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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
작품등록일 :
2024.07.14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8 20:41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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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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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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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1)

DUMMY

1구역의 피난처는 다름 아닌 과거에 다니던 학교였다.

또한 레이가 다니던 학교였다.

팬스에는 게틀링건이 잔뜩 설치돼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은 유트니아군이 철저히 경계를 서고 있었다.

스크림이 들어올 엄두 조차 내지 못할 곳이었다.

이 곳은 지도에서 봤던 수호자군과 유트니아군이 연합해 마련된 피난처였다.


11번 트럭은 교문으로 들어섰다.

온갖 공격을 버티며 만신창이가 된 모습에 피난처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미안합니다. 피트 중사."


로건이 돌연 숙연해졌다.


"다급한 상황이라 순간 마음대로 말을 놓은 것 같군요. 멋대로 명령도 하고..."


"예? 선임자이지 않습니까? 괜찮으니 상관 않으셔도 됩니다."


위급한 상황에 갑자기 반말을 하며 명령했던 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필릭스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리브스 상사님께서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갑자기 어색한 기류가 흐르더니 로건이 서투르게 말을 놓았다.


"그... 그래. 피트 중사."


11번 트럭은 건물 뒷 편에 주차됐다.

타고 있던 일행이 한 명씩 내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때문에..."


로건은 앞 좌석에서 혈투를 벌인 두 유트니아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고... 같이 싸우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어이! 너희 멀쩡하냐?"


필릭스는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불렀다.


"하, 멀쩡할 리가 있겠냐?"


"도저히 안 믿겨... 우리가 저 놈들 잡은 거라고!"


"야, 우리는 도망만 쳤는데 잡긴 뭘 잡아?"


"조용히. 수호자군들이 들을라."


셋은 꽤나 친한 사이인 듯 보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셋이 조금 시끄러웠네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유트니아 본부군 조엘 뉴먼 중사입니다."


"유트니아 본부군 데릭 앨리엇 중사입니다."


운전석의 조엘, 조수석의 데릭, 그리고 화물칸의 필릭스는 구조를 위해 본부에서 투입된 팀이었다.

서로 같은 소속에 같은 계급의 동기였다.


"저는 유트니아 주둔군 로건 리브스 상사입니다."


"리브스 상사님, 저희 셋은 동기이니 편하게 대해주십쇼."


낯가림이 있는 로건은 이럴 때일 수록 말과 행동이 어색한 느낌이었다.


"어... 그럼... 그래."


조엘과 데릭이 뒤 쪽에 있던 젠을 봤다.


"그나저나, 너 빨리 치료 받아야겠는데?"


"어이구, 얼굴이 저게 뭐냐?"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젠은 이들을 따라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허름한 타일이 쭉 깔려 있고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잔뜩 있는 모습이었다.

젠은 이런 학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아이들이 정숙하며 돌아다닐 공간은 군인들과 피난민들이 가득 했다.


"의무실은 저 쪽인가..."


복도를 따라 구석진 곳에 의무실이 있었다.

로건은 젠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너희들은 보고 좀 해주겠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본부군 일행은 계단 위로 올라갔다.

젠과 로건은 의무실을 향해 함께 걸었다.


"젠, 미안하다."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으면... 살릴 수 있었을텐데..."


"괜히 자책하지 마세요."


젠은 여전히 속이 타 들어 갔지만, 주눅 들어 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로건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은인이었다.

그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저도 미안해요. 멋대로 굴어서..."


로건은 한 숨을 쉬었다.


"그래, 그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신을 차리겠냐?"


복도를 지나가며 교실 내부를 쳐다봤다.

교실들은 제각각으로 모습이 바뀌어있었다.

대부분 환자들이 누워있는 방, 피난민들이 모여있는 방이 돼있었다.

그리고 의무실에 도달하자 로건이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 쪽 데스크에 한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생산자에게서 나올 수 없는 깔끔하고 지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녀는 명예 수호자 계급의 의료인이었다.

데스크 위에는 두꺼운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유트니아 주둔군 상사 로건 리브스입니다."


"음... 처음 뵈는 분 같은데..."


그녀는 로건의 얼굴을 몇 초간 보다가 말했다.


