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946
추천수 :
31
글자수 :
144,572

작성
24.08.04 14:37
조회
21
추천
2
글자
11쪽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DUMMY


16.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결과가 어찌되든, 희선은 한성에 한동안 머물러야 했다. 그녀가 낮은 가능성에도 삼간택까지 가게 된다면 입궐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희선은 새벽녘까지 치륜식(齒輪式-Wheel lock) 소총의 구조를 보다가 이건 무리다 싶어 포기하고 잠이 들었다. 그녀는 아침도 거르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리에 누워 있다가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으븟, 우부부, 바바.”


힘겹게 눈을 뜬 희선의 눈에 초록색 눈에 밝은 갈색머리를 한 아기의 얼굴이 들어왔다.


“엄마얏, 깜짝이야. 뭐야, 얘 누구야?”


아기를 안고 있던 얼금이가 대답했다.


“어젯밤에 집 앞 감나무 밑에 누군가 놓고 갔습니다.”


“또 업둥이야? 다들 왜 그러는 거야, 정말.”


개성에 있을 때도, 한성에 있는 지금도 자주 겪는 일이었다. 손병도의 인품이 좋고, 집안의 살림도 괜찮은 편이며, 예판댁 가노나 머슴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소문이 나니, 동네의 업둥이들은 다 손병도의 집 앞에 놓여졌다.


“네안더 여자아이입니다, 애기씨. 저는 네안더 아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건 처음입니다.”


아기라 동글동글하게 생기긴 하였지만 역시 사피엔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머리털과 눈 색깔은 물론이고, 비교적 튀어나온 미릉골(眉稜骨), 긴 쇄골, 넓은 흉곽 등 네안더의 특징은 다 가지고 있는 아기였다.


“그런데 왜 아기를 네가 안고 있니?”


“유모 아줌마가 젖은 좀 물렸구요, 그 후에 제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니가 아기를 보고 있냐고.”


그걸 몰라서 묻느냐는 듯, 콧김을 한번 내쉬고 얼금이가 대답했다.


“지금 이 집 안에서 저랑 애기씨가 제일 할 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음, 아주 정확한 판단이구나.”


좌우로 아기를 흔들어 달래면서 한참 아기를 쳐다보던 얼금이가 물었다.


“그런데요, 애기씨. 이 아이도 사람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사람이지. 이 아기가 사람이 아니면 뭐야.”


“사람들이 네안더에게 많이 말하지 않습니까. ‘너희들과 우리는 씨가 달라. 종자가 달라.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입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지. 네안더들이 천출(賤出)이 많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입술을 살짝 내민 얼금이가 작은 소리로 입을 떼었다.


“천출이면 사람이 아닙니까? 그럼 저도 네안더와 같은 건가요?”


“아니지, 얼금이 넌 진짜 사람이고.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약간 다른 사람이지.”


“다른 사람이요?”


“아....나도 잘 모르겠구나, 얼금아. 아무튼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못났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어떤 이유로라도 깔아뭉개고 싶은 거야. 그러면 지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거든. 바보 같은 짓이야.”


희선이 씁쓸하게 웃었다.


“마굿간에 흰돌이 말입니다. 흰돌이는 노새 아닙니까?”


“갑자기 흰돌이는 왜?”


“노새는 갑자기 어디서 생깁니까, 애기씨?”


“수당나귀와 암말 사이에 새끼가 생기면 노새가 되는 거야. 힘도 세고, 끈기도 있고, 사람 말도 잘 듣고 똑똑하지.”


“그러면 당나귀와 말을 많이 혼인시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노새가 그리 좋은 놈들이면요.”


“그게...음....”


희선이 말을 좀 돌려서 설명하려 잠시 고민할 때, 도리어 얼금이가 핵심을 짚었다.


“노새가 고자라서 안 된다던데, 정말 그렇습니까?”


“고.....그, 그렇지. 노새끼리는 새끼가 안 생기지. 너 그런 건 어떻게 아니?”


“수수밭 머슴 아저씨들이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요.”


희선은 그 인간들, 애 앞에서 말 좀 조심하라고 당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사피엔이랑 네안더도 말이랑 당나귀 같은 겁니까, 애기씨?”


이 말을 하려고 흰돌이 이야기를 꺼낸 거였나 싶어 희선은 감탄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사피엔과 네안더 사이에서는 아기가 안 생기니 좀 다르지 않을까?”


“생기기도 한다면서요?”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구나.”


