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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든너구리
작품등록일 :
2024.07.16 19:24
최근연재일 :
2024.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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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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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3. PQ (13)

DUMMY


PQ팀은 마나석을 캐거나 던전 상자를 건드리는 등의 던전 공략의 성취를 건드리진 않고 던전을 빠져나갔다. 클리어시간은 8분 남짓. 던전이 공략되었기 때문에 세계수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던전 리셋이 바로 시작되었다. 파괴된 부분을 보수하고 마물들과 카이를 되살리는데 총 30분 정도가 걸렸다. 3차 PQ를 시작하기 전에 숙소에서 마물들을 만났다.


통통. 구석에서 가만히 튀어 오르는 넥 슬라임스의 머리를 쓰다듬곤 근처 침대에 걸터 앉았다. 누구 침대인지는 모르겠다.


"귀마개라도 하면 나으려나?"

"귀를 없애면 몰라도 그런 걸로는 안될겁니다."


앉지 않고 내 앞에 선 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처참한 패배때문인지 수다스런 카이는 부활하고나서 지금까지 한마디도 없다.


"괜찮냐?"

"괜찮소."

"........."

"피리가 캬아아악! 몸이 캬아아악!"


대신 고리다가 비명을 질렀다. 어린 고블린 형제들은 귀를 막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저 어린 것들을 죽였다 살렸다하면서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쟤들은 빼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캬아악! 그 년! 마법쓰는 캬아악! 년! 씹어 캬아악! 년! 갈아 캬아악! 모가지를 캬아아아아악!"

"캬아아악!"


맏이가 눈에 불을 밝히며 소리를 지르자 나머지 형제들이 따라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내용 사이사이 적절히 들어간 비명이 발언의 수위를 적당히 낮춰줬다. 역시 뺄 필요는 없겠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거야?"

"팀장님. 던전은 크롤러들과 싸우려는 게 아니에요. 함께 성장하려는 거라구요."

"그래, 그래. 알지, 알어."


이길 필요는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렇게 무한히 죽어야 하다니. 죽는 마물들도, 그걸 보는 내 입장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나는 불에 휩싸이던 고블린 삼형제들의 어깨를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크롤러들에게는 사납기만 하던 아이들이 내 손길에는 그 나이때의 아이같은 반응을 보인다. 배시시 웃지마라, 이것들아. 죽을 때 마다 울 수도 없잖냐.


"피리 소리가 문제라면 귀를 뜯어 내겠소."


잠자코 있던 카이가 입을 열었다. 답답한 건 알겠는데 말야.


"귀가 없어도 소리는 들린답니다."

"그럼 어찌해야하오."


카이는 니아 앞인데도 이를 들어냈다. 어지간히도 자존심 상했나보다. 이쁜데 착하기까지 한 니아는 그런 무례한 행동에도 반응없이 가만히 카이를 보다가 나를 잠시 봤다. 뭐 할 말 없어요? 라는, 표정을 지은 건지 저 말을 실제로 머리속에 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니아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영역 선언을 하면 이겨 낼 수 있어요."

"아아!"


나는 손뼉을 쳤다. 그렇구나. 영역 선언은 프로토콜도 걸러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영역이다. 하찮은 잡술이 끼어 들 수 있을 리 없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진작 알려주지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안다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왜? 영역 선언 하면 되잖아?"


나는 카이를 보았다. 카이의 하얀 털이 눈에 띄게 축 쳐져 보였다.


"영역 선언은 마나 파훼의 기초에요. 카이는 아직 마나 파훼법을 익히지 못했어요."

"내, 내가 해주면 안되나? 마스터로써?"

"영역 선언은 자신을 기준으로만 발동 하는 기술이에요. 버프가 아니라. 그게 가능하려면 팀장님의 영역이 던전 전체를 덮을 만큼 커야할 겁니다."


아, 그래? 안되는 건가. 하아. 방법이 없네. 한숨이 길어졌다. 그때 고리다가 손을 들었다.


"캬아아악! 고블린! 영역 선언 할 수 있다! 아차! 습니다! 킬킬킬!"

"엥?"

"네?"

"크르르렁?"

"토옹?"


