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램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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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
작품등록일 :
2024.07.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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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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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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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Chapter2. 질서 붕괴 (2)

DUMMY

퇴근길은 슬슬 유트니아 주둔군들이 채우며 감시하기 시작했다.

스크림 때문에 최근 들어 더 분위기가 무거워 보였다.

젠은 숨 막히는 퇴근길을 뚫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유일한 가족이자 레이 크루스라는 이름으로 젠과 함께 살고 있는 12살 소녀가 있었다.

이 허름한 집과 얼마 없는 재산 그리고 레이라는 인연은 유트니아가 준 것이었다.

레이도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소녀였다.

하지만 삶에 점차 적응해가며 올바르고 똑똑한 아이로 자랐다.

레이와는 형식상, 남매 사이였다.

하지만 진짜 남매처럼 서로 놀리며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항상 고요한 정적 속 레이와 둘이 저녁밥을 먹는 시간이 되면 하루 동안 찾지 못한 행복이 찾아왔다.

레이는 12살의 나이에 사춘기가 빨리 시작됐다.

옛날보다 수십 배는 어두워졌지만, 아직 가족을 인식 못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만족했다.

젠과 레이는 마주 보고 앉아 식사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고된 일들을 털어놓았다.


"오늘은 또 잘 가져왔네?"


레이가 돈 봉투를 보며 말했다.


"음, 내가 누군데?"


"근데 왜 며칠 전엔 빈손으로 온 거야?"


불량배 놈들이 오늘과 같은 협박을 처음 시작한 건 며칠 전이었다.

그때는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아치지 못해 결국 돈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젠은 솔직하게 말해서 경각심을 주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약점을 잡혔어."


"무슨 약점?"


"레이, 만약에 집에 누가 찾아오면 신고하고 칼이라도 들어."


"우리 집, 어디인지 들켰구나."


레이는 눈치가 정말 빠르게 돌아가는 녀석이었다.

척하면 척으로 알아들어서 답답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빠른 눈치 때문에 망해가는 현실을 어린 나이에 깨달아버린 것은 안타까웠지만 말이다.


"이제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어. 다들 물리적인 공격이 안 통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는 거야."


불량배들이 집 주소를 알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레이가 있는 이상, 걱정은 태산이었다.


"개지랄하네."


레이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충격받은 젠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저를 내리고 레이를 쳐다봤다.


"미안."


레이가 젠의 눈치를 보더니 대충 사과를 하고 시선을 피했다.

젠은 싸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학교에서 뭐 배웠어?


"수호자의 위대함, 수호자를 섬겨야 하는 이유, 수호자군의 강력함..."


"너도 힘들겠다."


"아주 힘들지."


학교에서 배우는 건 항상 똑같았다.

어느 학교, 어느 교사의 가르침을 받던 수호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 우선순위였다.


"뉴스 들었어? 또 싸울 것 같던데?"


"오늘은 또 뭐가 있었냐?"


레이가 옆에 놓여있던 라디오를 틀었다.

크루스 일가에서 라디오는 신문과 더불어 집에서 유일하게 바깥소식을 알게 해주는 또 하나의 친절한 식구였다.

라디오에서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이스 넬슨 수호자께서 유트니아군의 총격에 서거했습니다. 넬슨 수호자님의 저택을 습격한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 스크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한 유트니아 대원이 넬슨님을 개인적인 이유로 사살한 것입니다. 용의자는 현재 도주 중입니다. 유트니아 측은 오직 스크림을 제압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목적이었으며,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니까, 일개 유트니아군이 수호자를 죽였다고?"


리베르타인의 3가지 신분은 서로 간의 격차가 압도적이었다.

하늘을 군림한다 싶은 수호자,

그런 수호자에게 일단 인정이라도 받은 명예 수호자

그리고 그저 유기견인 생산자.

오직 생산자로만 이루어진 유트니아군이 수호자를 죽여버렸으니 발칵 뒤집어지는 건 당연했다.


