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램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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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
작품등록일 :
2024.07.14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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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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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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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7. 원래대로 (1)

DUMMY

"로건?"


분명 방금 전에 작별 인사를 나누었던 로건이었다.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인연이 나타났지만,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컸다.


"이대로 만족해?"


친절하던 로건의 목소리와 달리 바짝 힘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이런 다 허물어진 집에 살면서, 그 하찮은 일터를 다니고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여기... 무슨 일로 오셨어요?"


"머피 회장이 나한테 임무를 부여했다."


로건은 젠이 앉아있는 맞은 편에 앉았다.


"워체르 램페이지의 정체를 아는 유트니아군은 나 하나, 그러니 너를 책임지고 본부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어. 넌 이제 유트니아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거야."


이미 정해진 길이었다.

이 집은 더 이상 워체르 램페이지가 있어야 할 공간이 아니었다.

원래 있던 곳, 돌아가야 할 목적지는 유트니아였다.


"결국... 이런 삶도 끝인가 보네요."


젠은 허탈한 감정에 한숨을 쉬었다.


"뭐, 정체를 숨기고 사는 게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으니 당연하겠죠."


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사진이 로건의 눈에 들어왔다.


"어땠어? 이런 삶 말이야."


젠은 레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봤다.

분명 힘든 시기였지만, 삶 그 자체였던 레이를 떠올릴 때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많이 배웠어요. 이 세상이 어떤지..."


"그렇구나."


"이 곳을 살아왔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아요."


어쩌면 여태까지의 시간은 그 어떤 것보다 성과 있는 연구였다.

질서 없는 힘이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산자들과 삶을 공유하며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이다.


"사실... 피난처에 있을 때부터 네게 이 말을 진작 전했어야 했어. 근데 널 볼 때마다 돌아서게 되더라."


길버트가 로건에게 이러한 명령을 내린 건 며칠 전이었다.

하지만 로건은 이 사실을 곧바로 밝힐 수 없었다.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거든. 아무런 걱정 없이 그 순간 만을 즐기는 모습이..."


"행복했어요. 어쩌면 제 인생에서 제일..."


"그랬지? 나도 그랬어."


과거에 받은 고통과 미래에 받을 고통.

모두 잊고 현재의 행복 만을 누리는 것은 어리석지만 가장 달콤한 짓이었다.


"네가 이 아무도 없는 집에 발을 들인다면, 그 때 말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참... 제 속마음을 너무 잘 아시네요."


로건은 그런 달콤한 짓에 빠져있는 젠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저 스스로가 그 곳에서 헤어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난 사람 속 마음 파악하는 건 전문가거든."


로건은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준비는 된 거지?"


"물론이죠."


사진 한 장만 품에 넣은 젠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레이의 웃는 얼굴이 찍힌 사진,

바람이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벼운 한 장의 사진일 뿐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젠은 이 사진을 가슴으로 가져다 댔다.


"이제 나가보자."


젠은 로건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문 밖을 밟기 직전, 멈춰서 집 안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분명 다시 오게 될 기회가 있을 거야."


잠시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마지막으로 추억 했다.

로건의 말대로 되기를 바라며 고개를 돌렸다.

바라는 것을 넘어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로건이 운전하는 유트니아군 차량은 본부를 향했다.

어둡고 조용한 거리를 달리던 중 젠은 졸음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젠은 따스한 햇빛 아래에서 눈을 떴다.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모든 일이 없었다는 듯 집에는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창 밖으로 날아다니는 나비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젠!"


뒤에서 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젠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얼른 와서 밥 먹어."


레이가 식탁에 앉아있었다.

이상하다고 느껴야 할 상황이지만 젠은 그저 일어서서 레이에게 다가갔다.

식탁 위에 올려진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밥, 그리고 탐스러운 고기 반찬.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비싼 고기야. 수호자의 땅에서 수입된 고기라고."


"너, 용케도 이 귀한 걸..."


"네가 오늘 장터에 갔으면 구경도 못 했을 걸? 넌 동작이 느리잖아."


"뭐라는 거야? 내가 누군데?"


