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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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든너구리
작품등록일 :
2024.07.16 19:24
최근연재일 :
2024.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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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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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3)

DUMMY



"다음은 사소한 함정이 하나 있는 복도입니다."


다시 어두운 토굴로 들어서자 페어리로 주위를 밝힌 니아가 말했다. 체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드 기준에 함정이나 어트랙션이 반드시 1기 이상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급조했습니다. 이제 정우성 팀장이 마스터가 되었으니 봐두었다가 좀 더 적절한 어트랙션으로 교체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제가요?"

"아, 여기입니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은 함정에 걸려서 사라지고 우리는 니아의 지휘에 따라 제자리에 섰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 잘 보시면 잡초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죠?"

"잡초?"


함정 앞에서 갑자기 발 밑에 잡초를 보라고하니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일단 주위를 살폈다. 암석과 흙더미 사이사이 푸릇푸릇한 잡초랄까, 새싹이랄까 싶은 자그마한 풀들이 듬성 듬성 돋아있는 게 보였다.


"그렇네. 그래서 잡초들을 밟으면 뭔가 일어나는 건가요?"

"아뇨. 생명은 소중하니까요, 밟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자연이 훼손되면 요정들이 슬퍼한답니다."

"응?"


체 이사 마저 반문하며 고개를 돌렸다. 니아는 계속 말했다.


"그래서 잡초를 피해서 있는 암석을 밟으면......"


잡초같은 걸 피해서 다니는 사람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밟으면.....?"


니아는 사뿐히 잡초를 피해서 암석 위에 발을 올렸다.


-뚜둑.


순간 손가락 마디 꺽는 소리가 좁은 복도에 울리더니 위기감이 고조되는 진동이 발 밑에서 부터 전해졌다. 어디서 화살이 날아온다거나, 가시가 박힌 바닥이 나온다던가 하는 그런게 아니야?


"아, 아니 무슨 함정인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크아아아악!"

"우아아아악!"


체 말도 마치기 전에 암석 주변에 잔잔히 돋아있던 잡초들이 슈퍼 마리오 식인풀처럼 폭발적으로 자라나더니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이며 괴성을 질렀고 나도 질세라 수십걸음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내 질렀다. 아니 왜 풀에 이빨이 있는거야!


"귀엽죠? 식충 식물인 그린-빌이랍니다. 벌레만 먹긴 하지만 누가 접근하면 본능적으로 일단 무니까 주의해 주세요."


저 정도 이빨이면 팔모가지 뜯기는 건 우습겠는데, 먹지도 않는다는 거야? 아니 애초에 벌레 먹는데 저런 이빨이 필요한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적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린-빌인지 그린 빈인지는 재크와 콩나물의 콩나물처럼 육중하게 자라나서는 니아의 품에 안겨서 희죽희죽 웃고 있었다. 아니 웃고 있는건가? 일단 입은 벌리고 있긴한데...... 하긴, 저 품에 안기면 누구라도 웃고있겠지? 나도 안기면 어쩔 수 없을거야.... 아니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이게 무슨 잡초야!"


정말 놀랐기에 나도 모르게 말을 낮췄지만, 거기에 대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고 할까?


"평소엔 잡초고 적이 나타나면 그린-빌입니다."

"......."

"크아아악!"


그린-빌이 뭔가 화를 내듯이 니아의 품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하아. 그래, 그래. 적응하자. 적응하자. 연봉 8천이야. 나는 주머니에 있는 금화를 부적처럼 만지작거렸다.


"알았으니까 이제 치우자."

"아, 네. 그럼 돌아가라, 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진지하게 말이지?"


나는 진지하게 반말을 계속 쓰겠다고 다짐하며 건성으로 돌아가라고 생각했다. 그린-빌은 다시 작아지며 잡초같은 풀로 돌아갔다.


"물론 팀장님이 마스터이시니 마음대로 변경하셔도 관계는 없습니다."

"그래, 그래. 자, 다음으로 넘어 가자."


++++++++++++++



"이건?"