"수호자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이런 일, 이번이 처음이잖아."


"정신 나간 상황이지. 유트니아는 그냥 수호자 정부의 개일 뿐인데..."


레이의 말이 정확했다.

유트니아는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굴레가 있었다.

그것이 수호자 정부였다.

유트니아는 수호자 정부를 대신해 궂은 일을 처리하고 협력하며 나름의 권력을 챙긴 편이었다.

하지만 생산자로만 이루어진 이상, 신분을 적용하면 한없이 작아질 뿐이었다.


"그러게 얌전히 뇌 과학이나 연구할 것이지, 어쩌다 군사를 키우고... 나 같은 비밀 병기를 만들고..."


젠은 입을 오물 거리며 말했다.


"수호자 정부 편을 안 들려고 해도, 사냥개가 사냥꾼을 물어버리면 안 되는 거지."


"그러게, 유트니아... 어떻게 되려나? 이제 수호자한테 신뢰 박살인데..."


"어떻게 되기는, 그 도주한 놈부터 잡아야지. 자기 독단적으로 그랬다며?"


"그렇긴 한데..."


물론 크루스 일가는 유트니아의 편일 수밖에 없었지만, 생산자로서의 삶을 살아보니 알 수 있었다.

유트니아는 정말 더러운 집단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른 사람들 삶에는 전혀 관심 없는 더럽고 이기적인 집단이었다.

이기적인 만큼 가진 것도 많기 때문에 빌 붙는 것이었다.


"뭔가 크게 터질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되면 또 우리만 죽어나가겠지."


젠은 이 수호자 정부와 유트니아의 싸움이 지겨울 따름이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평범한 생산자들의 삶에만 금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보니까, 알 것 같아."


레이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호자의 탑을 쳐다보며 말했다.

수호자의 탑 조명이 어두운 하늘에 별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확실히, 깨끗한 놈들이 없어. 누가 더 힘 있는지가 중요하지."


이 시대에서는 누가 더 정의로운가, 누가 더 깨끗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럽더라도 힘 있는 사람들에게 붙어야 한다는 사실은 고작 인생 12년을 살아온 아이도 알고 있었다.

레이는 빈 접시를 부엌으로 가져다 놓았다.

젠은 국을 시원하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점점 말하는 게 애 늙은이처럼 되가네?"


"똑똑해지고 있는 거야."


레이는 거실로 가 작은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다.

레이의 말에 틀린 말 하나 없었지만, 옛날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웃음만 짓던 모습이 가끔 그리웠다.

그래도 놀리면 자기 나름대로 정색한 척해주는 게 여전히 재미있었다.


"그래, 많이 배워라. 현실도 배우고, 욕하는 법도 배우고, 남자 꼬시는 법도 좀 배우고..."


"조용히 좀 해라."


레이는 헛기침을 억지로 뱉으며 창피한지 고개도 돌려버렸다.


"내일은 어디 안 가냐?"


"집에 있을 거야."


"부럽다. 진짜, 너희는 서열 막내 이런 거 없잖아. 나는 내일도 또 나가야 해."


"아... 그럼 고생 잘하시고... 돈 빼앗기지 마시고..."


레이는 열 받는 말투로 젠을 조롱했다.

레이 특유의 신경을 긁는 조롱은 받은 대로 되돌려줘야 속이 후련했다.


"조용히 좀 해라."


레이가 조용해진 걸 보고 만족스럽게 웃음 지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내일 내가 나가면 집 문은 잠가. 혹시나 위험해지면 숨어 있어. 그래도 방법 없으면 내가 일하는 곳으로 도망쳐와. 이건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야."


"알았어. 그렇게 할게."


쿵쿵!


젠과 레이가 순간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시간이 벌써..."


젠은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기관총을 어깨에 메고 있는 유트니아 주둔군이었다.


"시간이다."


"휴..."


"내가 만만하냐?"


그랜트 알렌 하사.

젠과 레이가 안심할 수 있을 몇 없는 유트니아 주둔군들 중 한 명이었다.

