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펜든너구리
작품등록일 :
2024.07.16 19:24
최근연재일 :
2024.09.05 19:0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492
추천수 :
28
글자수 :
211,382

작성
24.08.30 19:00
조회
9
추천
1
글자
17쪽

챕터 3. PQ (10)

DUMMY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맞이한 마지막 문을 앞두고 그들은 잠시 상태를 점검했다. 윌리엄은 몸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려서 어디가 가려운가 생각했지만 이내 몸 여기저긔 숨겨둔 비수들의 위치와 상태릴 확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손 위에 비수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두어번 반복됐기 때문이다.

아르센은 잠시 정좌를 하고 조용한 것이 명상을 하는 것 같았다. 호흡을 안정시키고 투기를 생성하는 중이라고 옆에서 니아가 말해줬다. 몸 주변에 증기같은 투기가 피어올랐다. 내가 보기엔 그냥 땀이 식어서 그런것 같았지만.


"어때?"

"난 준비됐네. 어떤가?"

"근질근질하지."


아르센은 가슴 근육을 번갈아 움직였다. 아씨. 눈 버렸네.


윌리엄이 문 손잡이에 손을 올려 뭔가를 탐지했다. 내 팔찌는 여전히 붉었다.


"일단 들어가볼까?"


끼익.


문이 열렸다. 저 두 사람에게는 안보이겠지만, 아까부터 인기척을 느낀 카이가 앉았다가 누웠다가 보디빌더처럼 포징했다가..... 어떤 모습으로 첫 크롤러들을 맞이할 지 안절부절 못하던 중이었다. 그냥 빨리 들어가서 저 녀석 좀 진정시켜주길 진심으로 바랬다. 아아, 이런. 문 열리는 소리에 완전 얼었는데?


-정신 안차릴래?


마스터 전언으로 애를 돌보게 될 줄은 몰랐네. 카이가 콧김을 내뿜고는 뺨을 두드렸다.


"손님이 왔군."


진흙벽으로 이루어진 횡한 방 안에 작은 단상에 서서 그들을 기다린 카이는 최대한 성대를 긁어대며 말했다. 마력핵이 붉게 조명을 내려줬다.


"푸하하하! 저게 지금까지 생각해 둔 환영 인사야?"

"뭐 어때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보다는 나은데요?"

"그런 멘트를 하는 가디언이 있어?"


나는 농담말라는 눈길로 니아를 바라봤지만 니아는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걸로 보여라는 눈길로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그래 뭐 친절한 가디언이 있었나보네. 생각해보니까 그래도 저 것 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다음엔 좀 친절하게 맞으라고 얘기해 둬야겠네.


"와우. 백호로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아르센은 호랑이도 아닌데 콧김을 내 뿜었다. 카이가 한 걸음 단상에서 내려왔다.


"위험한 마물인가?"


윌리엄은 허리춤의 비수에 손을 가져가며 물었다. 아르센은 말했다.


"저 종아리 좀 보라구. 수인이라고해도 제대로 훈련하지 않으면 힘들다구."

"종아리가 약점인 것 같은가?"

"광배가 부푸는 것 좀 보라지."

"표적 삼기는 광배 쪽이 좋긴하지."


카이는 한 걸음 더 그들 가까이에서 왔다.


"어, 어디서 오셨, 큼! 오셨소?"

"야, 야! 야! 임마! 손님이 진짜 손님인 줄 알아!"

"풋."

"니아, 지금 웃을 때야? 거기다 지금 절었잖아! 긴장했다고 티내고 있잖아!"


뜬금없는 출신지 질문에 당황한 나는 다시 마나를 낭비하며 욕을 했고, 니아는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더 어이없는 건, 아르센이 대답했다는 점이다.


"어, 에버 블라이트? 알아요?"

"에버 블라이트. 이 산맥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소."


카이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크롤러들은 그 자리에서 천천히 스탠스를 갖췄다.


"수도 남쪽인데 이 곳보다 훨씬 따뜻한 곳이죠. 겨울에도 꽃이 피는 그런 곳."

"겨울에도 꽃이 피다니, 멋지군.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늘 생각했는데."

