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램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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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
작품등록일 :
2024.07.14 21:13
최근연재일 :
2024.09.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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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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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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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6)

DUMMY

이틀 뒤, 수호자군의 계엄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모든 일이 정리된 후, 언론에 집계된 희생자는 약 5000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수호자군은 스크림의 완전한 붕괴를 선언했다.

피난처는 마지막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처음에 그랬듯, 마틴을 비롯한 모든 군인들이 다시 모두의 앞에 섰다.


"지난 16일 간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식사에 빠져 있던 젠은 마틴의 연설을 귀 담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처음 사과를 했을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분노에 숟가락을 던지던 생산자들은 얌전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지도자들의 잘못이라 한들, 그 지도자의 명을 실행시키는 건 저희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된 생산자들의 목숨은 어떤 가치보다 무겁습니다."


군인들은 어둡지는 않지만 밝지도 않은 표정을 한 채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 쪽에서 감당하지 않으면 그 무게를 덜어낼 수는 없겠죠. 수호자군, 유트니아군 모두가 공평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군인들이 서있는 모습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 모두 마음 속으로 맹세를 한 듯 보였다.


"그리고 적어도 저희 만큼은... 군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진심 어린 마음, 그것이 전해지기라도 한 듯이 피난민들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원래 자리를 찾아 갈 시간이 왔다.

유트니아군은 생산자의 땅, 수호자군은 수호자의 땅으로.

다음에 만나면 적이 될지도 모를 두 세력이 작별을 나누고 있었다.


"어이, 주정뱅이!"


역시나 마틴이 찾은 사람은 로건이었다.

로건은 마틴을 향해 힘찬 경례를 했다.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고생은 소장님께서 제일 하셨습니다."


"너 만한 녀석이 우리 쪽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에이... 저보다 좋은 군인은 어디에든 있습니다."


로건은 쑥스럽게 웃었다.

이제 둘은 신분, 계급을 떠나 서로에게 소중한 인연이었다.


"아니, 너처럼 똑부러지는 놈은 본 적이 없다."


마틴은 갑자기 장난스럽게 웃으며 로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너처럼 갖고 놀기 좋은 놈도 본 적이 없거든."


간만에 웃음을 터뜨린 로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저도 소장님 같은 분이 곁에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순간 놀란듯한 마틴의 눈동자가 커졌다.


"명예 수호자가 감히 생산자들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 처음부터 위대한 분이라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그래?"


마틴은 뿌듯하게 미소를 지었다.


"신분이 높다는 이유로 뭐든 정당화 할 수는 없어."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난 신분 같은 건 신경 안 쓰는 게 더 편해. 특히 너 같은 녀석 하고는 말이야. 우리 사이는 형제가 아니겠냐?"


로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예. 그렇습니다."


"다음에 만날 수 있으면 또 이렇게 지내자."


"물론입니다."


미련이 없는 듯, 마틴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철수를 준비하러 가보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어디를 가던 응원하고 있으마."


마틴은 뒤 돌아 보지 않고 로건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 와중에 다른 방향에서 젠이 로건에게 달려왔다.


"로건!"


로건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젠은 그대로 그에게 안겼다.


"젠, 고생했다."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고생했어요."


젠과 로건은 이제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은인이 됐다.

웃고 있는 로건과 달리 젠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제 그 일터에서는 못 보는 건가요?"


"이제 다른 임무를 하러 가야 해. 어제 유트니아군 상층부에서 본부군으로 오라는 명령이 내려왔거든."


"본부군?"


"여기서 조금 멀지?"


"유트니아 본부면 조금이 아닌데..."


"아... 그렇긴 하지?"


1구역 감시 요원이었던 로건은 이제 유트니아 본부로 부름을 받은 모양이었다.

유트니아 본부는 1구역과 멀리 떨어진 15구역에 위치해 있었다.


"힘들겠지만, 1구역에 올 수 있다면 한번 정도는 저랑 만나요."


