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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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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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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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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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DUMMY

“예? 뭘...말입니까? 저희는 그냥 계약한 대로 고장난 총을 교환하러 왔을 뿐입니다, 애기씨. 살펴 주십시오.”


“총을 살펴봤으니 하는 소리 아닙니까. 바른대로 말해 주세요.”


“원래 총이 오래되었던 겁니다. 철포장간에서 구식총을 아직도 많이 만들어 팝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두 분은 이 총을 며칠 전까지 쓰셨던 거네요?”


“네, 당연합지요.”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손씨 집안은 인심이 좋은 편입니다. 그러니 두 분도 속일 생각을 하셨겠지요. 그냥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면 너그럽게 넘어가 주실지도 모릅니다.”


“희선아, 그게 무슨 소리냐? 이 두 사람이 우릴 속이고 있다고?”


“네, 어머니. 아마도요. 아니면 제가 모두에게 사과드리겠습니다.”


사냥꾼 두 사람의 얼굴빛이 변했다. 하지만 그들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애기씨, 아닙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총이 좀 녹슬고 오래되어 보인다고 그러시는 거면 오해하시는 겁니다.”


“그럼, 이 총을 한번 격발해 보시지요.”


희선의 말을 듣고 사냥꾼들이 웃었다.


“애기씨, 총이라는 건 요술을 부리는 막대기 같은 게 아닙니다. 화약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탄환이라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화약이라는 검은 가루 같은 게 있는데.....”


“아아, 됐어요.”


희선이 총을 앞으로 들며 사냥꾼들의 말을 끊었다. 그녀가 삭장(朔杖-꼬질대)을 총신 아래에서 꺼냈다.


“헤헤헤. 이 아저씨들이 사람을 무슨 등신으로 아나. 세총, 하화약, 이삭장 송약실, 하연자, 이삭장 송연자, 하지, 송지, 개화문, 화선약....까지 이렇게, 요렇게 다 했다 치고 격발 시늉, 방포하는 흉내를 내 보라구요. 진짜로 총을 쏘라는 말이 아니고.”


사냥꾼들은 엄청 당황했다. 총이라는 것을 처음 만져보는 줄 알았던 분홍색 저고리를 입은 양반댁 처자가 삼수병 포수 교관만큼이나 능숙한 솜씨로 장전 과정을 끝냈다. 그리고 그 처자가 둘 중 좀 더 나이 든 쪽에게 총을 건넸다.


“자, 탄이랑 화약은 넣었다 칩시다. 쏘아 보세요.”


총을 받아든 사냥꾼들은 바로 당황했다. 총의 구조가 이상했다. 물론 그들도 이 총이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쏘아보라고 할 줄은 몰랐다.


그들이 받아든 총은 화승을 매다는 부분인 용두가 격발부의 앞에 있었다. 그들이 잘 아는 조총은 용두가 격발부의 뒤쪽에 있어야 했다. 그래도 그는 억지로 용두를 뒤로 당겨 장전 흉내를 내어보았다. 용두를 끝까지 당긴 순간.


“펑!!!”


희선이 소리를 꽥 질렀다. 총을 든 사냥꾼은 물론이고 점구와 민씨까지도 깜짝 놀랐다. 얼금이에게 안겨있던 감실이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화약접시의 화약에 불이 붙어 당신은 앞사람을 쏘았습니다. 어이구, 감실이 놀랐어? 미안해, 언니가 소리를 질러서.”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든 사냥꾼이 물었다. 총을 받아들 때부터 큰일났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게....무슨 말씀이십니까?”


“총 줘보세요.”


총을 다시 받아쥔 그녀가 말했다.


“간단히만 말씀드리지요. 이 총은 완발식(緩發式) 종자도총입니다. 종자도라는 일본 섬에서 만든 총이지요. 두 분이 아시는 순발식(瞬發式) 조총은 우리나 일본에서 주로 쓰지요. 방아쇠를 당기면 용두가 앞으로 탁, 튀면서 격발. 그런데 이건 용수철이 없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용두가 손가락에 힘주는 만큼 뒤로 오죠. 아까 아저씨가 하신 것처럼 장전한답시고 이걸 뒤로 당기면 화승을 화약접시에 꽂아버리는 격입니다. 아시겠어요? 이 총은 조선에서 쓰이지 않습니다. 삼수병의 포수들도 이 총은 쏠 줄 모릅니다.”


