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보는 것도 초능력이야? 그건 그냥 무당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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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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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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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수용할 줄 아는 능력

DUMMY

제13장. 수용할 줄 아는 능력



전정훈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곤 이내 두 분의 눈이 확신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 눈빛을 완전히 읽을 순 없었지만 두 분의 눈이 반짝이는 것은 분명히 봤다.

전정훈 선생님은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어떤 파일을 가지고 오시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파일을 열어 날 바라보셨다.


“명월아. 너가 능력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 해. 그게 사실이니까.”

“그래도···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말씀드렸잖아요. 할머니의 영향이라고.”

“아니. 너가 정말 그런 식으로 영향을 받았으면 너는 생각을 읽지 못해. 그리고 너가 방금 말한 거. 그거 혼 분리 능력이야.”

“혼 분리··· 네?”


혼 분리 능력? 정말 처음 들어보는 단어 조합이다. 듣도 보도 못한 단어에 나는 입 밖으로 그 단어들이 나오지도 못했다.

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전정훈 선생님은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 여기선 ‘발혼 능력’이라고 해. 한자로 ‘뽑을 발’, ‘혼’ 자를 써서 발혼 능력이야. 쉽게 말하면 혼 분리 능력이고. 우리 세계에서만 쓰이는 단어라 너한테는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말해봤어.”

“그럼 제가 그 능력자라는 말씀이세요?”

“아니. 넌 정확히 말하면 ‘확장자’야”

“’확장자’요?”

“그러니까 단어 그대로 너의 능력은 확장된 범위의 능력이야. 너가 지금 구현할 수 능력이 ‘마인드리더’, ‘발혼’, ‘영안’ 이렇게 3가지야. 보통 이런 능력은 하나씩 발휘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자를 ‘마인드 리더’라고 하고, 혼을 분리시킬 수 있는 자는 ‘발혼 능력자’, 그리고 혼을 볼 수 있는 자를 ‘영안 능력자’라고 해. 근데 너는 혼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져서 이 모든 능력을 다 포함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애초에 능력 자체의 범위가 넓어서 사용 가능한 능력이 여러 개라는 의미야.”

“그럼 능력 범위가 넓은 능력자를 ‘확장자’라고 하는 건가요?”

“그렇지. 이해가 빠르네. 확장자는 많지는 않아. 아무래도 능력 범위가 넓다는 건 능력을 쪼개보면 결국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많다는 의미니까. 그래서 명월이 너는 능력들이 한 번에 발현된 게 아니라 하나씩 차례대로 발현이 된 거야. 사실 능력도 공부랑 비슷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잘하는 게 아니잖아? 예를 들어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 수학을 잘 하고 싶다면 수학 공부를 따로 해야 하고. 능력도 똑같아. 공부를 해야 해. 그런데 너는 능력이 여러 개니까 그만큼 공부해야 할 과목이 많다고 생각하면 돼.”

“아··· 그러면 그 능력들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군요?”

“맞아. 그래서 전학을 오라고 하는 거야. 우리는 능력을 키우려고 만들어진 군대가 아니야. 학생들이 능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학교야. 특히 너 같은 경우는 영안 능력이 있어서 혼을 볼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잖아. 그 말은 혼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소리야.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해. 그리고 발혼 능력도 그래. 전에 너가 그 능력을 썼을 땐 운이 좋아서 그 친구가 안 죽었지. 운 나쁘면 걔는 이미 죽었어.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능력을 조절해야 하는 거야.”

“혹시 제가 선택할 수도 있나요? 전학이요.”

“전학을 올지, 말지?”

“네.”

“너 선택이긴 해. 아무리 우리가 말해도 너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면 그냥 너는 네가 평범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아가면 돼. 그게 편할 거야. 그런데 너가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인지했다면 이쪽 세계가 너에게 편할 수 있어. 평범한 사람들은 너가 아무리 말해도 너의 능력을 안 믿어줄 거고, 너도 함부로 네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울 테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너가 그냥 능력자가 아니라 ‘확장자’라는 사실이야. 능력이 하나만 있으면 네가 지금처럼 살아가길 선택했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널 설득하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 네 능력은 발현된 것만 3개잖니. 그 능력 모두를 공부하고 조절하려면 학교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야.”


