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던전에 취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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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든너구리
작품등록일 :
2024.07.16 19:24
최근연재일 :
2024.09.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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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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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가디언 선발 (9)

DUMMY

"아, 아니 이게 무슨?"


급변한 주변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란 카이가 부르르 떨며 이미 뒤집어진 버티컬 주변에서 팔을 휘적거렸다. 도착한 곳이 처음 출발했던 백호족 족장, 칸의 텐트 안이었기에 애꿎은 그릇이나 가구 등 세간살이들이 그가 휘두르는 팔에 맞아 덜컹거리거나 바닥으로 쏟아졌다. 쯧쯧. 촌스럽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 목기라서 깨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여기는 아버님 천막인가?"


허둥대며 떨어지는 그릇들 일부를 기묘한 자세로 받아내며 주변을 둘러본 카이는 금세 이 곳이 어딘지 알아냈다. 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요. 여기서 출발했거든요."

"대, 대단합니다. 요정 여왕이여!"


카이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겨울잠에 있을 때와는 다른 온도에 하얗게 콧김이 한껏 밀려 나왔다. 니아는 살짝 몸을 돌려 그 콧김을 피하며 말했다.


"티타니아에요. 니아라고 불러주세요."

"엇, 니아! 뭐하는 거야?"


갑자기 카이에게 이름을 허락한 니아에게 놀란 내가 그녀를 제지했다. 사실 내가 통성명하는 것 까지 제지할 필요는 없긴 한데, 저 녀석이 니아를 니아라고 부르는 건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했다. 이름 부르기만 해봐라.


"티, 티타니아 여왕."


내 눈빛을 보고 쫄았던 건 아니겠지만, 카이 녀석도 나름 눈치가 있는 지 적당히 선은 지켰다. 하지만 다시 몸을 부들부들 떠는 걸 보니 엄청 감동한 모양이다.


"자자, 진정하고 일단 좀 앉을까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유난스런 순간 이동을 눈치 챈 건지 라무와 례아가 천막 문을 걷고 들어섰다.


"카이!"

"어머니!"


례아는 한걸음에 다가와 카이를 안았다.


"괜찮니? 아니 어쩌자고 겨울잠까지 갔어!"

"용연향을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그 것이 겨울잠에 있다고하여."

"그래도 그렇지..... 거기가 어디라고....."


례아는 두터운 손으로 카이의 등을 두들겼다. 그 커다란 몸이 전에 없이 흔들렸다.


"고생하시었소."


모자의 회후는 뒤로하고 라무가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는 당연히 니아가 받아야 할 몫이겠지만, 니아는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공손히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도움이 되어 기쁘네요. 덕분에 재밌는 미로도 구경했구요."

"그렇습니까? 하하. 겨울잠이 그저 재밌는 미로에 지나지 않다니, 과연 던전 마스터의 그릇이군요."


라무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처음 마주했을 때 거대한 산맥같던 대호가 매우 순한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함부로 할 수는 없지. 실수로라도 머리를 쓰다듬는다던가 하지 않기위해 양 손을 교차하여 공손히 앞으로 모아 쥐었다. 동방예의지국의 사절이라 할 만한 모습을 취하자 칸이 들어왔다.


"카이!"


앞의 두 사람과는 다른 목소리의 힘, 공기의 분위기. 그의 두꺼운 목에서 그르렁 거리는 낮은 음성이 퍼져나와 나도 모르게 마나를 두껍게 둘렀고 니아가 곁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카이도 곁에 선 례아를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례아는 자식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카이를 보며 한참을 그르렁 거리던 칸은 굳은 눈으로 잠시 우리를 보더니 다시 카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용연향은?"

"여보...."


례아가 카이를 뒤에 두고 칸을 바라봤지만 칸은 물러서지 않았다.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카이도 그런 례아를 살며시 물러나게, 그러나 너무 멀리 보내지는 않고, 밀어두고 허리춤에 찬 가죽 주머니를 칸에게 내밀었다. 칸은 손바닥에 올려 진 가죽 주머니를 움켜쥐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드래곤 피어로군."