당연히, 못 알아듣는 얼굴이었다.


“간단한 게 아니었구나. 더 간단히, 두 분은 이 총을 쏠 수가 없다고요. 당연히 우리 집에서 받아간 총도 아니고. 그 총은 빼돌리고, 어디서 케케묵은 고장난 총을 들고 와서 늙은 새신랑 점구 아저씨 등골을 빼 먹으려는 거 아닙니까. 내 말 틀려요?”


“어, 아니 저기.....살려주십시오, 마님! 살려주십시오, 애기씨!”


두 사냥꾼이 바닥에 엎드렸다.


“이 들복이 놈이 저를 투전판에 데리고 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 없었을 겁니다. 술 취한 저를 자꾸 데려가는 바람에...”


점구가 소리를 질렀다. 그간 몇 번이나 속은 것에 화도 나고, 가솔들과 민씨, 희선 앞에서 부끄럽기도 했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내 앞에서 그리 사람 좋은 척들을 하고, 이렇게 우릴 속여? 내 자네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래, 당장 관아로 가자. 그동안 자네들이 날 속이고 총 바꿔 간 것들 다 조사하고 받아 낼거야!”


“아이고, 형님. 살려주십시오. 한번만 봐주십시오.”


희선이 할 일은 끝났다. 길길이 날뛰며 화내는 점구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 얼금이에게서 감실이를 다시 받아 안은 희선은 민씨와 얼금이와 함께 본채 쪽으로 걸었다.


“우리 딸, 뭣 좀 알기는 하는구나?”


“아유, 어머니 무슨 말씀을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 정도야 뭐,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래, 천지 분간도 못하는 줄 알았었는데, 오늘 조금 놀랐다. 조총을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 그 두 사람이 거짓말하는 걸 알아내다니. 사실 감탄했단다.”


“호호호홋. 이 정도는 해야지요, 어머니.”


민씨가 희선의 얼굴을 만졌다. 볼 가운데에 아주 작은 화상 흉터가 보였다.


“이건 어떻게 된 거니?”


“얼마 전에 작은 불똥 하나가 튀었어요. 이제 거의 다 나아갑니다.”


민씨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희선은 적잖이 당황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아유, 우리 딸. 이쁜 내 딸. 왜 그런 거에 관심을 가지니. 네가 싫어할 거 안다만, 나는 네가 총칼에 관심이 없었으면 한다. 난 늘 걱정이다. 위험할까 봐.”


“괜찮아요. 제가 크게 다치거나 한 적이 있었나요?”


“규원이를 다치게 한 적은 있었지. 그리고,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번만 해도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니?”


“걱정마세요, 어머니. 저 몸 사려가면서 움직여요. 위험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게요.”



**



며칠 후, 간택심사에 관한 결과가 집으로 왔다. 간단했다. 댁의 규수는 훌륭하고 참하고 똑똑하고 어쩌구를 한참 써놓은 후, 왕실 내의 사정으로 삼간택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라는 말이었다. 성공이었다. 그녀는 장렬히 탈락했다.


손병도의 귀가 후, 희선이 물었다.


“아버님, 그럼 삼간택에는 누가 가게 된 겁니까?”


“조가와 정가의 규수, 둘로 결정이 되었다. 왜, 아쉬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판대감의 입김이 세긴 한가 봅니다. 조성신이 실수를 많이 했는데도 삼간택까지 간 걸 보니 말입니다.”


“사실상 조가의 규수로 내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요 며칠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정민화로 가자는 분들도 많죠?”


희선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자, 손병도도 웃으며 답했다.


“그래, 특히 왕실의 남자 어른들이 주로.”


“꽤 똑똑하기도 하고, 여성스럽고, 몸가짐도 조신하고, 솜씨도 좋고, 결정적으로 어마어마한 미인 아닙니까.”


“뭔가 다른 이유를 대고 싶은데, 반박할 수가 없구나.”


“그건 그렇고, 불, 힘, 마법 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마침 그걸 내가 들고 왔다.”


