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아이돌이 환생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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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량™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26
최근연재일 :
2024.08.3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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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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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2화



HP 엔터테인먼트.

약 10년 전, 서울의 작은 사무실에 HP엔터가 세워졌다.

당장 데뷔시킬 인재도, 든든한 자본력도, 심지어는 인재를 키워낼 연습실도 뭣도 없었다.

대형 기획사 매니저로 입사해서 실력을 인정받아 실장 자리까지 오른 권혁필이 무작정 독립해서 차린 회사라는 점밖에,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도 없었다.

그랬던 HP엔터에서 처음으로 보이그룹 하나를 론칭했다.

1호 연습생이었던 구진우를 중심으로 구성된 그룹, ‘플레어(FLare)’.

신생 기획사에서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이라니.

잘 될 리가 만무했지만, 온 우주의 좋은 기운만이 맞물렸는지 플레어는 제대로 터졌다.

당대, 아니 역대 최고의 아이돌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신생 기획사였던 HP엔터를 단숨에 3대 기획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분명 그랬는데.”


주연제는 한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이, 일 층에 구내식당이 새로 들어온 건가?”


아니. 그럴 리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1층뿐만 아니라 3층까지 웬 소갈비 음식점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보였다.

어느 회사가 구내식당에다 회사 건물 세 층을 통으로 내주냐. 그것도 고깃집으로.


“어? 어디 간 거지?”


고깃집 위로 4층부터는 건물 외관과 달리 각종 간판이 덕지덕지 즐비하게 붙어있다.

그런데 우리 회사 간판이 없다.

건물 가장 꼭대기에 ‘HP’라고 멋지게 붙어있던 그 간판이 없다.


“······뭐야 대체.”


애써 침착해 보려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가 도저히 숨겨지지 않았다.

서울의 단칸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하여 강남 압구정의 노른자 땅에 세운 11층짜리 빌딩.

플레어의 리더이자 주요 멤버였던 구진우. 그러니까 과거의 나.

내가 쌓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건물이 지금.


“딴 놈들 차지가 되어 있어······?”


아무리 눈알을 씻고 찾아봐도 눈깔을 부라리며 몇 번을 쳐다봐도 HP의 H자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설마 망한 거야? 우리 회사가?



* * *



10년.

아무리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라고 해도, 고작 10년 만에 이렇게 모든 게 바뀌어도 되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지 고작 10년 흐른 건데.

이제는 구사옥이 되어버린 건물 근처의 PC방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주연제가 인터넷 창을 들락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쪽 업계가 워낙 변화가 빠르다고는 하나.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상황이 다 뒤바뀐 이 심정을 누가 알까.

나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가요계 동료들은 지금 각자 소속사의 이사급 자리에 올라있다.

꼭 본사의 이사가 아니더라도, 레이블 하나씩들을 맡아 후배들을 프로듀싱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허.”


기억나는 동료들 이름 몇 개를 검색해 보다가 어이없는 근황에 잠시 멈칫했다.

얘는 계약 기간만 끝나면 당장 회사 옮길 거라더니.

술만 마시면 회사를 씹어대던 전 직장 동료가 지분을 많이 받긴 했는지, 아예 ‘선생님’ 소리를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후배들을 트레이닝시키고 있다.


“주문하신 라면 나왔습니다.”


때마침 알바생이 들고 온 라면을 쟁반째 받아서 책상 한쪽에 밀어두었다.


“아, 감사합니다. 저 혹시 종이나 메모지 한 장만 받을 수 있을까요?”


[구진우]


전 직장 동료들의 이름을 지우고 ‘구진우’를 검색창에 적었다.

댓글이나 대중들의 반응을 항상 체크해두는 타입이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검색하던 이름 석 자가 이렇게나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출생 | 199X.03.01]

[사망 | 201X.02.29]

[소속그룹 | 플레어]

[소속사 | HP엔터테인먼트]

[작품 | 곡, 앨범, 공연, 방송]


제일 처음으로 뜬 건 간단한 신상이었다.