전정훈 선생님의 말이 맞는 말이다. 하다 못해 요 며칠 담임 선생님께만 한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가.

내 능력을 들킬 까봐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면서 나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모른 척했다.

물론 나는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리는 순간 난 표적이 되기 쉬우니까.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나는 이미 귀신 보는 소름끼치는 애라고 왕따도 당해 봤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나를 보며 대신 화를 내주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어렸어도 순순히 엄마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의 무당집으로 날 데려가 굿을 봤다. 내게 무슨 이상한 것이라도 씌어서 그것을 없애야 할 것처럼 열심히도 다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것도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나이인 초등학교 3학년 때 알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최대한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내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귀신들은 자신은 볼 줄 아는 어린 여자 아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내가 어리기 때문에 약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내 몸을 빼앗으려 하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그나마 다행히도 할머니가 써준 부적 때문인지 귀신들은 한 번도 내 몸을 못 빼앗았다. 나는 그 부적 말고는 딱히 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기에 할머니의 부적이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몸을 빼앗는 것 말고도 시도때도 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거나, 복수해달라고, 혹은 그냥 자신이 넋두리 좀 들어달라고 할 때가 많았다.

나는 귀신들이 그럴 때마다 아무 표정없이 앞만 봤다. 매번 비슷한 넋두리에 귀찮긴 했지만 짜증날 정도는 아니였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얼마나 맺힌 게 많았으면 어린 여자 애한테까지 와서 이럴까 싶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얘기를 들어주려 그 귀신과 눈을 마주치면 귀신들은 하나같이 다들 괜찮다고 하거나 어린 너가 뭘 알겠냐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시 날 찾아온 귀신도 없었다.

나는 이 역시 할머니의 부적 덕분이라 생각했다.

귀신들이 이렇게 나를 귀찮게 굴었던 건 어릴 때 까지만 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귀신들은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정도로 귀신이 날 괴롭히고 귀찮게 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어느샌가부터 귀신은 호의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신을 본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매번 매희와 얘기하다가도 사람이 올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고, 다른 귀신과 어쩌다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매일 같이 본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귀신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죽음을 추측하게 되고 죽을 때의 고통까지 상상하게 된다. 아마 내가 남들보다 관찰력이 높고 추리를 좀 할 수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매번 귀신이 보일 때마다 귀신의 옷 차림새와 상처 부위, 행동, 말 등을 관찰하게 된다.

무시하고 싶어도 내 몸이 귀신을 등지기도 전에 이미 내 뇌는 저 귀신이 왜 죽었는지 추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떨 때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사망 원인은 알아냈지만 그 중간 과정인 근거가 무엇인지를 모를 때도 있었다. 그럼 또 그 귀신을 찬찬히 보고 따라잡을 수 없던 속도의 뇌의 과정을 눈으로 따라잡았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간다. 그리고 죽음에 연연해한다. 죽음에 연연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보미와 매희처럼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죽음을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삶에서 느끼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살아간다면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할 때 죽음이라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어떤 이유로든 죽은 영혼들은 모두 살아 생전에 죽음에 연연했던 사람이었고 결국 죽어서도 그 미련이 남아 이승에 남는다.

남들은 그 영혼들이 보이지 않아 산 사람들만의 공간이라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어떤 곳은 산 사람보다 죽은 영혼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어디든지 영혼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다. 그 말은 즉 난 항상 그 영혼들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미 그 사실을 시작으로 나는 남들과 전혀 다른 존재이다. 아무리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더라도 나는 남들과 같을 수 없다.

문제는 그 사실이 겨우 시작이라는 점이다. 나는 귀신을 보기만 할 뿐 아니라 대화하고, 살아있는 사람의 혼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그 혼을 빼낼 수도 있다.

살아있는 인간을 영혼으로만 남겨둘 수 있다.

이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내가 남들과 전혀 다른 능력자라는 존재라는 것이.