FMM(fire, might & magic)에 관한 통보도 간택 결과와 같이 손병도의 손에 들려 왔다. 공사관에서 이걸 희선이나 개풍 대장간 측에 어떻게 전달할지 몰라 예조 측에 맡겼고, 예판인 손병도가 들고 집으로 왔다. 영국 측에서는 희선이 예조 수장인 예조 판서의 딸인지 뭣인지는 몰랐으나 어떻게 보면 최단거리로 전달된 셈이었다.


“아버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게 된 건가요?”


“그래, 이 사고뭉치 딸아.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모르겠다. 영국 측에서도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고 몇 번이나 다시 물어왔다.”


“아버님, 저는 그날 저녁에 먼저 말을 꺼낸 게 전혀 없었습니다. 전하가 갑자기 대장간에 대해 하문하셨고, 대답했습니다. 그 뒤로는 어떻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전하의 의중을 정확히는 모르겠구나. 아마, 영국군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려는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다.”


“저도 그게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은 했습니다.”


“실무자들끼리도 이야기할 때 말이 많았다. 하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진행하는 것이 결국은 전하의 복심(腹心)인 듯 해서 그냥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민화 낭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같이 하기로 한 겁니까?”


“그러게 말이다. 너야 그렇다 쳐도 삼간택까지 간 규수인데, 하게 되었다. 정구윤 대감도 자의인지 타의인지 몰라도 허락을 했다고 하더구나.”


당사자인 희선도 어벙벙했다. 사실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세자빈 후보가 둘이나 포함된 조선인들이 영국인들과 그들의 전통인 대결을 하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그냥, 조심하거라. 뭐든지 말이다.”


흔들리는 불빛이 근심어린 손병도의 얼굴을 비추었다.



**



며칠 후 벽란도.


영국군 병참장교 밀러가 대장간에서 기다린다는 소식을 들은 희선은 가는길에 회회떡집에 들렀다. 오랜만에 종효, 얼금이와 함께 회회떡을 하나씩 먹었다. 혹시나 하며 팔복을 잠시 기다려 보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살짝 실망한 희선은 발걸음을 재촉해 대장간에 도착했다. 밀러 중령과 야장 웅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장, 그간 안녕하셨는가. 밀러 중령도 안녕하셨습니까.”


“애기씨 오셨습니까. 제프리 밀러 중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웅수가 정중히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밀러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레이디 손, 희선양, 안녕하십니까? 희선양 노블레스 패밀리인줄 몰랐습니다.”


“밀러 중령님도 안녕하셨나요.”


“공사님 짜증 났어요. 좋은말 해줬어요. 힘들었어요.”


웅수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세자빈 간택은 잘 마치셨습니까.”


“탈락했으니 잘 마친 것인가, 아닌 것인가.”


“아이구, 우리 애기씨가 탈락하시다니, 이런 일이 있습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웅수의 눈은 웃고 있었다.


“이야기는 이미 다 들었겠네.”


“불, 힘과 마법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정말 내 뜻이 아니었네. 내가 좀 생각이 없긴 해도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아.”


“알고 있습니다.”


“킹, 전하가 막 말했습니다. 빨리 말했습니다. 우리 공사 브룩스, 희선양 바보됐다. 이상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저는 재미있습니다.”


듣고 있던 희선이 손을 내저었다.


“밀러 중령님, 어지간하면 역관을 데리고 다니시는 게 어때요? 뭔 소리인지 원.”


“희선양, 나 안 나옵니다. 우리 쪽 부부 있습니다. 부부 나옵니다. 그래도 그들 잘하는 편입니다. 내가 본다, 봅니다.”


“영어로 말해요. 제 영어가 중령님 조선어보다는 낫겠네요.”


머쓱해진 밀러가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름 자신의 조선어가 괜찮다고 생각한 그는 살짝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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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불, 힘과 마법 (1) 24.08.08 21 1 12쪽
18 게임의 법칙 24.08.07 21 1 11쪽
»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24.08.06 22 2 11쪽
16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24.08.04 22 2 11쪽
15 집으로 24.08.03 24 2 11쪽
14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13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1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9 1 11쪽
11 화승총과 수석총, 매치락과 플린트락 24.07.30 3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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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국지색(傾國之色) 24.07.27 31 1 12쪽
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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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5 갈라치기 24.07.23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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