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아나스타샤의 정체
아직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 21세기 초 독일, 루카 파이퍼는 학교에 '나타샤의 일기' 책을 가지고 와서 쉬는 시간에 읽었다. 나타샤의 책에는 겨울철 생존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가 상당히 많았다.
[겨울에는 땅이 굳기 때문에 참호를 파는 것이 어렵다. 포탄 파편으로부터 참호를 보호하려면 지붕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가지에서는 뗄감을 구하기 힘들다. 문이나 대들보 등을 뜯어와서라도 지붕을 꼭 만들어야 한다.]
[포격이 있을때는 참호 속에서 볼일을 봐야 한다. 야전삽 위에 볼일을 보고, 삽을 이용해서 바깥으로 그걸 던져버리면 된다고 한다. 휴지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거 완전 생존 지침서네...'
그 때, 아나스타샤, 엠마, 맥스가 루카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타샤의 일기?"
"넌 그런걸 보냐?"
루카가 말했다.
"겨울 방학에 밀리터리 유투브할때 독소전 참호 파는 컨텐츠 할건데 이게 꽤 도움이 될 것 같아. 너네도 읽어볼래?"
아나스타샤가 교과서를 꺼내며 말했다.
"난 됐어. 집에 그거 22권이나 있거든."
맥스가 물었다.
"이게 22권이나 있다고?"
"응. 각 언어별로.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혹시 너희 부모님 번역일 하시니?"
"아니. 그거 쓴 작가가 내 고조할머니셔."
'???'
나타샤는 바로 아나스타샤의 고조할머니였던 것 이다.
그로부터 몇년 뒤 전세계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 지난 번 이야기에 나온 것처럼 루카는 좀비 바이러스 면역 유전자였기에 중혼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루카는 엠마, 아나스타샤와 결혼하였고 아나스타샤의 동생 블라디미르까지 같이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루카는 좀비 세상에도 나름 적응하여 효과적으로 좀비를 퇴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변종 좀비 바이러스 오미크론에 의해 지능이 높고 움직임이 빠른 좀비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루카는 보다 철저하게 집을 보호하기로 했다.
루카는 따뜻하게 옷을 입고는 트럭이 주차되어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다행히 오늘은 주차장을 노리는 좀비가 없었다. 루카는 트럭의 상태를 확인했다.
'시동이 잘 걸리려나?'
이상기후로 인하여 독일의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간 상황이었기에 트럭의 시동이 걸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시동은 제대로 걸렸다.
'좋았어!!!'
루카는 아나스타샤와 같이 트럭을 타고 버려진 가구들이 쌓여있는 곳으로 갔다.
'으...춥다...'
아나스타샤가 중얼거렸다.
"지구가 망하려나..."
날씨가 엄청나게 추웠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루카는 아나스타샤와 함께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에서 철제 프레임을 모조리 뜯어낸 다음 트럭 뒷칸에 실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루카는 블라디미르와 함께 이 닭장 같은 철제 프레임들을 1층 창문에 붙이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능이 있는 좀비들이 증가해서 큰일이야."
블라디미르가 창문에 철제 프레임 설치하는 것을 도우며 말했다.
"요즘 좀비들은 도구까지 쓴다며."
루카는 철제 프레임이 단단하게 설치되었나 확인한 다음 블라디미르와 함께 야전삽을 들고는 마당을 더 깊게 파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는 마당에 1m 정도 폭으로만 참호를 파도 좀비들이 함정에 빠졌고, 이를 군부대에 신고하면 알아서 좀비를 수거해주었다.
하지만 최근 좀비들은 운동 능력이 더 좋아져서 1m 폭의 참호면 가뿐히 뛰어넘었다. 심지어 널빤지를 가져와서 참호를 건너는 좀비가 있다는 소문이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었다. 루카가 블라디미르에게 말했다.
"2m 정도로 파야 해!"
블라디미르도 열심히 삽을 이용해서 참호를 파다가 투덜거렸다.