우리는 복도 끝에 있는 돌문 앞에 섰다. 산 속 동굴 안에 돌문이라니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리는데 던전이라 그런가 묘하게 위화감은 없었다. 짙은 암색에 세로로 줄이 몇 개 그어져 있고 양쪽 문을 반씩 덮은 이상한 문양이 심플하게 새겨져 있었다. 체 이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 방으로 가는 관문입니다. 이 던전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 중 하나이죠."

"문에 말입니까? 근데 손잡이가 없는데?"


딱 봐도 엄청 두꺼워보이는 문이긴 한데 손잡이가 있을 법한 가운데 부분이 매끈하기만 했다. 둘러봐도 달리 뭔가 잡을 수 있는 요철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이 쪽입니다."


체 이사는 오른쪽 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언뜻 9개의 버튼 같은 작은 사각 패널들이 달린 패드가 있었다.


"도어락? 별 게 다 있네."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자세히 보세요."


니아의 말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한 번 패드를 보았다. 그건 3X3 방진에 하나가 삐죽 튀어나온 10개의 칸에 9개의 조각. 어지럽게 섞인 문양들.


"그림 맞추기 퍼즐?"

"바로 마왕군 사천왕인 이 몸의 문장을 맞추는 것으로 열리는 문이네! 하하하! 그야말로 문무겸비의 용사라야만 이 곳을 돌파할 수 있을거야. 핫핫핫!"


호기롭게 웃고있는 체 이사의 웃음소리가 던전 안에 쩌렁쩌렁 울려 광기어려 보였다. 이제보니 문 가운데 그려진 이상한 문양은 체 이사의 문장인가보다. 하지만 체 이사님. 미안하지만 그럴리가요. 3X3 사이즈면 방법은 몰라도 대충 돌리다보면 맞아지는 수준일텐데요. 아까 그 고블린들도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팀장님? 한 번 도전해보시죠?"


옆에서 니아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부추겼다. 나를 고블린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상기되어 볼이 적당히 붉어진 니아가 너무 귀여웠기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이 퍼즐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열려라."


물론 진지하게 문이 열리길 바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쿠구구구.


지축이 흔들리며 흙먼지가 뿌옇게 날렸다. 이런 토굴 안에 이따위 문을 설치했으니 당연하겠지. 나는 옷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며 먼지를 피했다.


"정우성 팀장! 문열림 판이 있는데 그냥 열다니, 마스터 권한을 너무 남용하는 건 아닙니까?"


체 이사는 진심으로 화난 표정으로 불같이 화를 내었다. 아니 실제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지지않고 화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지금까지 참고 있던 화가 이 순간 폭발한 건지도 몰랐다.


"제가 뭐 여기까지 와서 그런 애들 장난 같은 퍼즐이나 풀고 있어야 됩니까! 던전인지, 유령의 집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여기 관리자는 저니까 잔말말고 빨리 따라오세요. 후딱 둘러보고 갈 거니까!"

"유..유령의 집? 언데드들은 배치하지 않았는데......"


체 이사는 내 기세에 살짝 주눅이 들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러든 걸 보니 확실하군. 뭐가 뭔지 몰라 여기까지 왔지만, 이젠 그냥 끌려다녀선 안되겠다. 적응했다고. 나도 내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겠어.


"자, 이제 다음으로 갑시다."


나는 적당히 열린 문으로 앞장 서서 들어섰다. 제법 두꺼운 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스위스 은행에서나 쓸 것 같은 엄청난 두께였다. 이런 걸 대체 어떻게 들여놓은거지? 나는 한 뼘을 최대한 벌렸음에도 안에 다 안 들어오는 문 두께에 감탄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철문 안은 큰 방이었다. 토굴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목판을 덧대서 지지대와 벽같은 걸 만들어 둔 걸 보니 나름 신경을 쓴 장소인 것 같았다. 정면에서 보이는 벽 조금 위 쪽으로 영롱한 빛을 내는 결정이 조그맣게 솟아나 있었다. 누가 알려주진 않았지만 그게 던전이 마력을 충분히 머금고 나면 빚어내는 마력핵의 결정이라는 것 같았다. 그 아래에 나무로 된 상자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보물 상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방이 조금 넓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력핵 결정의 푸른 빛 조명으로 뭔가 대단히 아름다워 보이던 보물 상자도 나무가 오래되어서 많이 삭아있었다. 마지막 방이라더니 뭐야 이게?