"그 놈의 내가 누군데는 적당히 하고, 한 번 먹어봐."


생생하게 느껴지는 고기의 부드러움과 고소한 맛.

결코 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맛있어."


레이가 행복하게 웃으며 고기를 먹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봤던 그 행복하게 웃는 표정과 똑같았다.


"어쩌지? 너무 맛있는데..."


레이는 역시나 자신의 접시에 있던 고기 세 점을 젠의 접시로 옮겼다.

평소 양보해주던 양에 비하면 적은 양이긴 했다.


"오늘은 이 정도만 가져가."


"하... 또 시작이네."


"자, 최고급 돼지 고기 세 점... 적립 완료야."


젠은 고기 한 점을 레이의 접시로 도로 가져다 놨다.


"두 점."


"안돼. 세 점."


레이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곧바로 젠에게 넘겼다.


"이것 봐라?"


보다 못한 젠은 고기를 있는 대로 집어서 레이의 접시에 얹었다.


"안되겠네. 이리 와."


레이가 포크에 고기를 잔뜩 찍어 모았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젠에게 다가갔다.


"입 열어. 입!"


레이가 젠의 볼을 잡고 입을 열었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저항 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입이 터질 듯이 고기를 씹어 먹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잘 먹네. 우리 램페이지."


레이가 잔뜩 비꼬는 말투로 웃었다.


"뇌 에너지가 넘쳐흐르겠어 완전 그냥."


"시끄러. 조용히 하고 밥 먹어."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따스한 햇살에 어울리는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었다.

젠은 잠시 고개를 숙여 밥을 떠먹었다.


"젠, 있잖아."


고개를 들어 마지막으로 레이의 웃음을 보려고 했을 때는 로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 이봐!"


젠은 꿈에서 깼다.

주변을 둘러보니 로건의 차 안이었다.


"곧 있으면 유트니아 본부다."


차가 얼마나 달려왔는지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꿈에 깨고 나서야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알겠어요."


저 멀리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장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곳은 생산자의 땅 15구역, 통칭 유트니아 본부.

유기견이라 불리는 불명예를 가진 생산자들이 탈바꿈을 하고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명예 수호자가 되지 못한 생산자들에게 있어 유트니아는 또 하나의 선택지였다.

지혜가 뛰어난 생산자는 과학자가 되어 과학계에 발을 들일 수 있고,

정신력이 뛰어난 생산자는 군인이 되어 생산자의 땅의 질서를 지킬 수 있었다.

수호자의 땅과 함께 리베르타인을 휘어 잡을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곳이었다.


로건의 차는 유트니아 본부를 둘러싼 장벽을 넘었다.

유트니아의 자본이 들어간 15구역은 생산자의 땅에서 가장 고급진 곳이었다.

오직 유트니아의 일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구역으로, 다른 생산자들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산업 도시와 같은 분위기의 건물과 유트니아군 사령부, 유트니아군 훈련소, 그 외의 부대들.

삼엄한 분위기 속에 생산자들은 유트니아군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위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유트니아군이 가득한 이 지대를 넘으면 캠퍼스 같은 분위기를 이룬 연구소들이 줄지어 있었다.


"8년 만이군요."


"8년이라면 좀 변화가 있었을 거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생산자들의 지혜가 이뤄낸 성과.

헤오스가 그런 짓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그 성과 덕에 유트니아의 미래가 밝았다.

과학, 특히 뇌 과학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루며 유트니아가 성장할 수 있었다.


"기억 나? 네가 어디서 연구됐는지."


"글쎄요. 그건 기억이 안 나네요. 워낙 달라져서..."


젠은 연구소들을 둘러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학생처럼 책을 들고 걷는 연구원들은 1구역의 생산자들과 달리 과학이라는 학문에 빠진 순수하고 교양 있는 모습이었다.

그 순수함 뒤에서 워체르라는 무서운 병기가 탄생했다고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연구소를 지나면 유트니아 본부의 중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심에는 커다란 건물 하나가 솟아있었다.

이 곳이 진정한 유트니아 본부,

유트니아의 중심이자 지휘소와도 같은 곳이었다.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로건의 차는 유트니아의 중심에 도달해서야 멈췄다.