사실 이미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날 위해 그 사실을 깊숙이 내 영혼도 모를 만한 곳에 숨겨두고 나조차 회피하였다.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 내가 의도적이든 실수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니까.

깊숙이 숨겨둔 그 사실을 꺼내어 생각해보니 오히려 심란했던 마음이 먼지 하나없이 깨끗이 정리된 느낌이다.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자 난 천천히 고개를 올려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난 지 모르지만 선생님들은 생각하는 날 위해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렸나 보다. 내가 고개를 올리는 순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셨다. 그리곤 내가 고개 올리는 그 순간조차 긴 시간이라는 듯 내 시선 따라 고개를 내리시고선 나와 함께 속도에 맞춰 고개를 올려 내 시선을 마주 보셨다.


“결정했니?”

“네. 전학올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우리 학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서 고맙다. 명월아.”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제가 남들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거. 받아들이지 못한 건 그냥 제 미련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야.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누구나 남들처럼 살고 싶어 해. 아무리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도 그건 남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나고 싶어하는욕망이야. 결국 그건 또 다른 잘난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니 그것 역시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의미지.”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그럼 저는 언제부터 전학 오면 될까요?”

“일단 전학 수속을 우리가 바로 진행해 줄게. 하지만 전학 간다는 소식은 부모님께도 알려야 하니 일단 오늘은 집에 가자.”

“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나는 이제서야 어두워진 하늘에 걸쳐진 달을 보았다. 달이 아까 병원에서보다 더 빛나는 게 벌서 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선생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정훈 선생님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하며 말씀하셨다.


“이거 어떡하지. 지금 나 남아 있는 일이랑 명월이 전학 수속 진행시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래서 배웅은 못 해줄 것 같네.”

“아니야. 괜찮아. 형. 우리 쪽도 명월이 어머니와 얘기해봐야 해서 전학 수속은 천천히 해도 될 거야. 그러니까 쉬엄쉬엄 해. 배웅도 안 해줘도 돼.”

“그래. 고맙다. 얼른 가봐. 명월이 너도 나중에 전학 와서 보자. 그동안 잘 지내고.”

“네. 선생님도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전정훈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을 나왔다.

아, 이젠 담임 선생님이 아닌가. 이제 전정훈 선생님을 담임 선생님이라 불러야 하나.

하지만 입에 붙지 않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굳이 지금부터 익숙해지려 노력할 필요는 없으니까. 전학 오면 그때 생각하자.

나는 곧 오게 될 학교를 다시 한번 둘러보며 건물을 나왔다. 다시 봐도 특이한 구조였다.

내 입에서 스스로 전학오겠다고 말을 하고 난 후라 그런 지 조금 설레기도 했다.

우리 학교보다 훨씬 넓은 운동장과 별관에선 대체 어떤 수업을 할 지 너무나 궁금했다.

아무래도 능력자들이 모인 곳이니 능력을 쓰며 수업을 하려나? 어떤 능력자들이 있을 지 저절로 상상하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물건이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고, 사람도 떠다니고, 손에서 불과 물이 나오려나. 점점 판타지로 변해가는 내 머릿속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워져 억지로 생각을 흑백으로 비웠다. 아직 그런 상상조차 익숙하지 않나 보다.

혼자 영화 같은 상상을 하니 어느 새 선생님 차에 올라 타 있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말 하기 전에 먼저 안전벨트를 맸다.

안전 벨트를 다 메고 나니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폰을 빼 화면을 확인하니 엄마였다.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 전화해 달라고 했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걱정했나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명월아, 어디야? 선생님이랑 있다고 해서 전화는 안 하고 문자 했는데 답장이 없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엄마. 나 금방 가. 엄마 피곤하면 먼저 잘래?”

“으응. 아니야. 금방 온다니까 엄마 기다리고 있을게. 배는 안 배고파?”


엄마가 그 질문을 하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내가 한 끼도 안 먹은 줄 전혀 몰랐다.

엄마가 물어보자 이제야 밥 한 번 안 먹은 게 생각이 났고, 인지를 하자 미친 듯이 배가 고파졌다.