"여기는 던전의 마지막인 가디언의 방입니다."

"가디언?"

"던전의 마지막 수호자이자 마력핵을 직접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마물이죠. 던전의 마력핵은 주위에 모인 마물들의 마력 흐름에 의해 자연스레 생성되고 한 번 마력핵이 생성되면 마물들은 그 마력핵에 귀속되고며 일정한 마나를 공급받아 사용하게 됩니다. 또 그들과 마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마력핵이 다시 성장하는 순환을 이루게 되죠. 하지만 가디언은 그 반대입니다. 가디언은 마력핵과 공조하여 원래보다 강력한 상태가 됩니다. 마력핵의 마력을 직적 사용하여 마력핵을 지키는 최종 파수꾼으로 활약하는 것이죠."


니아의 말은 좀 어렵긴 했지만 간단히 요약은 가능했다.


"마지막 보스 몹이라는 거군."

"그 편이 이해가 편하시다면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래서 그 가디언은 어디 간거야?"


그래도 최후의 파수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다보니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었다. 뭐, 지금까지는 좀 허접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엔 기대해도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데 체 이사가 그런 기대를 확 깨는 발언을 했다.


"아직 가디언을 확정하지 못했네. 정우성 팀장이 가디언을 확정하는 것으로 던젼을 오픈하게 될 거야."

"제가요?"

"정우성 팀장이 던전 마스터니까 당연하지. 가디언을 선택하는 것은 마스터의 주요 권한이네."

"마스터.... 거참. 그래서, 뭐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무나 보고 '가디언이 되라'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면 되는 건가?"


내 의문에 니아가 답했다.


"방법은 그렇지만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방법은 맞구나?"


다시 한 번 내가 적응했다는 게 증명되었다.


"가디언은 마력핵의 마력을 끌어 쓰게 되기 때문에 너무 강력한 가디언을 둬서 마력핵이 고갈되거나 하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당연하지만 마력핵이 고갈되면 1차로는 던전에 귀속된 마물들의 부활이 불가능하게되고 2차로는 던전에 관한 마스터의 권한을 상실케되고 결과적으로는 던전의 붕괴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렇군. 아무나 된다고 해서 드래곤 같은 걸 생각없이 앉혀두는 건 안된다는 거지.


"그럼 몬스터가 가디언에 적합한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거지? 마력을 얼마나 쓴다고 이마에 적혀 있는 것도 아닐 거 아냐?"

"당연하죠. 하지만 마력핵의 마력을 공유해서 사용하는 건 가디언 뿐만이 아니니까 마스터는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알 수 있다고?"

"마스터 역시 마력핵의 마력을 공유해서 사용하니까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 그렇구나. 내가 여기서 하는 '진지한 생각'들도 마력핵에서 나오는 마력으로 하는 거군.


"네. 그래서 마스터는 본능적으로 마력핵의 절대량을 느끼고 있고 그 것을 기준으로 상대의 강함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뭐, 어느 정도 오차는 있겠습니다만 억지로 무리한 가디언을 둘 필요는 없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으음. 그렇군."


마력이라고는 해도 그냥 좀 컨디션 좋은 느낌일 뿐인데 말야, 상대를 본다고 뭔가 달라지는 게 있는건가?


"니아나 체 이사 님을 보는 걸로는 그 마력 비교란 게 안되는 거야? 아무런 느낌도 없는데?"

"저는 관찰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가디언으로 삼을 수 없는 타입입니다. 체제 님의 경우는 이미 상위 던전의 가디언이기 때문에 이 던전의 가디언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럴 겁니다."

"상위 던전의 가디언?"


나는 의외라는 듯 체 이사를 보았다. 무슨 마왕군 사천왕이니 어쩌니 하더니 던전 가디언이나 하고 있는 건가?


