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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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즈
작품등록일 :
2024.08.13 00:53
최근연재일 :
2024.09.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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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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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DUMMY

'아니 도대체 남의 가족 묘비 앞에서 왜저러는거야'


처음 묘비를 어루만지는 레온의 모습을 봤을 때


레온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아련함 때문에 레온에 대한 아리스의 생각이 나름 좋게 바뀌고 있었다.


감정도 없고 그저 검술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에서 저런 감정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는, 나름의 반전 모습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나 혼자서 무슨 감정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갑자기 머리를 땅에 파묻으며 울음을 통해내는 레온의 모습을 보고 나서는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 그냥 검술 실력이 좋은 미친놈'


누가 보면 사랑하는 연인을 먼저 떠나보낸 비운의 주인공 같은 모습에 영문도 모르는 아리스의 울화통이 터졌고, 발을 동동 굴리며 참다 못해 소리쳤다.


"아, 아니 대체 왜 남의 증고모 할머님 묘비 앞에서 울고 그래요!"


아리스의 외침을 들어서일까 들썩거리던 레온의 등이 잠잠해졌다.


"......"


"......"


"쪽팔리죠?"


"......"


"그래서 지금 못일어나겠죠?"


"......"


"하아... 아니 우리 증고모 할머님이랑 아는 사이기라도 했어요? 나도 이렇게 울진 않았다고요!"


"......"


분명 진정하게 뻔한데 아무런 미동도 없는 레온의 모습에 아리스가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묘비 옆의 나무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잠깐 딴데 보고 있을테니까 빨리 고개들어요. 안그러면 소리 지를거니까"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치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아리스의 머릿결이 흔들렸다.


'도대체가 말이야. 검술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왜 다 고집불통에 이상한거야 왜'


바닥에 앉아 나무에 기대어 풍경을 바라보다 레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레온이 멋쩍은듯 서 있었다.


'분명 미친놈이야...'


속으로 욕을 하고 있던 아리스가 레온과 눈이 마주쳤다.


아리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를 레온은 아리스의 시선을 회피하며 슬쩍 아리스의 옆으로 다가왔다.


"흠, 흠"


"잘나신 분께서 많이 쪽팔렸나보네요."


입을 삐죽대며 말하는 아리스의 장난에도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에휴... 도대체가... 아니야 말을 말아야지..."


아리스가 말을 이으려다 포기한 듯 말 끝을 흐렸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그랬죠?"


"그렇지"


"볼 것 다 본 것 같으니까 조금만 쉬다가 내려가요."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좋은 곳이구나"


레온의 중얼거림을 들은 아리스가 고개를 휙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럼요. 좋은 곳이죠. 아주 좋은 곳이죠. 자기 가족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남의 조상 분 되시는 묘비에서 우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만 없으면 더 좋은 곳이죠."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하는 아리스의 눈빛을 본 레온이 고개를 돌렸다.


"그건 미안하다니까"


"그럼!"


레온의 반응에 이때다 싶은 아리스가 손가락을 V자로 들어보이며 자신의 꿍꿍이를 밝혔다.


"어차피 무슨 내용인지 물어봐도 답 안해줄 것 같으니까 안물어볼거예요. 그러니까 나한테 빚진걸로 해요. 빚 2개 어때요?!"


레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이런 잔머리를 굴리는 인물이 로웨나에서 나온건진 모르겠지만 이미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레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2개야. 그리고 이상한 부탁이라면 안할거야."


"걱정말아요. 저도 나름의 상도덕은 알고 있는 나이니까! 언젠가 좋은데 쓰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배꼽인사를 하는 아리스의 뻔뻔함에 레온이 혀를 찼다.


"그럼 이제 내려가실까요?"


아리스가 엉덩이에 묻은 풀을 탁탁 털며 콧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는 아리스를 바라보던 레온이 고개를 돌려 롤랑의 묘비를 바라봤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렸다.


----------


어느새 정원의 정문 쪽에 도착한 레온과 아리스


"정말 마차 없이 괜찮겠어요?"


"괜찮다니까"


"정말이죠!? 분명 괜찮다고 했어요!?"


아리스의 걱정어린 배웅에 레온은 손을 흔들며 로웨나 가문의 별장을 나섰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레온의 뒷모습을 확인한 아리스는 곧바로 어느 한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다들 좋은 아침!"


아리스의 모습을 본 하인들이 자연스레 인사를 건넸고, 아리스 또한 아침 인사를 받으며 별장 내 서재 앞에 도착했다.


"후우..."


아리스가 살짝 심호흡을 하며 문을 살짝 두드렸다.


똑 똑-


고민거리나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기면 항상 서재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아버지, 슈르한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분명 계실거야.'


"들어오게."


아리스의 예상대로 슈르한은 레온과의 이야기 후 서재에 들어와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버지"


읽고 있던 책 너머로 아리스의 모습을 확인한 슈르한이 의외인 듯 화답했다.


"좋은 아침이구나. 그런데 네가 웬일이냐? 서재에 있을 때는 찾아오지도 않던 애가"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하던데..."


"에이 누구 딸인데 쉽게 죽지 않죠."


평소라면 자신의 눈치나 살피던 아리스가 능청스럽게 나오자 슈르한이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잠깐 덮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해보거라."


시선을 마주하자 긴장한 아리스가 침을 살짝 삼켰다.


"어떻게 하실거예요?"


"무얼 말이냐?"


