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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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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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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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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변이(2)

DUMMY

-칼···.

방금까지 온몸을 지배하던 숙취는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건 놀라움과 두려움이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일어난 후폭풍에 쓰러져 버린 후안은 지금껏 볼 수 없던 재난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있는 후안의 눈동자에 하늘마저 태우려는 그 악의적인 불꽃이 비친다. 잔혹하고도 무자비한 화마는 너무 위험한 것이라 심지어 매혹적일 정도로 느껴졌다. 살갗에 닿는 매우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 불에 대한 욕망은 강력한 것이라 거부할 수 없었다.

후안은 멍하니 일어나 그 불에 다가갔다. 그가 일어난 자리에는 그가 넘어지며 팔다리에 생긴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바닥에 쓸리며 생긴 이마와 광대의 상처는 화끈거리는 피를 뿜어내고 있다. 그 상처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열기가 닿자 더 심한 통증이 몰아닥친다.

후안은 자리에서 멈춘다. 그의 앞에 괴이한 형체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거대한 원뿔 형태의 머리에 거대한 입과 우락부락한 코 그리고 그 큰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이 눈꺼풀도 없이 동그랗게 돌출되어 있다. 성인의 상체 크기의 거대한 손, 그에 비해 어떻게 저 큰 머리를 지탱하는지 알 수 없는 작고 왜소한 몸통과 사지.

마치 책에서 나오는 플라스크 속의 작은 인간, 호문쿨루스를 거대화시켜 놓은 형태의 그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고 믿기엔 어려웠다. 그것이 두툼하고 거대한 입술을 벌리자 불쾌한 치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의 이빨에는 검붉은 와인 같은 액체가 묻어있다. 새빨간 액체가 묻어있지 않은 치아가 불빛에 번들거리며 후안의 얼굴을 내비친다. 괴물은 입을 닫고 입으로 쭈왑~ 쭈왑거리며 더러운 소리를 낸다.

지금 후안은 더 이상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거대한 불이 일으키는 내적인 혼란에 더불어 정상적인 생명이라 보기엔 어려운 괴생명체가 눈앞에 아른거리니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현실에 대한 거부감이 끝내 그의 정신을 놓고 말았다.

-반···.

거친 불 앞에 서 있는 반이 보인다. 반이 그곳에 서 있다. 반은 아련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향해 손짓한다.

후안은 불을 또렷이 바라보며 숨이 찰 정도로 뜀박질한다.

-반···. 반! 반이 저 불 속에 있어. 반을···. 반을 구해야 해!

후안은 조금이라도 빨리 아들에게 닿기 위해 반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며 달렸다. 꼭 안아주지 않아도 손끝이라도 아들에게 닿는다면 여한이 없다.

아들과의 해후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느리게 지나가는 장면처럼 아들과 가까워질 기미가 없다. 애타는 마음과 달리 그렇지 못한 현실에 점점 후안의 얼굴은 일그러져 간다.

슬로우 모션 같던 장면은 이제 멈춘다. 그러더니 시야가 180도 돌아가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몸이 공중에 떠오른다.

그 괴생명체가 엄지와 검지로 집게처럼 만들어 후안의 발목을 잡았다. 후안은 그것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후안의 발목을 잡고 있는 손은 요지부동이다.

후안은 애써 고개를 돌려 아들이 있는 곳을 보았다.

아까 전만 해도 아들이 서 있던 곳에는 아들이 아닌 원통형의 몸에 팔이 기형적으로 늘어난 괴이한 것이 후안을 향해 입술이 없어 잇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그 공포스러운 것에 대한 것이 아닌 아들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후안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이내 잠잠해지더니 씩 웃는다.

-거기 있었구나. 아들.

콰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문쿨루스를 닮은 괴물이 무언가 씹기 시작한다. 이미 빨갛게 물든 치아가 더 진하게 물들어 간다.

잘 씹고 있던 괴물은 쿡쿡거리더니 기침하며 입에 있던 것을 토해낸다. 머리에 비해 아주 작은 목구멍으로 삼킬 수 없어 결국엔 다시 토해낸 것이다. 동시에 잡고 있던 다리를 던져버렸다.