“배고파··· 너무 배고프다···”

“밥 먹을래? 아니면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나 떡볶이?”

“알겠어. 시켜둘게. 엄마도 아직 저녁 안 먹어서 같이 먹자.”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나는 떡볶이를 생각하자 더 배고파졌다. 전화를 끊고 배고픔에 기운이 쭉 빠져 등받이에 파묻히듯 등을 기댔다.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슬쩍 흘겨 보았다.


“명월이가 요 며칠 3일 동안 너무 어른스러웠는데 지금 보니 너도 여고생이구나?”

“네?”

“아니, 그냥 다른 여자 애들처럼 떡볶이 좋아하는 걸 보니 이제야 그 나이처럼 보이기 시작해서. 항상 너는 조용하고 사고도 안 치고 제 할 일 잘하는 모범생 중 한 명이었잖니. 특히 이번 주는 웬만한 어른보다 더 훌륭했지. 다 어른들이 할 일이었는데 네가 했잖아. 심지어 정의롭게.”


정의로웠나? 가해욱의 혼을 빼 죽일 뻔했지만 안 죽었으니 정의롭다고 해도 되려나?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진심이야. 아마 이제 명월이 네가 전학 가고 나면 우리 학교 미스터리는 누가 풀어 주나.”

“아, 미스터리라뇨. 이상해요. 쌤.”

“왜- 너 그런 거 되게 잘 어울려. 미스터리 푸는 것도 잘하고 심지어 너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잖아.”

“아니, 무슨··· 아니에요···”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나는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고 부정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속으론 선생님의 말을 곱씹어봤다.

내가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어른스러운 건 진정 나의 모습일까. 아니면 내 본 모습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모습일까.

내가 어린 나이긴 하지만 몇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면 그것이 내 본 모습일까.

그러나 내가 능력을 숨기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면 그것도 내 본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선생님의 말을 혼자 곱씹다가 내 자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까지 사유하게 되었다.

내가 이 학교에 전학을 오게 되면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동안의 내 모습이 결국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걸 확인받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론이 무엇이든 난 나의 자아를 찾아가고 싶었다. 내가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지, 나의 능력은 정확히 무엇인지, 그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


차분해진 나의 머리가 전정훈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이젠 이 혼란도 지겨웠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움이 이젠 나의 친구가 된 듯이 이 상태가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했다.

담임 선생님도 내가 무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지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으셨다.

이 정적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내 본 모습을 아는 사람과 내가 변명하고 거짓말하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게 이리 편할 것임을 이제 알았다.

난 집에서도 귀신과 대화하는 모습을 엄마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내 앞에선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굴었지만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다음 날 집을 비웠다. 엄마는 어디 간다고 굳이 말하지 않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간다는 것을. 엄마가 할머니에게 무엇을 묻고, 할머니가 엄마에게 무슨 대답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어릴 때는 엄마가 나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갔지만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도 엄마는 할머니와 대화하는 걸 나에게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를 마당에 두고 나에게 두 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문을 닫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헐머니가 있는 곳은 귀신도 없어서 두 분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처음 몇 번이야 어렸을 때니 어른들의 대화가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귀신이 없는 그 평온한 시간을 즐겼다. 그 시간이 너무나 평화로워 몇 번은 엄마에게 일부러 귀신 얘기를 했다.

하지만 엄마가 불안해하는 그 눈빛을 나에게 숨기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기가 점점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샌가 굳이 엄마가 힘들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 뒤로 엄마에게 귀신 얘기를 하는 날이 거의 없어졌고 엄마는 그런 나에게 가끔 요즘은 귀신에게 시달리지 않냐며 물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은 사실이었다. 귀신에게 시달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귀신에게 해코지 받은 적이 없으니까.

엄마는 그런 나의 의미를 파악했는지는 모르지만 괜찮다는 나의 대답에 안도를 하는 숨결을 내쉬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찾아 가는 횟수가 줄었다. 난 내가 무슨 근거로 엄마의 그런 행동이 긍정적이라 판단했는지는 모른다.