"흥. 당연한 걸 모르는 군요. 누구나 자기 집은 스스로 지키는 법입니다. 레이드 선정 순위 7위 던전이 바로 나의 성, 염왕의 볼케이노 계곡. 제가 염왕이자, 성주이자, 가디언 그 모든 것입니다."

"아. 그럴 듯 한데?"

"그럴 듯 한 게 아니라 그러한 것입니다!"


체 이사가 불꽃을 일으키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펴보는데 벽 틈을 삐져나온 마력 결정의 빛이 불그스름하게 바뀐 게 보였다. 클럽 조명으로 쓰면 딱 좋겠구만.


"이거 빛이 바뀌네? 뭔가 능력이 변하는 건가?"


나는 니아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기대하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니아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블러드 스케일?! 체제 님!"

"아차! 입장하고 나서 입구를 가리는 걸 잊었어! 젠장! 아직은 변방 촌구석 던전이라 모험가가 찾을 리 없을거라고 방심했다."

"어, 어떻하죠? 가디언도 아직 없는데!"

"던전 보상도 아직 없지 않은가?"


갑자기 두 여인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살짝 곤란한 표정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아연실색할 줄이야. 대충 오가는 대화를 보니 짐작은 간다만.....


"자, 잠시만 진정하라고. 무슨 일이야? 마력 빛이 왜 바뀐 건데?"

"팀장님! 모험가가 왔습니다!"


역시 그렇구나.


"그럼 뭐 어떻게 해야하지? 아직 오픈 전이니까 공손하게 나가달라고 하는 건........"


내가 생각해도 될 리 가 없을 것 같다.


"지금 그런 장난 칠 때가 아닙니다. 니아, 상자에 넣을 만한 건 없어?"

"예? 지금 보물이라면 이 것 밖엔........"


니아는 허공에서 내 연봉을 꺼내들었다. 저걸 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타이밍적으로 내 연봉이 나와서는 안되는 타이밍이란 건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체 이사는 내 의사를 확인하기도 전에 니아에게서 돈주머니를 가로 채 보물 상자에 집어 던지 듯이 넣었다! 보물 상자는 내 연봉을 잡아먹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뚜껑을 닫아버리고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크고 단단해 보이는 자물쇠까지 잠겨버렸다.


"정우성 팀장! 연봉은 아까 서명하면서 자네가 받은 걸세? 난 분명히 줬어!"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제 연봉을 왜 이사님이 마음대로 상자에 넣어요? 뺏기면요?"

"그, 그러니까 안 뺏기도록 던전을 잘 관리해서....."

"가디언도 없는데 무슨......."

"이사님. 일단 여기는 '본 적 없는 유령' 에 맞길까요? 뜨내기 모험가라면 통할 지도 모릅니다."

"하아. 정말 그게 통할까? 300년 넘게 살아남았지만 실재로 '본 적 없는 유령'을 본 적은 없는데."


뭔 소리야, 이게? 본 적 없는 유령을 본 적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아니,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해?


"아니, 유령이고 뭐고 내 돈은 어쩔꺼냐구요!"

"일단 그런 걸로 하고 마스터 룸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자, 잠깐! 내 돈! 내 돈!"


나는 황급히 보물 상자로 달려가 상자를 열려고 했지만 자물쇠만 덜컹거리며 열리지가 않았다. 나는 당연한 듯 마스터의 권능을 이용했다.


"열려라!"


지금까지 삶을 통틀어서 이렇게까지 진심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상자를 노려봤다. 그러나 팔찌는 예의 붉은 빛을 발하지 않았고 상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열려! 열리라고!"


나는 다시 한 번 상자를 보며 진심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외쳤다. 그러나 상자는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어느새 다가온 니아가 내 등에 손을 대고서 말했다.


"전이!"

"열리라고!"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마지막으로 다시금 주위가 울렁울렁거리면서 블라인드가 걷히는 것 처럼 촤라라락 변해갔다. 보물 상자 역시 눈 깜빡할 사이에 허름한 선반으로 바뀌었다. 흙과 바위가 듬성듬성 있던 벽이 제법 촘촘한 벽돌을 엇갈아 쌓아 올린 벽으로 바뀌었고 마력 결정이 빛나던 자리엔 녹색의 커다란 휘장이 생겨났다. 역시나 급작스런 변화에 짧은 멀미가 일었다. 이건 아직 적응이 안되는 군.


