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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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든너구리
작품등록일 :
2024.07.16 19:24
최근연재일 :
2024.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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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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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3. PQ (11)

DUMMY


던전 리셋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쓰러진 고블린 무리들과 넥 슬라임스가 살아나라고 진심으로 생각한 후, 소소하게 파손된 던전 내부를 보수하러 인부들을 소집했다. 큰 전투가 잆어서 큰 보수는 없었다. 덕분에 큰 돈 나갈 일도 없었다.


싸움 선수로 기용했지만 입씨름만 한 카이를 불러서 -유일하게 멀쩡하기도 했고- 한껏 욕하려했는데 생각보다 스스로 잘못은 알고 있어서 훈방 조치하기로 했다.


"이번에 또 그러면 고리다가 그 자리를 지킬거야."


유예 조건을 명확히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리셋은 쉬지않고 진행되었다. 5분이 채 안되어 되살아 난 고블린들 만나 모두를 격려해줬다. 고리다는 날카롭고 매캐한 소리를 지르며 분전의 뜻을 표했다. 아무리봐도 가디언으론 네가 어울리는데 말야. 인부들을 소집할 때 길드에 부탁해서 금속으로 된 몽둥이를 하나 부탁해놔서 그에게 전했다. 눈을 반짝이며 금속 몽둥이를 들고 휘둘러 보던 고리다는 무거웠던지 구석에 던져 놓고 다시 나무 몽둥이를 손에 쥐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같이 온 카이에게 금속 몽둥이를 들라고 눈짓했다. 안 쓸거면 환불해야지. 금화 굳었네.


복도를 지나자 넥 슬라임스가 통통 뛰며 나를 맞았다. 크고 동그란 눈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깜빡였다. 마나로 전언을 건네는 게 익숙해진 나는 녀석에게 고생했음을 전했다. 넥은 두어번 높이 뛰었다. 솔직히 너 아니었음 망했어. 가디언은 너처럼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녀석이 해야하는데 말야. 나는 카이에게 눈으로 욕하며 말했다. 카이는 못 본척, 덫을 보수하는 인부들 사이를 어슬렁 거리며 콜록콜록 헛기침을 했다.


덫을 보수하는 인부들이 작업을 마치자 미세한 마력선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몸 안의 마나가 반응하는지 뱃속이 움찔거렸다. 넥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태세를 갖추고 통통 튀었다.


가디언 룸에선 할 게 없었다.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당연하다. 멀쩡한 가디언 룸에서 카이에게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주의를 줬다.


"손님이 왔군, 이딴 인삿말 하지마."

"그,그것은 안되오! 며칠은 고민한 환영사이건만!"

"입도 뻥끗하지마. 나 분명히 말했어? 말이 아니라 주먹으로 인사해."

"으.... 기습하는 불명예스러운 가디언이 되란 말이오?"

"수단방법가리지말고 이기는 가디언이 되라고."

"우리 백호족은 선공을 양보하는 미덕이 있는 전사요!"

"그럼 선공을 양보않는 고리다로 바꾸지 뭐."

"....... 기필코 승리해서 가디언의 위엄을 보여주겠소!"


카이의 정신 수련을 끝으로 던전 리셋이 마무리됐다. 30분 안으로 된 것 같군. 2차 PQ를 시작해볼까? 니아는 던전이 정비되었음을 지부장에게 알렸다. 마스터 룸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던전의 마력핵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마스터 테이블 위, 조감도에서 차례로 크롤러들이 입장하는 것이 보였다.


"야, 조심해. 바닥이 미끄러워."


먼저 들어선 것은 마른 근육질의 격투가, 아르센이었다. 그는 뒤따르는 마법사 리링에게 매너있게 손을 내밀었지만 리링은 그의 손에 눈길도 주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차라락락. 평평한 납석들이 아래로 쓸려 내려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데자뷰인가, 본 적 있는 장면인 것 같은데?"