귀신을 볼 때 귀신의 사망 원인부터 생각이 나 뒤늦게 그 근거를 찾을 때처럼 할 수 없었다.

엄마가 할머니 집에 찾아가지 않는 그 이유의 근거를 할머니에게서 찾아야 하는데 할머니는 나에게 우리 학교, 나라는 미스터리보다 더 큰 미스터리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찾아가 이유를 따져 물을 수도 있지만 그러진 않았다. 난 할머니가 무서웠다.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갈 때면 할머니는 온화한 표정으로 날 반겨주셨지만 눈빛만은 호랑이 같고 내 뼛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우셨다.

그리고 나에게 마당에 앉아 ‘쉬라고’ 하셨다.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지 다 아는 것 마냥.

그리고 엄마와 길게 대화를 하고는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날 부르진 않으셨다. 방울 소리가 그칠 때까지 난 마당에 앉아 있었고 방울 소리가 멎으면 날 불러 내셨다.

그리곤 다시 그 온화한 표정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배웅해 주셨다.

그 눈빛이 나에겐 항상 두려움을 자극했다. 나에게 단 한 번도 무서운 태도를 보이지 않으셨지만 할머니 뒤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주는 무언가가 날 두렵게 했다.

그래서 할머니를 찾아가 대답을 듣기가 무서웠던 것만 같다.


“명월아. 도착했어.”


이렇게 나 혼자 과거 회상까지 하며 잠긴 내 정신을 깨워준 건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어··· 일단 오늘은 어머니께 전학 얘기 말씀 드리지마. 어머니께는 선생님이 내일 말씀드릴게.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너도 그동안 피곤했을텐데 내일은 학교 나오지 말고 쉬고. 알겠지?”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하루 종일 고등학생이 밥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돌아다닌 건 큰일이야. 선생님이 나오라 해도 아마 넌 내일 온 몸이 힘들어서 나오지 못할 걸. 그러니까 선생님이 이렇게 권유할 때 그렇게 한다고 해. 넌 그래도 되니까.”

“하지만··· 가해욱이 또 등교하면 어떡하죠?”

“지금 걔가 학교 나올 까봐 걱정인 거야? 너도 참. 명월아. 너도 나한테 네 능력 숨긴 것처럼 나도 숨긴 게 있어.”

“선생님이요?”

“뭐, 너가 아까 전정훈 선생님 만나 봐서 알겠지만 우리 둘은 형제야. 너도 눈치챘지?”

“아··· 너무 닮으셨길레···”

“그런 말 많이 들어. 그리고 나에 대해 정확하게 소개하자면 난 선생님이 아니야.”

“네? 저 지금 아직도 놀란 게 남았나요?”

“놀랄 일인가? 난 너가 날 이미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 뭐··· 선생님이 이때 왜 이랬지 이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1년 동안 담임 선생님으로 만난 사람을 선생님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죠.”

“와. 나도 이제 선생된 지 1년이 됐구나? 시간 참 빠르네.”

“아, 그래서 선생님 원래 직업이 뭔데요. 빨리 말해줘요.”

“나 국가 초능력 관리부 소속 요원이야. 줄여서 국초부. 약간 국정원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이름이 참 원초적으로 지었네요.”

“야, 나도 마음에 안 들어. 국초부가 뭐냐.”

“그래서 선생님도 능력이 있으세요?”

“나랑 형 둘 다 있지. 나는 기억 능력자야. 모든 순간과 글자를 기억할 수 있어. 그래서 나도 너처럼 처음에 능력이 있는 줄 몰랐어. 그냥 공부를 잘 하는 줄 알았지. 그러다가 형이 먼저 능력자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 나도 능력자라는 걸 알게 된 거야.

“전정훈 선생님 능력은 뭔데요?”

“형은 힐러. 그래서 보미가 산 거야. 형이 치료했거든.”

“네?”

