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
마교는 여느 때보다 바빴다. 윌슨 부자의 용광로로 장로와 당주가 쉬지 않고 찾아 들었다. 애초에 정열을 다해 명검을 뽑아 보겠다는 윌슨의 열정은 당분간 접어야 했다.
마족의 소문이 퍼진 지금 잉겔리움 무기만이 마족을 상대할 수 있다고 판명이 난 만큼 지금 대기줄이 장난 아니었다.
테츠의 명령으로 장로와 당주까지 망치를 들고 쇠를 두드리고 있으니 느긋하게 명검을 만들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잉겔리움을 달굴 줄 아는 사람은 윌슨 부자가 유일했다. 광석 전체에 골고루 열이 가해지도록 하는 방법은 비결 중에 비법이다.
원래는 처음 가지고 온 잉겔리움으로 테츠만을 위한 명검을 제작하려 했었다. 오랫동안 꿈꿔 오던 그런 명검을 죽기 전에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윌슨이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망치를 두드릴 장소도 없을 정도로 붐볐다. 장로들은 직접 쇠를 치고 윌슨 부자는 종일 잉겔리움을 달궜다.
메흘린의 일도 많아졌다. 잉겔리움의 무기는 그 존재만으로 성하나를 산다고 할 만큼 엄청난 보물이다. 그런 보물을 마구잡이로 찍어 내고 있으니 이 또한 문제다. 경제 원리가 완전히 붕괴할 거다.
누가 좋지 못한 마음으로 잉겔리움 무기를 가지고 탈출할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검의 존재 자체가 국가 가보가 될 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신 제국에서 몇 자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잉겔리움 무기다. 그런 무기가 엠버스피어 대장간에서 마구잡이로 찍어 내고 있으니 기절할 노릇이란 거다.
메흘린은 즉시 관련 법안을 만들어 공표했다. 일단 당주급 이하는 잉겔리움 검을 가지지 못하며 당주도 하나 외에는 잉겔리움 무기 소지를 금했다.
그런데도 엘빈은 만천화우용 바늘 백 개를 잉겔리움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바늘 하나하나의 가치가 엄청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하늘을 나는 마족을 대비해 루안의 화살촉은 효율이 가장 높아서 오십여 발의 화살촉이 제작됐다.
화살의 특성상 쏘고 나면 회수하기 어려우므로 낭비가 가장 심한 편이기도 했다. 결국, 나머지 화살은 속은 강철로 겉만 잉겔리움을 씌운 화살로 제작됐다.
대장간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이 메흘린과 아드리안은 특별히 마교 내에서 경공이 빠르고 머리가 똑똑한 자들을 가려내 집행관을 교육했다.
무공을 익힌 집행관의 활약은 대단했다. 생존확률도 극히 높고 웬만한 기사와 겨뤄도 될 만큼의 무력에 경공은 집행관의 능력을 배가시켰다.
아드리안 경도 무공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어 메흘린이 부를 치라면 수행에 방해된다고 짜증을 냈다.
솔직히 늦게 합류해서 억지로 내공을 받은 상태라 기본이 부실했다. 마교에 있는 범죄자를 잡아내면서 피부로 느낀 것이 무공이 효율이 얼마나 높은지 직접 경험했다.
마나를 이용한 오러 블레이드 따위와 구화마검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검의 변화를 처음 봤을 때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궁극의 검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테츠의 천마삼검을 보는 순간 의지가 불타올랐다. 마교의 첫번째 교칙! 능력이 검증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스승으로부터 배울 수가 있다.
그리고 검증된 제자가 원하면 무조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마교의 율법이다. 그가 테츠에 인정받는다면 세렌처럼 천마수라검도 배울 수 있다.
남자는 자고로 강해지는 것을 끔찍이 바란다. 특히 집행관에 소속된 만큼 범죄자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성취감도 올라가고 수사에 자신감이 붙는다.
그것은 아드리안 경뿐만 아니라 알렉과 아딜, 심지어 틈만 나면 잠만 자던 게으름쟁이 루이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잠을 자지 않고 무공에 매달릴 정도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메흘린이 테츠에게 매달리다시피 해서 아드리안 일행을 마교에 가입시킨 것도 자기 일을 거들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 일이 바빠지는 시기인데 집행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무공에 미쳐 날이 밝자마자 뛰쳐나가 무공 연습에 매진했다.