“히히, 애기씨는 뭐든 다 아시는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있겠니. 모르는 것 천지란다. 그나저나 너 동몽선습(童蒙先習) 어디까지 봤니? 정음(正音)은 이제 줄줄줄 읽니? 마침 한가한데, 시험을......”


얼금이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어구구, 무거워. 애기씨 잠시만 이 아이 좀 안아주시겠어요? 제가 물 좀 떠가지고 오겠습니다.”


“갑자기 물은 왜? 야, 얼금아.”


아이를 안겨주고 호다닥 도망가려는 얼금이를 희선이 붙잡아 세웠다.


“이 아이, 이름은 뭐야?”


“감나무 밑에서 주워왔다고 감실이랍니다.”


“진짜 그냥 막 짓는구나.”


얼금이도 씩 웃었다.


“저희 같은 것들이야 그냥 부르기에 편하기만 하면 되죠 뭐. 히.”


“그래, 얼른 물 떠와라, 얼금아. 그 다음에 동몽선습에 대해 내가 물어볼게. 대답이 부실하면...각오하렴.”


“네, 애기씨.”


고개를 푹 숙이고 나가려는 얼금이에게 희선이 말했다.


“얼금아. 이대로 도망가면, 죽을 줄 알아. 개성까지 뛰어도 내 잡는다. 내 성질 알지?”


“어떻게 알았어요, 애기씨?”


“지난주에 내가 정음에 대해 물어본다고 말했을 때, 너 똑같은 표정을 하고 도망갔어. 나한테 잡혔을 때 어떻게 되었더라?”


“꼭 물만 떠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얼금이는 애기씨가 정말 좋았다. 글공부를 시킬 때만 빼고 말이다. 공부를 시킬 때의 애기씨는 악귀 그 자체였다.



**



점심을 먹은 후, 할 일 없는 희선과 얼금이는 감실이를 안고 집안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집 뒷마당 창고쪽이 시끄러웠다.


손병도의 토지 마름겸 집사 역할도 하는 고점구가 웬 남자 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끄러워져서 그런지 안주인인 민씨와 여자들도 나와 옆에 서 있었다.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야. 들복이 자네도 두 번째고.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


“그게 요즘 들어 몇 발 쏘기만 해도 고장이 납니다. 저희 잘못이 아닙니다.”


손씨 집안에 고용된 사냥꾼들이었다. 아니, 손씨 집안과 계약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이다. 그들의 총이 고장나 바꾸러 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슨, 최근 총기 고장이 잦았고 그것 때문에 고점구가 타박을 하는 중인 듯했다.


손씨 집안은 그들에게 조총과 화약, 덫, 그물 등을 제공하고 그들이 잡아오는 늑대, 사슴, 노루, 멧돼지 등을 처분해주고 그들에게 잡아오는 수만큼 일정량의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또 총을 고장냈냐고 혼내는 고점구와 두 사냥꾼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사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민씨는 그냥 집 안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거기에 아기를 안은 희선과 얼금이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애기씨, 오셨습니까.”


고점구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점구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대감마님 댁에서 나가서 살게 되니까, 자주 뵙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늦장가 가더니 신수가 훤하시네. 얼굴 엄청 좋아 보이세요. 깨가 쏟아지나봐요?”


쑥스럽게 웃던 고점구가 앞의 두 사냥꾼에게 희선을 소개했다.


“예판 대감마님의 셋째따님이시네. 인사드리게나.”


누군지 몰라 눈치 보던 두 사냥꾼이 희선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애기씨.”


“안녕하세요. 그런데 점구 아재는 왜 또 성질을 내고 계세요?”


점구가 조총을 집어들더니 희선에게 말했다.


“이 두 친구는 손가의 문기(文記) 사냥꾼입니다. 그런데 두달 전에 총을 바꿔갔는데 또 고장이 났다고 다시 가져왔지 뭡니까. 총값이 고기값, 가죽값보다 더 나갈 지경입니다.”


“우리 집에 쓸만한 총이 여러 정 있긴 했었나요? 재작년 쯤에 제가 봤는데 발사될 것 같지도 않던데요?”


“다 좀 오래되긴 했습니다만, 몇 달에 한번씩 계속 고장난다고 하니 제가 성이 안 나겠습니까? 혹시, 애기씨 괜찮으시면 잠시 봐주실 수 있을까요?”


“예, 뭐, 지금 할 일도 전혀 없고.”