불 앞에 서 있던 팔이 긴 그것은 우연히 자기 앞으로 떨어진 다리를 줍는다. 그리고 입으로 갖다 댄다. 목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입이 벌어지며 다리를 단숨에 집어삼킨다.

그때 그칠 줄 모르는 불길에서 새까맣게 타버린 손이 튀어나온다.

그 손은 그 괴물의 머리를 잡는다. 그 손이 주먹을 쥐자 자연스레 그것의 머리가 터지며 잔해가 주위로 뿌려진다.

거센 바람이 분다. 바람에 불이 뒤로 눕는다. 그러면서 검게 타버린 몸이 나타난다. 그 검은 것이 점점 불길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다.

뜨겁게 타오르는 마그마의 표면이 점점 식어 국소적으로 점차 굳어가는 것처럼 검게 타버린 피부 위로 진홍색의 살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에 활화산처럼 보이는 그것은 순식간에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후안을 검처럼 뱉어 놓은 괴물에게 내던졌다.

괴물의 두 개의 앞니 사이에 도끼가 박혔다.

순식간에 연기가 선을 그으며 괴물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검게 일어나는 연기 속에서 갑자기 망치의 모루가 나타나 박혀있는 도끼의 등을 후려쳤다.

귀가 먹을 정도의 엄청난 금속음과 함께 괴물의 머리 뒤쪽으로 살점이 터져 나가며 붉은 부채꼴을 그렸다. 도끼는 100m 이상을 날아가 땅에 꽂혔다.

가득 채운 연기가 걷어지기 시작하더니 온전한 모습의 칼이 나타난다.


패닉에 빠진 혜는 통증이 느껴지는 손으로 최대한 흙바닥을 긁으며 촉수의 힘에 저항했다. 그녀가 끌려가며 자국이 생긴 바닥에는 흙과 먼지에 섞여 굳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으으으아!

와그너가 부서진 널빤지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촉수를 향해 내리쳤다. 촉수가 끊기며 단면이 드러났다. 촉수의 단면은 동굴처럼 비어있다. 그 단면에서 갑자기 혓바닥처럼 생긴 것이 기어 나오더니 기괴한 비명을 내기 시작한다.

귀가 아플 정도로 큰 비명에 와그너는 잡고 있던 널빤지를 던져놓고 귀를 막는다. 혜는 바닥에 엎드린 채 귀를 막는다. 와그너는 억지로 귀에서 손을 떼고 소리를 참으며 헤를 끌며 부서진 건물 뒤로 몸을 숨겼다.

와그너는 벽에 기대어 앉아 숨을 몰아쉬며 고개만 조심히 내밀어 괴물의 동태를 살폈다.

그것은 놓쳐버린 입질이 아쉬운지 다른 촉수로 혜가 있던 자리를 더듬거린다. 혜의 핏자국이 남아있는 흙바닥에 닿으니, 그것을 촉수의 끝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흡사 촉수의 움직임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혓바닥 같았다.

절단된 촉수는 비명을 멈추더니 혓바닥처럼 생긴 기관이 부풀어 커지며 잘려 나간 촉수의 끝을 대신했다.

-마르코 아저씨가 갑자기···. 아저씨가 갑자기 저렇게 변해버렸어요! 저기 저 커다란 웁!

와그너가 혜의 입을 막는다. 혜가 와그너의 손목을 잡고 때어내려 할 때 와그너가 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쉿’이라고 작게 속삭인다.

그때 그들이 숨은 벽 앞으로 커다란 머리에 거미처럼 다리가 달린 괴생명체가 지나간다. 그것의 뾰족한 다리 끝에는 마을 사람들이 꼬치처럼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꼬치를 끼우기 위해 재료를 찾고 있다.

혜는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며 동공이 흔들린다.

와그너와 혜는 숨을 죽인 채 그것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제기랄!

흙바닥에서 저항하며 뒤집어쓴 흙먼지가 혜의 눈물에 씻겨 내려간다.

-혜, 너 괜찮니?