++++++++++++


마력핵이 블러드 스케일로 바뀌었다. 마물들이 지정된 위치로 배치되고 기물들의 마력선이 팽팽해졌다. 셰리프 산 중턱에 던전의 포탈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크롤러들이 입장했다. 5인 파티. PQ팀위 리더인 테오른이 철컥 거리는 갑주를 뽐내며 가장 먼저 입장했다.


"테오른 님이네요."


나도 모르게 니아를 바라봤다. 님? 님이라니?


"파티 리더인 테오른입니다. 사소한 데 신경쓰지 마시고 집중해주세요. 팀.장.님."


사소하다니? 니아, 너무 한 거 아냐? 나는 시기어린 눈빛을 보내고서 다시 조감도에 시선을 돌렸다.


"가파르군."


테오른의 첫마디였다. 그는 납석이 깔린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삐쩍 마른 레비안이 손목을 털며 곁에 섰다. 팔찌들이 부딪히며 철컥 소리를 냈다.


"그냥 내려가도 돼. 별 건 없어."


테오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비안이 고개짓을 하자 아르센이, 납석이 부서지도록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를 따라 납석들이 우수수 쓸려 내려갔다.


"길이 생겼네. 가자, 테오른."


테오른과 레비안은 아르센이 내려간 흔적을 따라 걸었다. 윌리엄과 리링은 그 양쪽에서 수북한 납석을 밟아 휘청이는 걸음으로 간신히 속도를 유지한 채 내려왔다.


"아우, 뭐 엄청 가오잡네."

"뭘 잡아요?"

"아냐. 그런 게 있어. 근데 테오른이 63위? 그정도 랭킹이었다고? 엄청 쎈거야?"

"모험자 길드에 등록된 수만명의 모험자 중에 용사 등급을 받는 이는 단 100명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에요. 순위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카이랑 1:1로 싸우면?"

"솔직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놈이었구나, 테오른!


PQ팀은 느긋하게 문 앞에 도착했다. 특히 테오른과 레비안은 동내 마실이라도 온 것처럼 잡담을 하며 내려왔다.


"고블린?"

"그래. 여섯 마리. 특별한 건 없더라고."

"막 열린 던전이니 딱 적당한 정도네."


말한 테오른은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웃었다. 보기에 따라 비웃음처럼 보였다.


"열어."


느긋하게 도착한 레비안은 문고리를 잡고있는 아르센에게 말했다. 아르센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문을 열었다. 희미한 어둠이 그들을 반겼다.


"이번엔 먼저 달려들지 않는건가?"


안으로 진입한 레비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링이 작은 빛을 만들어 공중에 띄우자 시야가 넓어졌다. 방 중간에 무기를 든 고블린들이 자세를 잡고 서있었다.


"응? 하나, 둘.... 다섯?"


테오른은 고블린을 하나하나 세어보고 숫자가 맞지않자 레비안을 바라봤다. 레비안도 턱을 매만졌다.


"윌리엄. 기척을 숨긴 놈이 있나 찾아봐."


윌리엄은 팔을 벌려 탐지 스킬을 넓혔다. 던전을 둘러싼 촘촘한 마력선이 느껴졌다. 마력선은 고블린들을 둘러싸며 휘어지고 던전핵의 마력에 공명하며 흔들렸다. 방안에서 그려지는 공명은 다섯개. 숨은 기척은 없었다.


"없습니다. 다섯이 답니다."

"하나를 줄였어? 왜지?"


레비안은 턱을 만지며 무기를 들고 가만히 있는 고블린들을 바라봤다.


"됐어. 다섯이나, 여섯이나."


테오른이 한걸음 나섰다. 고블린들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나는 다섯의 고블린들에게 각각 마나 패딩을 입혔다. 팔찌가 붉게 빛났다. 빛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알겠지? 먼저 달려들진 마. 최대한 버티고 시간을 버는거야."


의지를 담은 마스터의 전언이 다시 한 번 고블린들에게 전해졌다. 리더가 없는 무리라 사기가 사그러든 탓인지 흉흉하던 전 회차 PQ와 달리 긴장한 것 같다.


"할래?"


레비안이 테오른 뒤에서 물었다. 테오른은 고개저었다.


