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램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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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
작품등록일 :
2024.07.14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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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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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hapter7. 원래대로 (2)

DUMMY

"수호자 정부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 너를 통제하고 그에 대해서 감찰을 받으라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수호자 정부의 압박이 존재한 듯 했다.

비밀 병기의 개발이 들켜버린 이상, 유트니아는 이제 모든 신뢰를 잃었다.

앞으로도 무언의 압박은 이 곳을 좁혀올 예정이었다.


"루이 셰퍼드가 찾아와서 나에게 그 보고서를 보여줬어. 램페이지의 정식 명칭은 워체르 램페이지, 나 말고도 셋이나 더 있다고 말이야. 이 쪽도 통제를 해야 하지 않겠어?"


"알려주려 했건만, 이미 다 퍼졌나 보군..."


젠은 분에 주먹을 쥔 손을 떨었다.

여태껏 길버트를 위해 마음 속에서 준비해뒀던 말들,

길버트의 얼굴을 실제로 보자 그것들이 밖으로 나오려고 안달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도 수호자 정부한테 팔아 넘겼잖아?"


"이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야. 네 안에 있는 그 힘에 대한 정보가 중요하지."


젠 크루스라는 이름은 분명 길버트가 지어준 가짜 이름이었지만,

이 정신이 인간의 정신인 이상, 이름이란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인간 취급 하는 법을 모르는 듯 했다.


"넌 앞으로 본부에서 지내면서 우리 통제 아래에 움직이게 될 거다. 더 이상은 수호자 정부에게 정보가 넘어가서는 안 되거든."


더는 통제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마라는 뜻이었다.

대충 8년 간 자유로웠으니, 더 이상 자유로울 필요 따위는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다들 와라."


옆 방에서 한 여자 연구원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따라 나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젠의 뒤쪽에 섰다.


"리브스 상사, 너도 이 쪽으로 와라."


문 근처에 서있던 로건이 이 쪽으로 걸어왔다.

여자 연구원 옆에 서서 나란히 길버트를 마주했다.

이들은 모두 램페이지의 정체를 아는 인물들이었다.


"리브스 상사, 너는 유트니아군 내부에 램페이지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해라. 오스먼드 같은 것들이 아직 있을 수 있으니 말이야. 한 동안은 계속 붙어서 보호하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연구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레나 스펜서 연구원, 유능한 이들을 모아줄테니 워체르 연구를 주도해주길 바란다. 분명 네 연구 경험에 도움이 될 거다."


레나 스펜서라는 여성은 유트니아의 유능한 뇌 과학 연구원이었다.

긴 흑발의 아름다운 외모에 엘리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차분함이 느껴졌다.

낯이 익지는 않은 것을 봐하니 8년 전에는 없었던 연구원인 듯 했다.


"영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범해 보이는 한 여자 아이.


"그리고 글레어, 램페이지의 옆에 와서 앉아라."


글레어는 마치 자리가 정해지기라도 한 듯이 젠의 바로 옆에 앉았다.


"네 힘을 통제할 수단은 다 있어. 네 힘이 그만한 만큼, 철저하게 준비를 해둔 상태다. 최후의 수단까지 말이야."


길버트의 말에 여자 아이는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 있어야 최후의 수단이라 볼 수 있겠지."


길버트의 시선이 향한 곳에 그 정답이 있었다.


"워체르 글레어다."


젠은 그제서야 깨닫고 그녀를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귀찮다는 의사를 마음껏 뽐내는 저 표정,

꽤나 말썽꾸러기일 것만 같아 보였다.

그녀는 글레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워체르였다.


"글레어는 적어도 너와는 다르다. 내 명령을 곧잘 알아듣고 철저히 행동하고 통제를 벗어날 성격도 아니야. 게다가 너만큼 강하다."


인상과는 달리 순한 녀석인 듯 했다.

길버트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꼬마 취급 당하는 젠과 달리 그녀는 전적인 신뢰를 받고 있었다.


"저기, 글레어. 초면에 미안할만한 말 좀 할게."


"음?"


글레어는 돌연 사과부터 하는 젠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레어가 통제를 벗어날 성격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지? 넌 내 속마음은 모르면서 얘 속마음은 알 수 있는 거야?"


젠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따졌다.

