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먹주작겜 빌런 독재자의 세계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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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그림/삽화
아카루
작품등록일 :
2024.08.04 14:5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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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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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시 한국으로 (3)

DUMMY

한우준은 형을 바라보며, 지난 날 밤을 다시 한 번 회상했다.


불과 여섯 시간 전.


갑작스럽게 이상한 초능력을 쓰며 그를 덮친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의 환자.


-[암습]!

-[화염 정령의 가호]

-흐겍!

-...이게 무슨?


다행히, 본능적으로 발현한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힘.


방어 스킬.


그것이 그를 살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에, 밤 새 수많은 그가 아는 스킬들을 시험했다.


위키를 키고 그의 직업이었던 화염술사의 스킬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한우준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수능을 겨우 하나밖에 틀리지 않았으며 유수한 인재들이 모인 의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한 이력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하루 만에 스킬과 포스를 제어하는 법도 거의 완벽히 터득할 수 있었다.


물론 머리가 좋기만 해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이거··· 그냥 쉬운데. 설마 게임을 플레이하기만 했으면, 이 능력이 생기는 건가?


애초에 그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던 능력이 갑자기 생긴 것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쉽고 강한 힘이었다.


이내 아침이 되었다.


믿기 힘든 뉴스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환자도,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멍하니 뉴스를 본다.


초능력자들의 등장.


미국 대통령의 암살.


무너진 북한 평양의 모습과 자기가 이제 북한의 지배자라고 외치는 기괴한 인간.


그 뉴스를 보고 났을 때, 한우준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의 형이었다.


한우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한우준의 유일한 형제.


서른 살이나 처먹고 취업은 커녕 꼬박꼬박 용돈을 받아가며 밥을 축내고 있는 방구석 폐인.


그가 어릴 적, 억지로 시켰기에 따라갔다가 좀 머리가 굵어지자마자 그만두었던 게임.


월드 오브 이그드라실이 한우준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딱 201레벨만 찍고 접었었는데.


여기까지가 프롤로그니까 이것만 넘기면 재밌다기에 해 보았었다.


그 중 80%는 한우준이 아니라 한우현이 대신 플레이 했었지만, 마지막 두 번은 한우준이 직접 사냥해 찍었다.


한우준이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때였다.


하지만 그 뒤로는 오히려 더 재미가 없어졌기에 그만두었다.


어차피 명목상만 한우준의 것이었지 실제로는 거의 한우현이 쓰는 계정이었다.


-그 놈의 게임! 대체 언제까지 할 거야! 대학은 그렇다 치고 취업, 아니면 알바라도 해야지!

-...몰라.


하지만 어쨌든 그가 그만둔다고 하며 너도 정신 좀 차리라고 일갈을 하자, 한우현도 부끄러움을 아는지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우준의 목숨을 구했다.


-형을 찾아가야 해. 분명 형도, 초능력자··· 게임 캐릭터의 스킬을 쓸 수 있게 되었을 거야.

-씨발, 3억이라고? 대체 어디서 그런 돈이 나와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의 형은 그가 찾아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가 말하는 잔소리도 싫어했다.


한우준 또한 굳이 싫다는 형을 억지로 찾아가지 않았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생활비 지원으로 그렇게 생색을 내기에도 귀찮았다.


병원 일만 하기도 바빴고.


-방에 있기는 한 건가? 아니, 그 전에. 가만히 있기는 한 건가...? 뭔가 큰 일을 벌인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다급히 찾아갈 이유가 생겼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거금과, 분명히 초월적인 초능력을 각성했을 한우현.


둘의 연관성이 너무나도 의심스러웠으니까.


“형···? 형이 맞지?”


회상을 끝낸 한우준이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얼굴, 몸매, 분위기부터 태세, 느낌까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지만.


이 시간에 이 방에 있을 사람은 객관적으로 형 밖에 없었다.


“...성기사.”