"방금 다른 유트니아군 일행을 따라 이 곳에 들어왔습니다. 환자가 있어서요.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녀는 뒤에 있던 피가 흐르는 젠의 얼굴을 봤다.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저 쪽에 앉아있으세요. 군의관을 부를게요."


"감사합니다."


직후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레아, 이 쪽으로 와서 환자 좀 봐줘라."


젠은 그녀가 한 말대로 의자에 가서 앉았다.

몇 마디 하고 곧바로 전화를 끊고 로건에게 말을 걸었다.


"참, 엄청 고생하고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 쪽이신가 봐요?"


"아, 저는 뭐... 저 아이랑 구조 담당 쪽 사람들이 고생했죠."


그녀는 미소 지으며 젠과 로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부자 지간이신가요? 아님... 형제?"


"어..."


로건이 대답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냥 친구입니다."


"네? 친구요?"


친구라는 말에 굉장히 놀라워 했다.


"유트니아군이 민간 생산자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뭐, 살다 보니 안 될 건 없더라고요."


그녀는 재미있는 말을 들은 듯이 웃었다.

나쁜 의미나 비웃음은 아닌 듯 보였다.


"재밌네요. 전 당연히 가족일 줄 알았는데..."


그 순간, 한 소녀가 의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명한 이목구비에 깔끔한 옷과 고급진 모습을 보아 보통 아이가 아닌 듯 했다.

눈빛이 차분하고 젠틀해보였다.

마찬가지로 생산자의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형의 인물이었다.


"프레아, 저 아이 좀 봐줄래?"


리오나는 말 없이 이 쪽으로 다가왔다.

젠은 피가 나는 손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마랑 손이에요."


프레아는 우선 이마의 상처를 유심히 봤다.


"이거, 한 번 부딪혀서 날 상처가 아닌데..."


역시나 예리한 눈은 속일 수 없어 보였다.


"혹시, 뭐 때문에 이렇게 됐어?"


"제가 혼자 한 거에요."


프레아는 잠시 조용해지더니 무덤덤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 살다 보면 그렇게 머리를 처박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


이런 인간들을 많이 봐왔는지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이어서 프레아는 손에 있는 상처를 확인했다.


"손가락도 엄지를 제외하고 첫 마디만 이렇게 피가 난다는 건..."


"이것도 혼자 했어요."


부끄럽지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프레아는 예상했다는 듯 눈을 살짝 감았다.


"감정 표현이 거친 편이구나."


몇 차례 대화가 오가고 프레아는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프레아가 워낙 베테랑처럼 신속하게 손을 움직이니 금방 끝났다.


"다 됐어. 상처 부위는 웬만하면 다시 건드리지 말고, 또 아프면 찾아와."


"고맙습니다."


프레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문으로 걸어갔다.

로건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프레아는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엄마, 이제 공부 그만 하고 식사하세요."


"그래. 갈게."


모녀 간의 대화 속에 뭔가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다.

젠은 일어서서 로건의 옆에 섰다.


"두 분, 30분 정도 뒤에 식사하러 가보세요. 명예 수호자 요리사들이 솜씨가 좋거든요. 기대해도 될 거에요."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저는 셀레나 케이지라고 합니다. 명예 수호자 의료인 겸 연구원이에요. 잘 부탁 드려요."


"젠 크루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셀레나와 프레아 모녀는 젠이 처음으로 말을 섞어본 명예 수호자가 됐다.

생산자 입장에서 가까이 하기 힘들 것 같던 명예 수호자였지만, 다행인 건 둘 다 친절한 사람인 듯 했다.


"리브스 상사님, 수호자군 쪽에서 부르십니다."


의무실을 나가자마자 필릭스가 로건을 불렀다.


"젠, 할 일이 생긴 것 같다. 넌 식사할 때까지 근처에서 숨 좀 돌리고 있어."


"알겠어요."


로건은 젠의 어깨를 토닥이고 필릭스에게 갔다.

수호자군이 불렀다는 이유 때문인지 분주한 모습이었다.

젠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운동장 근처를 돌다가 우거진 풀숲을 들어가 하늘을 바라봤다.


"후우우..."


숨을 무겁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마음을 진정 시키기 위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봤다.

분명 신선한 바람이지만 젠에게는 싸늘하게 느껴졌다.


"후우우..."


한 자리에 멈춘 채로 계속해서 심호흡만 했다.

