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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든너구리
작품등록일 :
2024.07.16 19:24
최근연재일 :
2024.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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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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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가디언 선발 (8)

DUMMY

삼국지 연의에 따르면 제갈 공명이 만든 팔진도라는 진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진의 모습이 유연하게 움직여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면 죽기 전에는 빠져 나올 수 없다고 하는 진법. 서브컬쳐에서는 들어서면 온통 안개가 자욱히 깔리고 앞 뒤 분간도 할 수 없으며 소리마저 퍼지지 않아 내가 어디쯤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진이라며 호들갑떨고는 한다.


우리는 그런 팔진도 안에 들어선 위나라 병사처럼 갈팡질팡하며 길을 헤멨다. 다행이라면 애초에 프로토콜을 이겨낸다는 가정을 못하고 만들어진 미궁이라 갈림길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니아가 언급해줬다. 지금까지 한 20개 정도였나? 이 정도면 내일 모레쯤이면 모든 길을 가볼 수 있다고 한다......?


"안된다고!"

"네?"


또 발견한 새로운 길에 니아가 표식을 남기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내일 모레까지 여기 있을 생각은 없다고."

"그야 당연하죠. 저도 모든 길을 둘러 볼 생각은 없어요. 그냥 이 미궁의 규모가 그렇다는 거죠."


니아는 표식 남기기를 마치고 돌아섰다.


"팔진도라고해도 생문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잖아요?"

"이상한 걸 잘 아네? 그래서 생문이 어딘 줄 아는거야?"

"당연히 모르죠."


니아는 이상한 말을 다 한다는 듯 나를 봤다. 아니, 그럼 뭐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하지만 꿀냄새를 쫒아가면 된다고 하잖아요. 그게 생문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요?"

"꿀냄새? 우리가 수인도 아니고 냄새를 맡아서 길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야?"


말도 안된다. 곰이나 호랑이라면 모를까, 인간인 나는 절대 불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그녀의 태도로 봤을 때, 할 수 있어도 그녀가 냄새를 맡아서 길을 안내해 줄 가능성은 로또 3등 정도의 확률로 보였다. 참고로 나는 5등 이상은 맞은 적이 없다.


"냄새를 맡는다는 게 아니구요, 이 미궁은 족히 천년 이상 유지된 미궁이란 말이에요. 그런 미궁에서 꿀냄새가 중심으로부터 계속 나왔다고 하면 아무튼 보이지 않는 꿀이 중심에서 외부로 퍼져 나왔다는 뜻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 꿀이 퍼져 나왔다?"


천여년을 계속해서 은은히 퍼져나온 꿀냄새. 그녀는 벽에 표시를 한 손가락 끝을 쪽쪽 빨았다. 뭐지? 갑자기 날 유혹하는 건가? 저렇게 끈적한 눈빛으로?


그럴리가!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 다시 니아를 보았다. 그녀는 맛있다는 듯 손가락을 쪽 빨았다. 아씨, 이거 꿈이 아닌데? 그럼 뭐지?


"갑자기 왜 손가락을 빨아 먹는거야? 꿀이라도 찍어먹냐?"

"?"


니아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뭘 잘 못 말했나? 손가락.... 꿀.... 손가락에 꿀이.....


"손가락에 꿀이 묻었다?"

"아시겠어요? 냄새를 맡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명백히 다른 벽보다 끈적하고 단 맛이 나는 벽이 있었어요. 누가 꿀을 바른 건 아닐테고, 오랜 시간 누적된 꿀냄새가 조금씩 덧발린 게 아닐까요?"

"오오!"

"갈림길마다 단맛의 정도를 표시했어요. 처음 발견한 갈림길을 기준으로요. 한 20개 정도 데이터가 확보되니까 명백히 차이가 도드라 진 곳을 알겠네요. 가시죠."


그녀는 야릇하고 끈적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빨면서 내 곁을 지나갔다. 지금까지 갈림길에 표시한게 그냥 갈림길 표시가 아니라 브릭스가 몇인지 적고 있었던 건가? 나는 꿀냄새를 맡은 벌처럼 홀린 듯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로또 3등이 맞을 줄이야...!