"아니. 난 그 가디언하고 붙어보고 싶은 거니까."

"그래."


레비안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이들에게 고개짓을 했다. 윌리엄이 비수를 난사하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방어적인 대형을 한 고블린들 사이사이로 파고든 비수에 산개된 고블린에게로 하얀 투기를 두른 아르센이 달려들었다. 전보다 더 날카로운 마력탄이 양쪽 끝에 있던 고블린 형제에게 날아들었다.


"고리더 하나없다고 애들 움직임이 영 별론데?"

"무리를 이루는 마물들에게 리더의 역할은 군대와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고리더를 후방으로 돌린 임기응변이 실수였나? 던전을 평가받는 PQ중에 굳이 배치를 바꾸는 걸 반대한 니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전투를 보지도않고 PQ 내용을 기록한 기록지를 만들고있다. 나는 고블린들에게 미안하다고 되뇌었다. 최대한 시간을 벌어주길 바랬는데, 고블린들과 전투에 익숙해진 탓인지 고리더의 부재탓인지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쏟아지는 핏물을 밟고 크롤러들은 안으로 진입했다.


"함정이 있다고?"

"응. 슬라임도 하나 있는데 그것도 시간을 벌려는 수작인 것 같더군. 가디언룸은 반대거든."

"마스터가 인간이 되니 재미있는 수를 쓰는군."

"그러게 말이야."


복도 끝에 다다른 크롤러들은 왼쪽에 있는 슬라임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른쪽 복도로 몸을 틀었다. 일단 한 번 공략된 던전은 함정이나 몹 배치등을 완전히 들킨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기에 준비한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파티마다 공략한 던전의 맵은 매우 중요한 정보이고, 경우에 따라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정보의 신빙성은 확신할 수 없다. 아무튼 공략에 실패하면 정보가 진짜인지 아닌지 알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기 슬라임이 있는 곳에 함정이 있다는 건 안들킨 거네?"

"그렇긴한데, PQ팀이 던전 정보를 흘릴 일은 없을테니까요. 기뻐할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괜히 톤이 올라간 나를 진정시키듯 니아는 차갑게 말했다. 흥분한 건 아니었지만, 그 말에는 김이 팍 새긴 했다. 하긴, 저들은 던전을 공략하러 왔다기보다 어찌보면 우리를 도와주러 온 파티니까 적대의식이 지나칠 이유가 없는데. 없긴 한데 말야. 테오른이 니아를 보던 눈빛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자꾸 그게 잊혀지지 않네.


"잠깐, 문 앞에 함정이 있어."


레비안이 성큼성큼 걷던 테오른을 잡고 윌리엄에게 눈짓을 보냈다. 윌리엄은 단검을 꺼내 주변을 살짝 파헤치고 덫에 흐르는 마력선을 찾아 잘라내고 함정을 적출해냈다.


"흉한 물건이군."

"10급 이하에서도 요즘은 잘 안쓰이긴 하니까 오히려 허를 찔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야."


말하는 레비안은 아르센과 리링 쪽을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둘은 괜히 고개를 숙이고 들지 못했다. 테오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디언은 이 앞인가?"

"복도가 한 번 더 있습니다."


윌리엄이 말했다. 레비안은 그의 말을 이었다.


"끝까지 아닌 척 하려는 것 같아. 인간적이지."

"재미있군."


테오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문을 열고 나아갔다. 모든 것이 까발려진, 무의미한 복도가 희미하게 이어졌다.


"거참, 뭔가 부끄러운데?"

"공략된 던전의 정보를 알고서 오는 파티를 상대하면 아무래도 그렇죠?"

"그것도 그런데 자꾸 재미있느니 어쩌니 평가를 하고 있으니까 뭔가 내가 잘못한 건가 싶고 좀 부끄럽고 막 그러네."

"걱정하지 마세요. 팀장님 던전은 제가봐도 재미있는 편이니까요. 아무튼, 일반적인 던전과는 좀 많이 다릅니다."

"그정도야?"


너무 쉽고 단순한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일반적인 던전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좀 결이 다른 모양이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 PQ 막바지라 그런지 잡생각이 많아졌다.