칸은 가죽 주머니를 허리춤에 둘렀다. 긴 한숨이 이어졌다.


"성인식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부족의 전사로 인정하는 바이다. 카이. 앞으로 네 모든 행동은 백호족의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심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카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 소리쳤다. 칸은 말을 이었다.


"성인식의 증거로 가져 온 용연향을 네 천막 앞에 걸어놓겠다. 드래곤의 숨겨진 힘을 가져온 바 앞으로 네 이명을 '드래곤의 진전'이라 할 것이니 전투에 임할 때 그 뜻을 알리라!"

"드래곤의 진전, 이름을 받습니다!"


카이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니, 겨우 이런걸로 드래곤의 진전이라니 너무 거장한 거 아냐? 낮에 나랑 싸우려던 백호들도 다 이런식으로 허위 과대 과장광고 한 거 아냐? 셰리프의 대호란 이명을 보였던 라무를 흘깃봤다. 음. 일단 저 분은 허위 광고는 아닌것 같다.


칸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자식을 놔두고 다시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스터, 그리고 요정 여왕이여. 부족한 자식을 구해주어 고맙소. 다만, 이제 다시 볼 일은 없겠구려. 멍청한 자식이오만, 잘 부탁드리오."

"예?"

"예?"

"예."


나와 카이의 놀란 반문 사이로 뭔가 뉘앙스가 다른 니아의 대답이 끼어들었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쓰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우리의 반문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명백히 니아를 보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셨겠군요."


례아는 카이를 일으키며 니아에게 말했다. 니아는 순수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뭐, 성인식은 인정되겠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 의지해서 돌아온 인원이 정말 부족에 받아 들여지는 지는 다른 문제니까요. 더구나 출생의 문제도 있고."

"백호족으로 태어났으나 우리 그리즐리의 핏줄이기도 한 아이입니다. 지금은 투기를 담는 일 밖에 못하지만, 이 아이에겐 마력의 잠재력이 있어요. 어미로써 그 잠재력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 힘을 이끌어 주기만 한다면 큰 전력이 될 겁니다."


엄마들이 늘 하는 이야기네. 우리 애가 공부는 못하지만, 하면 잘 할거라고. 물론 이해는 한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 살결은 비단결이라고 한다더라. 아, 엄마 보고싶네. 우리 엄마도 날 저렇게 아끼셨을텐데. 좋은 회사 취직해서 효도한다고 했는데 이 이상한 세계에서 뭐하는 건지.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겁니다. 그래도 드래곤 던전의 가디언입니다. 시간이 지나 정순한 마나를 흡수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그런 식의 상스런 생각을 그대로 말로 표현하기 전에 니아가 정돈되고 깔끔한 워딩으로 인사치례를 했다. 나는 그저 말없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던전에 잡아 먹히지 않는다면 말이네."


칸은 이번에는 나를 보며 말했다. 던전에 잡아 먹히는 게 뭐야? 제대로 못할거라는 건가? 아들 보는 눈은 있으시네요. 하지만 여기서 그렇게 말 할 수는 없지. 뭐라고 할까? 아드님은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라고 해야하나? 아니 뭐 내가 선생님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아니, 근데 난 쟤 가디언으로 하기 싫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니아를 보았다. 니아는 다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두 번 찔렀다. 아씨, 알았다고.


"거,걱정마십시오. 아하하하!"


나는 티나게 거짓으로 커다랗게 웃었다. 이 정도 웃으면 따라 웃어 줄 만도 한데 아무도 안 웃는구나. 나는 라디오에서 노래가 끝나는 것 처럼 점차 여리게 웃었다. 슬쩍 몸을 젖히며 바라본 카이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고 있었고 찬 텐트의 공기가 하얗게 콧김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저 자식, 열 받았구만? 하긴 성인식도 애매해졌고 집에서는 내쳐지는 중인데 자기 발언권은 하나도 없으니, 여기서 화가 안 나면 진짜 고양이지 저건.