“그 병원 우리 소속이야. 그래서 내가 보미 병실비랑 병원비 낸 거고. 물론 형은 힐러 중에서도 뛰어난 편이라 보미가 애초에 다치지도 않았던 것처럼 치료할 수 있었는데 그건 너무 평범하지 않잖니?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그래서 보미의 목숨은 살리고, 머리도 완전히 치료했지만 몸은 완전히 치료하지 않았어. 물론 금방 회복될 정도만.”

“아, 그렇군요··· 근데 거긴 이한 대학교 소속 대학 병원이잖아요.”

“너가 방금 간 고등학교 이름이 뭐야.”

“이한고등학교··· 아···”

“이한고등하교, 이한 대학교, 이한 대학 병원 다 우리 소속이야. 그래서 형도 내 연락 받자마자 올 수 있었지. 아까도 말했지만 보미가 죽는 건 우리의 예상 밖이였어. 우린 너의 능력을 확인하고자 했지. 누군가가 죽어서까지 그걸 확인할 필요는 없었거든.”

“제 능력을 지켜보셨어요?”

“응. 너가 능력자라는 확신이 있어야 했거든. 그리고 너는 그걸 충분히 확인시켜줬고.”

“합격한건가요?”

“우리가 감사할 정도지.”


나는 초능력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다.

1년 동안 봐온 담임 선생님이 선생님이 아니였다. 심지어 요원이라니.

정말 영화 속에 뛰어든 마냥 현실과 한 순간에 동 떨어졌다. 그게 무섭지만은 않았다. 조금은 기대가 됐다.

나는 내가 살던 세상만이 세상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커다란 비밀을 안은 채 선생님과 인사를 했고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왔다.

선생님과는 앞으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만남이 끝이 아니길 바란다.

나에게 고등학교 첫 담임 선생님은 영원히 전용준 선생님일 테니까.



작가의말

드디어 전학 가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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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보는 것도 초능력이야? 그건 그냥 무당이잖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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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업로드 지연 공지 24.06.29 22 0 -
32 32. 정보의 바다 시대에 도서관이라니 24.09.16 6 0 8쪽
31 31. 화해의 도서관 24.09.13 10 0 7쪽
30 30. 손발도 맞아야 아주 큰 소리가 난다. 24.09.11 10 0 8쪽
29 29. 들리지 않는 대화 24.09.09 12 0 10쪽
28 28. 쌈닭들 24.09.06 15 0 10쪽
27 27. 일석이조 24.09.04 13 0 9쪽
26 26. 보호막 24.09.02 14 0 9쪽
25 25. Just One Second. 24.08.30 19 0 10쪽
24 24. 헤쳐 모여. 작전이다. 24.08.28 17 0 9쪽
23 23. 바쁘다바빠 초능력사회 24.08.26 24 0 11쪽
22 22. 결투를 신청한다. 24.08.23 18 0 10쪽
21 21. 제대로 수업을 하는 날이 없음 24.08.22 18 0 7쪽
20 20. 도망쳐야 하는 순간도 있다. 24.08.20 19 0 8쪽
19 19. 이러다 다 죽어 24.08.17 20 0 8쪽
18 18. 자, 이제 잠에 듭니다 24.08.14 32 0 10쪽
17 17. 쉬는 시간 24.08.12 31 1 11쪽
16 16. 죽고 싶은 사람 이리 모여라 24.07.09 34 2 11쪽
15 15. 우리 반 24.06.23 32 1 22쪽
14 14. 전학 24.06.16 48 1 23쪽
» 13. 수용할 줄 아는 능력 24.06.16 39 0 24쪽
12 12. 견학 24.06.14 37 0 19쪽
11 11. 선택 24.06.12 36 0 15쪽
10 10. 마지막 미션 24.06.11 47 0 16쪽
9 9. 갑작스러운 의문 24.06.09 39 0 14쪽
8 8. 사실 초능력이 행운일 수도 24.06.09 40 1 20쪽
7 7. 저세상 베프 24.06.04 42 0 19쪽
6 6. 조력자 24.05.30 44 0 19쪽
5 5. 레벨업 24.05.29 49 1 21쪽
4 4. 보디가드 24.05.26 4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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