아드리안은 테드버드로부터 직접 검법을 사사 받았고 알렉은 엘빈에게 아딜은 실버팽에게 루이즈는 세실리아의 밑에서 훈련했다.
집행관은 특별한 케이스로 내공을 먼저 얻어 당주의 신분으로 무공을 배웠다. 하루라도 검을 들지 않으면 몸에 좀이 쑤실 정도가 됐다.
반면 미쳐 돌아가는 것은 메흘린이다. 도와 달라고 영입했더니 무공 배운다고 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성황의 서신과 오크의 움직임. 그리고 이번에는 마족까지. 더군다나 제시어스 왕자의 안위도 돌봐야 하고 나브 공주도 지켜봐야 한다.
마교의 위세가 알려지며 눈이 녹자 모험가와 용병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관련 법령 정비와 새로운 법령을 마련하고 개편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메흘린 혼자 떠맡고 있다.
메흘린은 가끔 창가에 밧줄을 걸고 목을 매다는 상상을 했다. 그만큼 지치고 힘든 일의 반복이었다.
테츠는 메흘린에게 모든 걸 맡겨 놓고 마탑에 들어가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토렘의 서인지 뭔지 모를 책을 해독한다고 그런다. 마족의 약점이든지 마족을 물리칠 방법을 찾는다나 뭐라나.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참작한 아드리안 경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였다.
아드리안을 부른 메흘린이 머쓱할 정도였다.
"아니 이런 일로 나를 부른 거요? 후. 정말 너무 하지 않나?"
"지금까지 저 혼자 일을 처리해 왔는데 이제 저도 조금 도움을···." "메흘린, 메흘린. 나는 늦게 무공을 시작해서 이제 검을 좀 잡아 보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란 말이오. 교주님께 속성으로 배웠기 때문에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오. 집행관인 우리가 힘을 가지지 않으면 되레 당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지 않소. 아. 그리고 사소한 일로 나를 부르지 마시오. 가도 되겠소?"
그 말을 남기고 아드리안은 후다닥 뛰어나가 버렸다.
"밖에 누가 없어. 술과 안주를 좀 가져와."
시종은 찔끔하며 부엌으로 내달렸다. 요즘 술이 부쩍 느는 군사다. 그때 전서구를 관리하는 관리인 에단이 들어왔다. 에단은 당주의 신분으로 메흘린의 심복이다. 그는 전서구와 인커전을 관리하는 책임자며 전서구의 정보는 오직 에단만이 관리할 수 있다.
다른 그 누가 전서구에 손에 댔다가는 엄하게 벌한다. 에단은 비둘기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분류하여 매일 메흘린에 보고한다.
"많이 바빠 보이네요. 애시턴은 어디 갔습니까?"
"아, 이 바쁜 시기에 폐관 수련 갔다. 자기도 삼성 내공을 만들어야 한다나 뭐란 다나 다들 무공에 미쳐서 일은 뒷전이란 말이다."
"후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공에 한번 맛을 들이면 멈출 수 없는 마약과 같죠. 수련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무공인데 누가마다 하겠습니까? 저도 성벽에서 매일 맹연습 중입니다."
"으, 그래도 일은 해가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네. 자네라도 이걸 해주지 않으면 나는 미쳐 버렸을 거네."
메흘린인 에단이 가져온 쪽지를 탁자에 하나씩 펼쳐 놓았다.
"이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겠는데?"
메흘린은 막 문밖을 나서는 에단에게 말했다.
"에단 가는 길에 사람을 보내 급히 교주님을 뵙겠다고 아뢰어라."
"알겠습니다."
테츠는 아리스토틀과 함께 토렘의 서를 해석하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말라키의 언어를 배운 테츠는 그의 천재적인 기억력을 바탕으로 사흘 만에 아리스토틀과 레노번이 알고 있는 말라키의 언어를 모두 외워 버렸다.
"후, 그래도 알 수 없는 문자가 더 많아."
"중요한 부분의 문자는 모두 사어로만 적혀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말라키들은 왜 멸족되었지?"
"멸족이라고 하기보다는 말라키의 아이들은 힘을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힘을 잃었다는 것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지?"
"니알라 토텝으로 받은 힘은 마족을 몰아낼 수 있었으나 자연의 균형을 거스르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수 즉 후대에 그 힘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말라키는 말라키 세대에서 모두 사라졌습니다."
"음, 마족이 없어졌으니 더는 그 힘이 필요 없었겠군."
