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세상에서 각성해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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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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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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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내 동생은

DUMMY

벌컥.


“오빠!”


심율의 여동생이자 유일한 피붙이 심꽃님이,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의 문을 열고는 뛰쳐 나왔다.


타다다닷.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가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귀가한 것도 모자라 샥뗌에서는 보기 힘든 고급차에서 부축까지 받아가며 내리고 있었던 것.


심상치 않은 상황임이 분명했다.


“꼬, 꽃님아.”


꽃님은 어느덧 심율의 몇 발자국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눈 앞에서 심율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는 그만 굳어 버리고 말았다.


오빠의 머리 위에 감겨진 피에 젖은 붕대를 보고 만 것.


‘부, 붕대? 머리를 다친건가?’


“오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붕대는 왜 하고 있는 건데?”


“꽃님아..”


심율은 대답할 수 없었다.


두 눈을 뽑혔다고, 그래서 이제 앞을 볼 수 없다고.


차마 제 입으로 동생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훌렁.


호위병들이 대충 둘러 놓은 붕대가 순간적으로 풀려버린 탓이었다.


“헉.”


깜짝 놀란 심율이 양 손을 들어 제 상처를 가리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꽃님은 모든 것을 봐버린 뒤였다.


‘누, 눈이?..’


원래대로라면 오빠의 초롱초롱한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피범벅이 되어 버린 두개의 구멍만이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삭발한 머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꽃님은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오빠!”


동시에 오빠에게 와락 안긴 그녀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흑. 흐흑.”


“꼬, 꽃님아..”


“그만!”


한게츠가 남매의 대화를 방해하고 나선 것은 그때였다.


“지금 눈물나는 오누이 상봉이나 구경하자고 여기 온게 아니다.”


한게츠는 호위병들을 시켜 심율과 꽃님을 떼어 놓았다.


“여자 아이를 차에 실어라.”


“오, 오빠! 이, 이거 놔요! 왜 이러는 거에요, 지금?”


한게츠의 지시에 따라 호위병들은 꽃님이를 붙들고 차에 실으려 했다.


“하, 한게츠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꽃님이를 왜!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


당황한 심율이 허공에 대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최소한의 설명은 해줘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던 것일까.


차를 향해 걸어가던 한게츠가 심율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네 여동생은 우리와 함께 간다.”


“그, 그게 무슨 말씀···”


“오늘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고작 네 녀석을 집까지 바래다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느냐? 나는 바쁜 몸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지.”


한게츠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네 이쁘장한 얼굴을 본 순간 생각했지. 너와 똑 닮은 여자 아이가 있었으면 슈라크 님께서 참 좋아하셨을 것 같다고 말이야. 그런데 웬걸? 혹시나 하고 네 가족 기록부를 뒤져보니 적당한 나이의 여자 아이가 있더구나. 해서 직접 확인하러 온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몸소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온 것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구나.”


말을 마친 한게츠는 다시 몸을 돌려 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편 심율은


“그, 그게 무슨..”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슈라크가 좋아할만한, 나를 닮아 이쁘장하게 생긴, 적당한 나이의 여자 아이.


꽃님이의 나이는 열한살이었고, 누가 봐도 남매라 할 정도로 둘은 꼭 닮아 있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성노예?’


지금 꽃님이를 슈라크의 성노예로 부리기 위해 데려가겠다는 말인가?


순간 심율은 굘콧 성에서 봤던 한무리의 인간 아이들을 떠올렸다.


딱 꽃님이 나이 또래로 보였던 대여섯 명의 아이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빛에는 단 한줄기의 희망도 없어 보였다.


오직 절망만이 가득했다.


물론 이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다시 말해 바티아크인의 노예로, 거의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겨우겨우 목숨만 보존해가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의 눈빛은 다른 또래 아이들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의 유일한 피붙이이자 사랑하는 동생 꽃님이를 그런 곳에 보낼 수는 없었다.


“내 동생만은..”


심율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 한켠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끓어 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분노.


그것은 분노였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감정.


아니, 일부러 억눌러 왔던 감정이었다.


돌아가신 엄마는 심율이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항상 주의를 주곤 했다.


-율아. 너는 남들과 다르단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해.


너는 남들과 다르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된다.


그 사실이 들통나는 순간, 저 잔혹한 바티아크인들이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거다.


살아 생전 엄마가 입에 달고 살던 말들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말한 다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심율도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인간들과 달리 그는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마에 박혀 있는 저주의 표식, 쿠다가 있음에도 말이다.


단, 마음대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다룬다기 보다는 반응한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심율의 특정한 감정 특히, 강렬한 분노에 마나가 반응하는 듯했다.


엄마가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심율이 다섯살이 되던 무렵이었다.


