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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
작품등록일 :
2024.07.14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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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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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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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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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2)

DUMMY

피난처에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피난민들이 음식을 받기 위해 잔뜩 줄을 서고 있었다.

메뉴는 수프와 두꺼운 바게트 빵, 그리고 계란 후라이였다.

많은 양에 형편 없는 식사였지만, 평소 생산자들의 식사에 비하면 고급진 수준이었다.

명예 수호자인 프레아도 생산자들 사이에 줄을 서서 식사를 받는 모습이었다.


젠과 프레아는 수프를 한 스푼 떠서 먹었다.

괜찮아 보이는 젠의 표정과 달리 프레아는 영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때?"


"맛있어."


"엥? 진짜?"


"응. 맛있는데?"


프레아는 수프의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저으며 빵부터 씹어 먹었다.

빵이 잘 씹히지 않는 듯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질겨."


반면 젠은 두부 뜯어먹듯이 잘 먹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 바깥에서 수호자군과 유트니아군 무리가 잔뜩 들어왔다.

온 피난민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유트니아군들 사이에 로건, 필릭스, 데릭, 조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감히 손도 대지 못 할 것 같은 위엄 있는 수호자군 지휘관이 제일 앞에 서 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는 피난민들에게 무언가 전할 말이 있어보였다.


"지금, 우리 수호자군과 유트니아군이..."


"어이!"


말을 하려던 와중에 피난민 한 명이 소리쳤다.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몰려 다니는 거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인들에게 마구 손가락질 했다.

부릅 뜬 눈과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이 무기력한 새끼들아! 이 땅을 망친 건 너희들이야!"


"맞아!"


"이 더러운 놈들!"


순간 피난민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잔뜩 일어섰다.

그들의 앞으로 숟가락, 그릇이 잔뜩 날아왔다.

모든 군인들이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꾸중을 듣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순간, 수호자군 지휘관이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피난민들은 순간 모든 행동을 멈췄다.


"수호자군과 유트니아군은 이 사태의 원흉입니다."


그리고 뒤 쪽에 있던 모든 군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두 집단을 따로 갈라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리베르타인이라는 국가의 국민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이들입니다."


프레아는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는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수호자군, 유트니아군 모두를 대표하여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숨지 않기 위해 왔습니다."


몇몇 피난민들은 일으켜 세운 몸을 다시 그 자리에 앉혔다.


"수호자 정부는 위협이 거센 시기에 대책 하나 없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수호자 정부의 과오가 그의 입에서 처음 들렸다.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충분한 병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생산자들의 죽음을 방관했습니다. 힘이 있는 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잊어버렸습니다."


젠은 넋을 놓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끔찍한 인간들이 통제가 풀리고 수많은 생산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건... 절대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든 이들의 책임입니다."


모든 군인들이 눌러 쓴 모자를 벗었다.


"모든 생산자들께 깊은 사죄를 드립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모았다.

찡그린 표정, 굳어진 표정의 군인들은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심이 인정되기는 어려웠다.


"속지 마십쇼."


화냈던 피난민이 정적을 깼다.


"다들! 속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를 악 물고 그들을 바라봤다.


"뒤늦게 수습하려는 보여주기일 뿐이야."


다시 분위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할 무렵, 뒤쪽에서 한 노인이 소리쳤다.


"그만하세요!"


모든 피난민들이 노인을 바라봤다.


"저들이 무슨 잘못입니까?"


사죄를 인정한 노인의 태도에도 군인들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저들이 저럴 수 밖에 없게 만든 인간들... 그들이 잘못이라는 건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모를 리 없을 거요."


화를 내던 피난민은 이내 할 말을 잃은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일어서시오. 당신들은 지금이라도 우리를 지키면 되는 거요."


젠은 머리 속에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레이도 그렇고, 이 땅의 모든 생산자들이 죽어 간 것에 대한 책임을 저들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에 억눌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었던 이들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 그들의 사과는 받아 들여졌다.

잠시 소란스러웠던 식사 시간은 평화롭게 끝날 수 있었다.