"아, 아버지! 감사합니다!"


으,응? 화난 게 아니야? 화난 게 아니었어? 아니, 화를 내야지! 고양이 자식아!


"시끄럽다. 추위에 내성이 생기길 바랬건만. 던전에 잡아 먹히지 않도록 해라. 또한 내쫒겨 다시 산 위로 올라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칸은 매우 엄한 표정으로 카이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우리네 아버지가 그렇듯이 그 엄한 표정 뒤에 자식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 역시 모르진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너무 오그라드는데. 난 이런 거 못 참는다니까?


"무, 물론입니다."


카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애초에 난 저녀석 가디언으로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확실히 해야겠다.


"그, 칸 족장님."


나는 마음을 확고히 하고 말을 꺼냈다. 내 단호한 얼굴을 본 칸은 조금 놀란듯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쪽은 연봉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라고.


"마스터. 철부지를 맡기게 되어 송구하오. 가디언이 아니라 문지기로 쓰시더라도 할 말이 없소."

"솔직히 그건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이야기가 되는군.


"못난 자식을 맡기는 입장에서 예를 다하고 싶으나 우리 부족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여 재물에 관심이 없는터라 양해를 구하는 바요."

"예? 그게 무슨...?"


나는 순간 그의 말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그렇지. 못난 자식을 맡는 내 입장을 좀 헤아려 보시라구요.


"여보. 준비한 걸 내 주시구려."


례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뒤에 있던 자루를 내밀었다. 뭐지? 제범 묵직해보이는데? 아무리 재물에 관심이 없어도 족장이다. 말을 저렇게해도 제법 괜찮은 걸 주겠지? 달달한 돈 냄새에 나도 모르게 침이 나왔다.


"아이, 뭘 이런 걸 다. 아하하."

"약소하지만 받아 주세요. 저희 곰 부족이 모아온 최상급, 황금...."


그렇지! 황금이다!! 황금이야! 자루를 여는 례아의 손 너미로 황금빛 물결이 일렁였다!


"황금빛 꿀입니다."

"황금!! 예? 꿀?"


니도 모르게 마중 나가던 손이 공중에서 멎었다. 뭐, 뭐라고? 잘못들었나?


"꿀이요?!"

"그렇습니다. 최상급이죠. 이 정도 품질의 꿀은 인간들에게선 구할 수도 없는 물건입니다. 아시겠지만, 꿀은 완전 식품으로 생명과 마나의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피부를 지키고 속을 다스리고 공복감을 제거하며...."


례아가 갑자기 애터미 아줌마처럼 꿀의 효능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안사요, 아줌마! 안 산다고!


"이렇게 귀한 걸! 너무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될 거에요. 그쵸, 팀장님?"

"어? 어. 그렇지. 그치!"


손가락 끝에 꿀을 살짝 찍어 맛보는 니아가 행복감이 고양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래. 큰 도움이 된다. 꿀이. 좋아. 니아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꿀이라니, 그거면 됐어!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는 칸과 손을 마주잡았다. 칸이 든든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잘 부탁하오, 마스터."


카이도 슬쩍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못본 척 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니아 이제 슬슬갈까? 나 퇴근 할 시간이 다 된것 같은데 말야."

"어머, 그렇군요. 서둘러야겠네요."


니아는 손뼉을 치며 부산을 뗠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라무가 카이에게 가죽 장갑같은 걸 몰래 건네는 게 보였다. 카이는 안받으려고 했지만 라무는 힘으로 장갑을 그의 허리춤에 찔러넣었다.


우리가 준비할 건 딱히 많지 않았다. 꿀 주머니를 챙기고 자질구레한 기념품 몇 개를 챙겼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버티칼 블라인드가 촤라라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한 짙은 회백색 벽이 버티칼 뒷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챕터 2 마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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