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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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든너구리
작품등록일 :
2024.07.16 19:24
최근연재일 :
2024.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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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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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2)

DUMMY

"티타니아 님!"


문이 열리자마자 파란 곱슬머리와 노란 곱슬머리를 한 소년 두 명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다. 자세를 낮춘 두 소년의 등엔 희끄무레하지만 분명히 보이는 작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눈이 동그래진 나를 놔두고 니아가 먼저 나가 앞에 무릎꿇은 두 소년들을 일으켰다.


"체제님 앞입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체제님."


시동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서 동시에 말했다. 체제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괜찮다. 애초에 너희는 티타니아의 편폐(偏嬖)가 아니냐. 내게 충성 할 필요는 없다."

"송구합니다. 이사님.'


니아가 다시 체 이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체제는 고개를 끄덕이곤 내게 말했다.


"정우성 씨. 뭐하고 있습니까? 이리로 오세요."

"예? 아니 근데 이게 뭐죠? 아니, 어디죠? 대체 이게 무슨....."


나는 누가봐도 얼빠진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천천히 나왔다. 어디 판타지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새겨진 고딕 양식 풍의 실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깔린 카페트의 푸른색은 하늘도 바다도 아닌 낯선 푸른 빛이 감돌았고 벽 마다 세워진 기기괴괴한 조각상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무슨 여행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스페인에 있다는 성당에서 본 것 같은 분위기와 현실감없는 상황에 압도되어서 넋이 나가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질 줄을 몰랐다.


"이 곳은 팀장님의 세계와 같은 계층, 다른 위상 차에 존재하는 제 7계위 , 우성 씨가 살던 세상과 다른 독자적인 자원과 에너지로 다른 방향의 발전을 이룬 곳입니다. 우리는 이 곳을 '아프갈란드'라고 부릅니다.

"?"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죠. 저 분은 이 세계를 삼분하고 있는 세력인 인간, 드래곤, 마족 중 마족을 통치하고 있는 마왕군의 4천왕 중 하나인 체제 올리비아님이십니다."


점점 더 이야기가 산으로간다. 보진 않았지만 내 표정이 어땠으리라는 게 짐작 되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체 이사는 여봐란 듯 보라빛 불꽃에 휩쌓여 있었다. 영락없이 애다.


"그리고 저는 체제 님 휘하 군세 중 요정족의 대표, 티타니아라고 합니다."

"요정?"


순간 니아의 귀가 기다란 머리칼을 뚫고 뾰족이 솟았고 등에서 투명한 날개 한쌍이 돋아나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니아는 아름답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요정이라고 생각했어. 사람이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니아가 날개를 접자 문 곁에 있던 파란 머리의 시동이 다가와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셰리프 마을 모험가 길드 지부장님이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 지부장인가. 들어오라고 하지."


체 이사는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니아를 보았다. 니아는 파란 머리 시동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니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시동이 문을 열었다.


"체제 님! 오실 때는 전언을 좀 주십시오. 쌓인 업무가 하나 둘이 아닙니다. 가디언은 찾으셨습니까?"


고풍스런 귀족 풍의 복색을 갖춘 남자가 배를 먼저 내밀며 들어섰다. 갈색 머리카락인 사람은 수염도 갈색이구나, 하고 순간 생각했다. 덥수룩한 수염이 구레나룻에 합쳐진데다 체형하며, 산타클로스가 좀 젊은데? 라는 분위기였다.


"파블리에 지부장. 안 그래도 곧 기별을 넣을 참이었다. 우선 인사부터 하지. 이 마을의 던전을 맡을 마스터, 정우성 팀장이네. 정우성 팀장? 이 쪽은 이 마을의 모험가 길드 지부를 맡고 있는 파블리에 지부장이네. 던전을 데뷔시키고 모험가들을 유치하려면 상호 교류가 중요하니 친분을 쌓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체 이사가 모처럼 정돈 된 톤으로 위엄있게 말하는 중학생처럼 보였다. 뒷짐까지 진 중학생의 말에 젊은 산타클로스가 굽은 어깨가 펴질 정도로 놀라며 말했다.


