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무림인의 미궁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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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하
작품등록일 :
2024.08.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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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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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5화 악의(2)

DUMMY

“말도 안 됩니다. 죽을 거라구요.”


“얘기할 시간 없소. 숨어 있으시오.”


하유성은 잡담할 시간도 없다는 듯 가고일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은폐 마법에서 벗어난 그는 쏘아지듯 앞으로 달려갔다.


“미쳤어···. 스치기만 해도 곤죽이 될 텐데···.”


“어차피 저쪽이 진다면 우리도 다 죽은 목숨 아닌가요? 미약할지라도 힘을 보태는 편이 합리적이에요.”

로엘리아마저 그렇게 말하며 은폐 마법을 거두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당신들이 몰라서 그래! 마력 차이는 절대적이라고요···. 우리는 저놈 몸에 흠집도 낼 수 없어. 아무 도움도 안 되고 개죽음당할 게 뻔하다니까요? 제발···우리 제발 같이 숨어 있어요. 그게 최선입니다.”


“글쎄요. 아무것도 못 하고 사는 게 과연 뭐라도 하다가 죽는 것보다 최선일까요?”

로엘리아는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이미 마법을 거두고 전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끄아악! 제발! 죽으려면 혼자 죽으란 말입니다!”


안젤로의 절규에도 개의치 않고 로엘리아는 전투에 참여할 방법을 궁리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무서워···. 무섭다고.”

안젤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그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러나 벌써 가고일 앞에 도착한 하유성의 모습은 어딘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돕겠소!”

하유성의 외침에 혼자서 방패로 가고일을 감당하고 있던 전위의 사내가 힘겹게 공격을 막으며 대답했다.


“전위인가? 레벨은?”


“2레벨이오.”


“뭐? 장난치지 말고 꺼져라!”

2레벨로는 가고일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하유성을 내치는 사내.


입은 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유성을 걱정하는 말이었다.


“내 걱정은 마시오! 죽어도 틈을 만들 테니.”


[키에에엑!!!]


하유성은 단검으로 가고일의 관절 부위에 흠집을 내며 주변을 빙빙 돌았다.


너무 약해서 바라볼 가치도 없다는 듯, 녀석은 한참을 무시하다가 하유성이 장검으로 마법에 상처 난 부위를 쑤시자 마침내 그를 바라봤다.


쿵!

가고일의 몽둥이 같은 창이 떨어졌다.

하유성이 있던 자리에 돌파편이 튀면서 짙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방패를 든 사내는 그가 한 방에 죽었으리라 생각했지만, 먼지가 걷힌 자리에는 하유성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보법을 밟아 옆으로 피했던 것이다.


‘한 방만 맞거나, 막아도 골로 가겠군.’

하유성은 공격을 포기하고, 녀석의 창을 피하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그의 공격은 거의 효과가 없다.

공격을 방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꼭 전위 역할을 하는 데 공격을 받아낼 필요는 없었다.


‘몸집에 비해 빠르긴 하지만, 그래도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쾅!! 쾅! 쾅!

하유성이 계속 근처에서 깔짝거리자, 가고일 한 마리가 본격적으로 하유성을 바라보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걸 다 보법으로 피하고 있는 하유성.


파천이검의 세 번째 초식 천룡휘보(天龍撝步)의 덕이었다.


원래 보법이란 건 속도도 속도지만, 적을 현혹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기 위해서 존재하는 법.


그는 가까이 다가갔다가 멀어지길 반복하며, 공격을 피하고 얕게 칼을 한 번 휘두르고 그 반동으로 빠져나오길 반복했다.


문제는 가고일의 공격이 땅을 내려칠 때마다 튀어 오르는 돌들이 하유성을 베어내듯 스치고 지나갔다는 것.

하지만 하유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바위 파편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가고일의 공격을 막고, 시선을 끄는 데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가고일 한 마리의 공격을 전부 감당했다.

세 마리를 감당하고 있던 사내의 부담을 삼분의 일로 줄여준 셈.


“와우! 신참 같은데, 제법인걸!”


쩌저저저적!!

빙결 마법으로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만들며, 후위에 있는 마법사가 외쳤다.



콰앙!

“그러게! 이 녀석 물건이야! 절대 머뭇거리지 않는군.”

전위의 사내가 양손에 든 대문짝만한 방패로 가고일들의 공격을 하나씩 흘리며 말을 받았다.


물론 하유성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공격을 피하느라 거기에 대답할 여유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한 마리를 묶으며 벌어낸 여유는,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기회나 마찬가지.