젠과 프레아는 식사를 끝내고 다시 학교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까 사과 인사를 했던 수호자군이 우리 아빠야. 성함은 마틴 케이지라고 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아, 그렇구나."


"아빠의 사과가 위로가 됐으면 좋겠네."


"응. 난 위로가 됐어."


"다행이야."


"나도 알고 있어. 너희 아버지한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난 필요했던 거라 생각해. 아빠도 수호자군의 고위급 인물이니까."


프레아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말했다.


"소장이거든. 별이 두 개야."


"그럼, 최고 계급에 거의 가까워지신 거네?"


프레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아직 갈 길이 멀 거야."


"왜 그래?"


"공적을 제대로 인정 받은 적이 적거든."


역시 높은 곳에 오를 수록 더 높은 위치로 가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었다.

수호자군의 진급은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건 생산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아빠가 욕심이 없는 건지... 주변 군인들이 욕심이 많은 건지..."


프레아는 탄식을 뱉었다.


"손 하나 까딱 안 한 군인이 어느 순간 인정을 받고... 제일 열심히 싸운 군인은 잊혀지고... 알 수가 없어."


프레아의 말에 젠은 그랜트와 레오나드가 떠올랐다.

그들도 결국은 잊혀지게 될 운명이었다.

온 몸을 바쳐 이 땅을 지키고 투지를 불태웠던 군인이었지만 결국 돌아온 결과는 비참했다.


"뭐,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사람들한테 제대로 인정 받는 날이..."


학교 복도를 지나가던 와중, 창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배 고프지 않아?"


"아까 밥 먹었잖아."


"그 수프, 완전 음식물 쓰레기 수준이었다고. 제대로 먹을 수가 있어야지."


"난 괜찮기만 하던데."


프레아는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따라와 봐. 여기가 식량 창고거든."


결국 프레아를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어둡고 구석진 곳의 박스에서 뭔가를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의 감촉을 느끼고 웃음을 지었다.


"와... 그래, 이거지."


천천히 들어 올린 손에는 마카롱과 초콜릿 같은 것들이 쥐어져 있었다.


"이걸 찾고 있었다고."


대담한 프레아와 달리 젠은 끊임 없이 바깥 눈치를 봤다.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는 거야?"


"뭐든 적당히 가져가면 몰라."


적당히라고 하면서 양 손에 가득 채워 놓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맛있는 게 더 들어올 거야."


그리고 젠에게 한 손에 있는 것들을 건넸다.


"자, 잘 숨겨 놓고 있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빠져나간 젠과 프레아는 놀이터로 향했다.

그네에 앉아 단 것들을 하나씩 까먹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젠은 난생 처음 본 마카롱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땅에는 마카롱이 없어?"


"마카롱? 이거 말하는 거야?"


"이런..."


프레아는 머리를 잡고 탄식했다.


"그럼 초콜릿은 알아?"


"싸구려에 쓴 맛 나는 초콜릿은 많이 먹어봤어."


"그런 거 하고는 다를 거야."


젠은 슬쩍 고개를 돌려 프레아를 바라봤다.


"근데, 넌 생산자의 땅에서 살았던 적이 없어? 아니면 기억이 안 나는 거야?"


프레아는 열심히 마카롱을 입 안에서 굴리고 있었다.


"난 태어날 때부터 엄마랑 아빠가 명예 수호자였거든. 그래서 수호자의 땅에서 계속 살고 있는 거야."


"그렇구나..."


역시, 프레아는 태생부터 급이 달랐다.

그러니 이 땅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두 분다 엄청 대단하시네. 그 때부터 명예 수호자였다니..."


젠은 난생 처음으로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먹었다.


"되게 맛있어."


"그렇지?"


둘은 마카롱을 음미하는데 빠져 잠시 조용해져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분이 조금 풀려서 그런지 아까와 달리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혹시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침묵 속에 프레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뭐하다가 그런 상처를 스스로 낸 거야?"


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조금 있다가 말해줘도 될까?"


"그래?"


"그냥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거든. 이해 좀 해줘라."


"알겠어."


