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모가지
두 눈이 바쁘게 움직이며 상황을 읽어 낸다.
헌터는 셋.
김 과장님이 말한 선행팀이 저 사람들인 것 같다.
전사 / 마법 / 버프 계열.
교과서에 나오는 정석적인 조합이다.
한 명은 방금 전 공격의 충격이 컸는지 고꾸라진 채로 푸들거리고 있지만.
“세 명이 전부입니까?”
“네, 네!”
근처에 널려 있는 놀 시체만 열 구.
얼어붙은 흔적과 검상이 남아 있는 걸 보니 헌터 팀의 솜씨인 모양이다.
문제는 저 녀석인데.
▷특성
【용맹(C)】 / 【재생(C)】 / 【윤기 나는 털(C)】 / 【추격 본능(D】
이야.
D급 몬스터가 특성을 넷이나 들고 있어?
부글부글-.
내장이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 위로 거품이 끓어오른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멎고.
근육이 재결합되며, 새 살이 돋아나고 있다.
일반인이 저런 상처를 입으면 병원에서 6주 이상 누워있어야 할 텐데.
놀 그런트한테는 1분이면 충분해 보였다.
“대응국 2부 박민호 주임입니다. 이 녀석은 제가 맡겠습니다.”
“조심해요!”
“변종. 엄청 세요!”
푹 파인 합금갑옷만 봐도 알겠네요.
도끼날과 창대에 달아 놓은 예리한 창날.
베기와 찌르기 모두 가능한 병기, 할버드가 시퍼런 빛을 흩뿌렸다.
“근질근질하지? 내가 좀 따뜻하게 해 주마.”
[파이어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놀 그런트에게 꽂힌 화염구.
폭발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솟구쳤다.
“해, 해치웠나?”
야잇.
살아나라고 아주 고사를 지내지 그러냐.
헌터의 경솔한 말에 화답하듯, 놀 그런트가 검은 연기를 가르며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양팔.
보이는 것과 달리, 화상 하나 입지 않은 모습이다.
팔을 교차해서 상처 부위에 열기가 전달되는 것을 막아냈군.
【윤기 나는 털】
등급 : C
털가죽에 마법 내성을 부여한다.
특성의 발현 범위는 털.
재생 중인 상처는 【윤기 나는 털】의 대상이 아니니 두 팔로 막은 것이다.
【퀵 리로드】
[파이어볼]
0.4초 간격을 두고 날아든 파이어볼에 잠시 주춤하는 놀 그런트.
폭발 에너지를 정면으로 받아 냈지만 첫 번째 공격과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입진 않았다.
“컹! 죽어라!”
길게 늘어뜨린 할버드가 땅을 훑듯 낮은 위치에서 사선을 그리며 크게 휘어졌다.
전사계 헌터의 움푹 파인 합금 갑주가 떠오른다.
한 번이라도 맞으면.
대응국에 보급되는 싸구려 방어구는 두 동강 나버릴 거다.
난 박미/ㄴ호 가 되겠지.
코볼트들한테 17조각으로 찢기는 것보단 나으려나.
[60초가 지났습니다. 복제한 능력이 사라집니다.]
타이밍 보소.
능력치가 하락해서 거리를 벌리기도 어렵다.
【괴력】
[제식 검법 - 2형 : 종베기]
놀 그런트의 샛노란 동공은 내 움직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평범한 놀처럼 첫 공격에서 재미를 보긴 틀렸단 거지.
한 번 받아내고 거리를 좁히······.
채앵!
불에 덴 것처럼 뜨거운 손바닥.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괴력이 아니었으면 반격이고 뭐고 한 방에 뎅겅 잘렸겠네.
손의 고통에 신경 쓸 새 없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2격.
[제식 검법 - 4형 : 낙엽치기]
이번에는 도끼날을 옆으로 쳐서 흘려보냈다.
쿵-.
지면에 박히는 할버드.
“컹?”
“패링이라는 거다. 멍멍아.”
제식 검법은 대응국 신입 때 반드시 익히는 기초적인 스킬이다.
왜 기초라는 말이 붙냐고?
무협으로 치면 삼재검법 같은 기술이거든.
아.
차이가 하나 있네.
삼재검법은 횡 · 종 베기와 찌르기가 전부잖아.
제식 검법은 사선으로 베는 동작이 더해져서 모두 4가지 형(形)이다.
기본에 숙달한 헌터들은 더 강력한 스킬을 배우려고 하지.
제식 검법만 몇 년을 붙드는 사람은 없다.
나 같은 미숙아가 아니라면 말이야.
낙엽치기는 패링에 특화된 동작.
7년 동안 수많은 위기를 넘기게 해 준 일등공신이다.
【괴력】
[제식 검법 - 3형 : 일점 찌르기]
칼끝에 모든 힘을 싣는다.
푸우우욱-!
몸통에 새겨진 검상을 노렸지만 할버드에서 손을 뗀 놀 그런트가 오른팔로 칼의 경로를 틀어막았다.
털을 베고 근육을 갈랐지만.