생산자들은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필수적으로 유트니아 주둔군의 단속을 받아야 했다.

집 안에 불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수호자에 대한 반역의 움직임이 없는지, 확인 받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랜트가 젠의 집을 담당하는 날이었다.


"아니에요. 또 오늘은 무슨 날라리 같은 유트니아군이 올지 걱정했거든요."


"선배들?"


"제발 말 좀 해봐요. 다들 이 시간을 그렇게 무서워해요."


"난 아직 하사야. 그게 됐으면 벌써 막았지."


유트니아군의 단속 시간은 생산자들의 긴장감을 유발했다.

그랜트처럼 친절한 유트니아군도 충분히 많지만, 그렇지 않은 유트니아군도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제 왔던 사람은 단속한다고 집을 진짜 난장판을 만들더니 시계를 가져갔어요."


젠은 짜증 나는 얼굴로 돈봉투를 뒤적였다.


"들었냐? 며칠 전에 이 근처 돌던 선배... 아니, 이제 개새끼지."


"네. 들었어요. 그래 놓고 다시 멀쩡하게 일하죠?"


"불알을 터뜨려야 정신을 차리지. 더러운 놈."


이 시간을 이용해서 더러운 짓을 하는 유트니아 주둔군들 때문에 생산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트니아군도 결국 유기견이라 그런지 저질스러운 인간들이 많았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솔직히 그런 거 파도 파도 많잖아요. 다 묻어가는 것 뿐이지. 안 그래요?"


그랜트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다가 고개를 내밀어 집 안을 살펴보았다.


"집에 불법 무기, 폭탄 같은 건... 있을 리가."


레이는 불법 무기라는 말에 슬쩍 젠을 쳐다봤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다가 그랜트와 눈을 마주쳤다.

그랜트는 슬쩍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자 그럼, 수호자에 대한 충성..."


그랜트는 말하던 도중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지겨우니 그딴 건 생략하고."


젠은 지폐 몇 장을 그랜트에게 건넸다.

그랜트는 지폐를 넘기며 액수를 확인하고 말했다.


"음, 여기서 5퍼센트만 더 주라."


"예?"


"오늘부터 인상됐다."


"아니, 벌어온 돈에 절반 가까이잖아요? 이건 아니죠!"


하루의 기분을 모조리 잡쳐버릴 수 있는 징수 절차였다.

징수는 유트니아 주둔군이 하지만, 이 돈의 목적지는 결국 정해져 있었다.

이렇게 걷어간 돈은 수호자 정부와 유트니아가 자기들 입맛에 맞게 나눠 가졌다.


"생산자의 땅 단속 비용을 강화해야 한단다."


단속 때문에 몇 퍼센트, 연구 때문에 몇 퍼센트 올려서 이제는 거의 번 돈의 절반 가까이를 내야 했다.

젠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욕을 뱉고는 그랜트에게 지폐 몇 장을 더 건넸다.

그랜트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미안한데 물 한 잔만 마시고 가도 되나?"


"가서 앉아요."


젠은 흔쾌히 그랜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직접 주전자로 컵에 물을 따라주고 그랜트에게 건넸다.

그랜트는 식탁에 앉아 젠과 마주 보고 물을 들이켰다.


"요즘 형편이 안 좋나 봐요? 그 정도로 뜯어가도 부족하다니."


"예산은 부족하고... 돈은 계속 깨져... 그러니까 뜯을 곳은 여기 뿐이지."


유트니아의 수익은 생산자들의 징수에서 나왔다.

생산자들의 삶을 감시하고 보호한다는 이유, 뇌 과학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받아먹는 돈이 무서울 정도로 많았다.

그랜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오늘 밤이 무섭다. 5퍼센트가 너희한테 결코 적은 게 아니잖아? 안 그래도 선배들이 그러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사건까지 계속 터지고 있잖아."


"뭐, 한두번이에요? 전 이미 허탈했어요."