"아니, 이거 뭐 토크쇼야? 갑자기 왜 이래? 선빵치라고! 아오! 다음엔 저 자리에 고리다가 있을거야. 말리지마, 니아!"

"물론이죠."


거리는 좀 더 가까워졌다. 윌리엄 역시 조바심이 났는지 물었다.


"궁금한 게 남았나?"

"당신은 날붙이를 쓰는군."


카이는 윌리엄에게 눈을 돌렸다. 그 질문에 윌리엄은 기다렸다는 듯 양손에 단검을 꺼내 쥐었다.


"전에 산에 올라온 사냥꾼들이 단검으로 날 찌른 적이 있었는데, 피부를 뚫지 못했소."

"그런 아마추어들과 비교하면 곤란하오. 이 단검으로 뚫지 못한 것은 베히모스가 새끼를 감쌀 때 뿐이었으니까."

"베히모스. 질기고 억센 가죽을 가진데다 철갑을 가지고 있다지? 들은 적은 있지만 본 적은 없어. 당신이 여기 있는 것을 보면 전투에서 이겼나보군."

"그렇소. 큰 전투였지. 두 파티가 달려든 '레이드'였소. 엄청난 부산물이 남았지."

"부산물. 프로토콜 밖에서 싸웠나보군."

"그렇소. 필드 몬스터였지."

"꿀차 좀 드려요?"


어느새 꿀차를 마시던 니아가 말했다. 마나는 제대로 순환 중인 것 같은데 머리가 아팠다.


"아직 어려보이오."


이번엔 윌리엄이 말했다. 아니 진짜 저 자식들까지 왜 이러는거야.


"막 성인식을 치뤘소. 어리다고 할 수 없지. 부족의 용사들 중 가장 젊은 편이오."

"그렇군. 이 던전의 마스터는 어린 마물들을 주로 고용하는 듯 하여 물어보았소."

"사정이 있었소. 여러가지로. 어쩌면 내가 마스터를 방해한 건지도 모르지. 지나가는 인연을 붙잡고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니까."

"가디언을 지원하였소?"

"말했듯이 사정이 있었소."

"저쪽 테이블에 생맥주 세 잔 배달 돼?"

"저도 합석하고 싶네요."


우리는 같이 꿀차를 마셨다. 다시 전언을 썼다.


"당장 안 싸우면 너 해고야."


서로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간격을 유지한 채 빙글빙글 도는 중이었다. 카이야 애라서 그렇다 쳐도 쟤들은 뭐하는 거야?


"마스터가 당장 싸우라고 하는군."


카이는 걸음을 멈추고 주먹을 살짝 들어보였다. 그 제스쳐에 서로를 바라 본 두 사람은 오히려 긴장된 자세를 풀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1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윌리엄은 품에서 회중 시계를 꺼내서 버튼을 눌렀다. 태엽이 멈췄다.


"10분 하고 막 5초가 지났군."

"테오른이 화내겠군."

"그러게."


윌리엄은 단검을 다시 집어 넣었다. 아르센도 투기를 거두었다.


"뭐하는 건가?"


카이는 당황하여 물있다. 아르센은 대답대신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해본 적 없는 카이는 멀뚱히 그의 빈 손을 보고만 있었다. 아르센은 씨익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우리가 마스터를, 이 던전을 너무 얕보았다는 걸 인정해요."

"마법의 서포트없이 수인과 싸운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겠나. 아, 혹시 라이칸슬로프?"


카이는 번들거리는 코를 매만졌다.


"뭐, 아무튼. 어쩐지 맘에 들기도 하고. 가디언과 대화해보는 것은 정말 처음이기도하고."

"도박을 하기보단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는 게 낫겠지. 하지만 다음엔 말보다 주먹이 먼저가 될 거요."


아르센과 윌리엄은 품에서 주먹만한 돌을 꺼내 들었다. 그 행동을 경계한 카이가 한걸음 물러서며 주먹을 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않고 돌에 마력을 흘려넣었다. 푸른 빛이 영롱하게 두 사람을 감쌌다.


"던전 탈출용 귀환석이네요."

"탈출?"

"네. 공략을 포기하려나 봐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의미없다고 생각한 것 같네요."

"어, 그럼 뭐야? 쟤들 공략 실패한거지?"

"축하드려요, 팀장님!"