"예? 던전 마스터라니, 마스터는 티타니아 님이 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들어서던 걸음이 멈칫하며 나와 니아를 번갈아 보던 지부장은 자신의 행동이 결례라고 생각했는지 허리를 크게 숙였다.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모험가 길드의 셰리프 마을 지부를 맡고 있는 파블리에라고 합니다. 모험가 시절에는 그레이 호크라는 이명을 가진 창잡이였습니다. 혹시 들어보셨는지?"

"예? 아, 저...저는....."


나는 널 모르지만 너는 나를 알고 있겠지라고 묻는 파블리에의 인사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니아가 나서서 정리해주었다.


"지부장 님, 여기 계신 정우성 팀장님은 차원 프로토콜을 넘어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지부장님의 명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해 해 주십시오."


순간 살짝 굽어있던 지부장의 허리가 곧게 펴지고 동공이 두, 세 배는 커졌다.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커진 입을 보니 보통 놀란 게 아닌 모양이다.


"차원을 넘어 오셨다니! 이거 몰라뵈었군요! 어쩐지 상서로운 기세가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아핫핫핫!"


와. 태세전환 보소?


"그러시면 마스터께선..... 인간....이십니까?"


지부장은 의뭉스런 눈길로 나를 훑었다. 그래. 인간끼리는 말이 좀 통할 지도 모르겠어. 던전 마스터라니, 괴물들이 들끓는 소굴의 관리자를 인간에게 맡으라니 그야말로 언어도단아니냐고!


"그러니까요. 역시 이상하죠?"


나는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미소와 함께 지부장이 치고 들어올 수 있는 어휘를 골랐다. 지부장은 그거보란 듯이 박수를 쳤다.


"인간이 던전 마스터라니. 이거 상당한 홍보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그럼요! 시대가 시대인데, 인간 마스터도 나올 만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이봐요, 아저씨! 그게 아니잖아요! 거기다 홍보 포인트는 또 뭐야?


"이 척박한 곳에는 드래곤의 레어때문에 제대로 된 던전이 없어서 만년 적자였습니다만, 덕분에 우리 지부에서도 제법 할 일이 생기겠습니다. 이 정도면 상당한 모험가의 방문이 예상됩니다. 올해는 바쁘겠네요. 이미 본회에 기초 물자를 신청해 둔 상태랍니다. 아핫핫."

"그런가? 우리 정우성 팀장이 아직 잘 모르는 게 많으니 그대가 많은 도움이 되어주게. 요 1년간은 7:3으로 비율을 조정해 줄 테니 말이야."

"7:3이요? 이야, 이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로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이 셰리프 마을 던전이 100위권에 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네만 믿네. 하하하하."

"그럼 일단 기초 물자 대금 지급에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한 차례 뭔가 연극같은 티키타카가 지나가고 파블리에 지부장은 품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아니, 이건 뭐 이제 마스터인 정우성 팀장이 결재해야지. 안 그래?"


체 이사가 손을 들어 두루마리를 내 쪽으로 향하게 돌렸다. 파블리에 역시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봤다.


"제가요? 저, 돈 없는데요?"


이것들이 단체로 짜고 사기를 치는 건가? 내가 왜 대금 지급에 서명을 하냐?


"아, 아닙니다. 대금은 예치되어 있고, 이 서명은 지급 명령일 뿐입니다. 마스터 님께서 지급하시는 게 아닙니다."

"아, 그래요? 제가 뭐 부담할 건 하나도 없나요? 저, 정말 땡전 한 푼 없거든요."


나는 두루마리를 건네 받으며 말했다. 파블리에 지부장은 다시금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지만 나름 사무적인 미소를 잃지 않으며 내게서 서명을 받아 냈다.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됐군요. 그럼 마스터도 새로 오셨으니 필요한 내용을 정리해서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지부장은 나를 보며 다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뭔가 상당히 바쁜 사람인 모양이다.