“그래, 맞아. 성기사. 내 본 캐릭터지.”


한우현 또한 그에 답했다.


머리카락 끝이 살짝 붉은 빛으로 물든 것 외에는 별로 변하지 않은 동생을 보았다.


“그, 별 일 없어서 다행이네. 아니, 아니지. 별 일 없는 건 아닌데··· 그러니까.”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나도 막 상황을 파악했으니깐.”

“...약은? 잘 먹고 있어? 말투가 왜 그래?”


한우준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한우현은 그제서야 하나를 자각했다.


2년 전의 그 자신은 온갖 정신병을 달고 살았던 폐인이었다. 그래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고 있었다.


물론, 뇌가 이그드라실 포스에 의해 재조립되며 그것은 상당 부분 날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문제로 우울증만은 몇 달 동안 계속 겪었지만.


그 또한 무수한 전투와 갈등을 겪으며 극복한 지 오래다.


“물론, 잘 먹고 있지. 오늘은 그 덕분에 상태가 매우 좋아. 씻은 듯이 나은 것 같아. 다 네 덕분이야, 우준아.”


유려한 미성이 강렬한 의지와 함께 한우현의 성대를 타고 흘러나왔다.


"다, 내 덕분?"


그 자신감이 너무나도 강했다. 목소리도 너무 조리 있고 강력했다.


동생이 보기에 그 말투는, 20년을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한 우울증 환자의 말투가 아니었다.


“...씨발, 뭐야. 너, 한우현 아니지?”


한우준이 얼굴을 굳히고 공격적으로 대답했다.


그가 기억하는 형의 태도, 말투, 성격과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달랐기에.


한우현은 아차 했다.


방금까지 만나고 온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한우현이 처음 만난 플레이어였다.


그래서 과거의 그와 비슷하게 행동한다는 등의 일치성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동생한테도 그냥 빠르게 가족을 부탁하고 자기가 할 일을 설명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과거의 그와의 너무나 큰 괴리감. 의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한우현이 맞다.”

“누가 바보로 보이냐? 이 방에 살던 사람. 어떻게 했어? 넌 누구야? 돈도 네가 보낸 거냐?”


순식간에 한우준의 주위로 화염구가 화르륵거리며 나타났다.


한우현은 속으로 감탄했다.


게임은 5년 전에 접은 저레벨 유저가 그의 동생이었다.


보아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킬을 자유자재로 쓸 만큼 능숙해진 모양이다.


역시 동생은 똑똑했다.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대답해! 3억, 대체 무슨 속셈이냐! 형은 어떻게 한 거야!”


한우현은 빠르게 기억을 뒤진 끝에, 매우 강력한 증거를 찾아냈다.


동생이 그가 친형 한우현임을 확실히 수긍할 근거.


“재작년에, 네가 엄청 화를 냈었지. 그 때는 사과하지 못했다만,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야겠어.”

“...왜? 뭘? 왜 사과하는데?”

“의사 면허 도용해서 대출 받으려 했던 것 말이야.”

“...하.”


월드 오브 이그드라실에서는 햇살론이라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대출을 잔뜩 받아서 사냥용 아이템을 맞춘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냥을 해, 골드를 열심히 채굴한다.


골드를 충분히 채굴했으면 그것으로 대출을 갚는다.


그럼 남는 것은 사냥용으로 훌륭하게 맞춰진 아이템들 뿐.


-이 글 보니까 이그드라실 마렵네...

-난 이그드라실은 안하는데 최근 이벤트도 하고 템값도 싸다고 하던데

-초기자본 1000만원 정도만 넣으면 최저시급 벌면서 유튜브 넷플릭스 보는 거잖아

-이정도면 나름 할만하지 않나?

-나중에 템도 다 회수 가능하고 좋을 거 같은데···


당연히, 미친 소리였다.


어지간한 게임 폐인이라 해도 게임머니 채굴만으로 대출금을 갚기는 어렵다.