놀 그런트의 뼈를 쪼개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크릉! 컹!”
놀 그런트가 오른팔을 휘둘렀다.
아름드리나무도 뽑아낼 만한 어마어마한 힘!
나는 그 힘에 저항하지 않았다.
상처에서 뽑혀나간 디오닉 합금검.
몇 미터 뒤로 날아가서 바닥을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큭.”
“아아. 어떻게 해!”
“대응국에서는 언제 지원을 오는 거야!”
발 동동 구를 시간에 도움 좀 주시죠.
······라고 말하자니, 헌터 팀의 몰골도 영 아니었다.
전사계 헌터는 기절했고.
마법 및 신관계 헌터는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한 것처럼 보였다.
근처에 쓰러진 놀만 10마리가 넘어가니.
전투 중에 소모한 마력을 회복할 시간도 없었을 거다.
그러니까 나처럼 개쩌는 마력 노심을 챙겨왔어야지.
날 본받으십시오. 휴먼.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무리예요. 민철이는 기절했고, 우린 마력이 없어요.”
“그럼 숨 좀 돌리고 있으십쇼.”
헌터 셋과 초등생.
저들을 구하려면 눈앞의 변종을 쓰러트려야 한다.
“혼자 변종을 상대할 순 없어요.”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 지원군을 불러와요.”
“버틸 수 있겠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마력이 바닥난 마법 / 신관이 뭘 할 수 있다고.
내가 딱히 사명감을 가지고 대응국에서 버틴 건 아니지만.
자리를 이탈하면 네 사람은 확실히 죽는 상황에서 발을 뺄 만큼 매정하진 않다.
“해 볼 만해서 남아 있는 거기도 하고.”
혼잣말과 함께 파들거리는 근육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크르릉.”
할버드를 회수한 놀 그런트가 흉측하게 이를 드러낸다.
와.
팔에 입힌 상처에서는 벌써 새 살이 돋고 있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
확실하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놈을 쓰러트려야 한다.
“웃으면서 죽으면 호상이라고 하니. 넌 복 받은 거다.”
나는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복제를 사용합니다.]
***
놀 그런트의 특성은 넷.
여기서 무엇을 베껴야 이길 수 있을까?
[특성 - 재생을 복제했습니다.]
【재생】
등급 : C
상처를 아주 빨리 회복한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재생이었다.
“형이 좀 바빠. 빨리 끝내자.”
“컹!”
놀 그런트는 지면을 내달리며 도발에 응답했다.
【마력 노심】
[파이어볼]
다시 한번 일어나는 폭발.
화염구의 궤적을 놓치지 않은 놀 그런트가 포물선을 그리듯 우회하며 파이어볼의 범위를 이탈했다.
10미터.
5미터.
그리고 3미터까지 거리가 좁혀졌다.
창대를 쥔 손에서 핏줄이 도드라지게 튀어 나왔다.
아까처럼 튕겨내지 못하게.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낸 모습이다.
【퀵 리로드】
[파이어볼]
“컹?”
“서프라이즈.”
0.4초 만에 완성된 화염구를 다시 한번 투척했다.
지근거리에서 완성된 파이어볼.
놀 그런트는 상처를 막을 새도 없이 폭발에 휘말렸다.
뜨겁다.
퀵 리로드로 시간을 줄였지만.
0.4초면 두 걸음은 더 뗄 수 있는 시간이다.
놀 그런트와의 거리가 3미터까지 좁혀졌으니, 폭발의 여파로 발생한 열기가 내 몸을 덮쳤다.
숨을 참고 입도 꾹 다물었지만 온몸의 솜털이 바짝바짝 말랐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검은 연기에 휘감긴 놀 그런트에게 달려들었다.
“컹! 커컹!”
먼지를 뚫고 나오는 한 줄기의 섬광.
할버드의 끝에 달아놓은 창날이 매서운 기세로 날아든다.
좌우로 갈라진 연기 사이로.
초승달처럼 휘어진 놀 그런트의 눈가가 드러났다.
“컹. 눈속임. 안 통한다.”
“아니. 이미 통했다.”
네 놈이 연기를 눈속임용이라고 판단한 시점에서.
계획은 성공했다.
【괴력】
[제식 검법 - 4형 : 낙엽치기]
찌르는 궤도를 틀어냈지만 어깨가 삐걱거린다.
축 처진 왼팔.
찌르기를 흘린 것만으로 팔뼈가 제 위치를 벗어났다.
고통을 느낄 틈도 없다.
놀 그런트는 궤도가 틀어진 할버드를 그대로 회수.
도끼날을 안쪽으로 돌려서 내 등을 노렸다.
“위험해요!”
“옆으로 굴러요!”
피해?
그러면 끝이다.
놀 그런트한테서 도망칠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놈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등짝을 노리는 할버드 날은 무시한다.
패링으로 활짝 열려버린 놀 그런트의 가슴팍을 향해 돌진했다.
“컹?”
재생 중인 검상.
1분도 안 되어서 지혈을 마치고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지만.