“간다. 묶어놔! 흐아압!!”

거대한 얼음 뭉치를 만든 마법사가 기합을 내지르며 가고일에게 마법을 쏘았다.


전위의 사내는 가고일의 공격을 막으며 놈을 붙잡고 있었지만, 갑자기 가고일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그를 밀어냈다.


“안 돼! 묶어둘 수 없어!”


녀석의 속도라면 충분히 마법이 날아오는 걸 인지한 순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가고일의 눈앞에 검은 막 하나가 생성됐다.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로엘리아의 마법.

은폐 마법을 응용한, 아무 파괴력도 없는 마법이지만 놈의 시야를 잠깐 묶어두기엔 충분했다.


투콰과과광!!!

회전하며 날아가 가고일에게 명중한 얼음덩어리는 그대로 녀석을 갈아버리듯 짓뭉갰다.


“좋았어! 마법사도 제법인걸?”


이제 남은 건 두 마리.


주공을 맡은 파티에 여유가 생기자, 하유성과 로엘리아에게도 성직자의 축복이 들어왔다.


“고맙소!”

축복을 받아 한 층 속도가 빨라진 하유성은 여전히 한 마리를 효과적으로 잡아두고 있었다.


무시하려고 하면 관절 사이를 한 번씩 베고 지나가고, 잡으려고 하면 어느새 간격 바깥까지 도망치는 그를 보고 가고일은 잔뜩 열이 올라 괴성을 내질렀다.


[그르라라라락!!]


놈이 창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하유성을 바라봤다.

‘동작이 커졌군.’


저런 자세라면 녀석이 아무리 예측해서 내리쳐도, 하유성은 궤적을 본 다음에 반응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4층쯤 되면 마물에게도 지성이 있는 법.

녀석은 괴성조차 의도한 듯, 갑자기 반대쪽으로 몸을 던지며 창을 내리치려 했다.


그쪽엔 아까 시야 방해 마법을 거느라 꽤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 버린 로엘리아가 있었다.


“······!”


츠팟!

하유성은 모든 힘을 다리에 실어 도약했다.

노리는 건 팔.

그는 모든 힘을 다해 두 자루의 검으로 창을 든 팔에 일격을 가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

하유성의 공격은 아주 약간, 팔의 궤적을 틀었을 뿐이었다.


그때, 화살 하나가 날아와 가고일의 눈을 찔렀다.

화살에 실린 힘은 보잘것없었지만, 운 좋게 정확히 눈에 맞는 바람에 가고일의 거체가 움찔했다.


덕분에 창은 로엘리아를 빗겨, 땅에 떨어졌다.

운에 운이 겹쳐 로엘리아가 본능적으로 피한 방향과 창이 비틀어진 방향이 반대였던 덕이었다.


투쾅!

가고일이 내려친 창에 땅이 폭발하듯 터지면서 돌들이 비산(飛散)했다.

로엘리아는 날아오는 파편에 직격당해 온몸에 상처가 가득 났지만, 그래도 즉사는 면했다.


“제기랄! 저도 한때는 잘나가는 개척자가 꿈이었다구요!”

화살을 쏜 건 바로 숨어 있다가 뛰쳐나온 안젤로였다.

두 사람의 전투에 감명받은 그의 눈은, 어린 시절 최전선의 개척자를 꿈꾸던 눈빛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훌륭하오!”

하유성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서 후방으로!”

방패를 든 사내가 어느새 다가와 자세가 무너진 하유성을 향해 공격하는 가고일의 창을 막아내며 말했다.


하유성은 온몸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로엘리아를 안고 성직자에게 달려갔고, 성직자는 곧바로 치유를 시작했다.


“당장 죽지 않도록 응급 처치만 할 거야. 전투에 쓸 마력을 낭비할 순 없으니까!”


성직자가 다시 가고일을 향해 달려가는 하유성에게 대고 말했다.


“분명 보잘것없는 마력량인데, 참 잘 싸우는군요.”

후위에서 폭발 가루가 담긴 화살을 쏘아 대며, 사냥꾼이 말했다.


하유성과 안젤로, 로엘리아까지 세 사람에겐 여전히 한 번 한 번이 죽을 위기나 마찬가지였지만, 전체적인 전투는 이미 승기가 기울어있었다.


한 마리가 죽고, 한 마리는 회심의 일격이 빗나가자, 마법과 화살 세례를 받고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유성은 이제 방심하는 일 없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훌륭하게 가고일 한 마리의 주의를 끌었다.