"그러네요."

"이번엔 4명이지?"

"네. 레비안이라는 음유시인이 오겠죠."


1차 PQ와 같이 윌리엄 역시 리링의 뒤를 이어 들어왔다. 미끄러운 납석 위에서 있던 지라 윌리엄이 들어서자 리링이 서 있던 납석들이 밀려 아래로 쏟아졌다. 파도치는 납석 위에서 서퍼마냥 균형을 잡는 리링을 보고 어쩔 줄 몰라하던 윌리엄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선 그녀 뒤에서 겸연쩍게 웃었다.


"연애할거면 던전 밖에서 해."


윌리엄의 뒤에서 장신구가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하얗고 마른 남자가 들어왔다. 가래끓는 소리를 낸 그는 진짜 가래가 고인 듯 카악, 하는 소리와 함께 가래를 끌어 올려 바닥에 뱉었다.


"이딴 조잡한 수나 쓰는 던전을 공략 못하다니 슬슬 PQ도 은퇴해야 하는 것 아냐?"


생긴 건 기생오라비에 삐쩍 골아서 멀찌감치 응원가나 부르는 게이같아 보이는 레비안은 생각보다 마초적인 사람이었다. 납석을 냅다 걷어찬 그는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던전을 울리는 높은 음이 복도를 가로질러 가더니 얼마되지 않아 메아리치며 되돌아왔다.


"길게도 만들어 놨군.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 없다. 달려라."


그는 안으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르센이 항의했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주파하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납석이 미끄러지니까 넘어져도 구를 일도 없어. 안 구르면 목이 부러질 일도 없으니까 안 죽어. 그냥 달려."


그렇게 말한 레베안은 말없이 리링을 보았다. 그녀는 이미 이를 악물고 있었다.


"좋아, 간다. 윌리엄, 선두에 서. 아르센이 바로 쫒을거야. 아르센, 내가 한 발 늦게 출발하는데 잡히면 내 손에 죽는다."

"하아. 알겠습니다."

"출발!"


그의 출발이 선언되자 윌리엄이 가볍게 몸을 날려 안으로 날듯 뛰었다. 타다다닥! 하면서 사방으로 납석이 튀고 튄 납석에 맞아 주변 납석들이 촤라라락거리면서 쏟아져 내렸다. 미끄러지는 납석을 밝고 출발하려던 아르센이 살짝 기우뚱했다. 뒤에서 날카롭고 낮은 레비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뭐 잡혀주려고?"

"아닙니다!"


아르센은 납석이 부서지고 바닥이 꺼질 듯이 하중을 실어 바닥을 밀어찼다. 부서진 납석이 날카롭게 레비안과 리링의 몸 여기저기를 할켰다. 레비안은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간다."


그는 아르센이 휩쓸고 가 납석이 거의 쓸려간 길을 따라 달려갔다. 리링도 그 뒤를 바짝 쫒았다.


"이, 이게 지금 뭐야?"

"조금만 숙련된 크롤러들에게 저런 납석은 아무 의미가 없네요."


생각했던 전개와 너무 달라져 말을 잃은 나와 달리 니아는 침착하게 상황을 메모했다. 우리 던전은 시작하는 던전이긴 하지만 입구의 재편은 시급한 상황인 것 같다. 초반에 골드가 모이면 젤 먼저 바꿔야겠네.


크롤러들은 불과 30초만에 복도의 끝에 도달했다. 헉헉 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윌리엄과 아르센 뒤에서 땀도 흘리지 않고 도착한 레비안이 아직 도착 못한 리링을 돌아봤다. 그녀의 몸에는 이미 작은 상처가 많았다. 상처에 맺힌 작은 핏방울이 파헤쳐진 납석에 뿌려지고 상기된 볼에 쉼없이 땀이 맺혔다.


"빨리 안 와? 체력 훈련 안했어?"