몇 개인가의 갈림길을 되돌아 가 어느 갈림길에 선 그녀는 맛보라는 듯 벽을 보며 내고 눈짓을 보냈다. 나는 벽을 만져보았다. 꿀냄새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벽이 미묘하게 끈적했다. 오래 사용한 주방 싱크대에 남는 지지않는 기름막같은 것이 벽에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그 막을 한참 문질러 맛을 보았다.


"다, 달다?"

"그쵸?"


오오! 3등 로또가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갈림길 안에서 불어어오는 바람에 꿀의 단내가 어쩐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


꿀이 끈적해진 갈림길을 찾는 방법으로 몇 번의 갈림길을 선별한 채 어느정도 들어온 우리는 다시 새로운 벽에 부딪혔다. 중심에 가까워 진 탓인지 모든 벽이 끈적하고 단 맛이 났고 맛을 보기 이전에 이미 공간 전체에 단내가 진동을 했다. 우리는 이 길 저 길을 기웃거리며 들어가보고 단내가 옅어지면 잘못 들어왔다고 판단하고 다시 되돌아가는 심플하지만 명확한 방법으로 전환했다.


"단순 무식한 게 답일 때가 있는 법이죠."


아니, 그래도 좀 격식있는 표현을 해야 하는 거 아냐? 요정이라며? 여왕이라며? 'SImple is the best.' 뭐 이렇게 말하면 안돼? 가끔 보면 세속에 찌든 사무실 주임같단 말야. 우리 세계에, 아니 우리 나라에 살았나?


"시기나 장소를 특정해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네. 저는 팀장님 세계에서 얼마 간 지내기도 했었어요. 많은 친구를 만났고 또 많은 경험을 했답니다."

"누가봐도 요즘, 아니지. 비교적 최근의 우리나라 말투를 많이 쓰는데 시기나 장소가 제법 특정되지 않아?"

"헐! 대박~ 눈치 어쩔?"

"........?"


어딘가 제로투 비슷한 몸짓으로 나를 돌아본 니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와 몸짓만으로도 머리 아픈 단내가 가시고 상쾌한 청량감이 스며들었다.


"사실, 저 팔로워도 엄청 많은 셀럽인데 모르셨죠?"

"엥? 진짜? 아니 거짓말이지?"

"인스타 알려드려요?"


얼빠진 나를 두고 조금 앞으로 달려나가 뒤를 돌아본 그녀는 이번엔 조금 진심인 얼굴로 말했다.


"차원의 틈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우리 요정들은 차원 프로토콜을 실행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에요. 차원 틈은 시간도 공간도 특정되지 않는 곳이에요. 수많은 세상, 그 모든 순간과 공간으로 찾아갈 수 있고 그 모든 곳, 모든 순간에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죠. 그 누군가 요정을 떠올리고 그 존재를 믿고 사랑해주면 더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답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네."

"그렇죠?"


니아는 자부심이 있는 듯 가슴을 부풀리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지 여기저기로 손을 뻗으며 빙그르 턴을 돌기도 하며 발레에 가까운 몸짓으로 춤을 췄다. 복도를 메운 단내와 공간감을 지운 벽의 패턴 위에서 그녀는 마치 홀로그램같이 반투명한 몸이 되어 커졌다가 작아졌다하며 점멸했다. 별빛이 반짝이이는 듯 점멸하는 춤사위는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켜 눈을 땔 수 없었다. 내 주위를 핑그르르르 공전하며 자전한 그녀 손 끝에서 반짝반짝 별가루가 날리는 것 같았다. 아니, 날리는.... 날린다?


"니아, 니아! 뭐가 반짝거리는 게 날리는데?"


나는 니아 손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가루 같은 반짝이들을 손에 담았다. 니아는 기분이 좋은 지 하늘하늘 거리듯 손을 털며 반짝이들을 날렸다.


"신기하죠? 이게 바로 요정가루에요. 요정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기쁨이 충만해졌다는 뜻이죠. 가득찬 기쁨이 흘러 넘치는 거랍니다. 사랑과 기쁨이야 말로 세상을 순환하는 가장 거대한 마나라고 할 수 있고, 그 흐름이 커지면 차원을 넘어 요정에게도 전해지죠. 그리고 그 가득찬 기쁨이 요정에게서 흘러 넘치면 프로토콜의 규제를 벗어 난 마법을 행할 수 있답니다. 이렇게 많은 요정 가루는 저도 참 오랜만이네요. 갑자기 누가 이렇게 요정을 사랑하는 걸까요?"