손씨 집안에서 살림을 맡아오며 오랫동안 거주했던 고점구가 희선의 지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잘 됐다 싶어 점구는 얼른 희선에게 총을 내밀었다.


희선이 안고 있던 감실이를 얼금이에게 조심스레 건네주고는 총을 받아들었다. 먼지가 푹 덮여있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총이었다. 목재로 된 부분도 반쯤 썩어있었고, 철제부위는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희선이 먼지를 손으로 털어가며 살펴보자, 민씨가 물었다.


“희선아, 네가 보면 좀 알겠느냐.”


민씨는 정말로 궁금했다. 늘 쇠와 불, 총에 관심을 가지는 괴짜라는 건 알지만, 희선이 정말로 병기 쪽에 밝긴 한 것인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 벌거숭이인지 민씨는 알 수가 없었다.


“네, 뭐, 대충.”


무심하게 대답하며 총을 훑어보던 희선이 혼잣말을 했다.


“이거, 종자도총(種子島銃)이네. 이런 걸 아직 쓰나?”


총신 뒤쪽의 격발부를 손으로 툭툭 건드려보던 희선이 점구에게 물었다.


“점구 아재, 원래 우리 집에 있던 총이 어떤 건지 알고 계세요?”


점구가 희선의 귀에 대고 작게 대답했다.


“애기씨, 사냥꾼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뭐 아는 것처럼 말했지만, 저는 총을 쏠 줄도 모릅니다. 당연히 조총은 하나도 모릅니다.”


“흠...저한테 가끔씩 물어라도 보시지 그러셨어요.”


“애기씨가 주로 개성에 계시기도 했고, 주인마님이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랬겠군요. 총을 어디서 사 오셨는지는 아세요?”


“한성의 철포장간에서 사왔습니다. 공조에 신고도 한 겁니다.”


“저 두 사람 잘 아는 분들이세요?”


“네. 손가의 사냥꾼으로 고용한 지 한 삼년 됩니다. 질이 안 좋거나 사람을 속일 위인들은 아닙니다.”


“흐음....”


점구와 희선이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서자 사냥꾼들이 말했다.


“저희 잘못이 아닙니다. 총을 마련해 주셔야 저희들도 다시 사냥을 하러 갈 텐데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잠시만요. 어머니, 소작인이나 문기사냥꾼처럼 우리랑 약속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우릴 기망하면 어떻게 되나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민씨는 뜻밖의 얘기에 잠시 당황했다.


“응? 소작인이면 소작전답을 뺏고 보상을 받아내지. 사냥꾼들이라면 총과 화약을 돌려받고 기망한 금액이나 사안에 따라 관아에 넘긴다.”


“그렇군요. 자, 두 분. 들으셨죠? 방금은 제가 몰라서 어머니께 여쭤본 게 아닙니다. 그냥 다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사냥꾼 둘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애기씨는 조총장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변경 공지 24.07.24 30 0 -
27 시집가는 날 (2) + @ 24.08.15 16 1 17쪽
26 시집 가는 날 (1) 24.08.14 15 0 12쪽
25 벽란도의 노을(완결) + 후기 24.08.13 16 1 9쪽
24 불, 힘과 마법 (6) 24.08.13 20 1 11쪽
23 불, 힘과 마법 (5) 24.08.12 17 1 12쪽
22 불, 힘과 마법 (4) 24.08.11 17 1 11쪽
21 불, 힘과 마법 (3) 24.08.10 17 0 11쪽
20 불, 힘과 마법 (2) 24.08.09 19 0 13쪽
19 불, 힘과 마법 (1) 24.08.08 21 1 12쪽
18 게임의 법칙 24.08.07 20 1 11쪽
17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24.08.06 21 2 11쪽
»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24.08.04 22 2 11쪽
15 집으로 24.08.03 23 2 11쪽
14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13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0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8 1 11쪽
11 화승총과 수석총, 매치락과 플린트락 24.07.30 34 2 11쪽
10 소와 양 24.07.28 30 2 13쪽
9 경국지색(傾國之色) 24.07.27 31 1 12쪽
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7 총열과 세자빈 24.07.25 40 2 14쪽
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5 갈라치기 24.07.23 43 2 12쪽
4 개풍 대장간 24.07.22 50 0 15쪽
3 몰래카메라 청년 24.07.19 69 0 14쪽
2 빨간 원숭이 24.07.19 119 2 13쪽
1 프롤로그 24.07.19 128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