"응. 물론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젠은 홀로 자책하던 로건의 모습을 떠올렸다.

로건이 아무리 티 내려고 하지 않으려 해도 젠은 모두 알고 있었다.


"더 이상은 그 때 일로 죄책감 가지지 않았으면 해요."


로건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할게."


젠은 로건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근데 아까 들었지? 소장님이 한 이야기 말이야."


눈을 뜬 로건은 진지한 표정으로 젠을 바라봤다.


"레이가 그렇게 된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야. 분명 나도 그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어."


죄책감을 떠나 로건은 아직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난... 레이를 위해서, 우리 죽은 동료들을 위해서... 더 감내하고 더 열심히 살아갈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야."


로건의 다짐은 젠의 마음 속 한 곳을 울리고 있었다.

레이를 기억해주고 위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크나 큰 위로였다.


"이것 만큼은 계속 기억해줘라."


"물론이죠."


젠과 로건은 멀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두 눈을 마주 봤다.

그리고 로건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잘 가. 다음에 보자."


젠은 멀어지는 로건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로건, 필릭스, 조엘, 데릭.

이제는 유트니아 본부군 일행으로서 함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젠!"


넋 놓듯이 그를 쳐다보던 중, 프레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레아, 고마웠어."


"나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우리가 만나야 하는 날이랑 장소 말이야."


"잊었을 리가 있어? 생산자의 땅 자연 경치가 그렇게 예쁘다고 하던데 꼭 보러가자."


젠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옆에 있으면 못 가는 곳은 없을 거야."


프레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램페이지니까."


"또 그 얘기야?"


큰 마음 먹고 프레아에게 정체를 밝혀봤자 딱히 변한 건 없었다.

프레아는 젠이 램페이지라는 사실을 결코 믿지 않았다.

그냥 되도 않는 장난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지금 당장은 못 믿겠지. 충분히 이해해."


"넌 애기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유치한 거짓말을 그 정도로 당당하게 하니?"


"그냥 나중에 보라고."


"네가 위험해지면 거슬리는 것들은 다 무찔러 줄 거니까."


젠은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한심하다는 뜻인지, 웃기다는 뜻인지 프레아가 이상하게 웃으며 바라봤다.

수습할 수 없는 분위기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물론 위험해지면 안 되겠지만."


"알았어, 알았다고. 믿어줄게."


프레아가 멈추지 않고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원하지 않던 반응에 젠은 머리를 긁적였다.


"내 삶에 여자라고는 이제 너 뿐인데, 너라도 잘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뭐?"


폭탄 같은 젠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던 프레아가 갑자기 굳어버렸다.


"젠, 그게 무슨..."


프레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젠은 프레아의 반응을 슬쩍 확인하고는 되도 않는 핑계를 댔다.


"주변에 남자들은 널렸어. 이제 색다른 경험이 필요해.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자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아가야 하거든."


"아... 그렇구나."


프레아는 탄식하며 실망한 듯 고개를 살짝 떨궜다.

젠은 이런 반응이 재미있어 웃음을 참지 못 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먼저 다가 와줘서 고마웠다. 프레아."


젠이 프레아를 안아주었다.

힘든 시기를 함께 해준 프레아에 대한 고마움은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둘 사이에 조용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래. 나도 재밌었어."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젠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프레아는 마틴과 셀레나를 따라 수호자의 땅으로 향했다.

이곳 저곳에서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져있었다.

유트니아 주둔군들이 잔뜩 모여 거리를 통제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생산자들의 인파 속을 누볐다.

그리고 젠은 어느새 집 앞 거리에 서있었다.


"이런 젠장..."


박살이 나버린 유리창과 현관문, 지워지지 못한 핏자국들이 반겼다.

10년 정도 비우고 나온 듯 허름해진 모습이었다.


"다녀왔어?"


집 내부로 들어서자 레이의 목소리와 함께 헛 것이 보였다.

