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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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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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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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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명령권을 사용하려는 겁니다!

DUMMY

"네 생각에 나삼영 측에서 뭘 꾸미고 있는 것 같으냐?"


며칠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반응이었다.


"그전에 먼저, 뭘 확인하셨는지부터 알려주세요."

그래야 어떤 대답을 할지 정할 수가 있으니까요.


잠시 후, 할아버지가 기획실에서 받은 보고서를 내게 내밀었다.

보고서에는 경제 부총리와 재무부 장관의 동향과 지금까지 전략 기획실에서 확인한 내용들이 빠짐없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 금융실명제에 관해 거론해도 되겠는데.'


보고서를 꼼꼼하게 훑어보고 나니,

할아버지도 이제 어느 정도는 상황을 인지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제 생각에는 나삼영 대통령 측에서 금융실명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 할아버지도 김성재 실장도 그리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대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차명거래를 통한 자금세탁이나 불법 금융거래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나삼영 측의 기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금융실명제라는 거냐?"

"...네."

21세기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뇌물이나 범죄로 얻은 수익도 차명거래를 통해 몇 바퀴만 돌리면 얼마든지 깨끗한 돈으로 세탁할 수 있는 구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그룹의 회장인 할아버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고,

김성재 실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나삼영 대통령이 집권 후 바로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 내역을 공개했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데.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빌어먹을 놈, 제 재산을 공개했으니, 남들까지 전부 재산을 공개하라는 거군."


세세히 알진 못하지만,

대한 그룹의 총수인 만큼 할아버지 또한 차명으로 관리 중인 재산들이 상당할 것이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입법 과정에서 어떻게든 정보가 새어 나가기 마련인데. 대체 왜 숨어서 그런 일을 꾸미는 걸까요? 차라리 대놓고 하는 게..."

의문을 표하는 김성재를 향해 내가 짧게 대답했다.


"긴급명령권을 사용하려는 겁니다!"

"헉!"


예상치 못한 말이었던지.

김성재 실장이 헛숨을 들이켰다.


긴급명령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에 상관없이 제한할 수 있는 명령권이었다.

사실, 긴급명령을 사용할수록 독재자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에 군사정권 시절에도 그리 자주 사용되지는 않은 권한이지만,

금융실명제는 긴급명령이 아니라면 제대로 실행될 수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시행이 되기도 전에 사실이 알려지면,

차명으로 돈을 숨긴 이들이 어떻게든 다시 돈을 빼돌리려 할 테니까.


이제는 금융실명제를 완전한 사실로 받아들인 할아버지가 다시금 나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게 좋겠느냐?"

"비자금이 있으시다면, 현금으로 찾거나."

"찾거나?"

"해외에 있는 조세회피처로 옮기셔야죠. 그리고 재무 이사 건도 제가 말한 대로 처리해주시고요."

어차피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나면,

비자금을 만들고 싶어도 예전처럼 대놓고 만들지는 못 할 테니까.

·····



***



3개월 후,


"주식을 전부 매도하라고?"

"응, 조만간 한국에 큰 태풍이 몰아칠 거야."

"대체 무슨 일이길래 잘 오르고 있는 주식을 일부도 아니고, 전부 매도하라는 건데?"


에일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런 게 있어, 아직은 말해줄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최대한 현금을 확보해놓는 게 유리해."


나와 눈을 마주하던 에일린이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반색했다.


"혹시, 재벌들만 알고 있는 그런 정보인 거야?"


정확히는 재벌들도 모르는 정보지만,

에일린에게는 비슷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시간은? 당장 정리해야 하는 거야?"

"응.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바로 진행해."

"세이프 하베스트로 입금된 자금은 어떻게 처리할까?"


에일린의 물음에 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전부 해외로 이동시켜!"

"대한건설 측에서 돈을 찾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페이퍼 컴퍼니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 세이프 하베스트는 해외에 본사를 둔 건실한 사설 금융 기관이었다.

그래서 돈을 맡긴 의뢰인이 돈을 찾겠다고 하면, 곧장 돈을 내어주는 게 원칙이지만,

어차피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나면, 허무인(虛無人) 명의로 되어있는 자금들은 전부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대신해 대한건설을 맡은 장기석은 금융실명제가 시행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것 한 번 확인해봐."


비자금에 관한 대화가 끝나고 나자.

에일린이 서류 뭉치 하나를 내밀었다.


유레카 인베스트먼트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의 운용실적이 정리된 보고서였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에일린이 전해준 보고서의 첫 장을 넘겼다.


[자산운용보고서]

- 자산 현황

. 전기말: 3,000,000,000원

. 당기말: 5,873,730,000원

. 증감률: 95.8%

- 운용 경과

. 지난 운용 기간 동안 KOSPI는 +7.4%를 기록하여 연초부터 강세 흐름이 이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걸프전 여파로 시작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FRB)에서는 작년 9월부터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 기조를 이어 나가고 있으며, 이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

- 투자환경 및 운용계획

. 3분기는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 세계 자산 시장이 급등세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로 인한 경기과열이 예상되지만, 아직 양적완화의 초입인 만큼 최대한의 레버리지를 통해.....


10장이 넘는 보고서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렸다.

그것을 모두 보고나자.

월가의 전설이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에일린을 알던 시기보다 훨씬 젊을 때라 경험이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우려도 없진 않았는데.

전부 기우였던 것 같았다.


시황을 예측하는 능력이나 추진력 모두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러니, 콘트라리온을 그 짧은 시간만에 최고의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거겠지.'