니아는 기쁜 듯 온몸에서 요정가루가 흩날리며 플로지스톤의 불빛 아래에서 빙그르르 턴을 돌았다. 흡사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춤추는 아이돌 이라도 본 듯한 아름다운 모습에 시선을 때지 못했다. 니아. 아무래도 그 사생팬 1호가 나인가봐.


"어흠. 어흠. 아, 그래서 던전에서 마스터룸으로 이동하는 것도 니아가 있어야 되는구나?"


나는 긴급하게 말을 돌렸다.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느라 손바람을 계속 일으켰다. 아찔한 땀이 식어가며 어디선가 달달한 향이 느껴졌다.


"그런 셈이죠."


니아는 마지막 흘러내리는 요정 가루를 두 손 모아 아련히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서 바람이라도 부는지 가루는 복도에 빛을 남기며 한줄 빛줄기로 길게 내려앉았다.


"프로토콜을 벗어난 기적이 일어났네요."



/////////////


빛나는 요정가루는 안쪽 가장 깊은 공동에 도착하자마자 사그러들었다. 도착 전부터 달달한 꿀내음이 점점 강해졌기에 우리는 확신을 갖고 안에 들어섰다.


여전히 똑같은 무늬로 치장된 공동에 벽을 파낸 잠자리가 수십여개 보였다. 그 안에 아직 잠든 이들도 보였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잠든 이들의 방해가 될까 발걸음과 숨소리도 죽여가며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딱 보기에도 꿀단지라고 생각 될 만큼 번들번들한 항아리가 가득 찬 굴이 보이고 가지런히 정리 된 채 다음 손님을 기다리는 빈 자리 사이에서 그대로 바닥에 퍼질러 잠든 놈이 하나 보였다. 하얗게 빛나는 몸뚱이를 가진 호랑이가.


"아, 저 놈 저기 있네."


라고 나는 손짓했다.


"그래도 여기까지와서 잠들었나봐요. 다행이네요. 이상한 곳에 가서 잠들었으면 찾지도 못할 뻔 했어요."


라고 니아의 목소리가 내 머리 속에서 들려왔다. 와, 이거 나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거지?


"그러게. 불행 중 다행이네. 어서 데려가자."


라고, 일단은 손짓 발짓했다.


우리는 카이에게 다가가서 발 끝으로 그를 툭툭 건드렸다.


"야. 이제 고만 자고 일어나라. 집에 가야지?"


너한테까지 말을 아낄 필욘 없겠지?


"으음. 5분만......"


5분 타령은 차원을 넘어서도 통하는 거였나?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엄마한테만 통하는 주문이라고!


나는 삐져나온 꼬리를 지긋이 밟으며 한번 더 말했다.


"잔말말고 어서 일어 나라고!"

"으음? 어? 으앗!"


발 끝에 진득히 힘이 실리자 갸날프게 떠지던 눈꺼풀이 힘차게 들어 올려지며 커다란 고양이 눈망울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건조한 눈동자에 생기가 흘러 넘쳤다.


"크아아악!"


별안간 터진 사자후에 커다란 동공이 웅웅거리며 울려댔다. 나는 도서관에서 휴대폰 벨소리라도 울린 듯한 착각을 느끼며 잠든 다른 곰들이 깰까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다행히 수면 방해에 클레임을 거는 손님은 없었다. 급히 카이의 입에 마나로 입마개를 물렸다. 깜짝 놀라니 의식하지 않아도 마나가 자유자재로 컨트롤 됐다. 나 생각보다 재능충이었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입이 틀어막힌 카이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거대한 몸뚱이를 비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니아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카이에 관한 건 나에게 일임한다는 듯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겨울잠의 중심인 이 공동을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이윽고 뭔가를 발견한 그녀는 나에게 한쪽을 가리키곤 자신을 가리켰다가 다시 그 곳을 가리켰다. 용연향이라고 생각되는 큼지막한 덩어리가 한쪽 굴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걸 갈무리히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 같다. 근데 사자후가 터져도 아무도 안깨는데 그냥 말로 해도 되는 게 아닐까? 아무튼 실제로 용연향에 다가간 니아는 뭔가 주문을 읊조리더니 용연향을 공중에 띄운 후에 손짓으로 어딘가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마도 차원 밖에 보관하는 거겠지? 니아의 하는 양을 잠시 보던 나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크아악, 이게 무슨... 응? 응? 아니 요정 요왕이여!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카이는 바닥에 앉아 꼬리를 붙잡고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잠시 집중이 흩어진 모양인지 카이의 입을 막은 마나 구속구가 사라진 모양이다.