거실, 부엌 어디에든 레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레이..."


젠은 집 곳곳을 확인했다.

역시나 이 방이고 저 방이고 물건들이 잔뜩 털려있었다.

금고 안 쪽도 예상한대로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아무 것도 없어. 아무 것도..."


그 와중에 레이와 찍은 사진이 발에 걸렸다.

젠은 사진을 들고 앉아 온갖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미안해. 레이..."


레이가 있는 집은 항상 온기가 가득했지만, 이제는 찬 바람만 드나들 뿐이었다.


"실컷 웃고... 하고 싶은 짓 다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 이제 와서 널 떠올리고..."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슬픔에 빠진 이 모습이 한심할 뿐이었다.


"아무런 보답도 못 하는데 울기만 하니..."


젠은 고개를 숙여 사진에 얼굴을 갖다 댔다.

이럴 때일 수록 따끔하게 혼내주고 조언해주던 레이가 그리웠다.


"레이,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헤오스가 했던 말, 루이가 찾아와 했던 불안한 말들이 잔뜩 떠올랐다.

램페이지는 무질서의 화신이다, 존재 자체로 반역자이다, 모두 반박할 수 없었다.

지난 날들 동안 잊고 지냈던 현실에 대한 우려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제 내 앞은... 적들만 가득할텐데..."


이제는 젠 크루스라는 소년으로는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곳에서 하찮은 애송이를 자처하는 게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

근데 왜 이럴 때 머피 회장은 아무 말도 않고 램페이지의 힘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뚜벅, 뚜벅...


집 밖에서 발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림자가 문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젠은 고개를 들어 잔뜩 경계했다.


"누구지?"


"어떤 것 같아?"


익숙한 목소리였다.

젠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집에 돌아온 기분 말이야."


조명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 어둡게 보이는 사람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큰 키에 넓은 어깨 그리고 어깨에 총을 매고 있는 모습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고 계신가요?

추천, 선호작 등록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댓글이든 환영하니 댓글도 한 번씩 부탁 드려요!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있으면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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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hapter8. 성장의 시간 (1) 24.09.01 16 0 12쪽
26 Chapter7. 원래대로 (2) 24.08.31 11 1 12쪽
25 Chapter7. 원래대로 (1) 24.08.31 15 1 11쪽
»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6) 24.08.30 21 1 11쪽
23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5) 24.08.30 20 1 13쪽
22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4) 24.08.29 14 1 11쪽
21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3) 24.08.28 16 1 12쪽
20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2) 24.08.27 23 3 11쪽
19 Chapter6. 질서 없는 인연 (1) 24.08.15 2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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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Chapter5. 굳건한 뿌리 (3) 24.08.13 20 3 13쪽
16 Chapter5. 굳건한 뿌리 (2) 24.08.12 21 3 11쪽
15 Chapter5. 굳건한 뿌리 (1) 24.08.05 34 3 13쪽
14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3) 24.08.04 27 3 11쪽
13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2) 24.07.22 37 3 13쪽
12 Chapter4. 잔혹한 집행관 (1) 24.07.21 38 2 16쪽
11 Chapter3. 줄기를 꺾다 (3) 24.07.21 42 2 16쪽
10 Chapter3. 줄기를 꺾다 (2) 24.07.21 37 2 15쪽
9 Chapter3. 줄기를 꺾다 (1) 24.07.15 70 2 14쪽
8 Chapter2. 질서 붕괴 (6) 24.07.15 34 2 13쪽
7 Chapter2. 질서 붕괴 (5) 24.07.15 36 2 14쪽
6 Chapter2. 질서 붕괴 (4) 24.07.15 44 2 13쪽
5 Chapter2. 질서 붕괴 (3) 24.07.15 46 2 13쪽
4 Chapter2. 질서 붕괴 (2) 24.07.15 71 2 19쪽
3 Chapter2. 질서 붕괴 (1) 24.07.14 6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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