어느 순간 무의식 속에 빠져 이것만 반복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고 레이에 대한 미련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지나가던 프레아가 젠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몇 초간 말 없이 바라보다가 심호흡 소리를 듣고 조용히 다가왔다.


"뭐 하는 거야?"


젠은 뒤로 고개를 돌렸다.


"몰래 담배라도 피우는 거야?"


"아뇨."


고개를 떨구고 시선을 피했다.

명예 수호자인 프레아에게 속 사정을 털어놓기에는 괜히 건방져 보일 것 같았다.


"조심해. 거기 있으면 뱀 나와."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다닌 학교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거기 있다고?"


생산자인 젠으로서는 프레아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친절해도 계급 차이에서 나오는 예절은 철저히 지켜야 했다.


"그나저나 존댓말은 왜 하는 거야?"


"당신은 명예 수호자시잖아요. 저는 생산자에요. 예의를 차려야죠."


"음, 그건 꽤 불편한데..."


젠은 프레아의 의외의 태도에 고개를 돌렸다.


"난 프레아 케이지라고 해. 내가 여기를 둘러봤는데 생산자들 중에 나랑 말이 맞는 사람이 너 뿐이더라고. 다들 뭔가 이상해."


프레아는 이 곳에서 말 안 통하는 생산자들을 제대로 경험했다.

가뜩이나 힘든 시기라 더할 터였다.

젠은 그런 인간들에 비하면 천사였다.

별 말 주고 받지도 않았고 기분 좋은 말 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반응이라면 말 다한 것이었다.


"이런 말 하면 좀 실례지만, 인간 말이 통하는 건 너가 처음이었어."


"아까 그 짧은 대화로요?"


"응. 지금도 잘 통하잖아?"


프레아는 풀숲을 헤집으며 다가왔다.

뱀이 나올까 무서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었다.


"우리 친구로 지내보자."


프레아는 악수를 청했다.

젠은 프레아가 좋은 인연이기를 바라며 악수를 받았다.


"나는 젠 크루스. 잘 부탁해."


"자, 이제 얼른 나가보자! 이제 식사 시간도 다 됐어."


순간 옆쪽 풀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헉! 나왔다, 뱀이다! 젠, 거기 있으면 물릴 거야. 얼른 나와!"


프레아는 잔디 사이를 한발씩 크게 뛰며 달아났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 곳에서 튀어나온 건 하찮은 참새 하나였다.

젠은 코웃음을 조용히 치고 프레아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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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hapter8. 성장의 시간 (1) 24.09.01 16 0 12쪽
26 Chapter7. 원래대로 (2) 24.08.31 11 1 12쪽
25 Chapter7. 원래대로 (1) 24.08.31 15 1 11쪽
24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6) 24.08.30 21 1 11쪽
23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5) 24.08.30 20 1 13쪽
22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4) 24.08.29 15 1 11쪽
21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3) 24.08.28 16 1 12쪽
20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2) 24.08.27 24 3 11쪽
»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1) 24.08.15 24 3 11쪽
18 Chapter5. 굳건한 뿌리 (4) 24.08.14 17 3 15쪽
17 Chapter5. 굳건한 뿌리 (3) 24.08.13 20 3 13쪽
16 Chapter5. 굳건한 뿌리 (2) 24.08.12 22 3 11쪽
15 Chapter5. 굳건한 뿌리 (1) 24.08.05 34 3 13쪽
14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3) 24.08.04 28 3 11쪽
13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2) 24.07.22 38 3 13쪽
12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1) 24.07.21 38 2 16쪽
11 Chapter3. 줄기를 꺾다 (3) 24.07.21 43 2 16쪽
10 Chapter3. 줄기를 꺾다 (2) 24.07.21 38 2 15쪽
9 Chapter3. 줄기를 꺾다 (1) 24.07.15 71 2 14쪽
8 Chapter2. 질서 붕괴 (6) 24.07.15 35 2 13쪽
7 Chapter2. 질서 붕괴 (5) 24.07.15 36 2 14쪽
6 Chapter2. 질서 붕괴 (4) 24.07.15 44 2 13쪽
5 Chapter2. 질서 붕괴 (3) 24.07.15 46 2 13쪽
4 Chapter2. 질서 붕괴 (2) 24.07.15 72 2 19쪽
3 Chapter2. 질서 붕괴 (1) 24.07.14 6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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