왠지 맺혀 있는 눈물을 슬쩍 훔쳐낸 후 돌아보니 아까의 가디언 방보다 훨씬 크고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작게 잡아도 20평은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방에 있는 거라곤 커다란 탁자와 의자 뿐이었다.


"여기는 또 뭐야?"

"마스터 룸입니다. 던전을 조감하고 관리할 수 있는 마스터 테이블이 있는 방입니다."

"마스터 테이블?"


니아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나무 탁자일 텐데 전기 튀는 듯한 효과가 번지더니 파밧! 하고는 던전의 조감이 생성되었다. 대충 이미지만 딴 조감도가 아니라 실물을 그대로 축소시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입구에 사람이 있네?"

"확인 해 보겠습니다."


니아는 입구 쪽으로 가서 손으로 조감도를 미는 듯이 팔을 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입구 쪽 조감도가 확대 되었다. 3인 파티인 모험가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베티! 바닥에 자갈이 많으니까 조심해."


커다란 대검을 등에 차고 있는 덩치남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남녀 커플 중 하늘 색의 슬림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금발의 여자가 자갈을 발로 걷어 찼다. 파카닥! 하며 튄 자갈이 앞 선 덩치남의 발치를 때렸다.


"그냥 가자니까 딱 봐도 이런 조잡한 던전을 털어야 겠어?"

"혹시 모르니까 조사해보자는 것 뿐이잖아. 현도도 잘 따라오는 데 왜 그래?"

"하하. 이번이 진짜 마지막입니다. 여기만 보고 마을에 가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 하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가벼운 가죽 갑옷 같은 것을 입고 활과 작은 단검을 맨 사냥꾼 차림의 남자가 베티라고 불린 여성을 향해 미소지었다. 베티는 입을 이죽이면서도 그의 말에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애꿋은 자갈만 발로 찼다. 팟, 하고 튀어 오른 자갈이 다시 앞에 있는 덩치 남을 때렸다.


"플랑! 맥주는 니가 사라고!"

"예, 예. 공주님. 명 받들 겠습니다."


플랑이라고 불린 덩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어떤가, 니아?"


체 이사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니아 역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지 않네요. 용사 랭크 크롤러입니다."

"하아. 어쩐지.... 나도 낯이 익은 녀석이 있다. 아마 상당한 랭크의 던전 크롤러였을거야."


니아와 체 이사는 던전을 조심히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귓등으로 스쳐 지나가듯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 중 활을 매고 다니는 사냥꾼 타입의 남성의 얼굴이 너무나 낯이 익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산 속에 이런 강가에 있을 법한 자갈을 배치한 거지?"


경사진 내리막길의 막바지에서 베티는 근원적인 질문을 했다. 현도가 커다랗게 웃었다.


"테마라는 걸 모르는 마스터가 꾸민 던전인가 봅니다. 하하하."

"이런, 조심하라구. 마스터가 듣겠어. 괜히 난도만 높아 진다고."


플랑이 손가락을 세워 입을 가렸다. 그러나 베티는 코웃음치며 말했다.


"들으라지. 무식한 마스터 같으니! 이러니까 순위권 밖에 있는 던전은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조감도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니아의 얼굴이 어쩐지 벌게 졌지만 나는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들의 대화 중에 등장하는 현도라는 이름과 그 모습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티, 팀장님! 저, 저주를! 저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어 주세요!"

"아직 이 던전은 저주를 사용할 만큼 마력핵이 성장하질 않았어."


체 이사는 짐짓 어른인 양 차분하게 니아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조감도 속에서 다른 이들과 웃으며 던전을 탐험하고 있는 현도에게 시선이 맞춰졌다.


강현도. 내 고등학교 동창. 그 그리운 얼굴을 여기서 보다니. 이름마저 똑같은 걸 보면 분명히 그 녀석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왜 여기에? 어째서 여기에? 믿을 수 없었다.


현도는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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