"...응? 뭐라고?"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에일린이 멀뚱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아니,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투자해야한다는 거야?"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경제 규모가 선진국에 가까워진 한국보다는 개발 도상국에 투자하는 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예를 들면,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같은 곳 말이지?"


에일린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미국에서 시작된 양적완화를 등에 업고 무섭게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나라잖아."

"알고 있다니, 더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네. 그럼 투자처를 신흥국으로 옮기는 데 동의한 걸로 이해해도 되겠지?"

"아니, 나는 반대야."


분명,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본다면,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한국보다 더 적합한 투자처일지도 몰랐다.

이 두 나라 모두 미국이 본격적으로 돈을 풀기 시작한 지난 몇 년 동안 수십 배 이상 자산 가치가 폭등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축제를 영위할 기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다.


당장 내년에 채권 대학살 시기가 도래하게 되면, 저 두 나라를 포함한 신흥국들의 주가는 폭락을 면치 못할 것이고,

특히 멕시코는 미국발 투자자금이 빠져나간 여파로 IMF 국제 통화기금을 받는 신세로까지 전락하게 된다.

괜히 잘못 발을 들였다가.

발목이 잡히기라도 하면, 안 들어가느니만 못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위험이 덜한 한국에 투자하는 게 나았다.

금융실명제라는 거대한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한국에도 다시 큰 기회가 찾아올 테니까.


"신흥국 투자는 내년까지 보류해."

"대체 왜?"

"때를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니까."

"네 말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야?"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네가 말한 신흥국들의 주가가 이미 너무 많이 오르기도 했고, 괜히 지금 들어갔다가 제때 빠져나오지 못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어."


에일린은 내 주장에 수긍하지 못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보고서에도 적었지만, 지금은 미국발 양적완화의 초입이라. 최대한의 레버리지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시기라고. 이 같은 기회를 놓치는 것은 정말 멍...."

멍청한 짓이라고?


"내기할까?"


내기라는 말에 에일린이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에일린의 모습을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봤다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에일린의 모습은 그만큼 귀엽고, 매력적이었으니까.

과거의 나였다면, 저 모습에 한순간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더라도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진 않았고,

오히려 외모보다는 월가의 전설이라 불렸던 투자자와의 대결에 더 흥미가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한국을 맡고, 내가 신흥국에 투자해서 누가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지. 내기를 하자는 거지?"

"정확해."

"기간은?"

"6개월!"

"그런데, 내기에는 상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에일린은 나만큼 대결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넘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만큼 세계의 금융 시장이 나쁘지 않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런 에일린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이기면, 지금 네가 가진 유레카 지분 2%에 1%를 추가로 더해주지. 대신..."

"대신?"


지분이라는 말에 에일린은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것을 겨우 참으며,

내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내기에 걸린 상품이 컸으니,

자신이 지게되면 무엇을 줘야 할지도 궁금했을 것이다.


그런 에일린을 앞에 두고,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쓱쓱 무언가를 단숨에 써 내려갔다.


[내기 계약서]

장태준과 에일린은 각자 1년간 투자 성과를 토대로 더 큰 수익을 내는 이에게 아래의 보상을 제공키로 함.

1. 투자범위: ······

2. 투자기간: ······

3. 승자보상

- 에일린 승리: 유레카 지분 1%

- 장태준 승리: 20년 장기 근로계약


내가 낙서하듯 써 갈긴 계약서를 보더니,

에일린이 폭소를 터트린다.


"이게 뭐야? 이거 아무리 봐도 나한테 너무 유리한 내기 같은데? 설마 보너스를 이런 식으로 주려는 건 아니지?"

"편할 대로 생각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계약서에 사인하는 에일린의 모습에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건 나였다.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오랫동안 일만 하는 충성스런 일꾼이 되어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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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대한민국이 망할거라고는... +2 24.09.16 940 30 11쪽
42 모든 유보금을 달러로 +4 24.09.15 1,222 32 12쪽
41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잖아 +2 24.09.14 1,309 29 11쪽
40 단군이래 최대 호황 +3 24.09.13 1,365 29 11쪽
39 온라인 서점 사업 +2 24.09.12 1,456 33 12쪽
38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힘 +2 24.09.11 1,591 31 11쪽
37 근데 넌 표정이 왜 그래? +2 24.09.10 1,708 30 12쪽
36 다이아몬드 수저 +1 24.09.09 1,895 32 11쪽
35 그런 게 어딨어! +1 24.09.08 2,047 30 13쪽
34 등에 비수가 꽂히다 +2 24.09.07 2,042 42 12쪽
33 들으면 속상할 텐데 +2 24.09.06 2,097 34 12쪽
32 심장이 강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2 24.09.05 2,195 32 12쪽
31 나만 아니면 돼! +2 24.09.04 2,283 31 12쪽
30 포털사이트? 그게 뭔데? +2 24.09.03 2,344 31 12쪽
29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3 24.09.02 2,488 38 12쪽
28 교수님이 저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봐 +2 24.09.01 2,557 37 11쪽
27 태풍의 나라 개발자 이용식입니다 +2 24.08.31 2,569 37 13쪽
26 대체 이게 다 얼마야? +2 24.08.30 2,600 38 12쪽
25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2 24.08.29 2,691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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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무래도, 정황이 그렇습니다 +2 24.08.26 2,836 39 12쪽
20 할아버지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나? +2 24.08.25 2,876 45 12쪽
19 제가 투자 좀 할까요? +2 24.08.25 2,859 42 11쪽
18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3 24.08.24 2,795 44 11쪽
17 들으면, 깜짝 놀랄걸? +2 24.08.23 2,798 4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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