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부후엉- 부후우엉-
구름에 가려진 달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저녁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숲 속엔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을씨년스러운 적막을 깨고 있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 그 곳엔 나무로 만들어진 아주 작은 집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나무꾼들이 잠시 쉴 목적으로 만든 것 같은 이 자그마한 쉼터는 이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듯 여기저기 부서져 구멍이 뚫린 벽과 세월을 이기지 못해 내려 앉은 지붕, 관리되지 않아 덜컹 거리다 못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는 문이 장식처럼 어설프게 달려 있었다.
달을 가리던 구름이 지나가며 새하얀 달빛이 모습을 드러내자 무너진 지붕 틈 사이로 조그맣게 달빛이 쏟아져 내렸고,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이 작은 폐허에 어린 아이 두명의 인영(人影)이 있었다.
꼬르르륵
"누나 나 배고파"
언제 씼었는지 모를만큼 꾀죄죄하고 떡진 머리를 하고 있는 어린 소년과 소녀였다.
많아 봐야 10살, 11살 정도 되었을법한 소녀는 자신을 보채는 동생을 조금 더 자신의 품 쪽으로 끌어안았고, 보온이나 제대로 될지 의문이 드는 허름한 천쪼가리를 어설프게 엮어 만든 이불을 끌어당겼다.
"미안해 누나가 내일은 꼭 빵 얻어 올테니까... 조금만 참자."
"피... 그 말 어제도 했는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누나의 앙상한 손목을 봐서였을까
지크의 입이 삐쭉 튀어나왔지만 더 하고싶은 투정을 애써 삼켰다.
얼마전 자신에게 빵을 주고 샘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누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끽해봐야 자신보다 2살 정도 많은 누나가 더 배고플 것을 어린나이에 알고있는 지크는 침을 꼴깍 삼켰다.
"누나 난 크면 진짜 맛있는 음식 많이 먹을거야"
"어떤 음식 먹고 싶은데?"
"음... 내 머리만한 따뜻한 빵이 가득 쌓여있고, 고기가 가득한 수프를 물처럼 벌컥 벌컥 마실거야"
"맛있겠다. 그리고?"
"또... 음.... 커다란 닭다리랑 돼지고기를 구워서... 꼴깍'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던 지크가 침을 꼴깍 삼켰다.
"푸흡"
지크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던 노엘은 지크의 묘사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다행히 지크에게 소리는 들리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여기려던 찰나 지붕사이로 비추던 새하얀 달빛이 조금씩 변해가며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목격한 지크가 가리켰다.
"누나 이것봐! 레드문이야!"
힘없이 앉아있던 지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지크!"
헐레벌떡 지크를 쫓아 문 밖으로 나가자 펼쳐진 풍경에 지크와 노엘은 입을 크게 벌려 탄성을 쏟아냈다.
"우와아-"
새하얀 달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밤하늘과 붉은 달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더군다나 앞에 펼쳐진 큰 공터와 작은 샘물가 위로 쏟아지는 붉은 달빛은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그 때 지크의 머리에 무언가가 스친 듯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모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제발... 맛있는 음식 많이 먹게 해주세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고요한 숲 속 환경 탓일까 지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노엘이 미소짓는 와중
허공에 갑자기 커다란 붉은 빛이 맴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큰 형태를 띄기 시작했고, 그곳으로부터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쌀쌀할 법도 했던 밤 온도와는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노엘은 얼른 눈앞에 있는 지크에게 달려갔다.
본능적으로 둘은 매서운 바람을 등지고 서로를 의지한채 부둥켜 안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둘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채 서로를 부둥켜 안은채, 그저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이 재앙 같은 상황이 지나가길 속으로 한없이 빌었다.
풀썩-
무언가가 풀 위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노엘의 품 속에 있던 지크는 눈을 살짝 뜨고는 머리를 삐죽 내밀었다.
노엘은 그런것도 모르고 그저 눈을 꼭 감고 살려달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지크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더니 상황을 확인했다.
"누나 괜찮아! 누나!"
지크의 목소리를 듣고나서야 노엘도 어렴풋이 눈을 뜨고는 빛이 뿜어져나왔던 곳을 바라봤다.
언제 그랬냐는듯 잠잠한 하늘과 고요한 환경, 그리고 붉은 달빛
다만 아까와 다른게 있다면 빛이 뿜어져 나왔던 그 허공 아래에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
"누나 얼른와! 사람이야!"
지크는 얼른 달려가 쓰러져있는 사람을 살폈다.
쓰러져 있는 남자는 이곳 저곳이 검고 찐득찐득한 액체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지크가 손으로 그 액체를 조금씩 걷어내자 가려져 있던 부서지고 낡은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렇게 변하고 어둡게 변한 갑옷이었지만 그것을 보자 지크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이야기로만 전해들을 수 있었던 기사
번쩍거리는 갑옷과 검을 들고 나라와 가문을 수호하고, 정의를 위해 검을 휘두르며, 몬스터의 침략을 막는 기사들의 이야기
그 주인공인 기사가 바로 눈앞에 있어 지크는 두근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지크가 흥분감에 정신없이 탄성을 자아내고 있을 때 노엘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지크 잠시만"
"응?"
"흐읍-"
노엘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무언가 결심한듯 크게 숨을 들이키더니 남자의 코에 손을 갖다댔다.
미세하게 숨결이 느껴졌다.
갑자기 나타난 이 사람이 자신들에게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남자가 살아있는지부터 확인을 해야 했다.
어린 아이 답지 않게 노엘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노엘이 판단했다.
'행색은 그렇지만... 분명 기사라면...'
높은 사람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지크야 일단...음... 안으로 들어가자!"
"응! 근데 어떻게?"
"잠깐만"
노엘이 쉼터 안으로 들어가 천쪼가리를 가지고 나왔다.
"이걸 아저씨 옆에 펴볼래?"
노엘의 지시에 따라 지크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아저씨를 굴리자. 하나둘셋 하면 하는거야! 하나둘셋!"
"끄흡!"
어린 아이 두명의 힘으로 겨우 남자를 굴려 옆에 펼쳐진 천쪼가리 위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응"
노엘과 지크가 천쪼가리 끝 부분을 잡고서는 쉼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레드문 첫날 밤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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