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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
작품등록일 :
2024.07.14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8 20:41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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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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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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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4)

DUMMY

젠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루이가 든 보고서를 잡아 채려고 했다.

이에 루이는 질색하며 보고서를 품으로 가져갔다.


"어이, 이건 기밀 문서라고."


"뭐라고요? 워체르? 워체르는 대체 무슨 말이죠?"


젠은 살면서 워체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가 가진 힘의 정확한 이름도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힘이 3개나 더 있다는 것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러니 수호자들이 폭발하지 않을 수가 없지."


루이는 보고서를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


"너 하나도 아니고 무려 4개라니 말이야."


젠은 다시 털썩 주저 앉았다.


"머피 회장이 완전히 미친 인간이라는 증거야."


루이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잔잔히 웃음을 지었다.


"근데 네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 아닌가? 적어도 혼자 불행하지 않아도 되잖아."


"더 알려주시죠. 진실을요."


루이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일어섰다.


"거기까지 해. 네가 알면 머리를 쥐어뜯을 만한 사실들이 너무 많거든."


젠은 혈안이 되어 루이를 바라봤다.


"부탁합니다. 또 뭐가 있는지 말해주세요."


"워, 진정하라고. 천천히 알게 될 거야."


루이는 또 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여기까지 하자. 변비 걸린 사람 취급 당하긴 싫거든."


자신의 명함을 꺼내 젠에게 건네주었다.

명함에는 그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생산자들은 유트니아군이 아닌 이상 휴대전화가 금지였지?"


젠은 명함을 앞뒤로 살펴봤다.


"그래도 간직하고 있어. 내 전화번호는 갖고 싶어도 못 가지거든."


루이는 문 앞에 서서 다시 옷을 단정히 했다.


"또 만나자."


손을 흔들며 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젠을 홀로 남겨두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젠장할..."


젠은 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힘 없이 고개를 책상에 떨궜다.


"이 개 같은 머피 회장..."


그 이후로 루이는 피난처를 떠났다.


해가 질 시간이 될 때까지 젠은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프레아와 그네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충격적이야."


프레아는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었다.


"셰퍼드님이 변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시다니..."


젠은 프레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루이와의 대화 이후 온갖 잡생각에 빠져 있었다.

앞으로의 나날이 점점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완벽한 분인 줄 알았는데..."


프레아는 슬쩍 젠을 바라봤다.

완전히 넋을 놓고 눈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모습이었다.


"젠, 듣고 있어?"


"어? 아, 듣고 있어."


프레아의 말에 눈을 깜빡 거리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왜 그래? 오히려 인간적이잖아."


"그렇긴 한데, 뭔가 깬단 말이지."


프레아가 다시 젠을 바라봤을 때는 다시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민이 많은가 봐? 아까부터 넋을 계속 놓고 있잖아."


젠은 정신 차리기 위해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프레아, 아까 말하려던 내 이야기..."


"응. 들어볼게."


젠은 레이가 죽었을 때의 일을 프레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감춰야 하는 사실을 빼놓고 말하다 보니 중간에 생략된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얼추 말하고자 하는 건 전해졌다.

프레아는 장난기를 빼고 진지하게 말을 들어주었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프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잠시 감았다.


"그럼 그런 상태로 계속 나와 대화를 해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거고."


"응."


"대단하네. 너가 나였으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을텐데..."


"아직도 고개를 돌리면 레이가 서 있을 것 같아."


젠의 눈 앞에 아른거리는 레이의 모습은 생생했다.

넋을 놓고 있는 무의식 속에서는 레이가 아직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의식을 되찾는 순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차라리 잠깐이라도 보였으면 좋겠어."


프레아는 생각에 잠겨 하늘을 바라봤다.


"그럼, 조금 이르지만... 지금부터라도 잊고 사는 건 어때?"


젠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너 되게 이성적이구나?"


"아닌데? 내가 왜?"


"잊을 수가 있을 리 없잖아."


프레아는 어리둥절하게 젠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같이 달려 와준 녀석이라고. 난..."


젠은 끝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레이한테 갚아야 할 게 잔뜩인데... 아직 못 해준 게..."


"젠, 잊는다는 건 지우는 거 하고는 다른 거야."


젠은 프레아를 바라봤다.


"머리 속 깊은 곳에 넣어두는 거지."


프레아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젠은 그제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소중한 기억을 어떻게 지울 수가 있겠어? 네가 위로가 필요할 때, 힘이 필요할 때가 돼서 떠올리면 되는 거야."


젠은 아직 넣어두지 못한 레이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이런 좋았던 시절도 있었구나... 하면서."


"잠시 넣어두라는 말이야?"


"응. 내가 설마 피도 눈물도 없이 머리 속에서 지우라고 그러겠어?"


프레아는 어이 없게 웃으며 말했다.


"기억은 과거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있는 거라는 말이 있잖아."


"응. 들어봤어."


"넣어두지 못 하고 계속 기억에 심취해있으면, 결국은 계속 과거에 머물러서 고통만 받을 거야."


물론, 지금 당장은 쉽게 레이를 잊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레이도 분명 네가 고통스러워 하는 걸 원치 않겠지?"


프레아는 그네에서 뛰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를 물고 온 몸을 떨었다.


"날이 추운 건지, 내가 한 말에 오그라드는 건지..."


어느새 하늘을 보니 해가 져있었다.

젠이 모르는 사이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들어 가볼게. 조금 있으면 환자들을 봐야 하거든."


"응."


프레아는 그대로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프레아!"


