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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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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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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1)

DUMMY

공터에서 끝을 모르고 타오르던 불꽃은 수확제의 첫날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한 층 줄어들었다. 곧은 기둥처럼 흔들림이 없었던 불은 바람에 따라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달이 한 번 하늘의 끝을 찍고 다시 내려갈 때 마을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 술에 찌든 어른들만 남아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들도 모두 다 악기를 내려놓고 사람들의 무리에 들어가 수확제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리를 이루어 작은 모닥불을 피운 뒤 불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떠들고 있었다. 칸나와 혜 그리고 칸나를 도와 음식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식기구들을 설거지하고 쓰레기나 그 외의 것들은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혜와 칸나, 루나만 남아있었다.

마넬리와 와그너도 그곳에 있다. 비교적 외진 곳에 자리 잡은 그들은 불을 피워 놓고 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그러나 그 둘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술과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불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지는 않는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사람들처럼 앉아 있었다. 가끔 와그너가 긴 나뭇가지로 불에 타고 있는 장작을 뒤적거릴 뿐이다.

-와그너, 어제 낮에 봤어.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불 속을 면밀히 바라보던 와그너는 고개를 그녀의 쪽으로 들었다. 그리고 불을 뒤적이던 나뭇가지를 잡은 손을 무릎 위에 살포시 올렸다.

-무슨 일 말이야?

-혜에게 화를 내고 있더군.

마넬리가 와그너에게 추궁하듯이 말했다.

-또 그 소린가 지긋지긋하군.

와그너가 나뭇가지를 바닥에 훅 버려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난 그것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 않아. 내가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니고.

마넬리는 화가 난 말투로 와그너에게 말한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자리에 앉아. 그리고 그 애의 잘못이 아니야. 우린! 우린···. ‘그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잖아.

그 말에 문득 와그너는 흑백 영상이 틀어지듯 한 기억이 스쳤다. 그리고 다시 역정을 내며 마넬리에게 말했다.

-그 애의 잘못이 아니라니! 그날! 그 지옥 같던 날! 그 아이를 본 건 그 애뿐이었어.

이젠 마넬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며 받아친다.

-단지 그것만으로 그 애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그 애도 동생을 잃었어. 그 아이도 피해자야.

와그너가 그 말을 듣고 험상궂은 얼굴로 숨을 힘껏 들이쉬고 몸을 돌려 숨을 내뱉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짚고 땅을 쳐다보았다.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마넬리에게 몸을 돌려 삿대질하며 열불을 토해낸다.

-그때 그 애가 아닌 내가 있었다면 난 무조건 아이들 먼저 구하러 달려갔을 거야. 그러나 그 아이는 그러지 못했어! 나였다면 눈이 회까닥 뒤집어져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을 거라고!

와그너는 팔을 크게 벌리다가 따지듯 무슨 말이라고 해보라는 식으로 두 손을 모아 손바닥을 내보였다.

마넬리가 눈을 감고 찡그리며 와그너의 말을 듣다가 한 손으로 두통이 몰려오는 이마를 짚고 다른 손으로 그만하라는 뜻의 손사래를 친다.

-그만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비뚤어 진 건데?

와그너는 도저히 화를 못 참겠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거린다. 마넬리에게 다급히 걸어가 화를 토해낸다.

-뭐, 뭐라고?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정말 진심이야?

-와그너! 진정-!

-우린 아이를 잃었어!

와그너가 마넬리의 말을 끊고 말했다.

-우리 아이가 사라졌다고 마넬리! 우리 아이···. 우리 아이가! 어떻게 제 정신일 수 있겠어. 어! 난 지금도 그 애의 얼굴이 떠오른단 말이야. 꿈속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수도 때도 없이 그 아이의 얼굴이 보여!

와그너는 자신의 팔에 묶인 손수건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 얼굴을 실제로 볼 수 없으니 점점 미쳐가고 있는 거 같아.

발갛게 달아오른 와그너의 얼굴은 모닥불의 열기로 더 달아오른다.