"너네 엄마가 걱정하더라, 이눔 자식아. 어서 가자."


나는 카이를 내려다 보고 명절에 조카에게 대하듯 말했다. 그는 흘깃 쳐다보곤 다시 니아에게 시선을 향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격이 아직 남아 있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덩어리는 커 가지고 비실대기는....."

"프, 프로토콜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모, 못한 탓이오!"

"아이고, 내 말이 들리긴 하는 모양이네? 난 또 내가 다른 차원에 있는 줄 알고 혼잣말했지 뭐야?"

"사내답지 못한 건 여전하군. 마스터의 소양이 아니오."

"겨울 산에 사는 전사가 감기에 걸리는 것도 뭐 소양은 아니지 않아?"

"감기는 이제 다 나았소! 다시 한 번 해보시겠소?"


카이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몸을 부풀렸다. 나도 지지않고 마나를 단단히 움켜쥐고 묵직한 나무 배트를 생각해냈다. 그립감이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둘 다 그만둬요."


황야의 무법자처럼 대치하고 선 우리 둘 사이로 니아가 들어섰다. 나도 나지만 저 하얀 고양이도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몸에 힘이 빠지더니 싸우다가 선생님에게 걸린 유치원생의 대사를 내뱉었다.


"저 자가 먼저 시작했소!"

"네, 다음 유치원생!"


나는 피식 웃으며 마나 방망이를 흐트렸다. 니아는 나를 힐끔 쏘아보곤 카이에게 말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에요."

"그, 그런 법은 들어본 적 없소!"


하얀 고양이는 줄무늬마저 하얗게 질릴 만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잽싸게 말했다.


"그래,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 내가 먼저 사과하지."

"아니오! 자고로 나아가고 물러갈 때를 구별해야 진정한 전사라 할 수 있지. 내가 부족했소. 내 탓이오!"


카이는 질세라 한걸음 다가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자후의 기운은 아니었지만, 그 만한 기백이 실려 공동이 다시 한 번 웅웅거리며 공명했다. 나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니가 잘못한 걸로 알지 뭐. 사과 받았다."

"좋소! 이제 내가 이겼소?"


카이는 긴가민가하며 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니아는 이미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갈무리한 용연향의 미세한 조각을 꺼내들고 카이에게 내밀었다.


"뭐 그건 됐구, 이거 가지러 온 거죠? 여기있어요."

"요정 여왕이여, 내 승리를 명확히 해주길 바라오. 아니 그런데 내 분명히 이것보다 커다란 용연향을 본 것 같은데......"


카이는 당황하며 니아가 내미는 용연향 조각을 받아 들었다. 그 커다란 손에 옮기고나니 그냥 누구 코딱지같았다.


"프로토콜에 의해 강한 상념이 꿈으로 나타났을 뿐이에요. 드래곤의 피어는 분명하니 부족원들도 다들 인정할 겁니다."

"피어? 아, 그렇지. 드래곤의 피어는 속일 수 없으니. 분명히 그러하군."


카이는 코딱지를 조심히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에 넣었다.


"자, 그럼 나가볼까요?"

"아니,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것이오?"


공동 밖으로 발길을 돌리는 우리를 바짝 쫒으며 카이가 물었다.


"너네 엄마가 너 버스 좀 태워달라고 보냈다고....."

"어, 어머니가 버스? 버스가 무엇이오?"

"아, 뭐 그런 게 있어. 아는 게 있어야 설명을 해주지."

"그대에게 물은 것이 아니오! 요정 여왕이여! 내가 승리했는데 어찌하여 저자는 이토록 무례한 것이오!"