"그렇지요. 모든 것이 신의 안배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마족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보였으니 말라키의 후손도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만약 마족의 침략이 확실하다면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전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족의 출현 사실은 어반마르스에도 보고되었고 테일리아드도 알고 있고 아칸 시티는 어떨까?"
"그곳에서 발견된 사람들이 반사르가의 사람이라고 하질 않았습니까?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마족의 출현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 말은 반사르가 아니라 시몰레이크를 말하는 거지. 놈도 알고 있을까?"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반사르와 시몰레이크는 원수 같은 사이이니 반사르가가 어떤 정보를 얻었다 해도 시몰레이크와 공유하지는 않을 겁니다."
"출현을 알고 있었는지 출현하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 조사해봐야 할 가치가 있어. 인커전의 기억 속에서 읽은 부분의 조각에 나브 공주가 있었거든. 뭔가 사건이 서로 연결 고리가 이어져 있는데 너무 단편의 조각들이라 쉽게 한데 뭉쳐지지 않아."
"아칸의 집행관이 반사르가의 개인적인 명령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던가요? 그들의 목적도 나브 공주이지 않습니까? 나브 공주의 모친은 윌리엄 대공의 시종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혹 그녀는 특별한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글쎄. 내 시중드는 애가 오렌시아인데 그녀의 친언니가 피렌시아로 나브의 모친이고 오렌시아를 봐도 그냥 평범한 인간인데 무력이 높은 것도 마법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나브 공주를 원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아 혹시나 아리스토틀이 보면 뭔가 다른 것이 보일지도. 오렌시아와 나브를 마탑에 보낼 테니 한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하하, 알겠습니다."
그때 아리스토틀의 수석 제자 제시우스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교주님 호출입니다. 메흘린 군사가 찾고 있습니다."
"그럼 영감 일어설게."
"이 책은 교주님의 것이니 챙겨 가셔야죠."
"왜, 더 연구해 보지 않고?"
"상당 부분은 제 기억 속에 있습니다. 허허. 기억이 가물가물하면 다시 청하지요."
"알겠어. 그럼."
테츠가 나가자 제시우스 대현자를 보고 말했다.
"필사본이라도 작성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저런 보물을 마법사가 아닌 자에게 맡기시는 것은···."
"자네 얼굴에 불평불만이라고 가득 쓰여 있구먼. 책은 자신을 읽어 주길 바라는 자의 손에 가 있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법이라네. 그는 마족에 대항하는 인간의 구심점에 있는 사람이야."
테츠는 거칠게 작전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모든 사람이 다 모여 있을 줄 알았는데 메흘린 홀로 자신을 맞이했다.
"흥, 또 영감 얘기야? 그래 뭐라든?"
메흘린 혼자 있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뭔 시기?"
"황제 후계자를 위한 서약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관심 없어. 황제든 뭐든 난 상관 하지 않을 테다."
"황제 후계자의 적임자가 나서지 않으면 나머지 삼대 가문에서 황제 후계자를 내세울 권한이 있습니다. 황제는 후계자 서약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후계자를 지명해야 합니다. 그것 또한 신성불가침 조약에 적힌바. 잉그람 황제는 조약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구먼. 언제까진데?"
"그 조약의 기한이 올해까지입니다."
"아이고 올해 안에 모든 것을 결판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네 말대로 내가 황제 서약을 받게 되면 동시에 신성불가침 조약에 묶이게 될 테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놈이 황제가 될 거고?"
"그렇습니다. 시몰레이크 후작이 황태자님을 암살하고 팬텀 가드너의 두 왕자를 죽음으로 몬 것도 다 차기 황제 서약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겠지. 서약이니 조약이니 뭔지 모르겠지만 그것으로 제국 전체를 쥐어 잡을 수 있는 황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제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래 결정을 내려야겠다."
"황제가 되시더라도 마교는 제가 잘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성불가침 조약을 파기시키겠다는 말이다."
"네?"
"쉽잖아? 신성불가침 조약만 파기시키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거야. 지금까지 그 조약 때문에 발이 묶였잖아?"
"아, 그건 파기할 수 있는 조약이 아닌 것은 황태자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알고 있어. 그거 이번에 토렘의 서를 연구하다 알아낸 건데 신성불가침 조약을 작성한 마지막 마녀 엘자임 그녀가 말라키의 후손 중 한 명이더구먼. 네크로맨서의 라마단도 말라키였고 이거 알고 보니 죄다 한통속이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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