"땅이 단단해서 삽이 잘 안 들어가!"
날씨가 워낙 추워서 땅이 얼어붙어서 삽질을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 이다.
"수류탄이 있으면 좋을텐데..."
참호 파는 일을 마치고 루카는 블라디미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임산부인 엠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급받는 식량 양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이걸로 어떻게 겨울을 버티라는거야...'
루카는 라디오를 틀어보았다. 좀비 사태가 심각해지는 바람에 전세계의 곡창지대에서 농사를 못 지어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질거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순무 농사라도 지었어야 하는건데..."
"감자가 농사하기 좋대."
엠마가 말했다.
"루카! 나 배고파!!!"
임산부인 엠마가 잘 먹어야 했기 때문에 다들 약간씩 엠마에게 식량을 양보했다. 창 밖을 보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루카는 좀비가 세 마리나 참호에 빠진 것을 발견했다. 루카는 좀비가 빠진 곳에 그물을 쳐두고는 이를 군에 신고하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좀비 세 마리 참호에 빠졌어!"
블라디미르가 외쳤다.
"세 마리나 빠졌다고? 요즘 좀비들은 지능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참호를 파두면 안 올 줄 알았는데!"
루카가 말했다.
"저 녀석들도 지능이 있는 좀비일 수 있어. 참호 위에 눈이 쌓여서 놈들은 참호가 파여있다는 것을 몰랐던거야. 계속 감시해야 해."
그 때, 2층에서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네들 빠져나오려고 해!!"
루카는 블라디미르와 함께 급히 2층으로 달려갔다. 아나스타샤가 창문에 붙어서 좀비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루카 또한 창문에 붙어서 좀비를 바라보았다.
'저...저거!!!'
정말로 좀비들은 그물에 묶인 상태에서도 참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좀비는 참호 속에서 눈을 계단처럼 쌓아 올리고 있었다.
루카는 다시 군부대에 전화를 걸었다.
'왜 안 오고 지랄이야 시발!!!'
휴대폰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좀비 위치 신고는 1번, 좀비 포획 신고는 2번, 구조 신고는 3번, 불법 총기류 신고는 4번, 기타 상담원 연결은 0번을 눌러주세요."
루카는 0번을 눌렀다.
"통화량이 많아 상담사 연결이 지연될 수 있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좀비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와중에 핸드폰에서는 노랫 소리가 들렸다.
"따라라라라~~ 따라라라라~~ 따라라라라~~"
'도대체 언제 연결되는거야!!!'
"죄송합니다. 현재 전화 대기가 많아 연결이 어렵습니다."
루카는 핸드폰을 껐다.
'이런 시발!!!'
그리고 루카, 블라디미르, 아나스타샤는 장대를 하나씩 들고는 좀비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계속 툭툭 쳤다.
블라디미르가 외쳤다.
"으악!! 저 새끼가 계속 장대 잡으려고 해!!!"
루카가 외쳤다.
"장대 안 잡히게 조심해!!"
루카, 블라디미르, 아나스타샤 모두 덜덜 떨면서 추위 속에서 장대를 이용해서 좀비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아나스타샤가 외쳤다.
"좀비가 그물 물어뜯고 있어!!"
그 때, 루카는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쉿!!"
루카가 고개를 돌려보니, 길 건너 보이는 집 모퉁이 쪽에서 좀비 한 마리가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카가 조용히 말했다.
"좀비 한 마리. 길 건너 모퉁이 쪽."
루카의 말에 아나스타샤와 블라디미르 둘 다 사색이 되었다. 블라디미르가 중얼거렸다.
"차...참호 있으니까 괜찮겠지?"
"쉿!!"
좀비 한 마리가 천천히 루카의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루카, 아나스타샤, 블라디미르는 참호에서 조금씩 물러났다. 루카가 말했다.
"아나스타샤 넌 들어가."
아나스타샤가 블라디미르를 데리고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그 때 아나스타샤가 돌부리에 걸려서 그만 뒤로 자빠졌다.
퍽!!