"자, 그럼 사소한 건 나중에 설명하고. 우선 던전부터 확인할까?"


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가장 높은 사람인 탓에 그건 질문을 가장한 명령이었다. 니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들어 허공에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 처럼 몸이 살짝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력이 줄은 듯한 그 감각이 멀미처럼 느껴지자 카칙! 하고 라이터에 불붙이기 실패할 때 나는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이게 무슨 소리지?'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스페인의 대성당 풍의 배경이 버티칼 블라인드처럼 조각나며 앞뒤가 반전되고 어느 새 주변은 녹음 가득한 어느 산중으로 일변했다. 그야말로 눈 깜빡했을 뿐인데.


"여..여긴?"


사솨사가각솨사삭삭사삭..... 산들 바람에 이 나무 저 나무들의 가지와 잎사귀가 엉키며 미묘한 바람 소리를 만들어 냈다. 평소 산에 잘 가지 않던 터라 그 밖에 들리는 소리가 새소리인지 물소리인지는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이 쪽입니다. 팀장님."


분명히 아침에 집에서 출발해 면접보면서 이야기가 왜 이렇게 산으로 가나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정말 산에 와버렸다. 오늘 하루 일진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눈 앞이 어두운 게 아니라면 왜 앞이 이렇게 어두운 거야?


"여기는..... 또 어디죠?"


어디인지 이제 슬슬 짐작이 되긴 하지만 가까스로 침착을 유지하고서 어둠이 넘실대는 거대한 동굴의 입구를 보며 물었다.


"셰리프 마을 던전의 입구입니다."

"직접 관리할 던전이니 시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체 이사는 살짝 겁 먹은 듯한 내 표정이 맘에 들었는지 만연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서 앞장 섰다. 성인 서너명은 나란히 들어갈 만큼 넓은 입구는 가파르게 아래쪽으로 경사져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굴러 떨어지기 딱 좋은 구조였다.


"상당히 가파르네요."

"아, 아시겠습니까? 밋밋한 입구는 좀 아쉽고, 입구부터 대놓고 어트랙션을 설치하긴 좀 그래서 상위 던전들을 참고하여 경사 60도로 만들었습니다. 바닥에는 무난하게 납석(蠟石)들을 깔아 미끄러지기 좋고, 벽 쪽은 자갈을 많이 두어서 중심잡기 힘들게 했답니다."

"......."


티타니아가 기쁜듯이 답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걸 칭찬해야하는 건가? 뭔가 어중간한 내 반응을 눈치 챘는지 그녀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무, 물론 팀장님이 관리하실 던전이니 만큼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변경하셔도 관계없습니다."

"그..그래요."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모험가들을 때려잡고 싶으면 아예 90도 절벽으로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생각을 묻기도 전에 체 이사가 주의를 뺏아갔다.


"자 여기서부터가 첫번째 방입니다. 사람들은 고블린 무리가 약하기만한 마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왜소한 인간과 기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쓸 줄 알고 힘으로만 승부하는 녀석들이 아니니까 초심자들을 혼쭐 내주기에 딱 좋지요. 하하하."


체 이사는 만연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있게 말했다. 게임이나 만화에서 간단히 밟히는 대표 몬스터들이 고블린 아니던가? 나도 게임을 안 해 본 건 아니니까 평소에 생각하던 이미지를 생각하며 어중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 녀석들. 어디지? 슬슬 나와야 되는데?"


체 이사는 어둠 속에서도 잘보이는 건지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며 거리낌 없이 걸어 나갔다. 방이라고해서 찜질방의 토굴방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냥 토굴로 이어진 길이 좀 넓어진 정도였기에 길을 헤매고 할 정도는 아니긴 했다. 그래도 좀 어두워서 불편하다고 생각한 찰나, 티타니아가 작은 빛을 만들어 우리들 머리 위에 올렸다. 자세히 보니 작은 파리같은 게 빛 안에서 날고 있었다.


"반디불인가?"

"아, 아닙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페어리 요정들입니다. 어린 페어리들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나거든요."