젠은 유트니아 본부를 올려다 보았다.


"역시 본부가 화려하고 좋아."


로건도 본부의 웅장한 분위기에 잔뜩 심취한 듯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는 표정에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가자. 기다리고 있으시다."


본부 내부, 길버트가 있는 방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길버트와 8년 만에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떠올릴 때마다 짜증 난 인간이었지만, 얼굴을 마주한다는 건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더 노인이 됐을지, 대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해야 할 말이 잔뜩 있었다.


"들어가도 됩니까? 로건 리브스 상사입니다."


"어서 오게."


로건이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젠은 길버트와 대면했다.

젠은 8년 전의 길버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는 완전 중년과 노년의 경계를 넘어버린 모습이었다.


"오랜만이군. 램페이지."


젠은 반사적으로 나오는 신경질적인 눈으로 길버트를 바라봤다.


"앞에 앉아라."


젠과 길버트는 서로를 마주 본 채로 앉았다.

옆에는 단정한 옷을 입은 루퍼트가 조용히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루퍼트 머피라고 한다. 너와는 초면이겠군."


"반가워."


"나도 반가워."


루퍼트의 인사에 젠은 애써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길버트를 바라봤다.

오직 젠은 길버트 만이 관심이었다.


"이봐, 머피 회장. 내가 당신한테 물어볼 게 한둘이 아니거든."


"한둘이 아니라면, 우선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하지. 내가 말할 건 하나니까."


젠은 순식간에 할 말을 잃었다.

길버트의 언변은 대단함을 넘어 경이롭다 싶을 정도였다.

상대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저 능력.

수호자인 마테오 조차도 쉽게 대응하지 못 할 정도였으면 말은 다 했다.


"여전히 태도가 그 딴 식이군."


"태도에 대해서는... 나도 불만이 있다. 넌 옛날부터 몸이 먼저 나가는 태도 때문에 문제가 많았지."


젠은 슬슬 머리 속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럴 줄이야."


"닥치고 본론부터 말해."


젠과 길버트 사이에 점점 서로에 대한 원한이 끓어올랐다.

이 대화를 듣는 루퍼트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빨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내란 말이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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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hapter8. 성장의 시간 (1) 24.09.01 16 0 12쪽
26 Chapter7. 원래대로 (2) 24.08.31 11 1 12쪽
» Chapter7. 원래대로 (1) 24.08.31 15 1 11쪽
24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6) 24.08.30 20 1 11쪽
23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5) 24.08.30 20 1 13쪽
22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4) 24.08.29 14 1 11쪽
21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3) 24.08.28 16 1 12쪽
20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2) 24.08.27 23 3 11쪽
19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1) 24.08.15 23 3 11쪽
18 Chapter5. 굳건한 뿌리 (4) 24.08.14 17 3 15쪽
17 Chapter5. 굳건한 뿌리 (3) 24.08.13 20 3 13쪽
16 Chapter5. 굳건한 뿌리 (2) 24.08.12 21 3 11쪽
15 Chapter5. 굳건한 뿌리 (1) 24.08.05 34 3 13쪽
14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3) 24.08.04 27 3 11쪽
13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2) 24.07.22 37 3 13쪽
12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1) 24.07.21 37 2 16쪽
11 Chapter3. 줄기를 꺾다 (3) 24.07.21 42 2 16쪽
10 Chapter3. 줄기를 꺾다 (2) 24.07.21 37 2 15쪽
9 Chapter3. 줄기를 꺾다 (1) 24.07.15 70 2 14쪽
8 Chapter2. 질서 붕괴 (6) 24.07.15 34 2 13쪽
7 Chapter2. 질서 붕괴 (5) 24.07.15 36 2 14쪽
6 Chapter2. 질서 붕괴 (4) 24.07.15 43 2 13쪽
5 Chapter2. 질서 붕괴 (3) 24.07.15 46 2 13쪽
4 Chapter2. 질서 붕괴 (2) 24.07.15 71 2 19쪽
3 Chapter2. 질서 붕괴 (1) 24.07.14 6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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