크롤러들은 복도를 지나 이윽고 가디언 룸 앞에 도착했다. 아르센이 문을 잡았다.


"기대되는데?"


테오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전 용사 랭킹 63위. 카이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상대가 안된다고는 하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열겠습니다."


아르센은 문을 열었다. 똑같은 문인데도 가디언 룸이라 그런지 더 끼이익, 하고 소리가 났다. 테오른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환영하오."


카이는 단상에 걸터 앉아있다가 차분히 일어나며 말했다. 고리더를 업은 체로 환영 인사같은 건 하지 말라니까. 어후, 내가 다 쪽팔리네. 급하게 영역 선언을 배울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다. 그래서 카이는 단순하고 무식하게 고리다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기로하고 녀석을 업었다. 으음. 말하면서도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긴 한데 말 그대로라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영역 선언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두른 듯 카이는 고리더를 입었다. 아니 업었다.


"과연, 백호로군. 좀 어리긴 하지만."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건지, 등에 업은 고블린 이야기는 안했다. 다행인가?


"성인식은 치렀소."

"그런가? 이명은?"

"드래곤의 진전."


카이의 이명을 들은 테오른은 커다랗게 웃었다. 저거 너무 무례한 거 아니냐? 나도 웃기지만 대놓고 웃진 않았다고. 그래도 그건 아니지!


"드래곤의 레어가 있던 곳이라 여기저기 드래곤의 이름이 쓰이는군. 푄 그름의 뜻을 이었다는 건가?"

"부족하지만, 사실이오. 그 분의 용연향을 구하였소."

"핫핫핫. 그렇다면 기대가 한층 더 하는군."


뒷 줄에 크롤러들을 정렬하고 세워둔 체 테오른은 한걸음 더 나왔다.


"보여주게. 자네 이명의 무거움을. 참고로 나는 '소슬란의 증거'라는 이명이 있네."

"소슬란?"


나는 니아를 봤다. 니아는 짧게 설명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멸망한 왕국 중 하나입니다. 테오른은 그 살아남은 왕족이죠."

"망국의 짐을 짊어진 왕자인가? 너무 흔한데?"

"예?"

"아니, 그것보다 고리다가 등에 있는데 저건 안 이상해? 나만 이상한가? 왜 언급을 안하지?"


심지어 고리더는 불안하게 등에서 빼꼼히 코를 내밀고 테오른과 나머지들을 열심히 훔쳐보는 중이었다. 아니, 저게 안 이상하다고? 진짜로?


"크아아앙!"


역시 무식하게 힘은 좋은 카이는 등에 고리더가 있거나 말거나 맹렬한 투기를 내뿜으며 돌진했다. 테오른은 대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하앗!"


테오른의 키만한 대검이 아래에서 위로 힘차게 그어졌다. 푸른 검기가 검선을 따라 그려지며 달려드는 카이에게로 쏟아졌다. 카이는 스텝만으로 날 선 검기를 피했다.


"차압!"


그러나 그 정도는 예상이라도 한 듯 테오른은 다시 가로로 검을 그었다. 역시 푸른 검기가 검선을 따라 그려지며 카이에게 쏟아졌다. 카이의 몸이 위로 붕 떠올랐다. 테오른은 기다렸다는 듯 허리춤으로 내린 검을 앞으로 쪽 뻗으며 도약했다.


"마나 패딩!"


나는 급히 카이에게 패딩을 둘러줬다. 푸른 검기에 휩싸인 테오른의 검이 화살처럼 카이의 가슴을 급습했다. 몸을 비틀며 검끝을 피한 듯한 카이는 떨어지면서도 테오른의 갑주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마나 패딩을 때린 것 처럼 갑주 위에서 튕겨져 나갔다.


"고양이과라 그런지 날렵하군."


몸을 돌려 착지한 테오른은 자세를 잡으며 카이의 몸놀림을 평가했다. 카이는 숨을 몰아 쉬었지만, 도발당하진 않았다. 차분히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고리다는 자신의 등 뒤에서 이 전투를 보고있는 나머지 크롤러들이 신경쓰이는지 등에 매달린 체 빼꼼히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레비안의 피리를 대비해서 카이의 등에 매달려 있는 건데 레비안은 이 전투에 전혀 참가할 뜻이 없어 보였다.