"아. 팅커벨 같은 거구나."


나는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이 본능적으로 생각났다. 티타니아가 반가운 이름이라도 들은 듯 환환 표정으로 손을 마주쳤다.


"아, 네 그런거죠. 잘 아시네요."

"팅커벨을 알아?"


나는 오히려 그녀가 팅커벨을 아는 게 신기해서 물었는데 내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체 이사의 질문이 들어왔다.


"티타니아. 첫번째 방에 배치 된 고블린이 몇 명이지?"

"아, 네. 일단은 3명입니다만, 리드 고블린이 최근에 성장하면서 수용력이 커져서 서브 고블린이 한, 둘 정도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근데 다 어디....? 아, 저건가?"


체 이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희미한 인영 몇 몇이 보였다. 보이긴 보이는데....... 누워 있는 건가?


"뭐지? 쓰러진 건가?"


갑자기 체 이사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타는 사람없는 정류장을 지나치는 버스처럼 바람을 일으키며 튀어나갔다.

그런 체 이사의 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팅커벨이 없어도 주위가 환해져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진한 녹색 피부를 가진 난쟁이 같은 고블린들이 바닥에 깔린 멍석 여기저기에서 쓰러져 구르고 있었다. 황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체 이사의 뜨거운 기운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 중 갈색 모히칸 머리를 한 고블린이 어지러운 눈으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괜찮은가?


멍하니 체 이사를 바라보던 고블린은 힘겹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 이거 체에제니임 아이임이아?"


자고 있었냐!


"뭐, 뭐하는 거야, 근무 중에!"


이게 뭔 일이야 싶은 황당함을 나만 그런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앳띤 외모와달리 나름 차분하려 애쓰던 체 이사가 전에 없던 성난 고함 소리와 폭발했다. 그녀 주위에 불타오르던 보랏빛 화염이 폭풍처럼 던전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뭐...뭐야! 니,니,니,니아!"


넘어졌다는 인식도 없이 바닥을 기던 나는 인생의 마지막 단말마처렴 니아를 울부짖었고 내 외침에 응답하듯 내 앞에 가로 선 니아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가 나는 순간 니아가 선 영역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 마치 영화관 스크린 속처럼 멀어져 어딘가 어두운 공간에서 현실을 관조하는 모양새가 되었다가 불꽃이 사그러지자 다시금 돌아왔다. 짧은 멀미가 일었다.


"괜찮으신가요, 팀장님?"

"아..아니. 지금 당장 퇴직 신청해도 될까요.....?"

"멀쩡하시네요."


니아는 싱긋 웃어보이고는 내게 등돌리고 체 이사에게로 항했다. 하아. 죽을 뻔 한 것 같긴하지만, 그래 참자. 연봉 8천이야.


"체제 님!"


니아가 체 이사를 나무랄 듯한 기세로 한껏 톤업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체 이사는 그제야 멈칫하고는 황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싹 그을려진 숯더미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이런! 내가 지금 무슨......."

"체제 님. 진정하세요. 아직 숙소가 정비되지 않아서 던전에 기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나? 하지만 던전에서 자는 건 좀 너무 하잖아! 으흠. 정우성 팀장. 못 볼 꼴을 보였군요."

"아니, 아닙니다."


괜찮다는 의사는 표시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단백질 그을리는 냄새가 진하게 공간을 맴돌았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린 고블린들을 보고 있는데도 뭔가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타버린 삼겹살 조각을 보는 정도의 기분 밖엔 들지 않았다. 영화라도 보는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우선 정리부터 해야겠네요."


니아는 한숨을 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군. 던전이라니까 이 고블린들은 되살아나는 마법같은 게 있는 건가? 나는 숯덩이가 되버린 고블린 하나를 주시했다...... 안 일어나는데?


"팀장님?"

"응? 얘네들 안 일어나는데?"

"네. 일단 여기 서명하시겠어요?"

"응?"


니아는 어디서 났는지 몇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체 이사는 그게 뭔지 아는 지 알은 척을 했다.