그런 젠을 보며 글레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적어도 너처럼 저질러 놓고 보는 성격은 아니거든."


"물론 글레어보다 더 확실한 통제 수단이 있긴 하지. 너 같은 걸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생산자의 땅에 풀어뒀다 생각하나? 네 힘은 네가 모르는 사이에 잘 통제되고 있다."


순간 젠은 레이가 죽던 당시가 떠올랐다.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램페이지가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쳐도 아무 반응도 없이 존재 자체가 지워진 듯한 느낌.

분명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 나도 마침 의심 가는 게 있는데 말이야."


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노에 찬 눈동자에 슬슬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전이 끝나고 스크림 소탕이 시작됐을 때였어. 당신이 내 머리 속을 파고 들 때 느껴진 그 두통이 일어나더니 그냥 조용하게 흘러가더라고?"


젠의 눈을 보고 잔뜩 겁 먹은 루퍼트와 달리 길버트는 태연하게 젠을 보고 있었다.


"근데 너무 이상한 게 말이야... 그 두통 이후로 램페이지가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진 것 마냥 나오질 않더라."


길버트는 그저 침묵했다.

대신 뒤에 있던 레나가 입을 열었다.


"워체르 통제 칩이야."


젠은 뒤돌아 레나를 바라봤다.


"네 척수 근처에 위치한 미세한 크기의 칩이지. 그 칩으로 머리 속에 메시지를 전할 수도, 네 힘을 차단할 수도 있어."


젠은 뒷목을 더듬었다.

미세한 칩이라 그런지 뭔가 걸리는 느낌 하나 나지 않았다.


"때에 따라서 그 칩은 폭발을 일으켜서 널 제압할 수도 있어. 그게 최후의 수단이야."


순간 젠은 흠칫 놀랐다.

이 칩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였다.

결국은 젠이라는 한 인간의 목숨을 길버트가 쥐고 있는 셈이었다.


"아, 그런 대단한 기능이 있었다니..."


분노에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근데 있잖아요... 그게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죽였다는 건 알아요?"


레나는 눈이 커졌다.

이 상황을 직접 봤던 로건도 이제는 이해가 됐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다시 고개를 돌려 길버트를 바라봤다.


"그게 레이야."


"뭐라고?"


"너는 내가 내 소중한 사람 지키는 게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냐? 레이의 목숨보다... 그깟 기밀이 더 무거운 거야?"


방에 있는 모두가 침묵했다.

길버트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 물었다.

한참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망설임 끝에 나온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건... 이 나라가 걸린 일이니까."


무의식 속에 차오르고 있는 분노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좋아. 그럼... 하나 더 물을게."


길버트의 표정이 잔뜩 어두워진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을지 질문을 던졌다.


"5000명 생산자, 스크림에게 희생된 34명의 유트니아군, 내전으로 전사한 200명의 유트니아군..."


레이, 그랜트, 레오나드, 심지어는 죽도록 짜증 났던 불량배들까지.

지난 날 동안 희생 당한 이들이 떠올랐다.

하나하나 나열할 때마다 속이 타 들어 갔다.


"그 목숨들보다... 유트니아의 존속이 더 무거운 가치냐?"


"그래!"


길버트가 책상을 손으로 내려치며 일어섰다.

눈을 부릅 뜨고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유트니아는 그 정도로 무거운 집단이다!"


퍽!


드디어 길버트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죽일 듯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그래... 그럼 네가 죽어봐."


뒤쪽으로 밀치고 주먹을 연속해서 온 몸에 꽂았다.

폭력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이 더러운 인간이 정신을 차릴 유일한 방법은 폭력이었다.

이 주먹에는 개인적인 감정 뿐이 아닌 희생된 모든 이들의 원한이 담겨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네 목숨은 얼마나 가벼운지! 내가 직접 봐줄테니!"


길버트의 얼굴이 몰골이 되고 있었다.


"그만해!"


그 순간, 젠과 길버트 사이에 루퍼트가 끼어들었다.

실수로 루퍼트의 가슴에 주먹을 날려버렸다.

젠은 그제서야 주먹질을 멈췄다.


"젠! 멈춰!"


어느새 다가온 로건이 뒤에서 만류하고 있었다.