"핫핫핫! 아하하하! 거봐, 내가 뭐랬어!"


가디언 룸에서 빛줄기가 되어 사라지는 둘을 보고 당황한 카이가 멍청한 표정을 짓는 것 역시 큰 전리품이었다. 저 표정을 사진으로 남겼어야 했는데!

블러드 스케일이라고 부르는 마나핵의 붉은빛이 다시 평온한 플레인 스케일로 돌아왔다. 기분좋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니아가 어깨를 잡아 일어나지 못하게 나를 눌렀다.


"왜, 왜 그래?"

"아직 앉아계세요. 정산하셔야죠."

"정산?"

"세계수가 목숨값을 지불하러 올 거에요."


뭐라고? 라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은은한 빛가루를 날리며 눈 앞에 나타났다. 사방이 탁 트인 넓은 동산, 그 동산 전체에 뿌리내린 아름드리, 아니 흡사 가지 난 건물같은 거대한 나무가 눈 앞에 서 있었다. 구겨진 코듀로이 바지같은 질감을 가진 적갈색 껍질에 뒤덥인 나무는 꽃이 진 벚꽃나무의 푸른 잎사귀를 가지고 있었고 크기와 높이가 인지범위를 벗어나 원근감을 알 수 없었다. 노란색인지 연두색인지 모를 미묘한 빛가루에 둘러쌓인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실제로 눈 앞에 있는 것인지 끝없이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 있는 나무를 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무에게 누구냐고, 무엇이냐고 묻지 조차 못했다. 하지만 알았다. 이게 니아가 말한 세계수라는 근원 생명이라는 것을.


머리카락이 겨우 흔들릴 정도의 산들 바람이 불어와 들이쉬고 내뱉는 숨 사이에 섞였다. 시원하고 상쾌한, 멘솔향이 났다. 아니, 피톤치드 덩어리가 들어왔다고 할까. 기분좋은 바람은 느긋하게 계속 밀려왔다. 그 바람을 타고 작은 잎이 달린 마른 나무가지 하나가 날아와 내 앞에서 멈췄다. 나는 손을 내밀어 나뭇가지를 잡았다.


"어라?"


나무가 사라지고 익숙한 마스터룸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뭔가 짠, 하고 팟하는 일련의 과정이 없이 잠깐 꿈꾼 듯한 기분. 하지만 내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나무가지 하나가 방금 그 동산이, 그 광경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와, 세계수의 가지다! 저도 처음 봐요."


손에 든 나뭇가지를 빼앗아 든 니아가 경탄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뭔데? 그게 뭔데 그래?"

"세계수가 자신의 마나를 담아 보낸 거죠. 이 안에 든 마나는 드래곤 마나 못지 않은 순수한 생명의 힘이라구요."

"그러니까, 아까 그 리링의 목숨값으로 이걸 보낸거다 이거야?"

"아마도요?"


나는 니아가 품에 안듯 들고 있는 앙상한 가지를 바라봤다. 시들시들한 이파리 하나가 달랑 달린 저 가지에 순수한 생명의 힘이 깃들다니, 마지막 잎새를 힘겹게 붙들고 있는 자기 몸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뭐 어떻게 해야 돼?"

"어? 글쎄요? 저도 그것까지는 잘?"


니아는 세계수 못지 않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나는 니아에게 나뭇가지를 건네 받고는 그녀의 종아리를 때리는 상상을 잠깐 해봤다. 햐얗고 가느다란 그녀의 종아리가 이 가지보다 갸날파보여 차마 때릴 수는 없었다.


"마나가 담겼다고?"


가지를 흔들어도 보고 '마나야, 나와랏!' 하고 진심으로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나뭇가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뭘 어떡하란거지? 마나가 깃든 건 맞는 건가? 푸석하게 매달린 이파리를 보자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혹시나 싶어 가지를 양손으로 잡고 꺾으려는데 니아가 불같이 달려들어 나를 막았다.


"팀장님 뭐하시는 거에요?"


그러나 그녀가 거칠게 낚아채는 바람에 기어코, 갸날프게 메달린 마지막 잎새가 하늘하늘 가지에서 떨어져 낙하했다. 우리 둘은 아무 말도 못하고 떨어지는 그 낙엽을 바라봤다. 이윽고 바닥에 떠러진 나뭇잎. 그리고 비로소 세계수의 정산이 시작되었다.