아직 털까지는 자라지 않았다.
충분해.
난 허리춤에 달아놓은 멜빵에 손을 넣었다.
[1급 마석 - 파이어볼 x 6]
둥글게 깎은 마석을 되는 대로 움켜쥐고는.
재생 중인 놀 그런트의 상처에 망설임 없이 쑤셔 넣었다.
“커, 컹!”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도 털이 막아줄 수 있을까?”
쾅! 콰쾅! 쾅!
신호가 걸릴 때마다 틈틈이 깎은 마석.
파이어볼을 새긴 마석 6개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폭발했다.
마구 부풀어 오른 놀 그런트의 몸뚱이가 펑- 터졌다.
살점과 뼈, 그리고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후두두둑.
뜨끈한 액체가 전신을 뒤덮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힘(中) / 민첩(小) / 체력(小) / 맷집(小) / 마력(大)이 올라갑니다]
“······!!!!!!!”
너무 아프면 비명도 안 나온다더니.
내 꼴이 그랬다.
레벨이 오른다고 상처가 치유되진 않는다.
그러니까.
방금 전에 날려먹은 손목이 돌아오는 일 따윈 없다.
씨이이이이부어엉!!!!!!!
이것이 당신의 손입니다.
재만 있는데요?
맞아요.
뭐야. 씨바. 돌려줘요.
불개미 수천 마리가 신경을 갉아 먹는 느낌.
안구에서 나오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도 모르겠고.
벌어진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왔지만 닫을 정신도 없다.
“으. 에. 익. 으억.”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안 돼.
난 이성을 가까스로 유지하며 복제한 능력을 적용시켰다.
[특성 - 재생을 사용합니다.]
부글부글.
시간을 되감듯, 뼈가 자라나고 핏줄과 신경 가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크으으으. 으아아아!!”
“괜찮으세요?”
손목 위로 날아갔는데 괜찮으면 병원은 죽은 사람 부활시키는 곳이겠다.
“치, 료 좀.”
“아아악! 죄송해요!”
“주, 주문은 힐.”
“그건 제일 수준이 낮은 치유 주문인데요.”
더 이야기할 힘도 없다.
힐러를 노려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치유 주문을 사용했다.
【재생】
[힐]
드드드득!
뼈 자라나는 속도가 몇 배나 올라갔다.
신경 가닥과 핏줄.
그리고 살덩이까지 빠르게 재생되었다.
힐의 발동 원리는 회복력 증폭.
놀 그런트에게서 【재생】을 가져온 건 힐러를 의식해서였다.
“힐이 왜 이렇게 효과가 좋지?”
설명 안 해 줘.
【재생】에 힐이 더해지니 트롤 친척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재생속도가 나왔다.
[재생 능력이 사라집니다.]
새 살이 돋아난 오른손.
급한 불은 껐다.
회복된 것과 별개로 환상통 때문에 손이 파르르 떨렸고.
손목 아래쪽의 화상도 남아 있지만.
어쨌든 날아가 버렸던 손을 되찾았잖아.
하.
진짜.
두 번은 안 할 거다. 이런 짓.
“크릉, 컹!”
“하여간 쉴 시간을 안 줘요.”
몬스터가 언제부터 헌터 사정을 봐주면서 달려들었다고.
나는 디오닉 합금검을 지팡이 삼았다.
“괜찮으세요?”
“안 괜찮고 그 질문 한 번 만 더 하면 화낼 겁니다.”
막 재생한 오른손에는 힘도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괴력이고 나발이고.
손이 이래서야 놀과 1대1 싸움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작전을 준비했지.”
[파이어볼]
놀을 향해 파이어볼을 투척.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퀵 리로드로 두 번째 화염구를 만들었다.
쾅! 콰앙!
0.4초 간격으로 울리는 폭발음.
놀은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독하다, 독해.
“아직 한 발 남았다.”
[1급 마석 - 파이어볼]
퀵 리로드로 보정되는 건 두 번째 공격뿐.
다시 파이어볼을 사용하면 1.5초 정도가 걸린다.
그 시간이면 날 선 손톱이 내 목이나 심장을 떼어가겠지.
대신 여분으로 만들어 둔 마석을 투척.
세 번째 폭발에 삼켜진 놀은 연기를 내뿜더니 고꾸라졌다.
“놀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졌군.”
“저기요. 혹시 농담?”
이상하다.
2부 식구들은 잘 웃어 주던 회심의 말장난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놀이 더 나올 수 있습니다. 준비해 주십쇼.”
헌터의 지적을 못 들은 척 넘겼다.
놀 네 마리를 더 쓰러트린 후에야, 상황 정리를 위해 투입된 대응국 헌터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박민호 주임!”
“아. 오셨습니까.”
이상하네.
김 과장님이 왜 90도 각도로 서서 걷는 거지?
3초 후.
이상한 것은 김 과장님이 아니라.
땅바닥에 볼을 댄 채 바라보는 내 탓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 차려! 박 주······.”
아.
피곤하니까 조금만 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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