젠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유트니아, 이대로 가다가 망하기라도 하면..."


그랜트는 갑자기 컵을 내리며 젠의 말을 끊었다.


"어림없는 소리. 아무리 개새끼들 같아도 우리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가 뜯어간 돈, 결국은 누가 제일 많이 가져가는 줄은 아냐?"


그랜트는 손가락으로 수호자의 탑을 슬쩍 가리켰다.


"우리가 더러운 이미지 다 쓰고 가는 동안, 저 인간들은 숨어서 호의호식하고 있지."


틀린 말이 없었다.

수호자는 유트니아를 방패로 삼아 온갖 더러운 이미지를 막고 있었다.

결국 생산자들의 분노 중 8할은 유트니아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수호자군이라면 우리 대신에 생산자의 땅에서 고생하고 싶겠어? 기껏 수호자의 땅에서 살 기회를 얻었는데... 오늘도 이 땅에서 수호자군 몇 명이 죽었냐?"


그랜트는 남은 물을 완전히 마셨다.


"하..."


자리에서 일어난 그랜트는 탄식을 뱉더니 젠에게서 받은 5퍼센트 양의 지폐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뭐하세요?"


"물값이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젠은 기쁜 감정을 숨기지 못해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그랜트는 어깨 위로 엄지를 올리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일부러 물 마시려고 5퍼센트 얘기 꺼낸 거 아니죠?"


"아니다. 이놈아."


그랜트는 현관문을 닫기 전에 말했다.


"새벽에 집 밖으로 나오지 마라."


"안녕히 가세요!"


쾅!


현관문을 닫자마자 그랜트의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상 소집하겠습니다. 유트니아 주둔군 전원 하던 일을 멈추고 각자 근무지로 집합해주십시오."


"비상소집?"


그랜트는 거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젠과 레이는 그랜트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젠은 눈을 떴다.

간단하게 작은 빵 한 조각을 챙겨 먹고 힘쓸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충전했다.

레이는 자신의 방에서 간만의 늦잠을 즐기고 있는 와중에, 젠은 일터로 향하기 위해 집 현관문을 열었다.

아직 거리는 사람들 대신 차가운 가을 바람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수호자의 탑 쪽 하늘은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고 반대편 하늘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젠은 일터가 있는 방향인 수호자의 탑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로건은 이미 출근했으려나?"


로건은 유트니아군이라 그런지 규율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조용하지만 성실하며 일 처리가 빨랐고 항상 제일 일찍 일터에 도착하는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심지어 이게 자기 일도 아닌데 가장 부지런했다.

항상 이런 날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도 걸리네. 얼마나 걸어야 하는 거야?"


로건의 말대로 골목길을 포기하고 큰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한참을 걸어도 제자리인 듯한 기분이었다.

젠은 답답하여 눈살을 찌푸렸다.

조용하던 거리를 걷다 보니 갑자기 뒤쪽에서 시끄러운 차량 엔진음이 점차 들려왔다.

이제 슬슬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시간이 됐구나 하는 생각으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자주 듣던 차량 엔진 소리보다 훨씬 둔탁하고 거부감 드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젠은 궁금한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거대한 수호자군의 전차, 트럭들이 비장한 전투를 하러 가는 듯 줄지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젠은 처음 보는 수호자군 전차의 압박감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들이 점점 다가오자 바람에 도로 위의 먼지가 휘날렸고 찢어지는 듯한 엔진 소리는 저절로 귀를 막게 했다.

트럭 위에 타고 있는 군인들은 미동 하나 없이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집에서는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구경에 빠져있었다.


"수호자군?"


수호자군의 행렬이 언제 끝나는지 궁금해지는 찰나에, 길거리에 설치된 커다란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수호자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지금은 훈련 상황이 아닙니다. 수호자 정부는 현재, 유트니아와의 전쟁에 접어들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경과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생산자 여러분은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안식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전차와 트럭의 행렬이 끝나는 와중에도 방송은 끊이지 않았다.