하루는 갓난 아기때부터 가지고 있던 작은 담요를 아직도 입에 물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난 엄마가 아이에게서 담요를 강제로 빼앗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이가 볼 수 없는 곳에 숨겼다.


당황한 아이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래도 담요가 보이지 않자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아이 입장에서 담요를 잃은 것은 그저 물건 하나가 없어진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몇년 동안을 동거동락한 절친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상실감이었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점점 더 크게 그리고 거칠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아이의 상실감은 점점 분노로 바뀌어 갔다.


아끼는 것을 빼앗아간, 친구같은 존재를 사라지게 한 사람에 대한 분노.


울음을 그치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아이는 이내 무서운 눈으로 엄마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집 안 공기가 울리는가 싶더니 바닥으로부터 진동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진동에 의해 선반에 있던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깜짝 놀란 엄마는 결국 숨겨놨던 담요를 다시 찾아 아이에게 건넸고, 그제서야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멎자 진동도 잦아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엄마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마에 쿠다가 새겨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 아이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서, 설마..


짐작이 가는 곳은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 후로도 이같은 일은 몇번 더 벌어졌고, 결국 엄마는 아이에게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고심끝에 그녀가 꺼낸 고안이 그 사진이었다.


-율아. 이걸 보렴.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광활하게 펼쳐진 푸른 초원,


그리고 초원에 핀 꽃들과 그 사이를 날아 다니는 나비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 빛바랜 한장의 사진.


엄마는 이 사진을 아이에게 건네주고는 기분이 안좋아질 때마다, 화가 날 때마다 보도록 했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아이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연습을 했고, 결국 나중에는 사진이 없어도 푸른 초원을 상상하며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오늘,


심율은 엄마와 함께 이 방법을 연습한 이후 처음으로 마음 속에서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깊숙한 곳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파란 하늘을,


푸른 초원과 그 초원에 자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꽃님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켜서라도 말이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노출되는 것 따위는 지금 심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동생은.. 건드리지 마.”


심율은 마음 속에 끓어 오르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은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우우웅.


진동음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은 점점 더 커지더니, 이내 주변에 자라난 나뭇가지들이 흔들릴 지경에 이르렀다.


심율 역시 마나가 자신의 감정에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나를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이는 쿠다 때문이었다.


심율에게 있는 그 무언가로 인해 저주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그에게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었지만,


그 저주의 주문으로 인해서 마나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막혀 있었던 것.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한 분노에 울림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음?”


‘뭐지, 이 진동은?’


걸음을 멈춘 한게츠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공간을 울리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마나의 힘에 반응하여 생겨난 진동이라는 사실을.


주위를 살피던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심율이었다.


“서, 설마.”


‘저 녀석이?’


미간을 찌푸린 한게츠는 심율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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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쥬루오스 24.09.13 20 0 14쪽
29 28화 포탈이 뭔지 아세요 24.09.12 25 1 13쪽
28 27화 반드시 복수한다 24.09.11 27 1 15쪽
27 26화 한시간 준다 24.09.10 33 0 13쪽
26 25화 깔끔한 솜씨다 24.09.09 37 0 14쪽
25 24화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24.09.06 44 2 13쪽
24 23화 네 녀석의 운도 여기까지다 +1 24.09.05 50 0 11쪽
23 22화 제 손을 잡아요 24.09.04 53 0 14쪽
22 21화 수색대 24.09.03 62 2 12쪽
21 20화 청계산 입구 역 24.09.02 74 0 15쪽
20 19화 조건이 하나 있어요 24.08.30 72 3 13쪽
19 18화 일종의 던전인 셈이죠 24.08.29 78 3 13쪽
18 17화 이런 사진을 24.08.28 86 3 12쪽
17 16화 저 분이 정말 24.08.27 89 2 11쪽
16 15화 패기만은 인정해주마 24.08.26 95 1 11쪽
15 14화 안 아프게 해줄게 24.08.23 102 2 13쪽
14 13화 나 혼자 간다 24.08.22 111 3 13쪽
13 12화 언제까지 도망만 쳐댈거냐 24.08.21 125 3 10쪽
12 11화 살려주세요 +1 24.08.20 138 5 12쪽
11 10화 강남 24.08.19 153 6 9쪽
10 9화 겨우 너같은 애송이라니 24.08.16 170 8 14쪽
9 8화 그냥 죽여 버릴까 24.08.15 188 9 9쪽
8 7화 인간 따위가 감히 +2 24.08.14 199 12 10쪽
7 6화 쿠다가 24.08.13 217 11 11쪽
6 5화 꽃님아 +1 24.08.12 241 11 11쪽
» 4화 내 동생은 24.08.10 284 13 10쪽
4 3화 나약한 인간이여 24.08.09 305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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