슈르한이 표정변화 없이 아리스를 노려봤지만 아리스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 알고 왔어요."


"무얼 말하는지 나는 모르겠구나?"


모르쇠로 나오는 슈르한의 모습에 아리스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레온 말이예요!"


쾅-


레온의 이름을 들은 슈르한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 이름이 왜 나와?!"


생각지도 못한 슈르한의 분노에 아리스가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넌 몰라도 된다."


검술 고문으로 삼는다던 아까의 우호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


게다가 오빠와 언니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자신을 애 취급하는 모습에 살짝 반발심이 들었다.


"알았어요. 그럼 궁금해하지 않을게요."


"그래. 오늘따라 말을 잘 듣는구나."


더 쏘아붙일줄 알았던 아리스의 고분고분한 모습을 본 슈르한이 덮었던 책을 다시 들어올리던 찰나


"증고모 할머님 묘비에 갔어요."


"응? 네가?"


"레온이랑 함께요."


아리스의 말을 들은 슈르한이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 뭐?!"


그 탓에 책상 위에 있던 책들이 바닥에 우르르 떨어졌다.


"왜, 왜 그러세요?"


평소에는 본 적 없는 슈르한의 감정적인 모습에 오히려 아리스도 놀라 살짝 뒷걸음질 쳤다.


"거기서 뭘 한게야?!"


슈르한의 목소리와 눈빛에 걱정과 불안, 노여움 등 다양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그, 그냥 할머님 묘비에만 갔었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


"네가 본 것 전부 말하거라!"


처음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아리스는 침착하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묘비에 새겨진 글귀를 어루만지다가... 끝에 있는 글귀를 보다가 울었다는거?"


"......?"


"제가 더 깜짝 놀랐다니까요. 마치 알고 있던 사이인 것 처럼 펑펑 우는데..."


"자, 잠깐 울었다고?"


"그렇다니까요? 뭐라고 해야될까 그 아련한 눈빛하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슈르한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것 뿐이더냐?"


"네. 그것 뿐입니다."


"누가 먼저 그곳에 가자고 한 것이냐?


"할머님의 묘비가 여기 있다고 제가..."


"처음부터 자세히 말하거라."


슈르한의 말에 따라 아리스가 레온을 만난 시점부터 레온이 떠나는 모습까지의 과정을 전부 전달했다.


슈르한은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리스에게 물었다.


"분명 그게 전부겠지?"


"아이 참, 전부라니까요!"


슈르한이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이 일은 다른이에겐 알려져선 안된다. 약속할 수 있겠니?"


방금전과는 또 다른 슈르한의 진중한 모습에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참..."


의자에 등을 기댄 슈르한이 아리스를 빤히 쳐다봤다.


"더 하실말이라도...?"


해맑은 아리스의 모습에 슈르한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리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슈르한이 화두를 바꿨다.


"조만간 학교로 돌아가야하지 않니?"


학교라는 단어를 들은 아리스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고 싶은 것도 이해는 되지만 아비되는 입장에서 그런 일을 겪었는데 또 돌아다니게 두기엔 걱정이 된단다."


"......"


"헨릭의 얘기를 들으니 네 혼자서 움직이는 바람에 사건이 생겼다고 하던데..."


슈르한이 애매하게 말 끝을 흐리자 아리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맞습니다. 다 제 불찰이었어요."


아리스의 태도를 본 슈르한이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멋대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근신은 없던걸로 해주지."


"정말요?! 진짜죠?!"


"약속 지킬 수 있겠니?"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말바꾸기 없는 거예요! "


방금까지 풀죽어있던 아리스는 슈르한의 말이 바뀔세라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서재 밖으로 나가버렸다.


15살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애같은 모습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슈르한이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름의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아리스를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레온에 대한 생각으로 슈르한이 고뇌에 잠겼다.


----------


'괜히 마차를 거절했나.'


어느새 해가 중천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레온이 집 앞에 도착했다.


딸랑-딸랑-


기분 좋은 종소리가 울려퍼졌고, 소리를 들은 맥스가 후다닥 뛰어나왔다가 레온을 확인했다.


"일은 어떻게 잘 되셨습니까?"


레온이 눈 앞에 쇼파에 털썩 누워버렸다.


"모르겠어. 더 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안 좋은거 아닙니까?"


"목표로 했던 건 얻었으니까 괜찮을거야."


"목표가 뭐였습니까?"


"로웨나 공작의 보증"


"예?"


레온의 말을 들은 맥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그렇게만 알고 있어. 어떻게 될지는 추후에 알려줄게."


"형님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지요. 별 걱정 없습니다."


덤덤히 넘어가는 맥스의 모습에 레온이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레온의 물음에 맥스가 조심스러운 눈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쳐다봤다.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맥스의 말을 들은 레온 역시 걱정스런 눈으로 계단을 쳐다봤다.


아이들이 겪었을 공포감과 두려움


혼자서 몬스터들과 전투만 하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고작 며칠도 되지 않았지만 노엘과 지크, 맥스를 향한 레온의 정은 조금 특별했다.


아직 온 몸의 근육통이 남아있었지만 다시 한번 레온이 몸을 일으켰다.


"또 나가시게요?"


"그냥 신전이라도 한번 둘러보고 오게"


"다녀오십시오. 신전은 아마 북쪽으로 가시다보면 나올겁니다."


"애들 일어나면 잘 챙겨줘."


맥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랑딸랑-


다시 한번 종소리가 울리며 레온이 건물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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