그때 혜의 뒤 수풀에서 칸나가 루나를 안고서 나타났다. 칸나는 비명이 낭자하고 괴기스러운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루나를 보호하기 위해 수풀에 숨어들었다. 칸나는 혜가 촉수에 발을 묶여 있는지 모르고 혜가 피신했을 거로 생각하며 루나를 데리고 숨었다.

칸나의 품에서 깨어난 루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눈을 끔벅이다 부서진 건물 사이로 다양한 모습의 괴물들을 본다.

방금 지나간 거미 같았던 것, 턱에서 자라난 굵은 혈관으로 서로의 얼굴이 연결된 것, 공처럼 생긴 머리에 양쪽으로 근육질에 다리가 달린 것, 몸을 바닥에 붙인 채 팔로 기어다니는 것, 해골 같은 마스크를 쓰고 온몸에 털로 뒤덮인 것, 촉수를 내뿜은 채 정해진 형체 없이 몸을 흐물거리는 것, 두꺼비처럼 넙데데한 입을 가진 것.

그 괴물들 주변으로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다. 사람들의 신체는 조각난 퍼즐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이제 그것들의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것들이 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했다. 도망치던 사람들을 가지고 놀거나, 산 채로 뜯어 먹거나 죽인 다음 먹거나, 피만 빨아먹고 시체를 던져 놓는가 하면 다른 녀석들은 살을 파먹었다. 녹여 먹기도 하고 잘게 조각내 먹기도 했다.

간혹 이 녀석들 사이 긴장감이 돌 때가 있는데 한 사람들 두고 대치할 때다. 마르코의 잔해에서 튀어나온 것이 사람을 잡고 그것의 머리 위에 위치한 가시 같은 이빨이 돋아난 입에 처넣으려 할 때 두꺼비처럼 입이 넙데데한 것이 튀어 올라 사람의 머리를 뜯어 먹었다. 머리가 뜯기며 척수와 여러 내장이 함께 나와 그 녀석은 매우 흡족한 듯 배를 쓰다듬었다. 마르코였던 것은 두꺼비 같은 그것을 촉수로 묶어 들어 올려 땅에 여러 번 내려쳤다.

해괴망측한 온갖 것들이 돌아다니는 곳은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루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녀석들과 함께 뛰어놀았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즐기고 있던 곳이었다.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린 광경에 루나는 다시금 몸을 떨기 시작했다.

-루나!

혜는 루나를 안고 아이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루나는 진정이 되지 않고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헉!

울고 있는 루나가 건너편 오두막 쪽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들은 일행에게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던 것이 와그너 쪽으로 획하고 튀어온다. 마넬리다.

마넬리도 일행들처럼 괴물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하기 위해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다 와그너와 일행을 발견하고 합류하기 위해 슬그머니 움직이다. 오두막과 오두막 사이 길목에서 괴물에게 모습이 노출될까 재빨리 넘어온 것이다.

-마넬리, 같이 가요! 나만 두고 가지 마요!

마넬리가 반갑지 않은 손님까지 데리고 왔다. 빌리다. 도피 중 마넬리는 수풀 안쪽에서 질질 짜고 있는 빌리를 발견하고선 수십 번 고민하다 그를 데려 가기로 결정했다. 그의 존재가 오히려 폐가 될 것임이 틀림없었지만 그를 방치하고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마넬리는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입 다물고 따라오기만 하라고 강조했지만 역시 빌리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런 한심한 녀석! 다들 뛰어!

우매한 빌리의 행동에 괴물들의 시선이 일행이 있는 오두막으로 쏠렸다. 이 바보 같은 빌리는 민폐를 끼치는 만행을 저지르고 부족했는지 마넬리처럼 재빨리 넘어온 것이 아니라 모습을 괴물들에게 드러낸 채 울먹이며 일행에게 다가온 것이다.

혜가 칸나를 부축하며 달리고 마넬리가 뒤에서 보조한다. 그 뒤를 아이를 안은 와그너가 따른다.

빌리는 마르코가 변해버린 괴물의 촉수에 잡혔다.

달리는 와중 뒤로 오두막이 아작 나는 소리가 들린다. 날아온 파편이 와그너의 얼굴 옆을 스치며 상처를 내고 땅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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