"키에엥."


기운없는 고리다의 신음이 들려왔지만, 그에게 해 줄 말은 없었다. 카이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투기를 발산했다.


"크아아앙!"


어지간한 이는 오금이 저릴 사자후가 가디언 룸을 몰아쳤다. 테오른은 코웃음을 치며 검을 치켜들었다.


"우아아아압!"


사자후를 지워내는 전사의 함성이 가디언 룸을 울렸다. 진흙벽이 진동하며 파편이 비산했다. 눈에 띠게 선명한 푸른빛이 테오른의 전신을 휘감았다.


"사자후를 지워버리다니...... 대체 뭐하는 녀석이람."

"사기를 진작시키는 전사의 스킬이죠. 테오른의 경우는 경지가 좀 높긴하지만요."


좀 높은 정도가 아닌데....? 자기 사기만 오른 게 아니라 당황한 카이의 사기가 낮아졌다. 테오른은 쿵,쿵,쿵하며 무겁게 달려왔다. 카이에 비하면 빠르게 돌진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무겁게 걸어온다는 느낌으로 대검을 어깨에 진 체 달려왔다. 그러나 그의 함성에 당황한 카이는 주먹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가 뒷걸음치다가 불안한 시전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정신차려! 임마! 고리더! 카이 뒤통수 한대 쳐!"


눈을 꼭 감고 카이의 등에 메달려 있던 고리더는 사자후고 전사의 함성이고 간에 동요되지 않고 처음 긴장한 그대로 어깨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카이의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


"야! 제대로 때려!"

"키에에엑!"


조금씩 들어올려진 테오른의 대검이 마침내 정점을 지나 카이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얼타듯 얼어버린 카이에게 고리더의 매운 손맛이 먼저 도착했다.


-짝!


고리더는 눈을 감고 냉큼 등 뒤로 고개를 숨겼다.


-쾅!


"카이! 야, 임마!"


경쾌하고 맑은 소리와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몸이 절단된 건 아닌 가 싶었는데 간신히 팔을 엑스자로 들어 대검을 막은 듯 보였다. 넘실대는 투기가 마나패딩 위로 올라와 검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를 악문 카이가 소리를 지르며 검을 밀쳐내자 테오른은 피식 웃으며 물러났다.


"이 정도인가."


테오른은 자세를 풀고 대검을 다시 어깨에 걸쳤다. 카이는 씩씩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뭐, 뭐하는 건가?"

"말할 힘은 남았나보군. 알다시피 지금은 PQ중이라 말이야, 자네 실력을 가늠해봤네."

"크르르렁."


카이는 이를 드러내며 투기를 발산했다. 그러나 테오른은 어깨에 걸친 대검을 등에 거치하며 전투 종료를 선언했다. 그의 행동에 카이는 이를 악물었지만 고개를 들 순 없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났다.


"던전은 충분히 파악했어. 굳이 마무리하고 서로 힘 뺄 필요는 없지않겠나."


테오른은 뚜벅뚜벅 걸어와 카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카이는 부들부들떨고 있었고 눈을 꼭 감은 고리더는 카이의 진동에 함께 떨렸다.


"고블린을 무기로 사용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엥? 테오른은 아마 고블린이 자신이 등에 거치한 대검처럼 무기로 쓰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에이. 그게 말이 돼? 상식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저 걸 무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거지?


"레비. 그만 귀환하자."

"백호족은!"


카이가 몸을 돌렸다. 하얀 투기가 온 몸에서 뿜어지다 점차 붉게 변했다.


"던전핵과 공명하고 있습니다!"


카이가 던전의 마력을 끌어쓰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끌어 쓴 마나량이 얼마나 큰지 나도 빈혈이 온 듯, 익숙한 삐! 소리가 머리 속에 울렸다. 니아가 재빨리 꿀차를 내밀었다.


"죽을 때 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소!"

"음?"


붉은 기운을 발산하며 카이가 테오른에게 달려들었다. 허리를 튼 그의 주먹에서 색을 가늠하기 힘든 빛이 터져나왔다. 테오른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갔다.


