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아이돌이 환생을 숨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서한량™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2 17:26
최근연재일 :
2024.08.31 21:5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4,681
추천수 :
270
글자수 :
149,987

작성
24.08.04 22:50
조회
293
추천
11
글자
11쪽

3화

DUMMY

3화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강남 노른자 땅에 세운 11층짜리 건물은 대체 어디다 팔아먹고 이런······.

도색이 군데군데 벗겨져 한눈에 봐도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건물을 올려다봤다.

고개를 높이 쳐들 것도 없다. 3층짜리 건물이라.

이 정도면 오디션 보러 왔다가도 데뷔 이후의 앞날이 걱정돼서 돌아가겠는데.


“이런 미친.”


설마 간판만 떼서 갖고 온 거야?

지난주 압구정에서 열심히 찾았던 HP 간판이 여기 붙어있다.

건물 외관과 전혀 매칭되지 않는 세련된 간판 모양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현재 시간 오후 1시 30분.

오디션 시간까지 30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한 참이라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포 용지에 인쇄된 화살표를 따라 들어온 1층 대기실엔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헤드폰을 낀 채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춤 연습을 하는 사람, 발성 연습을 하며 목 푸는 사람.

별다르게 특별할 것도 없는 중소 기획사의 오디션장 분위기 같다.

이곳이 HP엔터라는 점만 빼면.


“예전엔 대기실도 세 개였는데.”


주연제가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비공개 오디션의 경우다. 비정기적으로 열었던 비공개 오디션은 매번 대기실을 세 군데로 나눠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정기적으로 열리던 공개 오디션은 또 어땠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열었던 공개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들로 건물 외벽을 크게 몇 바퀴 두르고도 남았고, 그 기이한 모습을 방송국에서 취재하기도 했다.

다 플레어(FLare)가 잘 나갔을 때 얘기지만.


“아이고, 우리 신세야.”


지난주에 HP엔터가 망한 데에 나의 죽음이 가장 크게 일조했다는 사실을 보게 된 후로, 멋대로 망해버린 회사에 함부로 화도 못 내겠다.

구석에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목만 축이고 있는 주연제의 모습에, 대기실 안 사람들의 경계 어린 시선이 슬쩍 쏠렸다.


“······.”


어차피 한 명만 뽑겠다고 사전에 공지한 오디션.

이 공간에 있는 모두는 경쟁자이자 예비 탈락자다. 당연히 내가 붙을 거거든.

진짜 잘하는 놈들은 굳이 여기까지 오디션을 보러 올 리가 없다. 대형 기획사를 찾아 서울로 가지.

물론 이런 곳에 숨은 원석이 있을 수도 있다.

미처 발견되진 못했지만 살짝 다듬기만 하면 크게 될 원석이. 과거의 구진우처럼.

하지만 HP한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원석이 아니다.

키워낼 재정 상황도······ 안 되어 보이고, 자라기까지 기다려줄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렇다면 찾는 건 무조건 완성형.

주연제는 어젯밤 자신의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해 본 데이터를 떠올렸다.


[외모 : B+]

[보컬 : A+]

[댄스 : B]

[끼 : S]


주연제는 살짝 쳐진 눈매가 부드러운 인상을 주며 적당히 준수하게 생긴 편이다.

지난주에 미용실에서 조금 길었던 머리를 살짝 쳐내고 나니 한결 더 깔끔해진 것 같기도 하고.


'외모야 뭐.'


데뷔하면서 관리받으면 충분히 가꿔갈 수 있는 부분이라 문제는 실력이다.

보컬은 전생에서의 실력을 S 정도로 평가한다면, 이번 생은 A+ 정도.

내가 이 몸에 들어온 이상 성대가 똑같을 순 없기에 발성법이나 보컬 연습을 다시 해야 한다고 느껴졌다.

특히 전생의 음역대를 편안하게 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춤이었다.

주연제 이 자식은 살아생전에 공부만 했지, 몸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뇌에서 보내는 명령을 몸의 근육은 전혀 따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연제님 들어오실게요~”


때마침 문이 열리고 이전 참가자와 함께 직원 한 명이 걸어 나와 이름을 불렀다.