10년도 더 전에 찍은 앳된 프로필 사진이 보였다. 고작 하루 다른 사람 얼굴로 살아봤다고 벌써 전생의 얼굴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진 옆으로 생년월일과, 죽은 뒤에 새로 업데이트됐는지 사망 일자까지 적혀 있다.

이렇게 마주하니까 새삼 죽은 게 실감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 몸으로 내 이름을 검색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플레어 구진우 사고사··· 경찰 “장비 결함 조사중”]

[경찰, 구진우 사망 “단순 조명 장비 결함으로 밝혀져”]


다음으로 뉴스 탭을 최신순으로 정렬하자 역시나 그날 사고에 관한 기사들이 즐비했다.

뭐, 이것마저도 죄다 10년 전에 써진 오래된 기사들이긴 하지만.

그중에 적당히 하나를 클릭했다.


[X회 한국 대중 음악상(이하 ‘한대음’)에서 발생한 구진우(23) 사망 사고에 대해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으나, 단순 조명 장비 결함으로 밝혀졌다. 이에 한구윤(45) 총괄 책임자는······.]


그 후로도 몇 주기 해가며 ‘구진우’를 추모하는 기사가 몇 개씩 꾸준히 올라왔었다.


“음.”


기사 몇 개를 더 읽어봐도 딱히 별다른 감흥은 들지 않는다.

아, 그날 내 머리에 맞았던 게 조명이었구나, 하는 정도.

시간이 지나 아까보다 면발이 살짝 풀어진 라면을 입에 욱여넣었다. 입안을 가득 채운 면을 씹어 삼키며 검색창에 적힌 이름을 지웠다.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현실을 회피하던 시간은 이제 끝났다.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HP 엔터테인먼트]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가지런히 입력하고 조심스럽게 검색 버튼을 클릭했다.


“떴다.”


그럼 그렇지. 우리 회사가 아주 망했을 리가!

아예 회사 자체가 없어져 버린 건 아닌 모양인지, 뭔가 나오긴 나온다.

‘HP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고 뜰까 봐 얼마나 쫄리던지.

누구는 자기네 회사 이사씩이나 하는 판국에, 누구는 회사가 증발했을까 봐 걱정이라니.

지금 이게 맞나 하는 개탄스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검색 결과를 찬찬히 살펴봤다.


“이게 뭐야.”


마음을 진정시킨 지 3초도 채 안 됐는데.

홈페이지 주소창 밑으로 보이는 이게 지금······ 회사 주소라고?


“경기도 XX시 XX길······.”


내심 이보다 더 좋은 신사옥으로 이사한 건 아닐까 하고 남아있던 일말의 기대조차 산산이 부서졌다.

그냥 망한 거다. 깔끔하게. 시원하게.

그러니까 대체 왜!

서둘러 ‘3대 기획사’도 검색했다.

팬들한테는 이렇든 저렇든 어디든 간에 마음에 안 드는 점투성이인 회사일 수 있다.

그러나 연예인들 사이에선 다르다. 연예인들, 특히 아이돌들 사이에선 자신의 소속사가 어디인지, 어느 급인지가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명에 관심 없는 일반 대중들은 기획사 이름으로 그들을 인식하고 줄 세우곤 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건 정말 자존심이 걸린 일이라고.


[3대 기획사 어디라고 생각함? (58)]

[ㅈㄱㄴ]


활동 당시 눈에 익은 연예 커뮤니티 이름과, 내 궁금증을 단박에 해결해 줄 적절한 제목의 게시글이 보였다.


- HIT YU HEX

└ ㄱㅅㄱㅅ

- 히트, 유우, 헥스

- 엥 HIT YU HP 아님? HP는 왜 뺌?

└ 엥 언제적 힢이냐

└ 헥스는 언제부터 헥스냐

└ 나 찐 머글인데 헥스 맞지 않아?

└ 업계 관계잔데 힢은 요즘 쳐주지도 않음ㅋㅋ

└ 인증 좀

└ hp 플레어 빼고 뭐 있음?

└ ㄹㅇㅋㅋ

└ ‘그 플레어’도 이제는 해X되지 않음?

└ 아 X체?ㅋㅋㅋㅋㅋ

└ ㄴㄴ 공식적으론 해체 안 함

└ 네 다음 활동 중단~


“허!”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뭐지. 기가 찬다.