그 순간 마넬리의 시선에 혜가 들어온다. 혜는 마넬리와 와그너를 위해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져왔다. 대화에 빠져 혜가 오는지도 몰랐던 마넬리는 혜를 원망하는 와그너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한다.

와그너는 마넬리가 자기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다. 혜가 있다. 와그너는 땅을 세게 걷어차며 혜를 지나쳐 멀어져 간다.

혜는 몸이 굳은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혜....-두 분이 이야기하던 중이었군요···. 하하···. 여기 먹을 것 좀 가져왔어요. 수확제 준비하시느라 바쁘셔서 뭐 먹지도 못하였을 텐데 좀 드세요. 여기 두고 갈게요. 그럼, 이만.

-혜!

마넬리는 혜를 불러 세웠다. 혜는 얼음장처럼 차게 굳어버린 몸을 마넬리 쪽으로 약간 틀었다. 마넬리가 혜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혜는 마넬리가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났다.

-혜···. 괜찮니?

-네? 아, 괜찮아요. 근데 아무래도 음식을 준비하느라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피곤하네요. 얼른 가서 쉬어야겠어요. 대장도 충분히 쉬시고 내일 뵐게요. 내일도 모레도 수확제니까요. 그럼···. 저 가볼게요.

혜는 마넬리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연신내 바닥으로 시선을 깐 채 말을 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혜는 마넬리가 신경 쓸까 애써 웃으며 성급히 말을 내뱉고 자리를 떴다.

마넬리는 멀어져가는 혜를 보며 자리에 털썩 앉는다.


루나는 칸나가 뒷정리하는 사이 그 옆의 긴 의자에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혜는 조용히 그 빈자리에 앉았다. 루나가 눈을 끔뻑이며 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녀 쪽으로 꿈틀거리며 기어와 그녀의 다리를 베개 삼아 다시 잠을 청한다.

혜는 루나의 볼을 만진다. 루나는 그게 기분이 좋았는지 자면서도 미소를 짓는다.

아이의 미소에 혜는 씁쓸한 미소로 화답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아직 집에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본다.

이미 취해버린 사람들은 들뜬 축제의 분위기에 심취하여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최근 마을 내 여러 일이 일어나 마음이 싱숭생숭한 상태였으므로 사람들은 이 수확제를 붕 떠버린 마음의 도피처로 생각하여 이성마저 축제에 맡겨버렸다.

그렇기에 지금 수확제의 시작을 알리던 드높던 불기둥 근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두 눈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혜뿐이었다.

혜는 사람들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줄 근처에서 춤을 추는 사람을 보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춤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어색하고 어정쩡하였다. 그 사람의 팔다리는 이성이 생겨난 모양인지 한 몸에서부터 각각 떨어져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였다. 축제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갈 때 신이 난 사람들이 춤을 추기도 했지만 그들의 춤에는 흥과 즐거움이 느껴지지만, 그 사람의 춤에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혜는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춤이 괴기스럽고 혐오감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깨닫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대체 그 춤을 추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혜는 두 눈에 힘을 주어 찌푸린 표정으로 그 사람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마르코. 그 사람은 마르코였다. 처음엔 얼굴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짧은 팔다리에 통통한 체형으로 그가 마르코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혜의 추측이 맞았다.

혜는 도대체 그가 왜 그러는지 묻기 위해 루나의 머리를 조심히 들어 의자에 다시 눕히고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심적인 거부감에 혜는 쉽사리 다가갈 수 없어 거리를 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와 10m 정도의 거리를 두었을 때 그의 움직임은 갑자기 정적으로 멈췄다. 혜는 그가 움직임을 멈추는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혜는 한걸음 물러섰다. 평소 그의 눈빛이 아니다. 불이 비쳐 번득이는 그의 눈동자에는 광기가 가득했지만, 혼이 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혜가 그 눈빛에 소름이 끼쳐 다시 한 발짝 물러섰을 때, 한 때 마르코였던 그것은 입이 귀까지 찢어지며 씩 웃었다.

그러자마자 그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더니 그의 배가 녹아내리면서 안에 있던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혜는 경악스러움을 그칠 수 없어 다리가 풀린 채 자리에 주저앉아 입을 두 손으로 막는다.