수호자 정부와 유트니아의 싸움이 일어날 것은 예상했지만 무력 충돌까지 이어질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젠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멀어지는 트럭의 뒤를 바라보던 때, 이번에는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수호자군 헬기랑... 저건 방송국 헬기인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호자군 헬기들의 뒤를 따라 방송국 헬기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언론은 수호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였다.

그래서 항상 수호자와 관련된 일에는 언론이 따라 들어갔다.


갑자기 머릿속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젠은 머리를 붙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젠 크루스."


젠은 이 목소리가 뇌리에 박혀 있어 늘 익숙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끝도 없이 더럽히고 이런 삶을 살게 한 원흉이었다.

램페이지의 아버지인 유트니아 회장, 길버트 머피였다.


"뭡니까? 또 할 말만하고 갈 겁니까?"


"지금, 너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잘 들어주길 바란다."


젠은 아픈 머리를 잡고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제, 넬슨 수호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었을 거다. 그 때문에 유트니아는 수호자 정부와 무력 충돌을 하게 됐어."


수호자 정부의 분노는 꽤 거센 모양이었다.

시해 사건 이후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지금,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래서 생산자의 땅을 지키던 유트니아 주둔군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젠은 너무 놀란 나머지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요? 당신, 정신 나갔습니까? 이 미친개들이 날뛰는 곳에서..."


"나도 원치 않은 선택이었어. 수호자군과 무력으로 맞서는 건... 우리 모든 병력이 동원돼도 부족할 지경이야. 조금 있으면 생산자의 땅이 혼란스러워지겠지. 질서가 붕괴될 게 뻔해."


젠은 대충 무엇을 해야할지 짐작이 갔다.


"그래서... 이제 제가 나서야 합니까?"


"아니."


하지만 길버트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어떻게 하든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쳐. 미안하지만 그 힘은... 아직 때가 아니야. 우리가 말하는 위기는 지금이 아니거든."


쨍그랑!


젠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망이를 든 남성이 다른 집 유리창을 깨부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둘러봐도 비슷한 짓을 하는 인간들이 계속 보였다.

벌써부터 생산자들이 미쳐가고 있었다.

젠은 일단 그들의 시선을 피해 계속해서 달렸다.


"힘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어떡하라는 겁니까? 그냥 아무 저항도 없이 죽어버립니까? 그럼, 당신이 공들였던 비밀 병기 램페이지는 허무하게 끝나는 겁니다."


"미안하다. 나중에 설명해주마. 시간이 없어."


"회장, 회장! 길버트 머피 회장!"


머릿속이 맑아지더니 길버트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놓고 아무 대책도 없는 길버트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밀려오는 짜증에 어금니를 꽉 물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점점 통제가 풀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공포가 느껴졌다.

단순히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사나운 유기견들이 약점을 물어 뜯을 좋은 환경이 잡혔다는 것, 그것이 무서웠다.

젠은 오직 한 사람 만을 생각하며 달렸다.

램페이지의 힘이 필요해질 상황은 멀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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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hapter5. 굳건한 뿌리 (1) 24.08.05 34 3 13쪽
14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3) 24.08.04 27 3 11쪽
13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2) 24.07.22 38 3 13쪽
12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1) 24.07.21 38 2 16쪽
11 Chapter3. 줄기를 꺾다 (3) 24.07.21 43 2 16쪽
10 Chapter3. 줄기를 꺾다 (2) 24.07.21 38 2 15쪽
9 Chapter3. 줄기를 꺾다 (1) 24.07.15 71 2 14쪽
8 Chapter2. 질서 붕괴 (6) 24.07.15 35 2 13쪽
7 Chapter2. 질서 붕괴 (5) 24.07.15 36 2 14쪽
6 Chapter2. 질서 붕괴 (4) 24.07.15 44 2 13쪽
5 Chapter2. 질서 붕괴 (3) 24.07.15 46 2 13쪽
» Chapter2. 질서 붕괴 (2) 24.07.15 72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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