직원을 따라 들어간 오디션장 안에는 긴 책상이 놓여 있고, 가운데에 권혁필이 앉아 있었다.

혁필이 형.

안 본 새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팍 늙었다. 형만 10년이 아니라 30년은 지난 줄 알겠다.

오른쪽으로는 예전부터 회사에 있던 보컬 트레이너 형이 앉았고, 왼쪽으로는 앳된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옆에 앉은 앳된 남자는 얼굴을 처음 보는데. 일반 직원은 아닌 것 같고.


‘데뷔조 리던가.’


그때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 놓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직원이 말을 걸었다.


“카메라 테스트도 함께 진행할게요. 괜찮죠?”

“네,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카메라 보면서 간단한 자기소개 한 번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름은 주연제고, 나이는 스무 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간결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곧바로 사전에 제출한 MR 음원이 옆에 놓인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


전주만 듣고도 권혁필의 어깨가 움찔하며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왜 이제서야 나타난 거야

너란 걸 난 알았어

난 한순간에 널 알아봤어


‘됐다.’


일주일 동안 연습한 성과가 이제야 나타나는지, 지금껏 연습한 버전 중에 가장 만족스럽게 뽑혔다.


“······!”


첫 음을 순조롭게 뱉자, 이번엔 권혁필 왼쪽의 남자 어깨가 미세하게 흠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15년도 더 전에 유명했던 노래로, 시청률 50%를 넘은 인기 드라마의 OST였던 이 곡은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의 싸X월드에서 심금을 울리는 이별 글귀와 함께 흘러나오곤 했다.

물론 유명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첫 소절의 첫 음부터 높다. 뒤로 갈수록 당연히 더 높아진다. 원곡자도 라이브는 가끔만 한다고 할 정도로 높다.

그래서인지 노래 좀 한다 하는 수많은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쪽팔렸다는 후기가 당시 인터넷상에 넘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곡은 과거 구진우의 오디션 곡이기도 했다.


- 내 안의 널

비워내고 또 지워냈어

미워하려고

노력도 해봤어 근데 넌 왜-


신중하게 음을 쌓아 올라가다 이 곡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음이 나왔다.

고음을 보여줄 때 여러 기교가 있겠지만, 지망생 신분으로 오디션을 보러 왔을 때 가장 눈에 들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정확한 음정을 찍어내는 것.

약간도 떨어지거나 올라가서는 안 된다. 기교를 섞지 않고 정확한 음정을 정직하게 찍어내야 깔끔하게 잘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이건 권혁필과 저기 앉아 있는 트레이너 형의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다.


- 원망 섞인 말은 끝내 삼켜 나

잊지 못했다고

지우지 못했다고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


노래는 브릿지를 지나 점점 마지막 후렴구에 접어들었다.

카메라 너머로 앉아 있는 세 사람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된 것 같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마지막 음정까지 정확하게 갈무리했다.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세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아, 아 예. 잘 들었습니다.”


권혁필이 서둘러 인사를 받았다.


“음, 주연제 씨? 보컬은 배운 지 얼마나 됐어요?”


보컬 트레이너가 펜을 돌리던 걸 멈추고 입을 열었다.


“혼자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트레이너 형이 가장 좋아하던 정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괜히 어디서 좀 배웠다 하면서 이상한 쿠세나 들이는 것보다,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백지상태가 가르치기엔 더 낫다고 종종 얘기했었다.

테크닉이야 가르치면 되는 거고, 사람이 타고나는 음색이나 성대는 재능의 영역이라 갈아 끼울 수 없는 거니까.


“발성도 좋고 음색도 좋아. 심지어 딕션이랑 감정도 좋아.”


역시나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에 놓인 종이에 메모하며 중얼거렸다.

다음으로 입을 연 건 앳된 남자였다.


“카메라 앞에서 잘 안 떠네요?”