이미 산더미처럼 쌓인 창자는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 그의 뼈와 살로 추정되는 것들이 액체처럼 녹아내린다. 아직 마저 녹지 않은 얼굴이 그 위를 부유하다 소금처럼 녹아 없어진다. 그리고 분수처럼 터져 나왔던 피는 번들거리는 막처럼 변하며 내장과 흘러내린 뼈와 살이 무자비하게 섞인 그것의 위로 덮는다.

혜는 바닥을 기며 그것으로부터 최대한 떨어지려 노력했다. 새빨간 막은 뒤에서 멍청하게 타오르는 불이 반사되어 그것의 질감을 고스란히 혜에게 전달했다. 불쾌한 점액질이 흘러나오며 마치 심장이 뛰듯 울렁거리는 그것의 움직임은 방금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혜가 그것에 혼이 팔린 사이 근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한, 두 군데가 아니다. 혜가 비명이 난 곳을 보자. 눈앞에서 일어났던 괴기스러운 현상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비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터에서만 한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을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 혜는 이게 도대체 뭔 일인지 어안이 벙벙해지며 비틀거리며 일어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을 전체를 집어삼킬 만한 거대한 화마가 피어올랐다. 평소 마을의 지리를 잘 알고 있던 혜였지만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어디서 폭발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순간 루나가 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혜는 곧장 루나에게로 달려갔다. 이 소란에도 곤히 잠든 루나의 얼굴은 불경스러운 장면을 잔뜩 담은 혜의 눈에 잠시 안식이 되었다.

그러다 무언가 혜의 발목을 잡았다. 달려가던 헤는 곧장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혜는 엎드린 채로 자신의 발목에 걸린 것을 보았다. 끈적거리고 화끈거리는 그 느낌은 맘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쾌함을 일으켰다. 매끈한 피부의 길쭉한 무언가가 뱀처럼 혜의 발목을 꽁꽁 감고 있었다.

혜는 발을 세차게 움직이며 그것을 때어내려 하지만 꼼짝하지 않는다. 혜는 손으로 그것을 잡고 뜯어내려고 했지만 그것의 표면에 흐르는 정체를 모르는 액체에 손이 닿을 때마다 살이 타는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던 중 혜의 눈에 띈 것은 마르코인지 아닌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변해버린 고치의 안쪽에서 무언가 튀어나온 흔적을 보았다.

혜는 조심히 그 혐오스러운 촉수에 시선을 돌리며 그 촉수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았다. 혜는 억장이 무너진다.

끈적거리는 액체를 끊임없이 뿜어대는 원뿔형의 물체가 몸통에서부터 여러 갈래의 촉수를 뻗어내고 있었다. 그것의 크기는 족히 5m 이상은 되어 보였으며 살구색보다 조금 더 붉은 빛을 내는 피부는 역겨운 냄새를 뿜어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감상할 겨를도 없이 그것은 다른 촉수를 혜를 향해 뻗기 시작한다. 혜는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것은 그 상황을 즐기는지 잔악하게 천천히 그녀의 주변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촉수를 만진 혜의 손은 피가 흘러내린다. 혜는 그런 손으로 주위에 무언가 떨어져 있지 않은지 흙바닥을 막 더듬기 시작한다. 돌멩이라도 있으면 그 흉측한 괴물에게 던져 저항하거나 발을 묶고 있는 촉수에 내려쳐 끊어 낼 심산이었다. 거친 흙바닥과 스치며 통증이 일었지만 헤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것이 점점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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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검은 옷의 사람들 24.07.15 2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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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넬리와 와그너 24.07.08 23 0 15쪽
28 발각 24.07.04 24 0 14쪽
27 집으로 24.07.01 25 0 12쪽
26 아침. 24.06.27 24 0 14쪽
25 지켜야 할 사람들 24.06.24 24 1 13쪽
24 샛별 24.06.20 25 0 12쪽
23 파피(2) 24.06.17 24 0 16쪽
22 살아남은 자들 24.06.13 27 0 14쪽
21 파피(1) 24.06.13 2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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