저딴 개소리를 진짜로 시도했던 유저들은 죄다 한강으로 떠났다.


한우현도 저 헛소리를 진짜로 믿고 그대로 시도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잠깐 장비를 교체하려던 중에, 골드의 유동이 막혀서 대출을 시도했던 것일 뿐.


하지만 30대 백수에게 나오는 대출 한도는 너무나 낮았다.


그래서 나름 나쁘지 않은 직업을 가진 가족의 명의를 빌리려 했다.


당연히, 즉시 병원으로 연락이 왔으며 식겁한 동생한테 들켜서 실패했다.


“...진짜야?”

“그래, 진짜로.”

“하.”


한우준은 뭐라 할 말이 많다는 듯 입을 우물거리다가, 입술을 다물었다.


“좀 늦은 사과라, 더 미안하다.”

“아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회귀 전의 한우현이라면 무언의 손짓과 표정을 전혀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가능하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과 집단의 갈등과 전쟁, 전투, 아귀다툼을 겪으며 얻은 안목이었다.


한우준이 보기에 한우현은, 지금 저 잘생긴 금발청안의 서양인이 정말로 그의 형이라는 것에 놀랐다기보다는.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대출 시도의 사과에 더 놀라 보였다.


“몇 번을 사과해도 모자라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 얘기하기에는 할 말이 많아. 할 일도 많고.”


안타깝게도, 한우현은 할 일이 많았다.


휴식을 넉넉하게 취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최소한의 회복은 되었다.


이제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가야 한다.


“할 말? 아니, 나도 많은데. 3억, 3억 뭔데? 대체 어디서 그런 돈이 난 거야? 무엇보다···”

“뉴스는 봤겠지? 세상에 플레이어 초능력자들이 날뛰고 있다는 거.”

“응? 응, 어.”


한우준이 살짝 멍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 한우준은 혼란스럽다. 많이 혼란스럽다.


원래 그가 예상한 형과의 만남과도, 대화와도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급히 형의 자취방을 찾으며 한우준은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의 형은 중증의 우울증에다가 피해망상에 절여진 인간이었다.


정말로 소극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형이, 해야 할 일?”


하지만 어쩌면, 비사회적인 성정이 반사회적인 성정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초월적인 수준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된 초능력자가 되었다면, 더더욱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랬을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찾아왔다.


한우준은 다시 한 번 한우현, 그의 형이라 주장하는 인간을 살펴보았다.


180cm를 넘어 190cm는 될 것 같은 키.


오똑한 코와 빛나는 푸른 눈.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신체비율, 날렵한 얼굴선과 몸매.


하얗디 하얀 피부색. 황금을 녹인 것만 같은 금발.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넘어갈 수 있었다.


대충 알아보니, 플레이어들은 죄다 몸이 레벨에 비례해 캐릭터와 동화되었다고 하니.


“너에게는 언제나 미안한 것들이 많았지. 이제 와서 사과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야.”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저 말투.


책임감, 의무, 간절함, 절망, 회한···


그의 형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태도.


“하지만 부탁할 것이 있어.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에 너에게 미루는 것이야. 미안하다”

“이 시국에 무슨 일을? 애초에 형은 백수인데.”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을 부탁해. 비록 네가 고 레벨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당분간 옆에서 지키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3억은 대체 어디서 난 거냐고!”

“걱정 마라. 문제 있는 돈이 아니니까. 내일, 내일 모든 걸 말해주마. 그 돈은 그 동안 내가 끼친 폐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야.”

“...형.”

“부탁한다.”

“...대체, 그 할 일이 뭔데?”


한우현은 대답 대신에 시계를 힐긋 보았다.


"시간이 없으니, 이따가 뉴스를 봐라."

"뭐? 잠깐만..."

"내일 보자."


아연한 동생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한국 최강의 빌런 플레이어들을 만날 시간이었으니까.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좋아요와 선작, 덧글을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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