3대에서 이름이 빠진 것도 모자라 조롱까지 받는 상태라고?

연예 전문 커뮤니티이다 보니 분위기가 다소 과열된 걸 감안하더라도 대다수의 인식이 이럴 것이다.


“HEX는 또 뭐야?”


HP가 빠진 것보다 댓글에서 계속 거론되던 HEX의 존재가 더 신경 쓰였다.

HP가 빠질 수는··· 없지만 있지.

그렇다면 최소한 그 밑에 있던 Z0엔터나 지구엔터 정도가 차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하지만 동료들이 있던 곳이니까 축하해줄 수도 있었다.

근데 갑자기 HEX?

아무리 떠올려봐도 내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듣도 보도 못한 소속사 이름인데.


- 할민데 3대에서 hp 빠진 거 진짜 속상하다

└ 22

└ 333 나 때는 힢이 다 씹어 먹었었다구

└ ㅇㅈ ㅈ소의 기적이었는데


그래도 가끔가다가 HP엔터가 3대였던 시절을 기억하는 댓글들도 눈에 띄었다.

너무 소수일 뿐, 대다수의 반응은 이렇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댓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관이라 대체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다.

서둘러 스크롤을 더 내렸다.

그리고 몇 개의 댓글을 더 읽고 나서야 원하는 대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 HP는 구진우 죽고 플레어 활중하면서 망하지 않음?

└ ㅁㅈ 플레어 후배 여돌 남돌 다 망함

└ 권혁필 ㄹㅇ감다뒤

└ 2 구진우 때나 삼대였지


“······.”


아 나였어?

온종일 조롱 섞인 반응들로 머릿속에 가득 찼던 분노와 궁금증이, 한순간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 착 가라앉았다.

도대체 회사가 망한 이유가 뭔지 찾자 하니 내가 죽어서란다. 내가.


“왜······.”


왜냐고 묻기엔 이쪽 생태계를 너무 잘 꿰고 있어 도저히 징징거릴 수가 없다.

그룹 전체를 견인하던 주력 멤버가 빠진 아이돌 그룹의 운명은 빤하다. 그걸 내가 놓치고 있었다니.


“······혁필이 형.”


왠지 오랜만에 입에 담아보는 듯한 낯간지러운 느낌에 괜히 입안이 까끌거렸다.

내 청춘을 다 바친 그룹은 공중분해 됐다.

은혜 갚겠다고 발바닥에 불나게 온갖 스케줄들을 다 소화해 가며 키워낸 회사는 쪼그라들다 못해 소멸 직전이란다.

대체 나를 왜 살려 놓은 거지. 어차피 좋은 꼴도 못 보는데.

차라리 깔끔하게 죽었으면 어련히 잘 살다 오겠지, 넘길 수 있었잖아.

그 순간 생각이 스쳤다.


“한 번 더 하면 되지.”


서둘러 켜두었던 인터넷 창을 하나만 남기고 전부 지웠다.

‘HP엔터 오디션’

검색창에서 닥치는 대로 정보를 찾았지만, 더 이상 오디션을 열지 않는지 관련 게시글은 전부 몇 년은 더 된 것들뿐이었다.


“비공개나 학원 오디션 같은 것도 없나.”


예전엔 그런 걸로도 후배들이 꽤 들어왔었는데.

그렇게 한참을 모래사장 같은 인터넷에서 모래알 한 줌 분량의 정보를 찾아다녔다.


“찾았다.”


[HP 엔터테인먼트의 마지막 보이그룹!]

[그 마지막 멤버에 지금 바로 도전하세요!]

[일시 : 202X년 XX월 XX일 (일) 14:00]

[장소 : 경기도 XX시 XX길 XXX]


그 순간 내 상황과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공고 하나를 발견했다.

작년도 이미지가 아닌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좀 아까 종이쪽지에 적은 사옥 주소 밑에 오디션 날짜와 시간을 받아 적었다.

오늘이 일요일이고 오디션이 토요일이니까, 딱 일주일 남았다.


“일주일이면 충분하지.”


내가 멀쩡히 살아 돌아왔는데, 누구 마음대로 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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