토마스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율리안을 바라봤다.


“.......”


율리안의 눈은 진지함보다 더 깊은 어떤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 그 말. 꼭 지키길 바란다.”


토마스가 율리안의 어깨를 툭 치고 복도를 지나갔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을 한 그였지만 가슴 속은 실로 찝찝했다.


***


“어머~ 귀여워라.”


황궁을 지나가는 시녀들이 나를 보며 눈을 빛냈다.

정확히는 내 품에 안긴 우타를 보며 눈을 빛냈다.


“여기서는 인간 모습으로 변하면 안 된다. 알겠지?”


“앙!”


우타가 힘차게 대답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어디 갔다 왔어?”


아드리안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어머~ 귀여워라! 얘는 뭐야?”


아드리안이 우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타도 아드리안을 바라봤다.


폴짝.


“어머.”


우타가 아드리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얘. 수컷이다. 조심해.”


“어머! 너 앙큼한 여우구나.”


“앙!!!”


우타는 아드리안의 품이 퍽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


출발 날짜가 다가왔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카리스 영입에 성공했다.

나, 로레인, 카리스.

실로 조촐한 파티원에


“무사히 잘 갔다 와.”


“앙!”


실로 조촐한 출정식이었다.

형제가 죽으러 가면 배웅이라도 올만 한데

나를 배웅해 주는 건 아드리안과 우타가 전부였다.


“무슨 일 있으면 조사고 뭐고 그냥 돌아와. 알겠지?”


“앙!”


“아드리안. 우타가 엉큼한 짓 안 했어?”


“무슨 엉큼한 짓. 그리고 해 봤자 얘가 뭘 하겠다고.”


아드리안은 우타의 털이 부드러운지 얼굴을 비볐다.

못 본 사이 우타의 신수도 훤해졌다.

털에 윤기가 나고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났다.

이 모든 게 다 아드리안의 능력이겠지.


“우타. 아드리안한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알리고.”


“앙!”


우타도 아드리안의 품이 썩 맘에 드는 것 같았다.


“어! 우타! 나 서운해!”


로레인이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끼잉.


“이분이 네 동료?”


“응.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 했네. 로레인. 이쪽은 아드리안. 아드리안. 이쪽은 로레인.”


“처음 봬요. 엘프는 처음 보는 데 정말 미인이시네요.”


아드리안에게 질투의 눈빛을 날리는 게 민망할 만큼 아드리안은 로레인의 미모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이~ 너도 예뻐.”


“우리 율리안. 잘 부탁해요.”


“우리?”


빠직.


순간 분위기가 차갑게 식으려고 할 때


“으어어어어. 카리스. 건강해야 된다. 으어어어어.”


도노반과 아이번 그리고 카리스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부디 우리 손녀를 부탁합니다.”


“검술 보면 제가 부탁해야 할 거 같은데요. 전 마나도 못 씁니다.”


“이제 그만 가지.”


카리스는 아이번이 질질 짜는 모습을 보자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카리스. 내 소중한 보물. 으어어어어어.”


“율리안! 밥 잘 챙겨 먹어! 알았지?”


“앙!”


우리를 배웅하는 이는 고작 5명이었지만

나는 가슴 속이 꽉 차는 느낌을 받았다.


“로아크 고원이라. 실로 오랜만이군.”


카리스가 회상에 잠겼다.


“어? 카리스는 로아크 고원 간 적 있어?”


“있었지. 예전···.”


말하려던 카리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굳이 내가 단속하지 않아도 다리우스가 아닌 카리스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꿈에서 본 거 같다. 언니.”


“얘 원래 이런 애였니?”


“저게 연기로 가능하겠어?”


우리는 성벽을 나와 말을 타고 이동했다.

억지로 말을 달리게 하진 않았다.

굳이 서두를 게 없는 여정이었다.


“어! 율리! 눈이야!”


우리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듯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라.”


“예쁘다.”


나와 로레인이 눈을 보며 감상에 빠졌다.

하지만


“언니. 물어볼 게 있다.”


카리스는 아니었다.

성벽을 나온 직후 그녀는 로레인에게 찰싹 붙어 질문을 쏟아냈다.

그녀가 구사하는 보법부터 그녀가 사용하는 검술, 자신의 문제점 그리고 몸을 쓰는 방법까지.


“카리스.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이렇게 눈을 보며 걷는 것도 수행의 일종이란다.”


“마음의 수양인가? 알았다. 언니.”


‘이럴 때 보면 정말 언니 같단 말이지.’


이번 여행이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쫓기지 않고 외롭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게 감상에 잠겨 이동하고 있을 때 우리 앞으로 양 갈래 길이 나타났다.

나는 지체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 잠깐 율리. 잘못 갔어.”


“이쪽 맞아.”


“아니야. 로아크 고원은 왼쪽으로 가야 돼.”


“우리 로아크 고원 안 가.”


“에?”


“그게 무슨 말이지?”


카리스가 나를 째려봤다.


“카리스. 사기 친 거 아니니까. 진정해.”


“그럼 어떡하려고?”


“로레인 생각해 봐. 우리가 보급받은 식량은 며칠 분이야?”


“일주일 분이지.”


“조사 기간은?”


“한 달.”


“설마 한 달 내내 거기서 먹고 잘거라 생각했어? 그건 아니지.”


내가 손가락을 휘휘 흔들었다.


“그럼 지금 어디 가는 거냐?”


“카리스. 네가 좋아할 만한 곳.”


“내가 좋아할 만한 곳?”


카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과연 자신이 좋아하는 곳은 어딜까?


“우선 장비부터 맞추러 가야지.”


“장비라....”


카리스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전쟁이다.

인간이 아닌 미지의 존재와.

생존을 위해선 방어구는 필수.


“방어구 사러 어디까지 가려고?”


나는 씩 웃으며 골짜기 너머를 가리켰다.


“우리는 드워프의 나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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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이변 (4) 24.09.11 6 0 11쪽
56 이변 (3) 24.09.10 8 0 12쪽
55 이변 (2) 24.09.09 8 0 12쪽
54 이변 (1) 24.09.08 7 0 12쪽
53 대승절 (4) 24.09.07 7 0 12쪽
52 대승절 (3) 24.09.06 9 0 12쪽
51 대승절 (2) 24.09.05 11 0 12쪽
50 대승절 (1) 24.09.04 11 0 12쪽
49 복귀 24.09.03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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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24.09.01 10 0 12쪽
46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3) 24.09.01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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