그러다 마침내 처음에 가고일의 공격에 맞고 날아갔던 검사가 회복을 마친 뒤 합류했고, 그는 마법과 폭탄 화살에 외피가 거의 벗겨진 가고일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했다.


우우웅―


그건 하유성이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본 검기(劍氣)였다.


검사는 잠깐 자세를 잡고 힘을 모으더니 푸르스름한 검기가 실린 검으로 가고일의 목을 베어냈다.


애초에 방패를 든 사내가 공격을 받아내고 나머지 마법사, 궁수, 전사는 공격 담당인 듯, 검기의 위력은 발군이었다.


마지막 한 마리는 하유성이 공격을 피하며 주의를 돌리는 사이, 방패 사내가 몸을 던져 양손에 든 방패로 거대한 가고일의 몸을 쓰러뜨렸고, 그 위로 마법과 화살이 쏟아지면서 마무리지었다.


“허억···허억······.”


전투가 끝나자 멀쩡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후위에 있던 이들은 마력이 바닥나 땅을 뒹굴었고, 전위에 있던 이들도 몸이 성한 데가 없이 엉망이었다.


“어휴, 몸이 찌그러지는 줄 알았네.”


방패를 든 사내가 말했다.

전투 내내 가고일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막은 그의 군청색 방패는 흉하게 일그러져있었다.


“나는 드웨인이다. 보아하니 신참들 같은데, 어떻게 4층에 있는 거지?”

그는 짧게 자른 머리에 처진 눈,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한 마리 곰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무려 4레벨의 전위였고, 다른 파티원들은 전부 3레벨이었다.

그들은 하유성네의 자초지종을 듣더니 안타까워하며 흔쾌히 2층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우리도 방금 전투로 다시 나가서 정비를 해야 하거든.”

자신을 행크라고 소개한 궁수가 말했다.


“허허, 자네가 놀라서 산드라에게 포션을 쏟아부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말한 건 중년의 성직자인 케온.


산드라는 처음에 나가떨어졌던 검사였다.

그녀는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뭐 결과적으론 그 덕분에 산드라가 돌아와 전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드웨인 파티의 마지막 구성원.

마법사 에린이 행크와 산드라의 편을 들었다.


“폐를 끼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유성이 포권하며 말했다.


“하하, 독특한 인사법이네. 뭐 우리가 경솔하게 움직인 탓도 있으니까. 이젠 천장을 조심하면서 다니자고.”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투 때는 나름 용감하게 싸웠던 안젤로는, 다시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세 사람 다 레벨에 맞지 않게 잘 싸우던걸? 겁도 없고. 다들 소속이 어디야? 2레벨이면 이제 소속을 정할 때잖아. 순찰대는 어때? 특히나 그쪽 마법사는 아인종인 것 같은데.”

궁수 행크가 갑작스레 권유했다.


“아, 저는···.”

로엘리아는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직 1레벨인게 민망하기도 했고, 노예신분인 것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마법산데, 마탑에 와야 대우를 받지! 그리고 그런 건 도시에 돌아가서 말하자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이는 마법사 에린이 말했다.


드웨인 파티와 하유성 파티. 총 여덟 사람은 상처를 치료하고 물자를 재정비한 뒤, 3층으로 가는 포탈로 향했다.


중간에 트롤 한 마리를 더 만나긴 했지만, 애초에 4층 진열장까지 가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던 드웨인의 파티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상처를 입는 족족 새살이 차오르던 트롤도, 산드라의 검기에 베이자 더 치유되지 않았던 것.


전투가 끝나자 하유성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것이 혹 검기가 맞소?”


“검기···? 아, 마나블레이드 말하는 거구나. 맞아요. 같은 걸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것 같소. 3레벨에 오르면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오?”


“음, 아뇨. 보통 마나블레이드는 전사의 길 4레벨 이상의 기사들이 능숙하게 사용해요. 저는 3레벨에 올랐을 때 얼마간 힘을 모아서 잠깐 뽑아낼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거고.”


“나는 육체 강화 쪽이라 쓸 수 없다네. 같은 전사의 길이어도 마나블레이드는 검술을 달인의 경지까지 연마한 기사들이 주로 사용하지. 산드라는 레벨에 비해 검술의 경지가 높아서 벌써 사용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드웨인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산드라는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검술과는 달리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 듯했다.


두 사람의 말에 하유성은 구체적인 목표를 잡을 수 있었다.


‘4레벨. 무조건 거기까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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