높은 톤이 사납게 그녀를 다그쳤다. 리링은 이를 악물고 겨우 도착해 가쁘게 숨을 돌렸다. 절로 허리가 숙여진 그녀를 본 레비안은 다시 문을 향해 고개짓을 했다. 열라는 거겠지. 쉬는 시간 같은 배려는 없구나.


"저 레비안이라는 사람 생긴 거랑 다르게 상당히......."


뭐랄까, 나는 말을 골랐다. 양아치보다 좋은 말이 있을텐데.


"생긴 것도 양아치같은데요, 뭐."


곁에서 니아가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그녀의 귀가 금발을 뚫고 솟아 있었다. 화난 건 알겠는데 불쑥불쑥 남의 생각 좀 읽지마.


윌리엄은 문 손잡이를 잡고 마력 탐지를 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레비안에게 문을 열겠다는 허락을 구했다.


"근데 저기 아무것도 없다는 거, 쟤네들 알지 않아?"


굳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가? PQ라서? 혹시 우리가 중간에 바꿨을까봐? 리젠하는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것까지 할 수 없다는 건 알텐데?


"공부를 안하시는군요. 도움말을 보시면 좋을텐데."

"어? 아, 미안. 자주 보고는 있는데....."


괜히 한소리 들은 나는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찾아 들었다. 니아는 내 행동을 무시하고 설명했다.


"공략하지 못한 던전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사망한 경우는 모든 기억이 소거되고, 귀환석을 사용한 경우는 마지막 있던 곳의 기억만 남고 과정은 소거되죠. 세계수가 크롤러들의 부활을 대가로 가져간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저들의 경우, 사망한 리링은 이 던전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거에요. 남자 크롤러 둘은 가디언 룸에서 어떤 가디언을 만났는지의 정보는 가지고 있겠지만, 도중의 일은 기억 못 할 겁니다."

"그런, 그, 프로토콜이 있었어?"


던전에 관련 된 프로토콜은 많기도 하지. 기억이 사라진다니 죽는 게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구나. 아니 어쩌면 끔찍한 기억도 남지 않을테니 오히려 좋은걸까? 마지막 가디언을 확인하고 귀환석을 쓴 둘은 어쩌면 전략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떄가 아니다. 고리다가 함성을 지르며 방에 진입한 크롤러들에게 달려들었다.


"아르센! 막아! 윌리엄 뒤에 떨거지들 견제해! 리링, 짜증나게 굴지 말고 영창 주문해!"

"호, 호흡이...."


아직 숨을 몰아쉬는 리링은 가슴을 부여잡고 레비안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미 레비안은 그녀에게 등 돌린 후였다. 리링은 허리를 펴고 다시 이를 악물고 억지로 호흡을 진정시켰다.

고리다가 후려치는 곤봉을 파괴한 아르센과 넓게 비수를 흩뿌려 나머지 고블린들의 접근을 막는 윌리엄을 보고 선 레비안은 품에서 한뼘 정도의 피리같은 걸 꺼냈다. 어? 저거 어디 영화에서 파란 외계인이 쓰는 걸 본 것 같은데? 그런 종류의 음유시인이었어?


-삐이!


전투가 한창인 던전 안에 높고 날카로운 피리소리가 울렸다. 마이크랑 공명해서 날카롭게 울리는 앰프같은 거슬리는 피리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고블린들에게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허리에 예비 곤봉을 메고서 곤봉을 휘두르던 고리다와 윌리엄을 둘러 싼 삼형제, 그리고 돌아나와 레비안에게 달려들던 선배 고블린 둘의 움직임이 순간 멎었다. 절정의 스포츠 순간을 형상화한 올림픽 동상처럼, 가장 중요한 순간에 타이밍을 뺏기고 멈춘 고블린들의 심정은 소리도 못지르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눈동자로만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찰나에 아르센의 투기 가득한 주먹이, 윌리엄의 비수 세례가, 리링이 간신히 완성한 불화살의 다발이 고블린들에게 쏟아졌다.