"어머나!"


바닥에 떨어진 잎이 조각조각 깨지며 틈을 비집고 빛의 조각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빛의 조각은 또 한 번 깨지고 부서지며 산란했고 은은한 빛의 가루가 되어 날렸다.

그것은 동산에 서 있던 세계수의 빛가루였다. 빛은 흔들리고 나부끼며 이리저리 파도치며 점차 의미를 가진 모습으로 공중에 새겨졌다. 그리 길지 않은 그 전언의 내용은 이랬다.


"여자 마법사 숨과 살, 나뭇잎 5개 그루터기 10개? 이게 무슨 말이야?"

"마법사의 영혼과 육체를 구조하는데 나뭇잎 5개와 그루터기 10개를 지불하겠다는 것 같아요. 세계수의 의지과 깃든 잎과 그루터기에는 그에 상응하는 마나가 녹아있죠. 마력핵의 땔감으로 쓸 수 있어요. 뭐 팀장님이 필요하다면 팔아도 되구요."

"마나석이 아니라 마나목이 되는건가? 그게 얼마나 되는데? 마나석으로 따지자면 어느정도?"

"뭐 잘모르겠지만 충분하지 않을까요?"


니아는 잘모르겠다며 해맑게 웃었다. 니아는 가끔 중요한 부분에서 정말 무지하다. 그 미묘한 백치미가 그녀의 장점이기도 하지. 그런데 말야. 세계수라는 신화적인 개체가 보낸 것 치고는 상당히 건조하고 사무적인 내용이녜.


"그래서, 이거 거부할 수 있는 건가?"

"예? 거부한다구요?"


나는 허공에 쓰인 일련의 문자들 아래에 서명란이 있는 것을 보았다. 엄청 화려하게 멋부렸지만, 결국 이건 비용 청구 결제 팩스잖아? 그런 중요한 사항을 도량형을 무시하고 태초의 단위로 보내니까 내가 못 알아먹잖아. 이쪽이 알 수 있게 마나석으로 계산해줘야 알지. 그게 정량인지 뭔지도 모르는데 닥치고 서명하라니. 아무리 권위로 찍어 누르는 계악이라고해도 정보가 차단된 불공정 계약에는 함부로 서명하는 게 아니라고.


"팀장님! 이건 세계수가 보내는 거라구요! 태초의 의지이고 근원 생명인 프로토콜의 실행이라구요. 어떻게 거부할 수가 있어요?"

"어떻게는 뭐 어떻게야?"


나는 허공에 뜬 빛의 가루를 손을 내저어 아무렇게나 섞이고 엉키게 흩뿌렸다. 세계수가 신과 같은 권위를 가진 존재면 지금 내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내 손길에 따라 부서진 모래성마냥 흘러내리듯 이리저리 날리던 빛은 다시 조금씩 모여들며 다시 문자를 빗어냈다. 안해, 안한다고. 마나석 내놔라, 도둑나무야. 나는 다시 손을 내저으려했다. 그러나 내용이 변했다.


"여자 마법사 숨과 살, 나뭇잎 6개 그루터기 10개. 상수리 나무 열매 1개."

"아니 그러니까 나뭇잎이고 그루터기고 그게 뭐 얼마나 되냐고! 상수리 나무 열매는 또 뭔데?"


나는 다시 손을 내저어서 계약을 물리려고 했다. 하지만 니아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정말 귀여운 표정으로 나를 막아섰다.


"팀장님! 안된다구요! 절대 안되요! 세계수의 의지를 거부하고 물려서 보상을 늘리다니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구요! 절대 안되요! 빨리 서명하세요!"

"아니 뭔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서명해?"

"세계수는 이 세상을 이루는 근원 생명이라구요, 뭔지 몰라도 서명할 수 있어요! 서명해야해요!"