"아. 그렇군. 계약부터 해야되겠네."

"계약?"

"네. 별건 아니고 던전 마스터 계약입니다. 팀장님께 익숙한 서류로 준비하긴 했습니다. 일반 근로 계약서를 기준해서 작성했습니다."

"근로 계약서? 갑자기?"

"던전에 관계된 모든 사항에는 던전 마스터의 권한이 있어야만 가능하답니다. 차분하게 진행해야 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선 마스터 권한 승계에 동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혹시 이 계약때문에 발목 잡혀서 억지로 일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24시간 제약시간이 있긴 하지만 언제든 파기가 가능한 계약이니까요."

"24시간 제약이라면, 지금 계약하면 내일은 다른 조건 없이 해지할 수 있다는 건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럼 별 문제는 없는 건가? 나는 니아가 준 서류를 받아 대충 훑어 봤는데 정말 별 내용은 없었다. 흔히 보는 근로 계약서였고 직위 부분에 던전 마스터라고 되어 있을 뿐이었다. 따로 눈길이 가는 건 연봉 8000만원. 지급은 골드로. 거기에 시선이 꽂히니 다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흠. 연봉은 확실하죠?"

"물론입니다. 여기있습니다, 200골드."


니아는 허공에서 손을 집어 넣더니 불룩한 주머니를 하나 꺼내 들었다. 눈부신 금화가 가득했다. 이런게 200개나? 나는 하나를 꺼내 살짝 깨물어 보았다. 이 모양이 그대로 남는 진짜 순금!


"저..정말 이게 내꺼라고?"

"그렇습니다."


나는 방금 깨문 동전을 주머니에 넣는 시늉을 살짝 내보였지만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가져가라는 시늉을 했다.


"계약 기념으로 가지고 계시죠. 괜찮으시면, 이 주머니는 가지고 있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금화를 주머니에 넣고 니아가 준 펜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뒤 쪽에서 체 이사가 까치발로 내가 서명하는 것을 기웃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2군데 서명하는 건가요?"

"네, 2군데 맞습니다. 다 되셨나요?"


니아는 계약서를 받아 들고 확인하더니 허공 어딘가에 수납했다.


"자, 그럼 마스터 업무를 시작해 볼까요? 우선 마스터 권한 승인이라고 해보시겠어요?"

"마스터 권한 승인?"


낯부끄러운 말을 시키는 니아를 보고 겸연쩍게 되물었으나 그 말이 그대로 시동어가 되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심부전왔을 때 병원 모니터에서 들리는 '삐이!' 하는 소리가 귓전에 울리더니 진짜 심장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두근! 하고 심장이 커다랗게 울렸다. 그리고 눈 앞에서 플래시가 터진 듯 환한 빛이 퍼져 나갔다.


"우앗!"


앞 뒤 분간할 수 없는 빛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금빛 팔찌가 양 손목에 채워지면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햄버거 가게에서 파는 콜라를 한껏 마신 것 같은 상쾌하고 배부른 기운이 온 몸을 감돌았다.


"어떠신가요?"


빛이 사라지고 멍하게 서 있는데 니아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주변에 하얀색 기운이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어떻다기보다, 다들 몸에 아지랑이같은게 피어나는데요?"

"아, 그건 IFF( Identification Friend or Foe)라고 피아식별신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흔히 던전 침입자는 붉은색, 던전 수호자 측은 녹색. 그리고 저 처럼 흰색인 경우는 관찰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관찰자? 그게 뭐죠?"

"말 그대로 관찰자입니다. 중립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니아의 말을 들으며 체 이사를 보니 특유의 보라빛 화염이 미묘하게 녹색과 섞여서 일렁거렸다. 이래서야 피아식별이 제대로 되겠냐?


"자, 그럼 이제 어떡할까요? 얘네들 살아나라고 명령하면 되나요?"

"우선 마력핵을 느끼는 게 우선입니다만, 마력이 느껴지시나요?"