"음유시인이라고 해서 버퍼라고 생각했는데 디버퍼 계열의 서포터네요. 거기다 대규모 제어가 가능한 크라우드 컨트롤러(Crowd Controller)."


만신창이로 쓰러지는 고블린들을 보며 니아가 말했다. 레비안이 참여한 것 만으로 1분 가량 끌어왔던 고블린들과의 전투가 10초만에 끝났다. 머리가 터져버린 고리다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울컥하고 마나가 요동치려는 것을 아랫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온 몸이 찢어진 고블린 삼형제와 숯덩이가 된 선배 고블린들도 보였다. 니아가 떨리는 손을 잡아줬다. 레비안은 피리를 품에 넣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넘어가자."


크롤러들은 피웅덩이를 밟고서 다음 복도로 향했다. 이전 PQ에서 소소하게나마 대화도 오가고 나름 의논도 하며 진행하던 던전 공략이 군인들 행군하듯 조용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지휘관은 레비안. 발라드 힐링 가수 인줄 알았는데 디스랩의 킬링 벌스를 뱉는 랩퍼만큼의 괴리가 있는 저 인물 때문에 진흙으로 만들어진 벽 마저 푸석하게 말라갔다.


"갈림길?"


사거리 교차로에서 주위를 둘러 본 레비안은 아니나다를까 왼쪽 길에서 통통 튀어오르는 슬라임을 확인했다.


"뭐야 저건?"


다른 인원들을 보며 물은 레비안은 서로 얼굴을 보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을 보며 혀를 차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왼쪽길을 고개짓으로 가리키곤 말했다.


"확인해 봐."


그 말에 윌리엄이 나와서 바닥에 손을 짚었다. 지금이다. 나는 함정이 발견되지 않도록, 진심으로, 이번에는 간절함까지 담아 생각했다. 팔찌가 붉게 빛났다.


"뭐야? 없어?"

"아뇨. 어떻게 된 거지? 마력선이 탐지를..... 판독할 수 없습니다."

"판독이 안돼? 탐지를 못하는게 아니라? "


레비안은 윌리엄을 무섭게 노려봤다. 피리를 불지 않았는데도 얼어붙은 윌리엄이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탐지 마법을 판독 못하게 하는 마법이 복도 전체에 걸려있는 것 같습니다."

"던전은 구식인데 마나는 고급이고. 초짜인 마스터가 상상력을 키우셨군."


레비안은 뮤지컬같은 느낌으로 대사를 내뱉었다. 음유시인이라더니 말투에 '쪼'가 있네. 다른 방향을 확인한 그는 거슬리게 통통 거리며 튀어오르는 슬라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리링, 넌 올라가. 아르센은 오른쪽으로. 윌리엄은 따라 와. 각자 복도 끝까지 진행하고 끝에서 대기해. 그리고 쪽팔리게 죽지 마. 그땐 아주 죽여버릴테니까."


움찔한 리링이 레비안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이미 윌리엄과 출발하고 있었다. 아르센이 리링의 어깨를 다독였다. 리링은 어깨를 들어 그의 손길을 뿌리치곤 위쪽 복도로 진입했다. 한숨을 길게 내쉰 아르센도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각개 격파를 할 줄이야. 아무래도 좋긴 한데, 이번에도 슬라임이 뭔가를 해 줄 수 있을까?


세 방향으로 4명이 움직였다. 전부를 체크하긴 힘들기때문에 우선 레비안과 윌리엄 조를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 정확히는 슬라임의 활약을 보려고 한 거지만.


레비안은 넥 슬라임스 앞에까지 거침없이 진입했다. 그 앞에 함정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있기라도 한 것 처럼 넥이 한걸음만큼 멀어지면 그대로 녀석을 쫒아 들어왔다. 어떻게봐도 슬라임이 레비안을 유인한다기보다 진심 도망치는 것 같았다. 윌리엄은 그런 레비안의 바로 뒤를 쫒으며 틈틈히 마력 탐지를 돌렸지만, 번번히 팔찌는 빛났다. 미리 준비해둔 꿀차가 아주 유용했다.