프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내가 괜히 물어봤구나. 미안해."


"아니, 미안할 필요까지는 없고."


레이의 죽음에 정신 못 차려 고생했던 로건이 떠올랐다.

그 때를 생각하면 스스로가 정말 답답해 보였다.


"내 기분이 나쁘다고 주변 분위기까지 어둡게 할 수는 없잖아."


프레아는 젠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앉은 채로 그네를 앞으로 밀며 하늘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생산자들 다 심정이 비슷할 거야. 다들 힘들겠지."


젠은 그녀를 따라서 같이 그네를 밀었다.


"근데 이럴 때일 수록 같이 털어놓고 위로 받는 게 좋을 거야. 적어도 지금은 다들 너한테 공감 해주겠지."


프레아는 명예 수호자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생산자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다만 다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면..."


프레아는 가볍게 한 숨을 쉬었다.


"모두들 서로 공감하고 살 여유가 없거든."


시간이 지나 모든 게 돌아온다면 다시 시작이었다.

모두 바쁜 와중에 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원할 수록 뒤떨어질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모두가 잠시 쉬어갈 때 정도는 괜찮았다.


"그럼..."


"엇, 잠깐만..."


프레아는 교문을 보다가 갑자기 그네에서 일어섰다.


"젠, 미안해. 일이 생긴 것 같아."


교문으로 검은색 광택이 흐르는 고급진 차를 중심으로 수호자군 차량들과 화물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프레아는 정신 없이 달려갔다.


"나중에 계속 이야기 하자!"


"누구지?"


확실한 건 최소 명예 수호자 신분의 거물인 듯 했다.

군인들이 잔뜩 마중을 나와 있었고 긴장한 상태였다.


"전원, 피난민들 감시하도록 해라."


혹시라도 피난민들이 보면 위험한 짓을 할 수 있을 법한 인물, 그리고 수호자군 소장이 마중을 나올만한 인물이었다.

차가 멈추고 경호원이 내려 뒷좌석을 열자 한 남자가 내렸다.


"전원 차렷!"


모든 군인들이 한 치의 흔들림 없었다.


"루이 셰퍼드 대표님께 경례!"


군인들의 경례는 단 한 사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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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hapter8. 성장의 시간 (1) 24.09.01 16 0 12쪽
26 Chapter7. 원래대로 (2) 24.08.31 11 1 12쪽
25 Chapter7. 원래대로 (1) 24.08.31 15 1 11쪽
24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6) 24.08.30 21 1 11쪽
23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5) 24.08.30 20 1 13쪽
22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4) 24.08.29 14 1 11쪽
21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3) 24.08.28 16 1 12쪽
»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2) 24.08.27 24 3 11쪽
19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1) 24.08.15 23 3 11쪽
18 Chapter5. 굳건한 뿌리 (4) 24.08.14 17 3 15쪽
17 Chapter5. 굳건한 뿌리 (3) 24.08.13 20 3 13쪽
16 Chapter5. 굳건한 뿌리 (2) 24.08.12 21 3 11쪽
15 Chapter5. 굳건한 뿌리 (1) 24.08.05 34 3 13쪽
14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3) 24.08.04 27 3 11쪽
13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2) 24.07.22 38 3 13쪽
12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1) 24.07.21 38 2 16쪽
11 Chapter3. 줄기를 꺾다 (3) 24.07.21 43 2 16쪽
10 Chapter3. 줄기를 꺾다 (2) 24.07.21 38 2 15쪽
9 Chapter3. 줄기를 꺾다 (1) 24.07.15 71 2 14쪽
8 Chapter2. 질서 붕괴 (6) 24.07.15 35 2 13쪽
7 Chapter2. 질서 붕괴 (5) 24.07.15 36 2 14쪽
6 Chapter2. 질서 붕괴 (4) 24.07.15 44 2 13쪽
5 Chapter2. 질서 붕괴 (3) 24.07.15 46 2 13쪽
4 Chapter2. 질서 붕괴 (2) 24.07.15 72 2 19쪽
3 Chapter2. 질서 붕괴 (1) 24.07.14 6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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