"카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테오른은 허리를 숙이며 카이의 눈부신 일격을 피했다. 팔짱을 끼며 사태를 관망하던 레비안이 입에 피리를 물었다.


"고리더!"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질렀다. 내가 자신을 부르는 이유를 알고 있던 고리더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영역 선언을 했다. 크지는 않지만 자신과 카이를 감쌀 정도의 자기 영역이 만들어지며 음파의 간섭을 지연시켰다. 본격적인 마나의 파훼로까지 이어지진 않아 영역 부근을 맴돌던 음파는 천천히 영역을 씹어먹고 침투했다. 시간을 벌었지만, 그 시간을 활용하진 못했다.


"타핫!"


허리를 피며 주먹을 올려친 테오른과 그 주먹에 아랫턱을 맞아 입가에 피를 흘린 카이가 스냅샷처럼 시야에 들어 온 순간, 카이가 뛰어 올라 그의 팔을 감싸듯 매달렸다.


"플라잉 암바?"


저런 것도 할 줄 알아? 라는 의문을 가지려는데, 그의 팔을 감싸 안은 카이의 등에서 고리더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자신의 허리에 메고 있던 곤봉을 꺼내들고 테오른의 아래턱을 후려갈겼다!


"키에엑!"


아무래도 그 공격은 예상치 못한 지 테오른의 고개가 살짝 흔들리고 작은 생채기가 났다. 테오른은 무서운 눈으로 고리더를 쏘아보았다. 가디언 룸에 들어온 이후 처음 보인 눈빛에 고리더가 다시 카이의 등에 숨었다.


"하하핫. 끝을 봐야 만족하겠어?."


성대를 긁으며 거친 웃음을 터뜨린 테오른은 자기 팔에 메달린 거구를 그대로 공중으로 치켜들더니 바닥으로 내리쳤다. 테오른의 몸이 1미터 가까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쿠앙!


붉은 투기와 마나 패딩을 뚫고 가디언 룸의 진흙바닥이 천장까지 솟구쳤다. 붉은 투기에 가려진 피 안개가 테오른의 온몸을 적셨다. 허리가 끊어지고 내장이 터진 백호의 등에 짓이겨진 고블린은 보이지도 않았다. 한껏 날아오른 진흙부스러기가 무덤에 뿌리는 흙처럼 다시 내려앉으며 카이의 몸에 난 구멍을 메웠다. 테오른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키고 턱에 난 생채기를 손가락으로 닦아 냈다. 피범벅이 된 그 얼굴에 생채기만이 깨끗해졌다.


"좋아. 1점 플러스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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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챕터 3. PQ (7) 24.08.27 10 1 15쪽
20 챕터 3. PQ (6) 24.08.26 10 1 17쪽
19 챕터 3. PQ (5) 24.08.23 12 1 15쪽
18 챕터 3. PQ (4) 24.08.22 11 1 15쪽
17 챕터 3. PQ (3) 24.08.21 12 1 13쪽
16 챕터 3. PQ (2) 24.08.20 14 1 14쪽
15 챕터 3. PQ (1) 24.08.19 12 1 19쪽
14 챕터 2. 가디언 선발 (9) 24.08.16 15 1 12쪽
13 챕터 2. 가디언 선발 (8) 24.08.15 15 1 20쪽
12 챕터 2. 가디언 선발 (7) 24.08.14 17 1 14쪽
11 챕터 2. 가디언 선발 (6) 24.08.13 21 1 19쪽
10 챕터 2. 가디언 선발 (5) 24.08.12 19 1 20쪽
9 챕터 2. 가디언 선발 (4) 24.08.10 20 1 12쪽
8 챕터 2. 가디언 선발 (3) 24.08.09 17 1 14쪽
7 챕터 2. 가디언 선발(2) 24.08.08 21 1 14쪽
6 챕터 2. 가디언 선발 (1) 24.08.07 23 1 21쪽
5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5) +1 24.08.06 27 1 17쪽
4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4) 24.08.05 30 2 17쪽
3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3) +1 24.08.04 34 2 20쪽
2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2) 24.08.04 47 2 22쪽
1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1) 24.08.04 66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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