젠은 용기 내서 말을 꺼냈다.

프레아가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그녀는 엄지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파이팅."


프레아를 보며 젠은 평온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종일을 슬퍼하고 고뇌에 빠져있다가 지금 겨우 풀려난 기분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이라면 충분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레이에 대한 기억,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뇌는 이 곳에서 만큼은 필요 없어 보였다.



그 시각, 루이는 수호자의 땅으로 돌아가 수호자의 탑을 찾아갔다.

마테오의 방에 초대 받아 젠에 대한 사실들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냥 어딜 가나 있는 생산자 꼬맹이일 뿐입니다. 순진하고, 감정적이죠."


마테오는 피곤에 찌든 눈을 하고 앉아있었다.

연설 때의 당당한 목소리와 달리 힘이 잔뜩 빠져있었다.


"우리 쪽으로... 넘어 올 생각은 없고?"


"설득을 해봤는데 싫다고 하더군요."


"멍청한 애송이가..."


마테오는 한숨을 푹 쉬었다.


"헨드릭스 수호자 각하, 우리 손으로 그 힘을 쟁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이는 마테오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


루이의 물음에 마테오는 잠깐 침묵하여 방이 조용해졌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없어지는 건 아까워."


루이는 원하는 대답이 나온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고두고 쓸 데가 있을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문제가 있어."


눈을 찡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기다렸던 수호자군이 다가와서 담뱃불을 붙였다.


"또 다른 명분에 그 강한 워체르의 힘을 제압하고 쟁취할 수 있을 힘까지 있어야지."


담배 연기를 잔뜩 마시자 마테오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명분이 이미 충분히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은 멀었어. 여기서 좀 더 필요해."


담배로써 목소리에 힘을 되찾은 마테오는 이내 달라진 눈빛으로 루이를 바라봤다.


"우리가 끝내 전쟁광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 정도의 묵직한 명분이 더 필요하다."


무조건 동의한다는 뜻으로 루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성적인 판단과 적절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게 원칙이었죠?"


"그래."


루이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묵직한 명분이라... 그건 쉽지 않겠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눈을 떴다.


"대신 힘이라면 적임자가 있죠."


수호자 정부에도 워체르의 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은 분명 존재했다.

마테오와 루이는 그 존재를 아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적임자들이라고 해야겠네요."


수호자 정부는 힘에 대해서 자신 만만했다.

유트니아에 워체르 같은 병기가 4개나 존재해도 수호자 정부는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올 때가 됐군."


아무도 닿지 않을 듯한 어두운 그림자 속,

집행관은 붉은 빛을 그리며 깨어났다.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마테오의 방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수호자군들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그의 앞 길을 텄다.


"오셨군요."


문이 천천히 열리자 집행관이 이들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루이가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면 마테오는 조금은 긴장한 듯, 담뱃불을 빠르게 끄고 그를 맞이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집행관은 마테오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집행관 각하."


방 안에 있는 수호자군들이 그를 보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자들은 조용히 사라져갔기 때문에 수호자군들은 공포를 숨길 수 없었다.

붉은 빛을 가린 검은 망토, 투구에 가려져 알 수 없는 표정, 그리고 굳게 침묵을 유지하는 모습.

마테오 조차 그 위압감에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지요."


집행관은 마테오의 앞에 당당히 섰다.

사실상 반역자로 정의된 유트니아, 그리고 워체르라는 병기.

그들을 상대해야 할 비밀 병기이자, 권위 있는 집행관으로서 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한 칼날은 날카로웠다.

그리고 닿지 않을 것 같은 그림자 속에는 또 다른 움직임이 존재했다.

수호자 정부의 숨겨진 힘은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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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hapter8. 성장의 시간 (1) 24.09.01 16 0 12쪽
26 Chapter7. 원래대로 (2) 24.08.31 11 1 12쪽
25 Chapter7. 원래대로 (1) 24.08.31 15 1 11쪽
24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6) 24.08.30 21 1 11쪽
23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5) 24.08.30 20 1 13쪽
»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4) 24.08.29 15 1 11쪽
21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3) 24.08.28 16 1 12쪽
20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2) 24.08.27 24 3 11쪽
19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1) 24.08.15 23 3 11쪽
18 Chapter5. 굳건한 뿌리 (4) 24.08.14 17 3 15쪽
17 Chapter5. 굳건한 뿌리 (3) 24.08.13 20 3 13쪽
16 Chapter5. 굳건한 뿌리 (2) 24.08.12 21 3 11쪽
15 Chapter5. 굳건한 뿌리 (1) 24.08.05 34 3 13쪽
14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3) 24.08.04 28 3 11쪽
13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2) 24.07.22 38 3 13쪽
12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1) 24.07.21 38 2 16쪽
11 Chapter3. 줄기를 꺾다 (3) 24.07.21 43 2 16쪽
10 Chapter3. 줄기를 꺾다 (2) 24.07.21 38 2 15쪽
9 Chapter3. 줄기를 꺾다 (1) 24.07.15 71 2 14쪽
8 Chapter2. 질서 붕괴 (6) 24.07.15 35 2 13쪽
7 Chapter2. 질서 붕괴 (5) 24.07.15 36 2 14쪽
6 Chapter2. 질서 붕괴 (4) 24.07.15 44 2 13쪽
5 Chapter2. 질서 붕괴 (3) 24.07.15 46 2 13쪽
4 Chapter2. 질서 붕괴 (2) 24.07.15 72 2 19쪽
3 Chapter2. 질서 붕괴 (1) 24.07.14 6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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