"악!!"
그 틈을 타서 좀비가 루카의 집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가 비명을 지르며 블라디미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달려갔다.
"꺄아악!!!"
루카는 장대를 들고는 좀비가 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좀비는 놀랍게도 루카가 설치해 놓은 트랩을 모두 회피했다.
'저...저거!!!'
루카와 좀비 사이에는 2m 폭의 참호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좀비는 멀리 뛰기 동작을 하며 점프를 했다. 루카는 장대를 이용하여 좀비를 쳐냈다.
퍼어억!!!
"으아아아악!!!"
천만 다행히 좀비는 2m 폭의 참호 안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좀비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지능형 좀비가 괴성을 지르자, 반대편 골목에서 좀비 여섯 마리가 이 쪽으로 달려 오기 시작했다. 루카는 장대를 집어던지고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으아아아악!!!"
외전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으니 다시 1940년 모스크바로 돌아가보자. 만토이펠 대대는 여전히 소련군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과 함께 수류탄을 터트려서 모스크바 대로변에 참호를 만들고 있었다.
"터트려!!"
쿠과광!!! 콰광!!!
에밀, 마티아스가 옆에 있던 건물에서 문짝을 때오고 있었다. 그렇게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과 함께 참호로 들어간 다음 참호 위는 문짝으로 덮어서 유개호를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소련군 중포의 착탄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쿠궁!! 쿠과광!! 쿠구궁!!!
"으아아아악!!!!"
소련군은 만토이펠 대대를 작살내려고 결심한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놈들은 계속해서 포격을 퍼부었고, 그 때마다 건물 파편이 우스스 떨어졌다. 에밀이 울부짖었다.
"저 똥 마렵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야전삽에다 싸!!!"
에밀은 야전삽 위에 수그리고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오토는 잡낭에서 방독면을 꺼내어 착용했다.
'이런 시발!!!'
에밀은 볼일을 본 다음 참호를 덮은 문짝을 옆으로 밀어냈다. 오토가 외쳤다.
"빨리 치워!!!"
에밀은 야전삽을 휘둘러서 &을 밖으로 던진 다음 잽싸게 문짝으로 다시 참호를 덮었다.
쿠궁!! 쿠구궁!! 쿠구구궁!!
30분 정도 기다리자 포격이 멈췄다. 그 틈을 타서 오토 일행은 참호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토는 소련군에게서 노획했던 톰슨 기관단총을 들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좋은 총이었지만, 탄창은 한 개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을 셋으로 나누고 앞으로 전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37구역에 있던 만토이펠 대대의 진지를 뺏긴 이상, 어떻게던 39구역에 도서관 건물을 점령해야 했다. 오토는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와 함께 은밀하게 대로변을 따라 전진했다. 그 때, 소련군의 박격포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쿠광! 쿠궁!
오토가 소대원들에게 손짓했다.
"빨리 뛰어!!!"
박격포탄이 날아오면 빨리 뛰어서 사격권에서 벗어나야 했다.
쿵!! 쉬잇!! 콰광!!!
'으아악!!!'
그 때, 아군 보병이 박격포탄을 맞고 길 우측에 엎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프레트가 이 광경을 보고 도와주려고 했는데 오토가 외쳤다.
"위생병한테 맡기고 빨리 튀어!!"
부상병한테 여럿이 달려들다간 한꺼번에 적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위생병한테 맡겨야 했다.
오토 일행은 그렇게 잽싸게 양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토는 반대편 골목에 있는 에밀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위생병이 오고 있다!! 엄호해줘!!!'
오토 또한 엎드린 다음 골목 밖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다행히 위생병이 와서는 능숙하게 부상병을 들것에 실어서 이송하기 시작했다. 오토는 톰슨 기관단총을 들고는 고개를 빼꼼 내민 상태에서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소련군 저격수는 없었고 부상병은 무사히 이송될 수 있었다.
오토는 안심하고는 소대원들을 데리고 앞으로 전진했다.
- 작가의말
내일부터 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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