카이는 나와 떨어져 니아를 가운데 두고 걸으며 물었다. 니아는 싱긋 웃었다.


"그건 돌아가서 어머님께 여쭤보시면 알아요."

"그 말은 어머니께서 요정 여왕을 내게 보냈다는 말씀이오? 그, 그럴 수는 없소. 나는 성인식 중인데 부족원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건 내 성인식을 부정하는 일이외다!"


카이의 털이 곤두서며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니아의 희고 고운 손이 그의 어깨에 닿자마자 곤두 선 털은 피존이라도 끼얹은 듯 가라앉았고 포식자의 피어가 퍼지던 공기는 이내 고양이의 하악질이 뿜어내는 정도의 느낌으로 바뀌었다.


"던전으로 도망가려고 할 때는 언제고 또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네?"

"도망가려 한 적 없소! 지원하려고 했을 뿐이오!"

"그걸 우리는 '도망'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도망치지 않았소!"


카이는 거칠게 소리쳤다. 니아가 털이 사납게 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다시 털이 차분해졌다.


"어머님이 부탁하지 않으셨고, 우리는 부족원이 아니에요. 그쵸? 문제될 게 없죠?"

"아니....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내 성인식은 유효한 것이오?"

"그럼요!"


카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조용히 우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는 꼴이 혼자 열심히 생각해 보는 모양인데, 나도 잘 이해가 안되는 걸 저 유딩 고양이가 이해할 리가 없지. 나는 그저 마나를 잘 둘러 돌아가는 길에 잠이 들지 않기위해 집중했다.


하지만 니아는 그런 내 마나의 섬세한 컨트롤을 필요없다고 말렸다. 용연향이 뿜어내는 드래곤 피어의 영향으로 우리 주변의 프로토콜이 상쇄되어 있다고.


"태초의 프로토콜을 이룩한 존재가 셋있어요. 근원 생명인 태초의 나무, 태초의 바다, 태초의 드래곤이 그들이죠. 그들은 각각 생성과 조화, 소멸을 담당하며 이 세상의 프로토콜을 이룩했어요. 이 미궁에 내린 프로토콜 역시 태초의 바다가 새겨놓은 프로토콜이긴 하지만, 그것은 드래곤의 프로토콜과 동격이기에 상쇄되는 거에요. 드래곤의 피어에는 그만한 힘이 있어요."

"그렇소! 하여 이 드래곤의 피어는 범인으로썬 접근하는 것 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지. 우리 부족처럼 드래곤의 허락을 받은 자들이만이 그나마 모실 수 있는 것이오!"


카이는 자부심에 넘치는 목소리로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니, 그 코딱지보단 니아가 갈무리한 그 덩어리의 영향이지 싶긴한데 뭐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바다가 태초의 존재야? 바다를 생명으로 칠 수 있나?"

"태초의 바다는 조금 특별한 존재죠. 태초의 나무 아래 태어난 요정과 드래곤의 싸움 끝에 세상에 버려진 피와 시체가 불타고 가라앉아 만들어진 자그마한 결정액, 그 작은 웅덩이가 스스로를 깨닫고 자신을 정의하는 프로토콜을 최초로 이룩한 생득자인 정령이었죠. 그녀는 스스로 비바람이 되어 불타고 파괴된 세상을 침몰시켰고 바다가 되어 이 땅이 다시금 재생되도록 만들고 태초의 나무와 드래곤이 반목하지 않도록 관계를 이끌었어요. 바다는 불로 없앨 수 없었고 나무가 흡수 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두 존재는 바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밖에 없었어요."

"흥미롭네. 들어본 신화 중에 젤 재밌어."

"그런가요? 팀장님 세계의 신화가 더 다채롭고 흥미로울 텐데요."

"뭐요? 그럼 저 자가 이세계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요정 여왕이여?"


콧김만 뿜으며 걷던 카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딱 보면 모르냐?"

"아무리 봐도 모르겠소."


카이는 커다랗게 콧김을 내뿜었다. 티격태격대며 우리는 무사히 미로 '겨울잠'을 빠져나왔다. 니아는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손가락을 튕겨 순간 이동을 시도했다. 차라락 돌아가는 세상이라는 블라인드의 단면 단면 사이에 뉘엿뉘엿 지는 해가 발갛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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