하느님의 말씀은 무조건 옳습니다, 라고 말하는 본새긴 했지만 하느님의 정의로움보다 니아의 볼멘 소리와 행동이 귀여웠기에 나는 한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어떻게 하든 이 정보의 불균형은 한 번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일단은 나뭇잎 1장과 무슨 씨앗이라도 하나 더 얻었으니 조금 이긴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나는 빛의 가루 아래에 서명하는 곳에 손가락을 대고 대충 이리저리 그었다. 그 손짓에 따라 빛이 이어지고 다시 흩어지더 손을 타고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세계수의 동산에서 느꼈던 피톤치드가 몸 속 가득히 들어찼다. 호흡의 결을 따라 피톤치드가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폐를 타고 혈관으로 넘나들고 현관을 타고 심장으로, 신장으로 세계수의 향이 밀려왔다. 눈 앞이 짧게 연두색으로 물들며 지나가고 솨라락하고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정신이 맑고 깨끗해졌다.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수목원의 문이 열리고 바람을 탄 나뭇잎처럼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빛으로 가득한 공간 한가운데서 모든 나무의 주목을 받는 것 같았다. 나무들은 성스러운 빛을 내게 뿜어냈다. 나뭇잎, 그루터기 같은 이미지들이 회오리치며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숲 속에서 나뭇잎이 바람에 쓸려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가득 울렸다. 부풀어 오르는 벅찬 감정이 숨 안에 스며들자 수목원이 저 멀리 사라지며 넝쿨이 이리저리 얽키고 설키며 만들어진 문이 닫혔다. 피톤치드 가득한 숨을 토해내자 다시 정신은 마스터룸이었다.


"오. 상쾌하다. 기분 좋은데?

"어때요? 마나가 좀 늘어나나요?"


니아는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여기저기 훑었다. 마나가 늘어났나? 늘어났다기보다 좀 더 기운이 매끄러워졌다고 해야하나? 항상 콜라 먹은 듯 더부룩함이 사라지고 그냥 뭔가가 있고 그걸 내 의지로 옮길 수 있다는 자각만이 남았다. 그리고 하나 더.


허공에서 똑 하고 뭔가가 떨어졌다. 니아가 허리를 숙여 몸소 떨어진 것을 집어 들었다. 작고 둥글고 묘하게 팽이를 닮은 열매.


"도토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안녕하세요. 펜든너구리입니다. 24.09.05 5 0 -
28 챕터 3. PQ (14) 24.09.05 4 0 14쪽
27 챕터 3. PQ (13) 24.09.04 3 0 22쪽
26 챕터 3. PQ (12) 24.09.03 4 0 14쪽
25 챕터 3. PQ (11) 24.09.02 6 0 17쪽
» 챕터 3. PQ (10) 24.08.30 10 1 17쪽
23 챕터 3. PQ (9) 24.08.29 9 1 17쪽
22 챕터 3. PQ (8) 24.08.28 9 1 16쪽
21 챕터 3. PQ (7) 24.08.27 10 1 15쪽
20 챕터 3. PQ (6) 24.08.26 10 1 17쪽
19 챕터 3. PQ (5) 24.08.23 12 1 15쪽
18 챕터 3. PQ (4) 24.08.22 11 1 15쪽
17 챕터 3. PQ (3) 24.08.21 12 1 13쪽
16 챕터 3. PQ (2) 24.08.20 13 1 14쪽
15 챕터 3. PQ (1) 24.08.19 12 1 19쪽
14 챕터 2. 가디언 선발 (9) 24.08.16 15 1 12쪽
13 챕터 2. 가디언 선발 (8) 24.08.15 14 1 20쪽
12 챕터 2. 가디언 선발 (7) 24.08.14 17 1 14쪽
11 챕터 2. 가디언 선발 (6) 24.08.13 21 1 19쪽
10 챕터 2. 가디언 선발 (5) 24.08.12 19 1 20쪽
9 챕터 2. 가디언 선발 (4) 24.08.10 20 1 12쪽
8 챕터 2. 가디언 선발 (3) 24.08.09 17 1 14쪽
7 챕터 2. 가디언 선발(2) 24.08.08 20 1 14쪽
6 챕터 2. 가디언 선발 (1) 24.08.07 22 1 21쪽
5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5) +1 24.08.06 27 1 17쪽
4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4) 24.08.05 30 2 17쪽
3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3) +1 24.08.04 34 2 20쪽
2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2) 24.08.04 47 2 22쪽
1 챕터 1. 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1) 24.08.04 65 2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