오늘 셋 중에 나를 가장 면밀히 뜯어 살피더니, 딱히 긴장감 없는 듯한 모습을 캐치했는지 질문이 다소 날카로웠다.


“카메라 익숙해요?”

“······떨렸는데요.”


오랜만에 만난 형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데 떨릴 리가 있겠냐···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속으로 삼켰다.

결국 살짝 쭈뼛거리며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서야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다 내게 할 말이 더 이상 없는지, 입을 꾹 다문 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권혁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권혁필은 수많은 눈들이 자신만을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너무 비슷해.’


사실 선곡부터 깜짝 놀랐다.

전주를 들은 직후엔 구진우의 오디션 영상이나 곡명이 과거 유출된 적이 있었나를 떠올리기 바빴다.

그게 아니고서야 15년도 더 된 저 곡을 갑자기?

그러나 첫 소절을 듣고 나선 다른 의미로 더 혼란스러워졌다.

음색과 창법, 그리고 특유의 분위기. 말로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을 도저히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권혁필은 자신이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한때 ‘스타 메이커’라고 불리던 전성기 시절의 오감이, 10년 전을 끝으로 죽어버린 자신의 촉이 말해주고 있다.


‘놓치면 후회한다.’


더 깊게 고민할 자시고 할 것 없이, 권혁필이 드디어 입을 뗐다.

그가 과연 침묵 끝에 무슨 말을 할지 오디션장 내에 있는 모든 직원의 이목이 쏠렸다.


“······어디 계약된 곳은 없죠?”

“예?”

“당장 계약서부터 썼으면 좋겠는데. 계약에는 문제없죠?”

“아니, 저 아직 춤도 안 보여드렸는······.”

“바로 데뷔조에 넣어줄게요. 아니, 원한다면 바로 데뷔 시켜줄 수도 있어요.”

“······.”


내가 당연히 붙을 거라고,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오긴 했지만, 이런 상황까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사, 사장님···?!”

“그럼 대기 중인 다른 참가자들은 어떻게···!”

“최소한 나머지 참가자들도 다 보시고, 내일 합격 발표를 하시는 게···!”


절차를 깡무시하는 권혁필의 깜짝 발언에 놀란 직원들이 옆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다 말고 다급하게 불렀다.


“다 돌려보내.”


그러나 그 다급함이 권혁필에겐 닿지 않았다.

아니, 권혁필도 지금은 다른 의미로 애가 닳고 다급하긴 마찬가지다.


“주연제 씨, 우리랑 계약서 씁시다. ···빨리.”


작가의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아이돌이 환생을 숨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 공지 (24.08.21 수정) 24.08.13 116 0 -
30 30화 +1 24.08.31 61 10 11쪽
29 29화 +1 24.08.30 64 8 11쪽
28 28화 24.08.29 61 9 11쪽
27 27화 24.08.28 68 8 11쪽
26 26화 24.08.27 78 9 11쪽
25 25화 24.08.26 85 8 11쪽
24 24화 24.08.25 89 7 11쪽
23 23화 24.08.24 91 9 11쪽
22 22화 24.08.23 90 7 11쪽
21 21화 24.08.22 101 6 11쪽
20 20화 24.08.21 114 8 12쪽
19 19화 24.08.20 114 8 11쪽
18 18화 24.08.19 121 8 11쪽
17 17화 24.08.18 122 8 11쪽
16 16화 24.08.17 126 8 11쪽
15 15화 +1 24.08.16 134 8 11쪽
14 14화 +1 24.08.15 143 10 11쪽
13 13화 24.08.14 155 8 11쪽
12 12화 24.08.13 164 9 11쪽
11 11화 24.08.12 169 8 11쪽
10 10화 24.08.11 170 9 11쪽
9 9화 24.08.10 171 9 11쪽
8 8화 24.08.09 195 8 11쪽
7 7화 24.08.08 214 9 11쪽
6 6화 24.08.07 217 11 11쪽
5 5화 24.08.06 241 12 11쪽
4 4화 24.08.05 255 12 11쪽
» 3화 24.08.04 294 11 11쪽
2 2화 24.08.04 344 1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