"마력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으음..... 뭐랄까 콜라를 잔뜩 마셔서 상쾌하지만 트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더부룩한 미묘한 기분은 느껴지고 있어요."

"좋네요. 지금 느껴지는 더부룩한 기분이 마력핵의 출력입니다. 고블린이 사망하면서 고블린이 원래 사용하던 마력이 일시적으로 돌아와 출력이 증가한 상태입니다. 출력이 점차 쌓이면 마력핵이 결정을 이루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 사용하도록 하죠."

"이상하게 말투가 게임같이 변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이죠?"

"기분 탓이네요."


니아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체 이사가 끼어들었다.


"자, 어서 권한을 사용해보세요."

"그래서 어떻게 한다고?"


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에 없이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흔히, 정념(情念)이라고 하는 방법입니다."

"정념?"

"네. 마나를 다루는 순수한 정신제어 방법이죠."

"마나를 다룬다고...?"


뭔가 비밀스런 의식이 생각난다. 해리포터처럼 주문을 영창하는 것가? 진지한 니아의 표정을 주시하며 방법을 들었다.


"살아나라, 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


지...진지하게 이제 슬슬 이 세계에 적응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체 이사도 옆에서 진지하게, 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니 자기도 한번 도전해보는 것 같다.


"살아나라."


나도 한마디 중얼거리며 고블린들이 살아나길 기원했다. 그 순간 양 팔의 팔찌가 붉은 빛으로 반짝이고는 시원하게 트림한 것 마냥 더부룩한 느낌이 사라졌다. 뭔가 일어났다는 생각에 시선을 돌리니 고블린들의 발 끝에서부터 희미한 녹색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 됐다면 고블린들 몸에 피아식별 신호가 퍼지기 시작했을 겁니다. 신호가 몸 전체로 퍼지면 고블린은 정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응. 지금 막 발목 부근까지 올라왔어!"

"잘하셨어요. 평소엔 IFF가 필요할 일은 없으니 '피아식별종료'라는 시동어로 꺼두시면 됩니다."

"피아식별종료?"


이번에도 낯 부끄러운 시동어를 반문하듯 되뇌인 것으로 마법이 발동한 것 같았다. 팔찌에서 짧게 붉은 빛이 나더니 니아는 물론이고 고블린과 체 이사 등에게서 보이던 희미한 오라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자, 다 되었으면 어서 다음 방으로 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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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챕터 3. PQ (9) 24.08.29 10 1 17쪽
22 챕터 3. PQ (8) 24.08.28 9 1 16쪽
21 챕터 3. PQ (7) 24.08.27 10 1 15쪽
20 챕터 3. PQ (6) 24.08.26 11 1 17쪽
19 챕터 3. PQ (5) 24.08.23 12 1 15쪽
18 챕터 3. PQ (4) 24.08.22 11 1 15쪽
17 챕터 3. PQ (3) 24.08.21 12 1 13쪽
16 챕터 3. PQ (2) 24.08.20 14 1 14쪽
15 챕터 3. PQ (1) 24.08.19 12 1 19쪽
14 챕터 2. 가디언 선발 (9) 24.08.16 16 1 12쪽
13 챕터 2. 가디언 선발 (8) 24.08.15 15 1 20쪽
12 챕터 2. 가디언 선발 (7) 24.08.14 17 1 14쪽
11 챕터 2. 가디언 선발 (6) 24.08.13 21 1 19쪽
10 챕터 2. 가디언 선발 (5) 24.08.12 19 1 20쪽
9 챕터 2. 가디언 선발 (4) 24.08.10 20 1 12쪽
8 챕터 2. 가디언 선발 (3) 24.08.09 17 1 14쪽
7 챕터 2. 가디언 선발(2) 24.08.08 21 1 14쪽
6 챕터 2. 가디언 선발 (1) 24.08.07 23 1 21쪽
5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5) +1 24.08.06 27 1 17쪽
4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4) 24.08.05 30 2 17쪽
3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3) +1 24.08.04 34 2 20쪽
»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2) 24.08.04 48 2 22쪽
1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1) 24.08.04 66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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