"이 녀석봐라?"


레비안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슬라임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윌리엄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자식, 나를 똑바로 노려보는데?"

"예?"

"뭔가 꿍꿍이가 있구만. 윌리엄!"

"네, 선배님."

"신호하면 저 슬라임 녀석 다져버려."


레비안은 품에서 다시 피리를 꺼내 입에 물었다. 슬라임즈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며 제자리에서 통통 튀었다.


-삐이!


날카로움 피리소리가 복도 전체에 깔렸다. 튀어오르려던 슬라임스의 몸이 경직되고 그 순간 윌리엄의 손끝에서 비수가 다발로 쏟아졌다. 물리력으론 상대하기 어렵기에, 하나하나 마력을 담아 푸르게 빛나는 비수였다. 시퍼런 마력에 슬라임스는 사분오분되며 잘게 져며졌다. 구심점을 잃은 슬라임의 조각들은 절편이 되어 철퍽철퍽 바닥에 쓰러졌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본체를 따라 다시 흐물흐물 모이려는 그 절편들에 다시 한번 마력이 담린 비수가 날아왔다. 나비 채집하고서 바늘로 표본판에 고정시키듯, 슬라임 절편을 꿰뚫은 그 비수들은 그것들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제야 날카로운 피리소리가 그쳤다.


어디선가 '텅' 하는, 빈 덫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니아, 방금 어디서 발동한거야?"


슬라임스가 있는 복도에선 덫이 발동하지 않았다. 레비안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뒤로 돌리는 걸 보면 아르센이 달려간 오른쪽 복도인 것 같았다.


"아르센이 덫을 건드렸네요."

"피했어? 그걸?"


빈 덫이 닫히는 소리, 정말로 그는 덫을 피해냈다. 미친 반사신경이네. 이세계는 이세계구나. 이건 인정이다, 정말.


"리링은 어디까지 갔어?"


위로 올라간 리링도 슬슬 덫에 도착할 테지. 이번엔 목을 노리는 건 아니고 발목이 목표가 되겠지만, 그녀에게는 아르센만큼의 민첩함이나 완력이 없다. 건드린다면 반드시 발목이 날아가겠지.


"리링은 복도를 주파하고 길 끝에서 대기중입니다."

"엥? 뭐라고? 아니, 어떻게?"


나는 급히 조감도를 움직여 리링이 있는 곳을 밝혔다. 아, 이런. 마법이라는 변수는 정말 생각할 게 많구나. 그녀는 한뼘 정도 공중에 떠올라 복도 끝에서 배회중이었다.


"플라이 계열의 마법입니다. 체력이 떨어진 탓에 마력으로 이동했군요."


레비안이 그녀를 빡세게 굴리는 바람에 걸어서 갈 복도를 날아서 간 모양이다. 체력을 마력으로 때우다니. 마법사다운 해결책이긴하다. 나로썬 상상도 못한 일이지만. 애초에 날아서 던전을 이동하면 함정이고 뭐고 다 필요없는 거 아냐?


"모든 상황과 변수를 고려한 함정이나 기믹, 어트랙션을 설치해야죠. 그거야 말로 일류 마스터의 소양이라구요!"

"그래, 다 내 잘못이지. 말을 말자."


애초에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다시 조감도를 레비안에게 돌렸다. 슬라임스는 여전히 바닥에 고정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기관은 뒤에 있고 함정을 이미 지나왔다. 이제와서 기관을 발동한다고 해도 함정은 의미가 없는 곳에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는 그들이 기관을 보지 못하고 덫을 발동시키지 않길 빌었다. 당연하지만 팔찌는 아무런 빛도 내지 않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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