루퍼트가 잠시 고통스러워하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


일단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진짜 미안해. 할아버지도 분명 이런 일을 벌이고 싶지 않으셨어."


루퍼트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수호자 정부에게 항복한 것도... 더 이상 생산자들이 죽는 걸 볼 수만 없으니까 그런 거야. 생산자들을 위해서..."


"정말... 그거로 네 할아버지가 생산자들을 위했다고 생각하냐?"


"안 믿어도 되니까... 제발... 죽이지 만은 말아줘..."


길버트는 주저 앉은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소리가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병약한 소리였다.


"앞으로 길어야 1년이야. 그 때까지만..."


"뭐?"


방 안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이봐, 머피 회장! 저게 무슨 소리냐?"


"윽..."


너무 심하게 맞은 나머지 말을 잇지도 못 하고 있었다.

루퍼트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불치병이야. 유트니아 뇌 과학... 의료 분야... 모두 동원해도 치료 불가래."


어쩐지, 가족 하나 없던 길버트에게 갑자기 손자가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가족도 아니면서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르는 이 어리고 마음 여린 녀석,

곧 유트니아의 회장에 올라 온갖 부담감을 견뎌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니 제발... 1년만 참아줘. 내가 앞으로 할아버지보다 몇 배는 잘해줄게!"


가엾은 루퍼트의 모습을 보니 겨우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어쩐지 정신 상태가 이상하더라."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젠은 주먹 대신 몹쓸 말로 긁었다.


"갈 거면 빨리 가버리지, 1년은 왜 사는 거냐? 1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데..."


할아버지가 모욕 당하는 상황에서도 침묵한 루퍼트,

이 상황에 끼어들어 만류할 이유가 없는 글레어와 레나.


"살아서 속죄는 하기 싫으니 저승으로 도망가는 꼴이 정말이지..."


"젠! 그 입 닫아!"


보다 못한 로건이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무리 화나도, 가족이 보고 있어.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제서야 고통에 힘겨워하는 길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어찌 됐건 병약한 노인을 폭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이 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야만 했다.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운명이었다.

분명 길버트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


"계속... 얘기해도 되겠나?"


결국 돌아가서 자리에 앉았다.

길버트는 루퍼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레이 일은... 미안하게 됐다."


"하던 얘기나 해."


길버트와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 한 채로 대화를 계속해서 들었다.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램페이지, 글레어. 너희는 감찰이 끝나면 유트니아군 훈련을 받게 될 거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면 레나의 아래에서 연구를 이어나간다."


길버트는 루퍼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뒤로는 루퍼트가 잘 해줄 거라 믿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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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hapter8. 성장의 시간 (1) 24.09.01 15 0 12쪽
» Chapter7. 원래대로 (2) 24.08.31 11 1 12쪽
25 Chapter7. 원래대로 (1) 24.08.31 14 1 11쪽
24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6) 24.08.30 20 1 11쪽
23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5) 24.08.30 20 1 13쪽
22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4) 24.08.29 14 1 11쪽
21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3) 24.08.28 16 1 12쪽
20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2) 24.08.27 23 3 11쪽
19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1) 24.08.15 2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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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hapter5. 굳건한 뿌리 (2) 24.08.12 21 3 11쪽
15 Chapter5. 굳건한 뿌리 (1) 24.08.05 34 3 13쪽
14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3) 24.08.04 27 3 11쪽
13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2) 24.07.22 37 3 13쪽
12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1) 24.07.21 37 2 16쪽
11 Chapter3. 줄기를 꺾다 (3) 24.07.21 42 2 16쪽
10 Chapter3. 줄기를 꺾다 (2) 24.07.21 37 2 15쪽
9 Chapter3. 줄기를 꺾다 (1) 24.07.15 70 2 14쪽
8 Chapter2. 질서 붕괴 (6) 24.07.15 34 2 13쪽
7 Chapter2. 질서 붕괴 (5) 24.07.15 36 2 14쪽
6 Chapter2. 질서 붕괴 (4) 24.07.15 43 2 13쪽
5 Chapter2. 질서 붕괴 (3) 24.07.15 46 2 13쪽
4 Chapter2. 질서 붕괴 (2) 24.07.15 71 2 19쪽
3 Chapter2. 질서 붕괴 (1) 24.07.14 6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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